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K장관의 아들이다.
언덕 아래 만리 장성 같은 우스꽝한 담을 둘러친 저택에 살고 있다.
현규랑 함께 정구를 치는 동무이고
어느 의과 대학의 학생인데 큼직큼직하고 단순하게 생겨 있었다.
그러한 그가 걸맞지 않게 적이 섬세한 표현으로
나에게 러브레타를 써 보냈다고 해서
나는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마의 엄숙한 표정은 역시 약간 넌센스가 아닐 수 없었다.
" 글쎄, 이게 어디서 났을까? "
" 등나무 밑 걸상에서 "
" 오라, 참 게다 놨었군. "
" 오오라, 참이 아니야.
숙희는 만사에 좀더 조심성이 있어야 해요.
운동을 하구 난 담에두 그게 뭐야?
라킷은 밤낮 오빠가 치워놓던데. "
흐흥 하고 나는 웃었다.
" 편지 보낸 사람에게 첫째 미안한 일 아니야? "
" 참 그래. 엄마 말이 옳아. "
그리고 나는 편지를 잡아채었다.
" 귀중한 물건인가? 엄마 좀 읽어 봄 안되나? "
" 읽어 봐두 괜찮아. 안되는 거라면 게다 놔둘까? 감추지. "
나는 조금 성가셔졌다.
" 그럼 안심이군. 사실은 벌써 읽어 봤어. "
" 아이, 엄마두. "
" 그런데 엄마가 얘기하고 싶은 건
숙희가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런 편지에 관한 거라든지
또 그 밖의 일들을,
혼자 처리하지 말고 그 요점만이라도
엄마한테 의논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런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거야. "
듣고 있는 사이에 나는 점점 우울해져서
잠시라도 속히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어졌다.
" 엄마가 언제나 숙희 편에 서서 생각하리라는 건 알고 있겠지? "
" 응. "
나는 선 대답을 해 놓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엄마의 아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한다면 엄마는 어떤 모양으로 내 편에 서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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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에게 러브레타를 받아도
진짜 사랑하는 건 비혈연이지만 오빠인 현규뿐임을 드러내는
뭐 그런 대목 중 일부임.
참고로 , 현규도 감정이 있어서
숙희가 일부러 질투심 유발하려고 러브레타를 놔두니
빡친 표정으로
"편지를 거기 둔 건 나 읽으라는 친절인가?"
라고 하면서 숙희의 뺨을 치는 대목도 있음
(IP보기클릭)203.130.***.***
숙희 : 그냥 최신 유행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