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거병 소식이 알려졌음에도 어찌어찌 원수 부쿠루의 거점, 투런성을 함락한 누르하치는
자신의 거병 소식을 부쿠루에게 알린 내부의 배신자, 노미나와 나이카다를 향해 바로 검을 뽑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노미나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모른척 하며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분노를 삼킨 채로
부쿠루를 격퇴하면서 순식간에 상승한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주변 세력들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들이는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과연 노미나를 그대로 놔두려 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누르하치는 은원에 확실한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는 관용과 보답을,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배신한 이에게는 철저한 징벌을. 그것이 누르하치의 방식이었다.
투런의 싸움 이후 얼마 뒤 노미나는 누르하치에게 "힘을 합쳐 바르다를 점령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고 연락을 보내왔다.
누르하치는 마침내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노미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을 하고 그와 군대를 합류시켰다.
바르다를 향한 출진의 때가 되자, 먼저 공격을 제안한 노미나는 진격을 머뭇거렸다. 그는 누르하치에게 먼저 진격할 것을 요구했다.
누르하치와 그 휘하의 병사들을 선봉으로 세워 방패처럼 부려먹고, 그와 바르다 세력의 피해가 클 때에 자신이 최대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었다.
누르하치는 노미나의 의중에 따르는 척 하면서 그로부터 병장기들을 지원 받은 직후 그를 공격해버렸다.
무방비 상태의 노미나와 나이카다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결국 이 싸움으로 누르하치는 노미나와 그 동생 나이카다를 죽였다.
사르후 성이 바로 그의 거점이었는데 누르하치는 그 곳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 곳은 누르하치에게 자치권을 돌려받자마자 반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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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런성을 점령하고, 사르후성의 노미나와 나이카다를 죽인 누르하치는 순식간에 건주 여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전쟁의 승리가 곧 인지도를 결정하는 여진 세력내에서 갑작스레 부상한 그의 위상은 그의 세력이 커지도록 만들었다.
그가 속한 건주 여진의 숙수후부의 많은 이들이 누르하치의 산하로 들어갔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여전히 불안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을 오래토록 핍밥해온 계모의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인해 계모쪽 일족으로부터 원한을 사고 있었다.1
둘째로, 늘 그렇듯 주변의 군주들은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전혀 반기지 않았다.
이 두가지 문제의 복합작용 덕분에 결과적으로 누르하치는 내부와 외부의 적 모두와 싸워야 했다.
결국 누르하치의 일족에서 본격적인 배신이 나왔다. 배신자들은 해서 4국중 하나인 하다 세력의 군대를 끌어들여 누르하치를 제거하려 했다.
누르하치와 같은 일족인, 그의 사촌 리다이가 향도가 되어 하다의 군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누르하치의 휘하 제장중 한 명이자, 누르하치가 어렸을 적부터 그의 분신처럼 그를 수행했던 용사 안퍙궈와 그 휘하의 전사 바순이 그들을 박살냈다.
누르하치가 하다의 군대를 격파하자 일이 급해졌다.
그들의 향도로서 움직였던 리다이는 자신의 거처로 도망쳤고, 일족 내부에선 암살로 누르하치를 죽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일은 빠르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첫번째 암살 시도가 발생했을 때에는 누르하치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무장을 하고 암살자들을 쫓아 실패했다.
두번째 암살 시도가 발생했을 때에는 이번엔 누르하치가 기르던 개가 암살자들을 발견하고 짖어, 누르하치가 암살자들을 쫓아 실패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누르하치는 외부의 적보다 배신자들을 먼저 처리할 것을 생각했다.
1.여진, 청나라 사료에는 이에 관련한 부분이 거의 존재치 않아 추측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아버지 탘시가 죽은 뒤 계모 나라 컨저를 순장시켜버렸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