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피살설
“총격 받고 사망”…대남방송
국방부 대변인
전방지역 확성기 듣고 확인
평양방송선 “침묵”
북괴는 16일 전방지역 대남확성기 방송을 통해 『김일성(75)이가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방송했다고 이흥식 국방부 대변인이 17일 상오 발표했다.
이 대변인은 그러나 북괴의 보든 보도기관은 일체의 공식발표나 논평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이 대변인은 현재 우리 군은 종전과 같이 경계태세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계기사 2, 3, 4, 11면〉
한편 관계당국에 따르면 16일 낮 1시 10분부터 휴전선의 북괴군 초소에서 확성기를 통해 『위대한 김일성 수령이 열차 안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내용과 김일성 및 김정일의 업적찬양 내용을 방송했으며, 이날 하오 늦게 판문점 근처 북괴 선전마을인 기정동에 반기가 게양돼 김일성의 사망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또 16일 하오 북괴군에 경계강화령이 내려졌고, 17일 새벽 2시쯤부터는 김의 사망을 애도하는 음악 방송과 『김정일을 지도자로 모시자』는 방송이 섞여 나왔다는 점을 지적, 김이 사망했거나 신변에 중대한 변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이에 따라 경찰은 16일 하오 전국에 갑호 비상명령을 내리고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17일 『북괴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북괴군 대남확성기 방송과 휴전선 근처 전시마을에 반기가 게양되는 등의 움직임으로 북괴 내부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어 16일 하오 2시를 기해 전국 경찰에 비상경계근무령을 내렸다』며 『경찰력을 총동원,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특히 내륙 및 해안도서 등 취약지역 경계활동을 강화토록 했다』고 밝혔다.
“정말이냐” 신문사에 전화 빗발
김일성 사망설에 시민들 높은 관심
“엉뚱한 짓 못하게 경계를”
대기업들 긴급 대책회의
김일성의 사망설이 돌기 시작한 17일 아침 각 직장·단체의 공무원·회사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일손을 놓은 채 놀라움과 함께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 등을 놓고 심각한 분위기.
상오 10시가 지나면서 언론기관에는 이를 확인하려는 전화가 잇따랐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서울 장충동 이북5도청에는 17일 상오 나이가 든 실향민들이 모여들기 시작, 혹시나 꿈에도 그리던 고향산천을 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성급한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사실이라면 기쁜 소식』이라고 밝은 표정을 짓다가도 『김일성이 죽은 후 권력다툼으로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면 큰 일』이라며 우려했다.
또 기업체에서는 김의 사망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치기에 바빴으며 증권가 동향·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실향민 홍윤기 씨(52·서울 동대문시장 상인)는 『해방 직후 공산당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 돼 가족들이 돈 한 푼 없이 월남했기 때문에 김일성이라면 이가 갈린다. 그런데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무척 반갑다』고 말하면서도 『김일성보다 더 호전적인 김정일이 정권을 잡을 경우 남침위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걱정했다.
홍 씨는 『북한에도 온건세력이 정권을 잡아 남북대화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져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남대문로4가 S통상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17일 상오 무역관계서류를 챙기다 「김일성이 사망한 것 같다」는 보도가 있자 일손을 놓은 채 직원끼리 김일성의 후계자문제와 김일성의 사망이 우리 사회에 던져줄 파문 등에 고나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또 서울 논현동 S물산은 증권담당자를 증권회사와 거래소에 보내 주식동향을 수시로 보고토록 하고 부장급 간부회의를 열어 경제전반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에 바빴다.
고대생 박금철 군(22)은 『김의 사망이 확실하다면 북괴 내부에 세습체제 등 복잡한 권력구조에 비춰볼 때 무모한 도발이 우려된다』며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주부 최영이 씨(28·서울 성산2동 450)는 『1인독재체제로 항상 위협의 대상이 되었던 김일성이 숨졌다니 우선은 안도의 기분이다. 김의 포악함은 어렸을때부터 귀에 따갑도록 들어와 항상 짓눌린 기분이었는데 숨통이 다 트이는 것 같다』고 말하고 김일성의 죽음을 계기로 대공안보태세를 한 층 더 굳건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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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17일자 중앙일보
이 때 다른 언론사들은 김일성의 사망을 거의 기정사실처럼 보도했기 때문에, 나중에 이게 오보였다는 게 밝혀졌을 때 중앙일보는 타 언론사들보다 체면이 덜 구겨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