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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4] 파이널 판타지 7 에어리스 스핀오프 스토리( 강스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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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리스가 별로 돌아간 후부터 엔딩까지 에어리스 관점의 스토리입니다. (울티메이트에 수록된 공식 소설)
이걸 읽으시면 AC나 원작에서 엔딩 마지막에 에어리스 얼굴이 왜 등장했는지 의미가 이해됩니다.
 
 
 
#
 
 
 
별을 도는 소녀
 
 
  호수 바닥으로――.
  에어리스(エアリス)는 가라앉는다. 차갑고 맑은 호수 속을, 조용히 잠든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누우며 내려간다. 호수 면의 물결이 짠 빛의 그물이 움직이지 않는 그녀 위에서 흔들흔들 춤춘다. 잡아매 두려는 듯이.
  평온한 그 얼굴에 다양한 감정이 표현되는 일은 이제 없다. 기쁨과 즐거움을 주위에 전염시키는 미소를 띨 일도 없고, 약자를 짓밟는 불합리함에 맞서는 분노나, 슬픔만으로 메워지지 않을 듯 흘리는 눈물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육체는 침묵한다. 영원히.
 
  하지만 그것은 에어리스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때 그녀는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를 통해 본 것이 아니라 혼으로――정신 에너지인 의식체로서, 자신의 육체였던 것과 겹쳐지며 그녀는 보고 있었다. 점차 멀어져 가는 반짝이는 호수면을. 그리고 그 너머로 흐릿하게 다른 세계에서(살아 있는 자의 세계는 그녀에게는 이미 다른 세계인 것이다) 자신의 보는 사람의 모습을. 그녀를 잃은 슬픔과, 그녀를 빼앗은 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산산조각 나 버릴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는 클라우드(クラウド)의 얼굴을.
 
  「자기를 원망하지 마. 이제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메테오(メテオ)가 와도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넌 그런 마음에 사로잡히지 마. 클라우드가 클라우드일 수 있도록, 단지 그것만을 생각해――.」
 
  말을 걸려 해도 에어리스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는 혼이 된 그녀의 마음을 전할 방법도 없이 클라우드는 금세 멀어진다. 멀리 수면에 흔들리는 빛이 약해지며 그녀는 가라앉는다. 고대종 세트라(セトラ)의 옛 도시――잊혀진 도시(忘らるる都) 속으로 깊숙하게, 미끄러지듯 떨어진다. 세트라 최후의 생존자였던 에어리스가 별을 지키는 사명을 끝내고 내려간다. 마지막으로 도달할 장소에, 끝없이 깊게…….
 
 
 

1 . 안녕.. 클라우드.
 

  그렇다. 끝없이.
  호수 바닥에는 벌써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에어리스는 여전히 계속 가라앉는다.
  육체는 아득한 세월에 걸쳐 퇴적된 눈발 같은 티끌의 깔개에 덮인 채 물 속 깊숙이 들어가 있다.
 
그녀의 짧았던 22년 인생을 함께 보낸 육체는 이제 그녀와 영원히 이별을 고한다. 혼과 분리된 그릇은 청정한 물의 잠자리에서 천천히 대지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에어리스의 의식은 다시 아래층으로 간다.
 
  지금의 그녀는 미약한 입김에도 흔들릴 티끌에 약간의 변화도 주지 못한다. 두터운 침전층에 겹쳐지고 투과되며 에어리스는 가라앉는다. 보이는 것은 어둠――그러나 불안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 부드럽고 따뜻한 무명 세계. 이윽고 그녀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티끌이나 진흙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녀의 감각은 이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으로 이행하고 있었다. 물질의 본질을 지각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의 오감에. 그리하여 보인 세계는 이제 암흑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엷게 녹색을 띤 빛의 줄기 속에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극대 시점으로도 인식한다. 수만, 아니 수억 갈래로 나뉜 에너지의 흐름이 혈관처럼 이 별의 구석구석까지 뻗어 가며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를 둘러싼 빛의 홍수는 그런 지류 중 하나가 다시 갈라진 시냇물에 가깝다. 별이 가지는 마황(魔晄) 에너지의 총량은 인간이 상정하여 다루는 단위로는 나타낼 수 없는 막대한 양이었다
.
  별의 생명이 맥동하는 모습을 에어리스는 보고 있었다. 순환하는 '라이프스트림(ライフストリーム)'의 빛을. 살아있는 자 모두가 돌아가는 생명의 근원을 그녀는 정확히 인식했다.
 
  무수한 혼이 뒤섞이며 지식과 경험――기억까지 분해되어 하나의 정신 에너지가 되는 장소였는데, 그런데 에어리스는 아직 '개체'였다.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거기 있었고, 죽은 자들의 의식이 소용돌이치는 흐름 속에서 생전과 변함없는 모습을 이미지로서 유지하고 있었다. 생전의 에어리스 게인즈버러(エアリス・ゲインズブール)과 같은 의식체로 존재하고 생각하면서 라이프스트림을 타고 행동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될 줄을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 여행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고 가는 곳마다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해 온 고대종 '세트라'의 생존자였던 에어리스는 별과 대화할 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별의 생명인 라이프스트림의 일부가 된 다양한 의식과 말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죽음이 생명의 종언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 주었다.
 
  죽음이란 사라지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의식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눈뜨지 못하고 사고할 수도 없는 허무――소멸이야말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며 무서워한다. 사람이란 언젠가 죽는 단명한 종족이라고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기피해 버린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은 자라 할지라도.
 
  에어리스는 죽음이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별을 개척하는 사명을 끝낸 세트라의 종착점이 평온한 사후 세계였다는 사실도. 그래서 그녀는 강하게 예감하고 있었던 죽음에 임해서도 겁먹지 않을 수 있었다. 별로 겁먹지 않고 담담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고대에 가지고 있던 별과의 대화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 입장에서 본다면 비명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그녀의 마음은 평온했다. '사명에서 도망쳐 살아남았다면 좋았겠다' 하는 후회는 없었다.
 
 그래도 슬픔은 있다. 마음의 아픔도.

  별을 구하기 위해 함께 여행한 동료들과 그녀를 15년이나 보살펴 준 양어머니 엘미나(エルミナ)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관련 있었던 사람들, 지금은 모르지만 미래에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제 그들과 '살아있는 인간'으로 만날 수 없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이 슬픔은 남겨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에어리스는 알고 있다. 게다가 그녀가 이렇게 혼으로, 에어리스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알 리가 없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는 하겠지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면 슬픔은 조금도 가시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그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는 생각이 그녀의 아픔을 더 강하게 한다.
  특히 클라우드를 생각하면 에어리스는 무척 괴로워졌다.
 
 
  그녀가 호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과 어쩐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성격도 무엇 하나 닮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이나 버릇――그래도 그건 금세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첫사랑한 사람보다 훨씬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그녀의 영웅이었고, 또 내버려 둘 수 없는 위태로움도 안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고 침착 냉정하게 보이면서도 눈을 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덧없는 인상이 가끔 얼굴에 비친다. 될 수 있으면 쭉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곁에, 있고 싶었다.
 
 
  그녀가 동료들의 곁을 떠나 잊혀진 도시에 갈 때 클라우드의 마음은 금이 가 부서지기 직전의 달걀과 같았다. 부화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뻑뻑한 노른자가 흘러나올 것 같은, 정신이 붕괴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도와주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최후의 세트라가 아니었다면 에어리스는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온 재앙(空から来た厄災)' 제노바(ジェノバ)의 의지를 계승한 남자――옛날 영웅이었으며 지금은 칠흑과 백은의 광기에 빠진 세피로스(セフィロス)의 손에 최강의 파괴 마법 메테오를 발동하는 흑마테리아(黒マテリア)가 넘어간 이상, 그녀에게는 세트라에 전해진 사명을 이루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젠가 세피로스는 반드시 메테오로 거대 운석을 소환하여 이 별에 엄청난 대미지를 입히려 할 것이다. 파괴해 버릴 정도의 상처를. 그것을 고치기 위해 별은 틀림없이 상처에 막대한 정신 에너지를 집중시키게 된다. 그때 모인 힘 전부를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세피로스는 획책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세피로스는 별과 동화되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며, 그 증오는 인류 모두, 세계의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이다. 별의 미래는, 생명의 순환은 거기서 영원히 끝난다.
 
 
  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에어리스는 별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그것은 세트라의 생존자인 그녀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자세한 것은 고대종의 도시 잊혀진 도시에서 지식을 얻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행위는 세피로스에게 계획의 최대의 방해자로서 살의의 시선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 점과 관련하여 에어리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인간 모두가 멸망할지, 아니면 자신의 죽음과 바꾸어 파멸을 피할지――그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그녀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망설임이 있었다면 정신의 균형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클라우드로부터 떨어진다는 점이었지만, 결국 그녀가 가지 않으면 동료들도 전 세계 사람들도 아무도 무사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은 나 있었다. 클라우드를 위해서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혼자 길을 떠난 그녀는 잊혀진 도시의 제단에서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역시 열쇠는 최후의 세트라였다. 고대종에 전해진 백마테리아(白マテリア)――메테오와 대를 이루는 궁극의 마법 홀리(ホーリー)를 발동하기 위한 이 도구는 마지막 남은 고대종에 숙명처럼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죽은 어머니 이파르나(イファルナ)에게 물려받아 리본 속에 숨겨서 늘 가지고 있던 마테리아야말로 백마테리아였던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있었던 의미를 깨닫고 에어리스는 일심으로 기도를 올린다. 마테리아를 통해 별에 말을 걸어, 메테오를 없앨 백마법 홀리를 발동시키려 한다.
 
 
  조금이라도 주저했다면 그녀의 바람은 별에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해냈다. 에어리스의 의도를 알아챈 세피로스가 그녀를 습격했을 때는 이미 홀리의 발동 조건이 만족되어 있었다. 그녀는 흉인에 찔려 예상대로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해야 할 일을 해낸 표정은 편안했다.
  그러나 금세 절규를 느꼈다.
 
 
  소리로서의 외침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목이 찢기고 피가 뿜어 나왔을, 혼의 밑바닥에서 짜낸 거친 격정의 물결――그것은 클라우드의 정신이 삐걱거리는 소리였다. 에어리스의 죽음을 한탄하고 자신을 책망하며 세피로스에 증오가 들끓는, 어루만질 수도 없을 만큼 상처 입은 마음의 외침이었다.
  그 슬픔의 깊이에 그녀는 놀란다. 그렇게 자신을 생각해 주었나 하는 마음에 조금 기뻐지고, 그것의 몇 배나 되는 괴로움도 느낀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클라우드를 이렇게까지 심하게 괴로워하게 만든 것에 그녀는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픔이 라이프스트림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육체를 잃어버렸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이미지하여 거기서 아픔을 확인한다. 아픈 가슴에 손을 대고 한동안 에어리스는 눈을 감고――곧 깨닫는다.
  주위에는 무수한 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수많은 목소리, 엄청난 기억. 미드갈(ミッドガル)에 있었을 때는 슬럼의 교회에서밖에 느낄 수 없었던 것이 그녀의 주위를 채우고 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죽어서 별에 돌아온 혼이 여기 있다. 그런데.
  그런데 에어리스처럼 또렷한 모습을 가지는 것은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정신 에너지의 소용돌이 속에서 명료한 생전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녀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세트라라서……인가?」
 
  에어리스는 그렇게 입 밖으로 중얼거린다. 여기서는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같았다. 의식체인 그녀에게 사고나 감정은 파장이 되어 퍼진다. 마찬가지로 라이프스트림 내의 막대한 기억은 물결이 되어 그녀에게 밀려온다. 강하게 자아를 유지하지 않으면 금세 어느 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뒤섞일 것 같은 속삭임이 그녀의 주위를 채우고 있다.
 
  「기왕이면 클라우드에게 이야기, 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에어리스는 입술을 조금 삐죽이며 볼을 부풀렸다. 그녀는 지식과 기억의 바다인 마황 에너지에 의한 의식의 혼란과는 무관했다. 어릴 때부터 별의 목소리를 들었던 경험이 그녀 속에 내성을 만들었다. 에어리스라는 개성을 침식당하지 않도록 의식을 유지할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체"가 점차 풀려 별에 돌아가는 것임을 그녀는 이해하고 있다. 물방울이 강에 떨어지면 곧 뒤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정신 에너지의 바다에 뛰어든 혼 하나가 이렇게까지 에어리스로의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세트라라서, 였다면 라이프스트림은 나 같은 세트라투성이겠지. 돌아가신 어머니도 세트라였고…… 그래도 15년이나 지났으니, 조만간 나도 별과 하나가 되어 점점 사라지는 걸까?」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렇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클라우드에게 전할 수 있을까? 난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지낸다니, 이상하네. 난 여기서도 '또렷이' 있어, 정도?」
  클라우드에 대한 미련이 자신을 '또렷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가족과 연인을 한 번 만나서――사랑하고 있다고 전하려고 먼 땅에서 죽은 사람의 혼이 찾아오는 것을 미드갈에서의 생활 속에 그녀는 몇 번 느꼈다. 남은 마음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 '개체'의 의식을 강하게 유지하는 일이 있음을.
 
「그래도, 그럼 나, 클라우드를 만나면 곧 사라지나? 그렇게 되는 걸까……. 아니면 아직 뭔가, 남아 있나……?」
  이 순간 에어리스 속에 전기처럼 번뜩이는 생각이 스친다. 그랬었나, 하며 무심코 주먹을 손바닥에 부딪힌다. 육체는 무의식적으로 상상하는 환상일 뿐이었지만 분명히 이미지 속에서 탁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것도 마찬가지야. 의미가 있어. 내가 라이프스트림 속에서 녹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어. 별에서 홀리를 불러일으키는 마테리아를, 세계에서 나 혼자만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별이 조금 술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각각의 녹아든 의식이 아니라 이 별의 모든 의지가 그녀의 생각을 긍정하는 것처럼.
  「……그런가. 그렇다면, 뭘까?」
 
  에어리스의 물음에 침묵에 가까운 술렁임. 별도 그것은 아직 모른다.
 
  슬럼에서 자신이 팔던 꽃처럼 그녀는 미소 짓는다. 부드러운 반딧불 속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던 미소가 가련하게 지어진다.
  「응, 좋아. 나도 아직 내버려 둘 수 없는 사람, 있으니까. 아직 잠들지 않을 거야. 그때가 올 때까지 잠시 여기를 돌아다녀 보겠어. 천천히, 별 속을――우리들의 약속의 땅(約束の地)을…….」
 
  생각을 떨치며 에어리스는 하늘을――머리 위를 덮은 별의 외각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마황의 입자가 떠올랐다 튕기며 밤하늘처럼 보였다.
  코스모캐니언(コスモキャニオン)에서 모닥불에 둘러앉아 클라우드와 함께 올려 본 우주처럼.
 
 
 

2  라이프스트림을 타고
 

  마황의 세계――라이프스트림 속에서는 지상 세계와 시간도 거리도 개념부터 다르다고 에어리스는 느꼈다.
  시간의 흐름은 더디게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원한다면 순식간에 흘러간다. 애당초 마황 속에만 있다면 시간의 경과는 거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막대한 과거의 기억이 뒤섞이며 쌓인 별의 역사가 항상 옆에 있는 것이다. 거기는 지금 현재임과 동시에 모든 과거이기도 했다. 에어리스가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억에 각인된 사상은 시간의 차이를 넘어 맞닿아 있었다. 살아 있는 자의 세계의 시간만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서였다. 새롭게 섞이는 지상의 기억. 그리고 또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서 지상에 보내지는 별의 에너지. 그 순환이 점점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가르쳐 준다.
 
  라이프스트림으로 연결된 별의 내부는 거의 모든 것이 맞닿아 있는 것과 같았다. 지상이라면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진 땅이라도 정신 에너지의 기류는 순식간에 움직인다. 오히려 바로 근처에 있는데도 갈 수 없는 장소도 있었다. 마황의 흐름이 왜곡되어 우회하고 있어서 다가갈 수 없는 지역이 몇 군데 존재한다. 이건 분명 지상의 마황로(魔晄炉) 때문이야, 하고 에어리스는 생각했다. 본래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닌 에너지를 계속 억지로 빨아올리면 반드시 어떤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인간이 조금 편리해지는 정도만이라면 별도 아마 힘을 빌려 줄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 컴퍼니(神羅カンパニー)는 도가 지나치다. 이대로 계속 과욕을 부리면 별의 생명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진다――슬럼의 교회에밖에 꽃이 피지 않았던 마황에 절어 있는 마을 미드갈의 삭막한 광경을 그녀는 떠올렸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알고 싶어 했구나. 세트라만이 안내할 수 있는 마황 에너지로 넘치는 풍요로운 토지……. 그렇지만 그건 여길 말하는 거야. 누구나 마지막에 도달하는 별에 돌아가기 위한 장소. 신라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껏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토지 같은 건 사실은 없었던 거네. 완전히, 착각.」
  라이프스트림의 흐름에 몸을 맞기며 그녀는 중얼거린다. 흘러가는, 그러나 변화는 부족한 마황 세계를 바라보면서.
  「세피로스가 생각하고 있는 약속의 땅은 조금 달랐어. 세피로스는 그걸 억지로 만들려 했지. 메테오로 별을 일부러 상처입히고 여기 있는 에너지를 거의 전부 한 장소에 모으려 했어. 독차지할 수 있게. 그게 세피로스의 약속의 땅…….」
  그렇게 된 미래를――별의 모습을 상상하고 에어리스는 몸서리친다.
 
  「클라우드네는 괜찮을까……. 티파(ティファ)도, 바렛(バレット)도. 세피로스를 쫓으면서 무리,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클라우드? 티파? 바렛?"
 
  바로 근처에 에어리스의 말에 반응하여 사념의 파문이 펼쳐졌다. 처음으로 만난 자기 이외의 명확한 의식에 그녀는 황급히 기류에서 벗어난다. 그 장소에 머무르자 마황 속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일어섰다. 에어리스만큼 명료한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그 사념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들 알고 있어? 넌 누구야?」
 
  "나는……."
 
  기억이 어지러운 것 같았다. 아마 거의 대부분이 마황 속에 녹고 있던 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풀리지 않는 핵이 있어서 미처 확산되지 못하고 거기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 먼저 내가 이름을 말해야겠네. 나, 에어리스. 너, 혹시 애벌런치(アバランチ) 사람이니?」
  "애벌런치……. 그래, 맞아."
 
  그 인물 고유의 기억이 마황의 바다에서 재구성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고는 들여다보일 것 같던 그림자가 급속히 지상에서의 이미지를 되찾아 간다. 에어리스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빛이 짙어진다.
 
  에어리스에 비하면 훨씬 흐릿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김새를 비롯하여 이전에 입었던 옷이 어떤 것인지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걸리적거리지 않게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와 기능적이면서도 어쩐지 병사 같은 인상의 복장. 그녀 역시 이 땅에 오기에는 너무 이른, 에어리스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잊고 있었다니, 멍청하게(うかつ)……. 난 애벌런치의 제시(ジェシー). 저기, 당신…… 에어리스 씨?"
 
「에어리스라 해도 돼.」
 
 "고마워, 에어리스. 클라우드랑 티파랑 바렛을 알지? 다들 잘 지내고 있어? 신라와 계속 싸우고 있어? 앗……."
  제시는 미안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에어리스도 여기 왔으니까 나랑 비슷한 상황이겠네."
 
  「아니, 다들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거야――.」
 
  클라우드를 생각할 것 같아서 에어리스는 황급히 생각을 바꾼다. 여기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떠올리지 않도록 한다.
 
  「그래, 바렛이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어. 그렇구나, 제시는 그때…… 칠번가 지주를 지키려 했던 애벌런치였지. 나, 웻지(ウェッジ) 씨는 만났는데…….」
  "웻지!?"
 
  제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빅스(ビッグス)도! 우리 3명 모두 같이 여기 왔는데 금세 모습이 안 보이게 돼서……. 그래, 아까까지 자기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했었어. 에어리스, 널 만날 때까지."
  그때 제시의 기억에 이끌린 것인지 다시 두 개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짧게 턱수염을 기른 남자와 둥글둥글 통통하게 생긴 남자 두 사람의 모습이 급속히 응집된다.
  "오, 오오……."
 
  턱수염이 난 남자――빅스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난 아직 나였구나. 이젠 사라져 버릴 거라고 생각했어."
  "두 사람 모두, 다시 만나서 기쁩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때 절 돌봐 주신, 에어리스…… 씨? 당신도 죽은 건가요?"
 
  너무 당연해서 대답할 것까지도 없는 웻지의 물음에 에어리스는 미소를 보내며 끄덕인다.
 
  「오랜만이네요 웻지 씨. 그리고, 안녕하세요 빅스 씨. 저, 그 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애벌런치의 동료가 되었으니까, 여러분의 후배가 되는 건가요?」
  "음――, 그럼 애벌런치는 심각할 만큼 사망률이 높네요."
 
 
  "바렛은 여전히 우쭐거리고 있나? 뭐, 끌어들이는 힘은 있지만."
  "후배인가요? 저, 감격했습니다! 선배란 포지션을 동경했습니다!"
 
  그 후 에어리스는 3명에게 지금의 애벌런치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알려 줬다. 신라 컴퍼니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위험한 세피로스라는 존재와――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사악한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은 미드갈을 떠나 계속 싸우고 있다고.

  "클라우드도 동료가 돼 줬구나……. 이거 기쁜걸."
  "헤헤…… 쿨한 척했어도 그 녀석 해 줄 줄 알았어."
  "클라우드 씨도 제 후배인가요? 얼어 버릴 같습니다."
 
  애벌런치의 환영들은 즐겁게 웃으며 떠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수그러든 후 그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슬픈 감정이라는 것을 에어리스는 느낀다. 깊이 후회하는 마음이 3명을 한데 묶고 있다.
 
  「왜 그래? 어쩐지 다들 무척 힘들어 보여…….」
 
  "응…… 그래. 우리는 저쪽 세상에서 죽었잖아. 속죄를 못 했으니까."
 
  제시가 쓸쓸히 고개를 숙였다. 빅스가 이어 말한다.
 
  "우리도 애벌런치의 사상에 공감하며 싸웠다. 별의 생명을 좀먹는 신라를 막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이지.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옳지 않았어. 여기 와서 알게 된 거야……. 에어리스도 알지? 일번마황로 폭파 사건 말야."
 
  「응……. 일번가는 내가 살던 슬럼의 정반대편이어서 그렇게 자세하게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무척 많이 죽었다고 들었어…….」
 
  "플레이트 위에 있는 자는 어차피 신라 컴퍼니의 관계자거나 그 뜻을 이어받은 놈들이니까 폭파 작전에 휩쓸려도 자업자득이라고 그때는 생각했지. 그런데 말이지, 다들 결국 여기 와. 신라의 관계자든 아니든. 그렇다면 우리가 한 일은 뭐였나 싶어져. 소리만 크게 지르며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 주정뱅이 같은 거지. 별의 생명을 지킨다는 둥, 거창한 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었어――."
 
  "……저도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조연 같은 인생은 싫고 빛나고 싶어서――애벌런치에 들어가면 별의 미래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이 휘말린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빛나기는커녕 칙칙했을 뿐이네요……."
 
 웻지는 부끄러운 듯이 웅크려 앉았다.
 
  "그 작전 말이지, 사실은 없어진 구 애벌런치에서 입안되었던 거야."
 
  제시가 회한을 섞어 말한다.
 
  "멤버도 더 많았고 훨씬 과격했던 애벌런치. 우리는 그 시절의 멤버가 아무도 없어진 레지스탕스 조직을 계승한 이름뿐인 애벌런치였어. 그래도 컴퓨터에는 상세한 폭파 계획이 남아 있어서 폭탄 만드는 법, 어디 설치하면 되는지까지 상세하게 지시되어 있었어. 난 메커나 폭탄 만드는 게 특기였으니까, 그렇다면 해 보자고 이야기돼서……. 그렇지만 분명 그 계획은 마황로를 못 쓰게 만드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을 거야. 신라가 미워서, 미워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세운 희생자를 잔뜩 만들려 하는 무서운 작전……. 내가 알아차렸어야 했어. 바렛은 그런 거 전혀 몰랐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빅스는 초연히 위쪽을 쳐다본다.
 
  "여기서 얼른 별에 녹고 싶었다.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거다. 그걸 떠올렸어. 그렇지만 무리였다. 바렛과 동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고 싸우고 있어.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죗값을 치를 수 없는 우리는 여기서 죄수가 되어 계속 괴로워할 수밖에 없지."
 
  "마음이나마 편해지려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를 만큼 흐릿해져 있었지만."
 
  "실패였네요. 계기만 있으면 회복돼 버립니다. 그나마 에어리스 씨처럼 또렷하지도 않고, 어쩐지 저주받은 것 같아요."
  하하, 하 거리며 그들은 자조적으로 웃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래도.」
 
  참다 못해 에어리스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누구나 실수는 하잖아. 나도 깜빡 꽃값 거스름돈, 적게 준 적도 있고…….」
 
 "음……. 그거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멍청했으니까, 난."
 
「그렇지만 너희가 계속 괴로워해야 한다니…….」
 
  "고마워, 에어리스. 애벌런치의 선배로서 한심한 소리긴 하지만. 방정 떤 만큼 되돌아온 것 같군."
  "역시 전 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 이렇게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언젠가 별에 돌아갈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안 되네. 자, 에어리스는 이제 가. 넌 분명 뭔가 할 일이 있어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 테니. 우리 죄의 기억이 너한테 옮기지는 않을지 걱정이야."
 
「그런…….」
 
  "그리고 우리가 괴로워져. 그러니까, 응?"
 
 제시의 이 말은 거짓이었다. 에어리스가 더 이상 힘들고 우울해지지 않도록 거리를 두려 함을 훤히 알 수 있었다.        
 3명의 환영은 이제 흐릿해지려 하고 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조금 글썽거리며 에어리스는 말했다.
 
  「이 말만은 할게. 그날 셋이서 칠번가 플레이트 지주에서 버텨 줬기 때문에 슬럼의 많은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었어. 분명 일번마황로 때문에 죽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도 말린(マリン)을 구할 수 있었고. 그걸론 납득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목숨은 덧셈이나 곱셈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있지, 너희들은 죄만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그것만 기억해 줘――.」
 
  "……고마워. 고마워, 에어리스……."
 
  이제 누구의 의식인지도 모르게 된 목소리가 울리며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감옥에 묻혀 갔다. 기억의 바다에 잠기고 있었다.
  에어리스는 눈물을 훔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애벌런치들의 혼에 조금이라도 빨리 구원과 안식이 찾아오기를 기원하며.
 
 
 

3 . 반가운 얼굴들 
 

  지상에서 어느 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에어리스는 알지 못한다. 제시네와 만났다 헤어지고 며칠이 지났는지, 아니면 지금 막 있었던 일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들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었을까――그렇게 자문하면서 그녀는 지저 세계를 계속 돈다. 별을 채우는 마황의 바다를, 라이프스트림을 타고.
  다음에 나타난 환영을 보았을 때 에어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옅은 빛의 소용돌이에서 올라오는 강철의 총구. 그것이 의수로 팔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그녀는 바렛마저도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에서 떠났나 생각했다. 그녀의 어머니 엘미나와 함께 미드갈에서 피난해 있을 말린을 떠올리고 가슴이 죄어들었다.
 
「말린!」
 
  에어리스의 생각이 파문이 되어 퍼진다. 그것이 전해지고는 총을 팔에 단 남자의 이미지가 마황에서 전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차가운 광택을 내는 흉기는 왼팔에 달려 있었다. 유독 총만 꺼림칙하게 현실감을 띠며 실체화한 반면 남자의 모습은 붉고 탁했으며 흐릿했다.
 
「당신은…….」
 
  "여자――어디서 만났었지. 게다가 말린을 알고 있고."
 
「만났었지요, 다인(ダイン) 씨.」
 
  그자는 모래와 고철의 유형지 코렐프리즌(コレルプリズン)의 지배자였던 남자. 지난날 바렛의 친구였으며 고향 코렐(コレル) 마을이 신라에 짓밟혔을 때의 절망감 때문에 살육의 광기와 부조리에 지배당한 남자 다인이었다.
 
  "아, 그런가. 바렛과 같이 있던 여자구나. 그렇다면 너도 죽어 버린 건가. 가엾게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 태도로 큭큭 하고 다인은 웃었다.
 
  "너처럼 죄도 없을 것 같은 여자와 살인을 거듭한 내가 죽은 뒤에도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이 세계는 부조리에 가득 차 있군. 별이란 것도 별거 없구나. 역시 전부 없애야 돼."
 
  「아직도 그런 소릴 하나요.」
 
다인과 대조적으로 명료한 모습을 띤 에어리스는 가늘고 수려한 눈썹을 조금 추켜세운다.
 
「사실은 말린이 신경 쓰이면서.」
 
  "글쎄다. 여자, 넌――."
 
「에어리스입니다.」
 
 "크크…… 기가 세군. 하긴 내 왼팔도 여기서는 생전의 흔적일 뿐이지. 좋다, 그 이름으로 부르마. 에어리스, 그때 듣고 있었겠지? 나와 바렛이 나눈 이야기를. 난 뭐든지 없애려 한 데다 말린까지 여기 데려오려 했는데?"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큰소리친 거잖아요?」
 
  "여기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잖아? 최소한 그때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바렛에게 진심으로 싸움을 걸고 죽었지."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몸을 뒤로 젖히며 다인은 한바탕 웃음소리를 냈다.
 
  "그 일은 바렛에게 감사하고 있다. 어차피 내가 없애 버리고 싶은 '세계'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단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 그 유형지의 쓰레기 같은 겁쟁이들을 내 손으로 기쁘게 해 주는 건 사양이니까."
  「…….」
 
 "이제 알겠나? 에어리스야.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건 구제 불능으로 망가져서 별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남자의 망령이다. 처가――엘레노아(エレノア)가 돌아갔을 별에도 말이야. 거기다 나는 바렛에게 말린을 맡겼다. 이제는 이 별이 어떻게 되든 모든 것과 관계가 없어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
 
  「…….」
 
 잠자코 있는 에어리스를 보며 건방진 계집애를 말로 제압한 찰나의 정복감에 그는 다시 웃는다. 곧 그것이 자기에게도 별로 기쁘지 않았음을 느끼고 흥이 깬 시선을 보낸 다인은 그 여자가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음을 안다. 비취를 연상시키는 눈에는 그에게 들러붙은 광기를 걷어낼 만큼 쏘는 듯한 빛이 담겨 있었다.
 
「……자존심, 없네요.」
 
 "뭐야?"
 
  「한 번 더 말하죠. 다인 씨는 자존심도 없어요. 물러서서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으니까 쉬운 쪽으로만 계속 굴러가는 거죠.」
 
  다인을 보면서 에어리스는 한 걸음 나선다. 시선에 제압당해 그는 총으로 얼굴을 가리며 무의식적으로 물러선다.
 
 
  「바렛은――당신처럼 한쪽 팔을 총으로 바꾼 바렛은 분한 마음, 증오스런 마음을 신라에 부딪혔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손 역시 많은 사람들의 피로 새빨갛게 더럽혀졌다고. 그래도 바렛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전부 감내하면서 이번에는 진짜로 별을 구하려 하고 있죠. 도망치지 않고 말린이 사는 세계를 지키려 하고 있어요.」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게 단순한 그 녀석의 강점이지."
 
「바렛은 특별해요? 당신은 다른가요?」
 
  더욱 추궁당하며 다인은 신음한다. 취기가 깬다. 그가 가장 미워하는 것에서――자기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기 위해 취해 왔던 광기가 에어리스의 올곧은 시선 앞에 흩어져 버린다. 그의 마음의 갑옷이 증발해 간다.

  "나는 혼의 밑바닥까지 이 손으로 죽인 놈들의 피 냄새가 배어 있다. 보이지 않나? 그놈들이 계속 내게 처들러붙어 있다.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난 끌려들어 가 버리지."
  다인의 모습을 흐리는 붉은 안개가 갑자기 뻑뻑하고 찐득거리는 것으로 변한다. 코렐 마을이 소멸되고부터 4년간, 왼팔에서 납의 증오를 무차별적으로 퍼붓고 대신 받은 엄청난 피보라――그것이 죄의 사슬이 되어 다인을 굳게 죈다.
 
  "어떻게 돌이키란 말이냐? 나는 계속 취할 수밖에 없었다. 광기에 빠져 모든 것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아닌가?"
  「그건 아니에요.」
 
결코 위압적이지 않게 그녀는 가만히 다인에게 다가갔다. 내민 양손이 그를 흠뻑 뒤덮는 피의 막에 닿는다.
 
「당신을 얽매는 이 피도 당신 자신의 죄책감이 만들어 낸 것. 당신이 빼앗은 생명은 이 라이프스트림 속으로 벌써 돌아갔어요. 자신이 한 일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다인 씨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이유는 없죠. 제가 보증할게요.」
  "……."
  에어리스가 건드린 부분에서부터 질퍽하게 맺혀 있던 피가 마르며 떨어져, 작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와 함께 다인의 왼팔의 이미지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별이 될 수 있나."
 
「될 수 있어요. 꼭.」
 
 "말린이 나이를 먹어 천수가 다해 여기 왔을 때 나는 조용히 맞이해 줄 수 있나? 별의 일부로서――."
 
 에어리스는 다인의 얼굴을 올려보고 입술을 방긋거리며 끄덕였다.
 
「왜냐면 벌써 다인 씨는 새 출발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괜찮아요, 그쵸?」
 
  흐릿했던 다인의 얼굴은 이제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코렐프리즌에서 그녀가 만났던 인간과는 다른 얼굴――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했던 성실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비극 따위 일어나는 일 없이 그저 코렐 탄갱에서 땀을 흘리던 평화로운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다인도 에어리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재생할 수 있다. 슬프고 괴로운 기억에 맞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정말로 부조리만이 가득 차게 되고 만다.
 
  "이 마황의 바닷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동안은 내가 죽인 자들을 여기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내가 녹아 없어질 날까지."
 
 「응.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에어리스. 너한텐 미안하지만 만나서 다행이었다."
 
  「미안할 거, 없어요.」
 
  "당차구나, 정말로."
 
처음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미소를 띠며 다인은 조용히 이미지를 흐려 간다. 이미 왼팔의 총은 제일 먼저 사라져 있다.
 
 "죽고 나서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서야 겨우 말린과 바렛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맙다――."
 
  그가 라이프스트림에 가라앉기 직전, 에어리스는 보았다.
  마황의 입자가 의지가 있는 것처럼 물결치며 다인에게 달라붙는 것을. 다인의 놀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엘레노아, 인가?"
 
 그렇게 다시 에어리스는 여행을 계속한다.
 
 
 

4 . 별을 겉도는 사념들
 

  에어리스는 그때까지 라이프스트림이 냄새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혼이 감지하는 영적인 오감――그러나 청각은 사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시각은 에너지의 짙고 옅음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것이었다. 촉각은 분명히 느껴졌지만 그것은 이 세계에서 시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해도 좋았다.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서 미각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단, 후각은 있다면 틀림없이 알 수 있을 것인데 실제로 냄새를 느낀 적은 없었다. 다인에 묻은 피도 상징적인 것이었을 뿐이기 때문에 여기는 냄새가 없겠지, 꽃향기도 나지 않는다니 쓸쓸하네, 하고 에어리스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혼과 만날 때까지는.
 
 그것은 썩은 냄새였다.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던 노폐물이 부패하여 강렬하게 불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때처럼,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악취――.
  마황이 거기만 괴어 있었다. 기류가 뒤틀려서 바뀌지 않고 체류하는 일대――그 중심에 노인이 있었다.
 
 "아니, 본 적이 있는 여자로군."
 
  생전과 마찬가지로 옷감과 재봉에 돈을 잔뜩 들여 지어진 정장을 입은 그 남자는, 일견 에어리스와 비슷할 만큼 명료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또렷한 것은 의복과 비싼 구두 및 장식품 같은 것이었고 정작 중요한 얼굴은 심하게 흐려져 있었다. 노인이 말할 때마다 늘어진 볼과 정리된 콧수염이 잡음처럼 흔들린다.
 
  "이름은…… 뭐든 상관없지. 고대종의 피를 이은 여자다. 그랬지?"
 
 「뭐든 상관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어리스는 이름을 알려 줄 마음도 없다. 눈앞의 인물――예전에 신라 컴퍼니를 경영하면서 국가를 초월하는 거대 기업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 남자 프레지던트 신라(プレジデント神羅)에게는.
 
 "그래, 너도 여기 떨어진 거구나. 나처럼 죽어서? 같은 장소에?"
 
 재미있어서 견딜 수 없어 하는 말투로 프레지던트는 계속 이야기했다.
 
 "완전히 딴판인 인생을 보낸 우리가 마지막에는 뒤범벅이 되는군. 아니, 별은 멋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난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구나."
 
 「득, 을 봤다고요?」
 
  그것은 다인이 처음 한 말과 비슷한 의미이기는 했다. 그러나 다인의 경우에는 자신에 대한 비아냥이 다분히 담겨 있었다. 노인의 그것은 전혀 다르다. 에어리스는 느껴지는 사념에서 프레지던트 신라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해할 수 없느냐? 고대종이란 건 의외로 어리석은 존재구나. 아니, 그렇기에 우리 신라 컴퍼니에 협력하기를 그만큼 완강히 거부한 것이겠지. 어허, 딱하디딱한 인생이다."
 
「실례네요. 저, 딱하게 여겨질 짓 한 기억은 없습니다.」
 
 노인은 발끈하는 에어리스를 무시하듯 소리 없이 웃으며 받아넘긴다.
 
 "손익계산을 전혀 못 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행복한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더라도 생각해 보도록. 네가 어머니와 함께 호조(宝条) 군의 시설에서 도망치고부터 15년, 네 인생은 쓰레기 집합소인 슬럼에 있었다. 턱스(タークス)가 널 찾아냈을 때 순순히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적어도 화려한 플레이트의 상층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을? 그때 호조 군이 다른 연구에 빠져 있어서 나도 네 일은 계속 감시만 하라고 지시해 두었지만 네가 먼저 협력을 요청했다면 나는 파격적인 대우로 맞이할 마음이 있었다. 자, 어떠냐? 슬럼을 벌레처럼 기며 살다 끝내 애벌런치 따위와 연루되어 호사스러움도 모르고 죽은 네 인생을 딱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정말, 자기 혼자만의 시선으로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재는군요.」
 
  "독선적인가, 내가? 그건 아닐 거다. 공평하게 봐서 나만큼 이득을 본 인간은 없었을 거다."
 
  조소를 보내며 프레지던트는 타이르듯이 계속 말한다.
 
  "처음에는 일개 병기 제조 업체에 지나지 않았던 신라를 나는 내 재주로 여기까지 키웠다. 별이 가진 마황의 가능성에 착안하여 그것을 빨아올리는 마황로를 개발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전력으로 공급되는 마황은 대중의 삶을 풍족하게 했으며 또한 사로잡히게 했다. 한 번 손에 넣은 편리한 생활은 상습성이 있는 약처럼 우민들의 마음을 지배한 것이지. 그 에너지를 한 손에 쥐는 신라 컴퍼니는 순식간에 규모를 확대시켰다. 조금만 멋들어지게 선전을 하면 우수한 인재는 얼마든지 모였지. 꿈의 메갈로폴리스 건설 계획, 로망 넘치는 우주 계획――다들 내게 고용되려고 찾아왔다. 나는 이용했어. 종들에게 모셔지는 왕으로서 말이지. 대중은 결코 대국을 보지 않는다. 여론을 유도하는 보도 기관도 마황 에너지를 독점하는 신라 컴퍼니에는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신라는 나라를 삼켰고, 나는 무엇을 해도 비판받지 않는 절대적인 옥좌에 도달했어. 어리석은 자들을 발판으로 하여 무한히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한 것이다! 조금 더 오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뭐 그건 말하지 않겠다. 자, 어떠냐 고대종 여자. 너와 내 인생은 어느 쪽이 더 이득이었는지 이해했겠지? 아니, 오히려 자신의 일생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는지 알았겠지?"
 
  「음――. 그런가요?」
 
  에어리스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눈앞에 있는 노인이 마음속부터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과 동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모두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을 수 있는가――그것만을 추구한 결과가 별의 생명까지도 모두 빨아들이려는 신라 컴퍼니의 기업 이념인 것이다. 자기보다 불행한 인간 없이는 행복을 느낄 수도 없는 가엾은 혼의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그것을 지적할 마음은 없다. 프레지던트 신라에게 이것이 만족스러운 종착점이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끌어모은 것을 포기하지 않는 부의 이미지가 때처럼 들러붙어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이 모습이. 하수구처럼 괸 자신의 거처를――죽어서도 욕망에서 해방되지 않는 비참함을 추악한 노인은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자신과의 비교 대상을 구하는 프레지던트는 전혀 반응하는 기미가 없는 에어리스가 무척 불만이었다.
 
  "바보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못한 짓이군. 손해 본 기분이다. 괘씸한 것도 정도가 있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썩 사라지도록."
 
  「그러겠습니다.」
 
  이 노인의 혼은 필시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부패한 욕망이 머무는 옥좌에 긴 세월 동안 자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에어리스가 프레지던트 신라에 등을 돌리고 여행을 계속하려 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라이프스트림의 흐름과는 다른 기묘한 물결이 마황의 바다를 달리며 뒤흔든다. 거대한 맥박 같은 그것은 불길한 물결이었다.
 
  "이건 무슨 일이냐?"
 
  노인의 비명이 들려 에어리스는 튕기듯 돌아본다.
  그녀가 본 것은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프레지던트의 모습이었다. 서서히, 그러나 엄청난 기세로 속도를 늘리며.
  그것은 기류를 탄 것은 아니다. 마치 중력에 끌려 가속하면서 낙하하는 것처럼 노인의 혼은 끌려간다. 마황의 바다 어딘가 한 군데를 향해 빨려 들어간다.
  길게 꼬리를 그리며 공포가 스민 절규를 남기고 프레지던트 신라는 사라졌다.
  에어리스는 다시 그 고동을 느낀다. 이번에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잊혀진 도시에서 그녀의 생을 끊은 자와 같은 파장이라는 것을.
  라이프스트림의 어딘가에 그 남자가 숨어 있음을.
 
  「세피로스…….」
 
  악행에 빠진 혼을 마치 나락처럼 삼키며, 은발의 타천사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때 에어리스는 깨닫는다. 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그녀가 발동시킨 줄 알았던 홀리는 발동 직전에 제지되어 있었다.
 
고대에 생긴 별의 상흔――제노바의 '약속의 땅'인 북쪽의 대공동(北の大空洞)에서 재생의 때를 기다리는 세피로스 오리지널에 의해.
  그리고 칠흑의 파괴 마법 메테오가 발동한다. 먼 하늘 저편에서 별마저 부수는 악마의 철퇴가 소환된다――.
 
 
 

5 . 잭스와의 재회 
 

  클라우드가 내려온다. 라이프스트림에.
  죽은 자로서, 혼으로서가 아니다. 살아서, 살아 있는 그대로 그는 마황의 바다에 떨어진다.
  떨어져 내려온다――.
  북쪽의 대공동에서 그는 자신의 기억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광기의 과학자 호조의 손에 의해 제노바 세포가 이식되어 언젠가 부활할 세피로스에 합쳐지기 위한 인형으로 만들어진 존재. 그러나 실패작으로 처분되어 넘버도 받지 못한 조악한 카피.
  그는 텅 빈 채로 미드갈에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티파와 만난다. '진짜' 클라우드의 어린 시절 친구인 티파 록하트(ティファ・ロックハート)를. 이때 그는 제노바가 가진 기억 복제 능력에 의해 순식간에 티파 속의 클라우드상을 복사했다. 부족한 부분은 자기 안에 띄엄띄엄 남아 있는 '솔저'의 기억으로 보완하고 거기에 클라우드 스트라이프(クラウド・ストライフ)의――티파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소년을 베이스로 한, 짜깁기투성이의 인격이 탄생되었다. 많은 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 '클라우드' 자신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성립될 수 있었던 가공의 캐릭터――그것이 그였다.
  그러나 위장은 벗겨지게 된다.
  그것은 벌써 무너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세피로스 카피(セフィロス・コピー)와의 접촉과 그에 따른 정신 공명이 느껴서는 안 되는 의문을 클라우드의 의식에 노출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에어리스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에 대한 의심의 둑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세피로스에 대한 분노와 목적 의식으로 이것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것도 세피로스 오리지널과 대면하기 전까지만이었다.
  북쪽의 대공동에서 제노바의 중핵이 된 세피로스 앞에 클라우드의 인격은 가볍게 무너져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의식까지 조종당해서 메테오 소환의 열쇠 흑마테리아를 도리어 자기 손으로 세피로스에게 줘 버린다.
  증오스런 원수여야 할 대상의 협력자가 되고 메테오 저지의 목적까지 뒤바뀌어, 결국 클라우드의 인격은 완전히 붕괴된다. 모자이크 같은 거짓 자아는 부서지고 텅 빈 의식에는 단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세피로스 카피의 불량품이었다는 절망만이 남았다.
  그리하여――.
  쓸모가 없어진 텅 빈 이전의 클라우드는 대공동의 크레이터를 지나 별의 체내에――라이프스트림 속에 버려진다.
  자아를 잃은 상태로 별의 기억의 집합체인 고밀도의 마황에 잠기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면 그것은 마른 스펀지를 액체에 담그는 것에 가깝다. 의식의 공백에 정리할 수도 없을 만큼 막대하고 잡다한 기억이 흘러들어 채워져 버린다. 소위 말하는 '마황중독(魔晄中毒)'으로 예상되는 가장 심한 상태가 이것이었다.
  정신이 회복 불능일 정도로 침식되어 클라우드는 라이프스트림을 떠다닌다. 이윽고 본래 거기 있어서는 안 될 산 사람의 육체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희소한 마황 에너지의 분출구로 알려진 미딜(ミディール) 근해에 배출된다.
  인격을 잃어버린 채 혼란을 거듭하는 폐인이 되어――.
 
 
*
 

  에어리스는 북쪽의 대공동이 라이프스트림에서 접근할 수 없는 장소 중 하나인 이유를 안다. 그곳은 세피로스의 결계였다. 하늘에서 온 재앙 제노바가 별에 내려왔을 때 타고 있던 운석이 충돌하여 생긴 거대한 상흔――그 상처를 고치기 위해 에너지가 모였던 그 땅은 이제 세피로스가 재생을 이루기 위한 요람이 되어 있었다. 그 주위에는 생명의 기류가 부자연스러운 소용돌이를 이루며 그녀 같은 의식체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흘러나온 살아 있는 클라우드에 달라붙어 열심히 말을 걸었다. 미딜까지 흘러가는 동안 계속. 그러나 절망 때문에 마음이 가루처럼 부서진 그에게는 에어리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외쳐도 잊혀진 도시에서 이별했을 때처럼 클라우드에게는 닿지 않는다.
  지상으로 돌아가는 클라우드의 육체를 속절없이 바라보며, 에어리스는 마황의 바다에 망연히 서 있는다.
 

*
 

  「어떡하면 클라우드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메테오도. 홀리가 방해받고 있을 줄은 몰랐네. 이대로라면 별은 세피로스의 뜻대로 되고 말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가르쳐 줘, 클라우드…….」
  기도도 공허히, 붕괴된 클라우드의 마음에 에어리스는 눈물지었다. 인격의 잔해는 이제 고칠 방법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애초에 그가 클라우드가 아니라면 원래는 누구였는가? 전직 솔저인 클라우드로밖에 그를 모르는 에어리스는 그것을 추측할 방법조차 없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녀를 감싼다.
  「클라우드…… 널 만나고 싶어. 진정한 널…….」
  중얼거림이, 마음이 파문이 되어 마황에 퍼진다.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클라우드와 보낸 기억. 무뚝뚝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쾌활한 몸가짐이 인상적이었다.
  「뒤죽박죽인 느낌은 들었지만 그게 전부 만들어진 거짓 인격일 수 있을까? 클라우드에겐 아무 진실도 없었어? ……아냐, 그럴 리 없어. 클라우드밖에 생각해 낼 수 없었던 일도 있었어. 클라우드였기에 할 수 있었던 것도 있었어. 처음부터 텅 빈 인간은 없어!」
  그러나 그녀로는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이 계속 반복되게 된다. 에어리스는 다시 기억을 더듬는다. 클라우드의 버릇을 떠올린다. 걸음걸이를. 동작 하나하나를――.
  그 사념이 마황의 바다에 이미 거의 다 녹아 있던 한 사람의 인격을 되살아나게 한다. 에어리스가 마음속으로 그린 이미지를 자신을 부른 것이라고 인식하고 '그'가 눈뜬다.
  "에어리스…… 에어리스인가?"
  갑자기 이름을 불려 그녀는 처음에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떠올리지 못했다. 당황하며 돌아보니 거기에는 5년만에 보는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에어리스가 처음으로 아련한 연정을 품은 상대. 어느 때를 기점으로 소식이 뚝 끊겨 그 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 그리고 그녀가 클라우드의 행동 속에 보고 있던 인물――솔저의 증표인 푸른 눈을 가진 잭스(ザックス)가 거기 나타나 있었다. 에어리스에 지지 않을 만큼 명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잭스! 그럼 너도 죽었던 거야?」
  본래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에어리스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만큼 그 밝고 실력 있는 솔저에게 죽음은 어울리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도 분명 어디선가 무사히 살고 있겠지――그렇게 맹목적으로 믿고 있던 자신을 새삼스레 느끼며 그 잔혹한 사실에 그녀는 강한 충격을 받는다.
  "너도라니…… 그쪽도 그런 거야, 에어리스? 뭐, 나보다는 나중이었겠지만, 그래도 그…… 뭐랄까, '유감입니다'라 해야 하나?"
  「변하지 않았네, 정말.」
  어떤 때라도 결코 명랑함을 잃지 않는 잭스에게 구원받은 것 같은 마음으로 에어리스는 쓴웃음을 짓는다. 신라에 속하는 솔저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예전에 그녀가 끌렸던 것은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래 봬도 많은 일이 있었다구? 엄청난 일들만 있어서 말야. 전부 니블헤임(ニブルヘイム)이란 시골에 임무로 끌려간 게 시작이었지만."
  「니블헤임?」
  "그래. 알고 있어? 그때 영웅이라 불리던 엄청 유명한 솔저와 같이. 그놈이 뭐냐, 갑자기 이상해져서――."
  「그거 세피로스 말이지?」
  에어리스는 숨을 죽였다. 여기 잭스가 나타난 것은 아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뭔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역시 유명하군, 그 녀석은. 아니면 신문에라도 실렸나? 니블헤임 대학살 사건 같은 식으로."
  「잭스, 그때 거기 있었니? 그럼 클라우드는…….」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어떻게 클라우드까지 알고 있어? 그것보다, 무사해? 그 녀석은!"
  「잭스도 클라우드를 아는구나? 클라우드는 정말로 있는 거지?」
  두 사람은 신속히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에어리스는 알게 되었다. 클라우드가 세피로스 때문에 만들어진 복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또 왜 잭스와 겹쳐져 보였는지, 그 이유를.
  잭스도 또한 알게 되었다. 함께 사건에 휘말려 자기와 함께 신라에 쫓기게 되었던 친구의 현 상태를. 세피로스가 되살아나 이번에는 니블헤임뿐만이 아니라 별 모두를 위기에 내몰려 하고 있는 것을――.
  「저기 잭스. 클라우드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넌 진짜 클라우드야, 하고 가르쳐줄 수 있을까?」
  "우리한텐 무리겠지. 그걸 할 수 있는 건 니블헤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티파란 애야. 그녀 속에 있는 기억이 클라우드의 기억을 끌어낼 수만 있으면 어쩌면――."
  「어렵네. 그래도 나, 포기하지 않겠어. 꼭 기회는 있을 거야.」
  희망이 생겨 에어리스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피로스는 클라우드와 동료들이 반드시 어떻게든 해 줄 거야. 홀리를 방해하는 힘을 제거해 주겠지.」
  그 기회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오게 된다.
 
 
*
 

  메테오 접근의 영향과 별이 푼 거대 생물 병기 웨폰(ウェポン)의 활동의 여파로 라이프스트림의 본류에 변화가 생겼다. 분출되는 에너지는 여태껏 없던 맹렬한 기세로 지표에――미딜에 솟으며 거기서 쉬고 있던 클라우드와 절망적인 간호를 계속하고 있던 티파를 집어삼킨 것이다.
  둘은 마황에 둘러싸여 별의 내부로 떨어진다. 클라우드는 두 번째, 티파는 첫 번째 체험으로서.
  이 천재일우의 찬스에 에어리스는 모든 것을 걸었다.
  고농도의 마황에 잠겨 혼란스러워하는 티파에게 에어리스는 열심히 말을 건다. 그 의식을 클라우드의 닫힌 마음속으로 유도해 준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그렇지만 에어리스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티파에게 맡긴다. 티파의 클라우드를 생각하는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와 함께 '살아' 가야 할 자에게――.
그리고 티파는 해낸다. 클라우드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을 비교하여 진짜 클라우드밖에 알 수 없는 것을 찾아낸다. 그것이 증명되며 닫힌 문은 열렸다. 솔저가 되지 못하고 이식된 제노바 능력으로 친구 잭스의 버릇을 복제한 병사 클라우드를,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인 기억의 심층부에서 끌어올린다.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스스로 만들어 낸 가짜가 아니라 본래의 마땅한 인격으로 재생된다.
  「해냈구나, 티파. 고마워……. 조금 질투심 생기기도 하지만, 클라우드――그리고 위쪽 세계, 잘 부탁해.」
  에어리스는 제정신을 차린 클라우드에 티파가 바짝 붙어 지상에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인자한 어머니처럼 미소 지으면서.
  그 모습을 잭스는 눈부신 듯 본다.
  "쳇. 에어리스 말야, 내가 친해진 여자 중에서 역시 최고였어. 그 임무 뒤에 미드갈에 돌아올 수 있었으면 계속 사귈 수도 있었는데. 난 세피로스가 원망스러워. 또 은폐 공작을 한 신라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친해지는 사람하고는 절대 연인 같은 거 안 될 거니까요.」
  "너무하네. 나, 누구한테든 다정한 것뿐인데."
  「그 점이 안 되는 거야. 클라우드처럼 서투르고 순수한 점이 없으면.」
  "그게 에어리스 취향이었어?"
  「글쎄, 지금은 어떨까. 5년이나 지났으니 바뀐 걸지도 모르지.」
  "쳇."
  잭스는 삐친 것처럼 입술을 삐죽였다가 환하게 웃었다. 에어리스가 알고 있는 순수함을 남긴 변함없는 웃음. 17살이었던 그녀는 그것에 끌렸었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난 조금 잘게.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는 거 같으니까. 그렇지만 쓸쓸하면 언제라도 불러 줘, 에어리스."
  「굉장히 쓸쓸해지면, 말이지. 잘 자, 잭스.」
  손을 흔들며 클래스 1ST 솔저는 마황에 잠긴다. 아직 자신이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을 품으면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잭스는 잠시 잠이 든다.
  에어리스는 잠들지 않는다. 세트라여서 그런지 그녀에게는 전혀 피곤함이 없다.
  지금은 그저 기뻤다. 진짜 클라우드를 알게 되었고 짧은 시간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이――.
 
 
 

6 . 
 

  "큿큿큿……."
  오한이 나는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에어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지상에서 클라우드 일행이 북쪽의 대공동에 돌입할 방법을 찾아 싸우고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라이프스트림을 돌며 세피로스의 결계에 틈은 없는지, 제지되고 있는 홀리를 해방할 방법은 없는지 계속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제노바의 능력을 완전히 발현시킨 세피로스는 자신의 고치인 대공동을 견고히 지키며 특히 라이프스트림측에서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오랜 세월 제노바를 경계해 온 별의 의지마저 속이고 이물질을 없애기 위해 태어난 웨폰들의 눈에서도 피한 것이다.
  만약 홀리의 발동이 늦어지면 그때는…… 에어리스가 그 상황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금 막 마황의 바다에 떨어진 새로운 혼. 홀쭉하고 신경질적인 얼굴을 미치광이 같은 웃음으로 일그러뜨린 백의의 남자――신라의 권력 아래 무도한 인체 실험을 반복한 광기의 과학자 호조가 번들거리는 시선을 에어리스에게 쏟고 있었다.
  「호조…… 박사.」
  "고대종 여자인가. 그렇군, 세트라는 의지의 힘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의식을 라이프스트림에 확산시키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거군. 평범한 인간은 잃어버린 능력……. 큿큿큿, 그러나 그것은 세피로스를, 제노바를 닮았다고 할 수도 있다."
  「똑같이 취급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 제 이름도 기억 못 하는군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너는 이름 같은 것보다 최후의 고대종이라 부르는 쪽이 훨씬 정확하게 개체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래, 샘플에는 개체 차를 나타내는 데이터와 넘버링만 있으면 충분하지……."
  「당신에겐 인간이든 생물이든 실험 재료밖에 안 되나요? 혼만 남아서 여기 와도 역시 당신은 변할 수 없나요?」
  "큿큿큿…… 캇캇캇."
  꽤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호조는 무엇에 홀린 듯이 웃었다.
  "……히히, 힛힛, 아니, 난 변했다. 하긴 그건 이 라이프스트림에 떨어지기 전이었지만. 모르느냐? 그렇군, 이 백의 때문이구나."
  호조는 몸을 감싼 백의를 잡고 한 번에 찢는다. 백의의 이미지는 찢겨 깃털처럼 날리고 그 아래 감춰져 있던 육체가 드러났다.
  「――!」
  에어리스는 말문이 막힌다. 거기는 인간의 그것이 아니라 그녀도 수차례 본 제노바와 같은 종류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조는 타인의 육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결국 자신까지 실험 재료로 배덕의 연구에 바쳐 버린 것이다.
  "힛힛힛, 즉 나도 이제는 샘플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너도 상상하지 못했지?"
  「이 무슨 짓을……. 호조 박사, 당신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나요? 혼까지 오염되어 이제 별에 돌아갈 수도 없을 정도로――.」
  "라이프스트림…… 생명의 순환…… 별의 의지…… 그런 건 내겐 깎은 손톱 조각만큼도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과학이 어디까지 자연의, 별의 시스템을 능가할 수 있는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끊이지 않는 호기심을, 내 숭고한 욕망을 채울 수만 있다면 인간인 것 따위에 미련은 없다. 제노바라는 존재에 대한 내 가설이 증명된다면 별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호조가 뿜는 사념은 말 그대로 순수한 광기였다. 다인이 필요로 한 취하기 위한 광기가 아니다. 프레지던트 신라의 욕망과는 달리 그 종착점은 명확한 파멸이다. 말하자면 호조는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에 가까웠다. 자신의 미래도, 별에 대해서도 일고조차 않는 과학에 대한 광신에 홀린 '지식'의 노예였다.
  "이걸로 나는 과학에서 도망치려 한 겁쟁이 주제에 항상 나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되었던 가스트(ガスト)를 뛰어넘었다고 증명되었다. 만약 가스트가 지금까지 제노바 프로젝트(ジェノバ・プロジェクト)의 책임자였다면 결코 이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겠지……. 크큿, 그랬군, 가스트 박사는 네 아버지기도 했구나."
  「…… 아버지는 과학보다 별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 거예요――.」
  에어리스는 그것을 클라우드와 티파가 떨어졌을 때 흘러나온 기억에서 알고 있다. 갓 태어난 그녀를 새 샘플로 빼앗으려 하며 저항하는 아버지 가스트를 사살시킨 것이 호조였다는 것도.
  "흥, 그게 가스트의 한계였다. 할 수 있는 일을 남기고도 그대로 멈춰 서다니, 과학에 대한 모독에 가깝지……. 흠, 슬슬 지껄일 시간도 끝이군."
  이슬만큼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고 호조는 저 멀리 북쪽의 대공동이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들이―― 제노바의 왕이 부르고 있다. 좀 더 생명의 힘을 내놓으라고. 큿큿큿,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공물이 되지. 그리고 세피로스는 그렇게 혐오하며 깔보던 나와 하나가 되는 거다. 이것이 내 리유니온(リユニオン)이다."
  프레지던트 신라 때와 마찬가지로 제노바와 융합한 호조가 빨려 들어간다. 즐거운 듯, 미친 듯이 웃으며 중력의 우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충고해 두지, 고대종.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 왜냐면 그게 이 별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른 천체에서 오는 생명 같은 건 전혀 생각지 않고 이루어진 별의 생명 순환 기구. 그러나 제노바는 와 버렸다. 그러면 그 혼은 어디로 가나? 멸망된다 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아. 마황의 바다에 스며들어 라이프스트림을 타고 이 별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는 거야. 너희도 나처럼 언젠가 제노바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크크크…… 늦은가, 빠른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건 절대 용납 못 해요!」
  "언젠가 너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캇캇캇――."
  조소를 남기고 호조였던 존재는 에어리스의 지각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세피로스의 제물이 된다. 광기와 환희에 물든 표정 그대로. 혼이 먹히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후회나 참회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어리스는 안다. 호조의 죽음은 신라의 끝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을. 그렇다면 클라우드 일행의 결전의 때가 가까워진다.
  그녀는 달린다. 호조가 죽어서도 세피로스를 지원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도 아직 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
  그렇게 믿으며――.
 
 
 
 
 
7

  클라우드 일행은 결국 세피로스를 쓰러뜨린다.
  별의 상흔에 숨은 채 마황 에너지를 빨아들여 이전에 받은 상처를 고치고 부활한 세피로스 오리지널이었지만, 고대의 재앙 제노바의 의지를 이은 그 야망은 강한 의지를 가슴에 품고 능력 이상의 싸움을 펼친 인간들에 의해 부서졌다. 세피로스의 육체는 소멸되고, 그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간다――.
  그러나 클라우드만은 느꼈다. 옛날 제노바 세포에 오염되어 세피로스의 정신 지배를 받은 흔적――그의 정신의 일부가 공명한다. 라이프스트림 속에서 여전히 홀리의 해방을 방해하고 있는 사념체(思念体)의 존재를 느낀다.
  자신의 의식만을 마황의 바다에 날려 클라우드는 추적한다. 기류를 뚫고 나온 마지막에 숙적은 기다리고 있었다. 결코 사라지려 하지 않는 별의 적대자 세피로스의 혼이.
  정신 에너지의 세계에서 대립하는 두 칼날이 엇갈렸다. 최강의 솔저라 칭송받던 세피로스의 긴 칼이 빛의 띠가 되어 클라우드를 벤다. 그러나 그는 겁먹지 않는다. 세피로스가 승리를 확신하고 다음 공격을 하려 한 순간, 클라우드는 모으고 있던 힘을 모두 해방했다. 약간의 빈틈에 때려 넣듯이 대검의 참격이 세피로스의 몸을 후빈다. 그 대미지가 새로운 방어의 구멍을 만들고, 거기에 계속하여 공격이 들어간다. 멈추지 않는 참격의 폭풍――무려 15번에 달하는 회피 불가능한 연속 공격이 각각 필살의 위력으로 세피로스를 갈랐다.
  그것을 받고서도 여전히 광란의 타천사는 대담하게 웃는다. 웃으며, 그러나 허용량을 훨씬 넘은 대미지를 받은 정신체는 붕괴하기 시작한다. 내부에서 섬광이 비치며 그 빛에 찢기듯이 세피로스는 소멸되어 간다. 5년 전의 니블헤임 때부터 계속된 클라우드의 악몽에 겨우 종지부가 찍힌다.
  제지되고 있던 백마법 홀리는 즉시 발동하고――.
  이때 육체에서 괴리된 채 멍하게 있던 클라우드는 마황의 세계의 심연에서 그를 이끄는 손을 본다. 그것은 하얗고 섬세하며――그에게 미드갈에서 꽃을 준 그 손을 떠올리게 했다. 클라우드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고, 그리고――.
  의식은 육체로 돌아온다. 잡은 그 손은 발판이 무너지기 시작한 클라우드를 잡으려고 뻗은 티파의 손이었다.
  이끌리지 않았다면 나락의 바닥에 떨어졌을 타이밍이었다. 클라우드는 그것을 알고 있다. 도움받았다는 것을.
  비공정 하이윈드(ハイウインド)로 그들이 탈출한 직후 북쪽의 대공동에서 어두운 하늘에 홀리의 섬광이 높은 기둥이 되어 방출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었다.
  미드갈을 충돌 지점으로 하여 날아온 메테오는 이미 지표에 너무 접근해 있었다. 별과 거대 운석은 서로의 인력으로 극한까지 간섭하여 중력 폭풍이 도시 상층의 단단한 플레이트를 용서 없이 젖혀 올린다. 이 단계에서 운석과 지표 사이에 펼쳐진 홀리 에너지는 완충재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메테오의 파괴력을 증폭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이대로라면 슬럼에 피난한 미드갈 시민의 전멸은 말할 것도 없고 별 자체가 재생 불가능할 정도의 대미지를 입어 멸망하게 된다. 세피로스의 흉계는 사라졌지만 최악의 결과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별이 종언을 맞이한다――.

  「다들, 힘을 빌려 줘!」
  에어리스가 외친다. 그것은 사념의 파동이 되어 마황의 바다에 퍼진다. 라이프스트림을 타고 별의 전역에 전해진다.
  「나만으로는 안 돼. 여기 있는 모두가 별을 지켜 줘!」
  최후의 세트라의 호소는 그녀의 여행에서 깨어난 무수한 의식을 흔든다. 그것은 즉 별의 의식이기도 했다. 거기는 물론 속죄하기 위해 머무른 자들의 사념도 존재한다. 그들은 보다 강한 의지의 집합체가 되어 막대한 별의 정신 에너지를 제어하는 보좌역을 맡아 준다.
  "기다렸어! 도화선에 불을 붙여 저런 운석 같은 건 콰쾅 날려 버릴 거야."
  "애벌런치 라이프스트림 지부 차례다! 바렛도 없으니 리더는 나군."
  "아앗, 저도 리더 하고 싶었습니다! 너무해요 웻지 씨!"1
  "바렛의 동료 놈들은 아무래도 진지함이 부족하군. 말린을 위해서도 제대로 해라."
  그들의 지휘 아래 라이프스트림은 얽혀진 무수한 빛의 띠가 되어 지표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별을 그물처럼 감싸 보호하며 메테오 밑으로 스며들어 우주에서 온 파성추를 되민다. 그 빛의 움직임은 마치 왈큐레가 통솔하는 불사신 전사들 같았다.
  "여, 에어리스, 클라우드가 마지막으로 날린 거 봤지?"
  잭스가 이끄는 에너지가 제2파가 되어 기세를 잃은 운석을 더욱 위로 민다.
  "그것도 내 검기의 카피야. 굉장하지? 다시 반할 것 같지 않아?"
  충분한 공간을 얻어 홀리가 본래의 기능을 되찾기 시작한다. 운석을 접촉점에서부터 조각조각 부수고 분진을 우주 공간까지 방출하는 배리어의 기능을. 이제 메테오는 별에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는, 소멸을 기다리기만 할 뿐인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별은 파멸에서 벗어난다.
  에어리스의 마음은 해방되었다――.

  하이윈드의 갑판에서 클라우드는 봤다. 티파도, 바렛을 비롯한 동료들도. 그들의 기억 속에 얼어붙어 있던 에어리스의 미소가 별의 내부에 돌아가는 라이프스트림의 띠로 그려지며 부드럽게 녹아 가는 것을.
  멈췄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슬픔은 조금 가라앉는다.
  이리하여 별이 쓰는 생명의 기록은 계속된다.
  강탄의 세계로.



댓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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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95)

125.178.***.***

BEST
감사합니다! 추천!
20.02.16 08:03
BEST
감사합니다. 에어리스 뒷 이야기 궁금했는데 ㅎ 늦게나마 옛연인이랑 만나 다행이네요. 근데 더 없나요? ㅠ
20.02.16 08:04
(59395)

125.178.***.***

BEST
감사합니다! 추천!
20.02.16 08:03
BEST
감사합니다. 에어리스 뒷 이야기 궁금했는데 ㅎ 늦게나마 옛연인이랑 만나 다행이네요. 근데 더 없나요? ㅠ
20.02.16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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