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는 그 사람의 말에 따져 물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은 전례 없이 차가웠다.
어쩔 줄 몰라 술부터 마셨다.
술기운을 빌려 전화를 해봤지만 예상대로 받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 헤어지기 싫었다.
집 앞으로 찾아가는 사이에 날짜가 바뀌었다.
7층의 그 사람 방이 올려다 보이는 아파트 입구 가로등 밑.
몇 번 들어가 본 적 있는 그 방엔 불이 켜져 있었다.
지금 집 앞이다. 밖을 내다보면 보일 거다.
안 나와도 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만 줘.
그 대답을 해줄 때까지 난 여기 계속 서있을 거다.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있으니 방의 불이 꺼졌다.
분명 나를 보고 있을 거다.
주변은 조용하고 가로등 때문에 저기선 너무나 잘 보인다.
최대한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서있으면 화가 풀릴 거다.
그러면 결국 다시 만나 줄 것이다.
그래, 그냥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
그렇게 두 시간을 서있었다.
술기운은 다 날아가고 다리가 아팠다. 오줌도 마려웠다.
지금 나를 보고 있을까?
언제까지 있나 삼십분에 한 번씩 확인할까?
두 시간 있다가 돌아가면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겠지?
자니?
일단 상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편의점에 갔다.
술의 힘으로 버티기 위해서 캔맥주를 몇 개 샀다.
급하게 다시 가로등 불빛 속으로 들어갔다.
십분을 넘기진 않았지만 하필 그 사이에 볼 수도 있으니.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나니까 다리가 너무 아팠다.
굳이 서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아무래도 서있는 게 더 그럴싸하게 보이긴 한데.
모르겠다. 더 이상 서있긴 힘들어서 바닥에 앉았다.
답장이 있을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화장실에 두 번 더 다녀오고 사온 맥주를 다 마셨더니
주변이 점점 밝아지며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시간을 역주행한 초췌한 몰골로
대단한 사명이라도 짊어진 사람 마냥 인상 쓰며 서있었다.
이렇게 하면 널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아침 8시.
아파트 앞으로 찾아온 지 여덟 시간이 지났을 때.
입구에서 그 사람이 나타났다.
밤새 술에 찌든 나와 달리 푹 잔 듯 뽀송뽀송한 얼굴이고
꾸질꾸질하게 서있는 나와 달리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뭐라고 말을 꺼내려고 머뭇거리는 나를
세상 한심하다는 듯 차갑게 한번 쳐다본 그 사람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또각또각 제 갈 길을 갔다.
무작정 찾아왔던 기세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부르지도 붙잡지도 못하고 미련하게 서있었다.
진이 다 빠졌고 더 이상 거기에 있을 수 없었다.
집에 와서 이를 갈다가 잠이 들었다.
일어났더니 그 사람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달라질 것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잘 살라고.
하루가 지나면 다시 연락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틀이 지나면 마음이 바뀔 거라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진짜 끝났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다.
1년을 매일같이 만났던 사람과 일주일을 만나지 못했더니
평소에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땐 정말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그때의 나처럼 그런 달달한 일 때문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반드시 지나갈 것이다.
매번 끝난 줄 알았지만 항상 끝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걸로 세상은 끝나지 않아.
오늘도 주문을 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