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야 일본 아사히신문이 일본 내 양심세력, 혁신계열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다지만
얘내들도 2차 대전 동안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어용지로 전락한 적이 있었음
물론 이런 논조를 처음부터 갖고 있던 것은 아니고
대정 데모크라시 시기부터 2.26 사건 이전까지는
나름 일본 내 혁신, 민주세력의 목소리를 자주 실어주던 곳이었는데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논조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게 돼버림
그리고 2차 대전 때 일본이 원폭의 수혜를 입고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아사히신문은 특단의 결정을 내리게 됨
가장 먼저 낸 일성은
1945년 8월 23일 사설로 낸
<스스로를 꾸짖는 변(弁)>
대충 내용을 발췌하면
국민의 귀향, 여론, 민의 등의 취급에 대해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언론기관의 책임은 매우 무겁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리가 해야 할 길은 밖에 없었는지,
만일 밖에 없었더라도 발걸음질치는 방법에는 조금 더 궁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시의 시책과 오인이 속한 조직과의 요청에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게다가 그 결과로서 오늘의 중대 책임을 초래하지 않았는지 여부, 우리들의 염려는 실로 이 한 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일면 과거에 있어서의 우리의 책임을 통감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속죄하고 고심하며,
한편 내일의 언론계의 웅건한 발전을 바라 마지않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군부 정권 치하에서 부역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불행한 일이었으며
그 결과로 국민을 호도해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됐음을 시인하는 내용임
물론 중간중간에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문장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전후 전쟁 책임을 언론사 스스로 통감한 몇 안 되는 사례라 할 수 있음
그리고 1945년 10월 24일에는
편집국 직원 일동과 간부, 사주와 사장 등 중역 간의 협의가 이뤄져서
사장과 사주는 경영 일선에 개입하지 않고 소유권만 남긴 채 전면 퇴진
편집국장, 주필, 논설주간 등 고위 임직원은 전면 사직
기자와 종업원의 민주적 여론 수렴으로 경영진, 편집국 임원을 선출하기로 결정했고
같은 날 <국민과 함께 서련다>라는 칼럼을 실어서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음
물론 2차 대전 동안 이런 걸 발행하면서
천황제 군국주의를 존시나게 찬양하다가
패전하자마자 손바닥 다시 뒤집고 논조를 바꾼 게 괘씸해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1991년 세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사실을 보도한 걸 보면
아주 마음 단단히 고쳐먹긴 먹은 모양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