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이 금에게 멸망당할 때, 3천 명에 이르는 종실이 금으로 잡혀갔다가
남송이 건국된 이후 일부 사람들이 돌아왔다. 이때 본래 이름이 아리이고
법명은 선정이라고 하는 여승이 있었는데, 스스로를 금국으로 포로로 잡혀간
휘종의 12번째 딸인 유복 제희라고 하였다.
* 제희 : 휘종 때 공주의 명칭을 제희로 바꾸었다. 남송 건국 후 다시 공주로 환원함.
고종도 처음 의심하여 궁녀들을 시켜 확인하는데 비슷하기는 했지만
의심스러운 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고종은 그녀를 측은히 여기고
복국 장공주로 책봉했다. 이 가짜 공주는 북송대 요와의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운 고경의 후세인 고세영과 결혼했고, 송 조정은 염구전으로
12만관을 지급했다. 그런데 소흥 12년(1142)에 현인태후가 금나라에서 돌아와
유복 제희는 이미 죽은지 오래란 사실을 전하자 가짜공주는 사형에 처했다.
가짜공주가 사형 당하기 전까지 받은 봉록은 47만 9천관이었다.
비슷한 시기 소흥 4년(1134) 임안부에서 미곡가격이 1말에 200문, 1석이 2관이었으니
가짜공주가 받은 봉록이 얼마나 많았는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