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칸 와일란의 목을 베어 누르하치에게 바치는 자이사. 만주실록
1586년, 누르하치는 계략을 꾸며서 자신의 부친과 조부가 명군의 손에 죽게 한 본인의 원수 니칸 와일란을 죽였다. 그리고 그 때서부터 명나라로부터 무상은과 비단을 지급받기 시작했다. 기록상에서 이는 누르하치의 조부와 부친을 오해하여 죽인 것에 대한 명나라의 사죄의 표시라고 나타나지만1, 실제로는 누르하치의 유력한 성장도를 확인한 요동아문측과 명나라와의 마찰을 피하고 싶은 누르하치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누르하치는 자신과 자신의 세력의 명조에 대한 충성을 대내외적으로 확립하고 요동아문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누르하치에게 무상은과 비단을 지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누르하치의 당시 입장을 고려하여 해당 상물을 지급하는 요동아문측에서 누르하치의 부친과 조부에 대한 조의물로서의 의미를 어느정도 담았긴 했겠으나,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본목적은 아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1595년 시점에는 건주에 대한 명나라의 상물량에 유의미한 변화가 보인다. 당시는 위원에서 있었던 누르하치 속하 여진인들의 피살 사건으로 인해 조선과 건주간 마찰이 생겼을 무렵인데, 이 때 조선의 중재/선유 요청을 받은 명나라 유격 호대수의 지시를 받은 교사 여희원이 당해 음력 10월중에 누르하치에 대한 1차 선유를 진행했다. 그런 뒤 병조판서 이덕형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 대화에서 여희원은 건주가 상규로서 매 번 홍록금단 32필을 무순에서 받는다고 하였다.2또한 해당 비단은 한 필당 은으로 4냥 8전이라고도 하였으며, 해당 상규에 필적하는 홍록금단을 이번에 누르하치를 달랠 목적으로 그에게 지급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기서 여희원이 홍록금단이라고 표현한 비단은 누르하치가 기존부터 지급받던 망단과 구별된다. 이듬해인 1596년 초 여희원이 조선인 통사 이억례등과 함께 퍼 알라를 방문했을 당시 누르하치가 여희원이 가져온 상물을 보고 '황조의 명령(으로 내리는 상물)이라면 어찌하여 은과 망단이 없는가?'3라고 질문했다. 이 때 여희원이 가져온 상물에는 홍록금단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4, 누르하치가 언급한 망단은 홍록금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누르하치가 홍록금단 32필에 더불어서 여전히 은과 망단을 상물로 지급받으나, 여희원의 2차 선유 당시에는 여희원이 은과 망단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명나라의 상물임에도 불구하고 은과 망단이 없는 것을 의아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여희원은 이덕형과의 문답에서 건주에 지급되는 홍록금단의 명목을 '당장(唐粧)'의 상규라고 설명했다. 이는 건주의 지도자가 명에 충성을 바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관직 직첩(당시에는 용호장군)을 받은 뒤 그 직첩에 해당하는 상물로 홍록금단을 받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즉, 당시 누르하치측이 상물로 받는 상품들은 두 가지로 구분되고 있었다. 하나는 1586년부터 명나라로부터 지급받는, 관작과 관계 없이 명(보다 정확히는 요동아문)과 누르하치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급되던 상물, 또 하나는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직첩을 받음으로서 그 관직직첩에 상응하게 지급되는 상물이다. 그리고 이는 누르하치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에 한꺼번에 지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주에 지급되는 명나라의 관직 상물은 홍록금단 32필이 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여희원은 이덕형과의 문답에서 이번에 건주에게 줄 상물 명목으로 홍록금단뿐만이 아니라 청포(靑布)와 남포(藍布)도 각각 1백 90필씩을 사서 건주측에게 건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5 정황상 홍록금단과 함께 건네는 다른 옷감들 역시도 기존부터 건주에 대한 상규에 따라 지급되던 옷감으로 보인다. 합치면 3백 80필에 해당하는, 상당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홍록금단 32필과 청포와 남포 각 1백 90필의 상물은 누르하치 개인만을 위한 상물은 아닐 것으로 유추된다. 당시 누르하치의 동생이었던 슈르가치 역시도 명으로부터 관직을 받았고, 누르하치 휘하 외교실무자 마삼비 역시도 명으로부터 관직을 받았다. 그러므로 홍록금단 32필과 청포, 남포등 다른 옷감 각 1백 90필은 누르하치뿐만이 아니라 건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명으로부터 관직을 받은 여진인들이 받는 상물의 총합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어찌되었건간에, 당시의 누르하치는 1586년부터 지급되던 무상은, 망단과 더불어 자신이 명으로 받은 관직의 급수에 맞는 상물 역시 매 번 지급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쯤에서 의문이 들 수 있는 부분이 떠오른다. 1591년 시점의 누르하치는 자신을 찾아온 여허의 사신 니카리, 툴더이, 하다의 사신 다임부, 호이파의 사신 알라민 장긴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해마다 8백냥의 은과 15필의 망단(蠎緞)을 늘 받는다.]6
이는 누르하치가 자신이 명으로부터 이러한 물건들을 지급받고 있음을 선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르하치의 말의 내용은 다소 의아하다. 이 때 누르하치는 이미 명으로부터 도독첨사의 관직을 수여받았음으로, 그에 해당하는 상물 역시 받아야 한다. 그런데 누르하치는 1586년부터 자신에게 지급되던 은과 망단만을 거론했다. 그 때문인지,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마치 당시의 누르하치가 1586년부터 지급되던 은과 망단만을 받고 있으며 명으로부터 수여받은 관직 도독첨사에 상응하는 상물은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만을 살펴보자면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으나 후술되는 문장을 살펴보면 대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너의 부친을 한인이 죽였는데, 너는 너의 부친의 시신을 돌려받았는가?]7
여기서 '너'란 여허의 버일러 나림불루이다. 당시 니카리와 툴더이외 사신단이 누르하치를 찾아온 이유는 나림불루의 지시를 받아 누르하치에게 전쟁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누르하치는 이러한 나림불루에게 격노하여 그의 부친 양기누가 명나라에 피살된 사건을 거론하며 그에게 맞대응했다. 여기서 누르하치가 '8백냥의 은과 15필의 망단을 받는다'고 말한 까닭은 자신이 명나라로부터 이렇게 많은 재물을 받는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자신의 부친과 조부에 대한 조의의 표시로 명나라로부터 이상과 같은 재물을 받는데 너(나림불루)는 같은 명나라에 부친을 잃었음에도 부친의 시신을 돌려받긴 했는가'라는 모독을 준 것이었다. 즉, 해당 대화에서는 관직에 연계되는 상물은 오히려 언급이 안되는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1.청태조무황제실록을 비롯한 태조계 실록 병술년 음력 7월
2.조선왕조실록 선조 28년 음력 12월 5일
3.조선왕조실록 선조 29년 음력 2월 29일, 若皇朝命令, 則豈無蟒段、銀兩乎
4.조선왕조실록 선조 28년 음력 12월 14일
5.조선왕조실록 선조 28년 음력 12월 5일
6.만주실록 신묘년
7.만주실록 앞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