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3651328
1619년 음력 8월 22일, 부양구와 부르항구의 예허 서성 역시 결국 서성 포위 총 지휘관, 암바 버일러 다이샨에게 항복하면서 예허 전역이 끝났다.
다이샨은 이제 부양구와 부르항구를 한(누르하치)에게 데려가 항복의식을 진행코자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미 항복을 했음에도 부양구와 부르항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면서 꼭 한을 만나야 하는지 고민했다.
다이샨은 그들에게 "그대들은 계집인가? 어찌 항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을 만나려 하지 않는가?"라고 하며 그들을 힐난하며,
동시에 그들을 억지로 누르하치에게 끌고갔다.
누르하치는 자리에 앉아서 부양구와 부르항구를 맞았는데, 부양구는 누르하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는지 그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그저 한 발만을 꿇고 절을 하지 않았다. (약 150여년 뒤, 청나라 건륭제를 방문한 영국 사절 메카트니가 취한 방식의 인사와 비슷한 듯 하다.)
누르하치는 부양구가 자신에게 고두를 하지 않는 것을 참고서,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는데 부양구는 그 역시도 입만 댄 뒤 바로 일어났다.
누르하치는 거기서도 일단 화를 참고 다이샨에게 부양구를 데리고 성으로 가라고 일렀다.
이후 누르하치는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며, 부양구가 자신에게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데 굳이 그를 살려두어야 하는가를 고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부양구는 죽이고, 부르항구는 다이샨이 그들과 목숨 보장의 맹세주를 마신 것을 생각하여 살려주기로 한 것이다.
결국 누르하치는 사람을 보내어 부양구를 처형하고 부르항구는 다이샨에게 보호케 했다.
그것으로, 누르하치의 건주-후금 세력과 오래토록 경쟁해온, 전통의 여진 국가 예허는 완전히 멸망했다.
누르하치는 이후 예허에서 얻은 포로들을 온전히 후금으로 데려와 후금의 군사와 백성으로 편입시켰다. 그들에 대한 대우는 온건했고, 차별이 없었다.
그것은 누르하치가 따뜻하고 온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진 백성들 모두를 차별 없이 후금 백성으로 대우하여 완벽한 여진 통일을 이루고자 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