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플란다스의 개는 2차대전하고는 시간적으로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냥 공부하기 심심했던 대학원생이 써본거라는건 감안해줘)
불은 천천히 마을을 태우고 있었다. 한때 따뜻한 우유를 나르던 골목은 이제 탄내와 화약 냄새로 가득 찼고, 익숙한 지붕들은 불길 속에서 삐걱이며 무너져 내렸다.
그 불 속을, 네로 다스 중장은 걸었다.
밀가루 창고 뒷편, 한스는 겁에 질린 눈으로 창문을 넘어 도망치려 했다. 총성이 울리자 그의 다리가 접혔다. 눈밭에 넘어져 바들바들 떨며, 그는 울부짖었다.
“네로… 제발…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넌 알잖아… 나도 무서웠다고… 내가…”
네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걸음씩 걸어와, 피 묻은 한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날, 창고 안에 너 있었다며. 파트라슈가 눈밭에 쓰러졌을 때, 넌 거기 있었잖아. 그런데도… 아무도 없었다고 거짓말했지.”
한스는 다시 도망치려 했지만, 네로는 그의 목덜미를 잡고 얼어붙은 땅을 삽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한스의 목덜미를 잡은 네로의 손에는, 차갑게 힘줄이 올라왔다. 움푹 패인 눈밭 속에, 그는 한스를 밀어 넣었다.
한스는 발버둥치며 외쳤다.
“네로, 제발… 살려줘! 내가… 미안해! 그땐 정말 무서웠어!”
네로는 말없이 눈과 흙을 덮어갔다. 차가운 눈이 그의 얼굴과 몸을 덮었고, 숨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넌 거짓말로 나를 버렸으니, 나도 거짓말로 널 끝내줄게.”
그는 마지막으로 말하며, 조용히 흙을 고르게 다졌다. 그리고는 민간인 기록 명단에 적힌 그의 이름에 빨간 줄을 그으며, 그 아래에 적었다.
“한스 베르훼렌 — 실종
우물가 근처, 총을 든 병사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그 곁에서, 또 다른 병사 — 앙드레가 겨우 일어섰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총은 손에 힘 없이 들려 있었다.
그는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군복을 입은 소년. 그리고, 알아보았다.
“…네로?”
네로 다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린 시절 함께 나무칼을 들고 뛰놀던 장면이 번뜩였다.
“진짜… 너냐… 그때 그 네로가…”
앙드레는 잠시 망설이다 총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네로가 다가오자, 그는 다시 총을 집어 들려 했다.
그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다. 탄환은 정확히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무너졌고, 피는 우물 가장자리를 적셨다.
네로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앙드레의 싸늘한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어릴 적 함께 쫓던 풍선, 쓰러진 나무다리 위에서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잠깐 떠오르다가, 서서히 식어갔다. 그건 그저, 어렸을 적의 기억일 뿐. 네로는 다시, 권총을 겨눴다. 어차피 앙드레는 더 이상 네로를 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잘 가.”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괜한, 필요 없는 총성. 총알 낭비에 불과한 총성. 그리고 네로는 등을 돌려 걸었다.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있었다. 그녀의 무덤은 성당 뒤편의 황무지 끝자락에 있었다. 네로는 무덤을 바라보다, 파트라슈가 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말없이 손을 뻗어 돌무더기를 걷어내고, 다시 하나씩 쌓았다. 무너진 무덤 위에 무겁게 올려진 그것은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묘비는 조금이나마 변했다. 네로가 돌로 긁어서 지워버린, 엘리나 아주머니의 이름. 묘비에는 그 무덤의 주인 이름이 남지 않았다.
성당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네로에게는 가장 절망스러운 기억이 남아 있던 곳. 네로 다스는 말없이 그 앞에 섰다. 군인들을 코제트 아저씨와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 전부를 그 안에 몰아넣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네로의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네로는 오래 전 파트라슈와 함께 쫓겨났던 그 문 앞에 다시 섰다. 불씨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우리한텐 죄가 없어요! 우린 그저…”
네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가 없다고? 파트라슈가 눈밭에 쓰러졌을 때, 문 하나 열어준 사람 있었나?”
사람들은 웅성이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성당의 문이 닫히고, 쇠 빗장이 내려졌다. 코제트만은 마지막까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저항했다. 그러나 총을 든 병사 하나가 그를 밀어 넣었다. 그렇지만 문이 닫히기 직전, 네로는 병사를 제지했다.
“아, 코제트 아저씨. 이거 떨어뜨리셨더라고요. 챙겨가셔야지.”
네로가 대강 집어던진 건, 옛날의 그 지갑. 네로는 비웃음과 함께, 다시 병사들을 시켜 성당의 문을 잠궈버렸다. 문이 닫히고, 네로는 그 앞에 섰다. 그의 손엔 작은 성냥갑이 들려 있었다.
“여기는 신의 집이었지. 너희는 그 신의 이름으로 나를 죽였고, 내 친구를 버렸어.”
성당 벽과 문에 석유가 뿌려졌다. 한 성냥이, 그의 손에서 켜졌다. 문 너머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코제트의 목소리가 가장 선명했다.
“제발! 제발… 네로,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네 그림, 그때… 그냥… 그냥 화가 나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성냥이 떨어졌고, 불꽃은 서서히 번졌다.
“미안하단 말… 파트라슈가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성당은 천천히 무너져 갔다. 종탑이 불길 속에서 휘청였고, 유리창이 깨지며 고함과 함께 불이 터져 나왔다.
불길 멀리서, 아로아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달려오려던 그녀는 병사에게 제지당했지만, 눈을 떼지 못했다. 성당이 무너지는 소리, 타들어 가는 불빛, 그리고 네로의 뒷모습. 그녀는 그를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걸어와 그녀 앞에 섰다. 권총은 내려져 있었다. 네로의 손가락은 방아쇠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로아를 바라보는 네로의 표정은, 그저 담담하게 굳어있었다.
“왜… 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넌 그날… 나랑, 파트라슈랑… 함께 울었잖아.”
아로아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돌아서서, 불타는 마을을 등지고 걸어갔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고, 전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부서진 참호, 고장난 포대, 쓰러진 군복의 군인들. 포화 소리와 비명은 점점 멀어졌고, 그 사이에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가슴을 들썩이며 헐떡이고 있었다.
네로 다스였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손끝은 떨렸고, 눈은 피로에 젖어 허공을 헤매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병사들이 몰려들며 그를 포위했다.
“네로 다스! 손을 들고 무기를 내려놔라!”
네로는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전쟁이었다고! 복수였다고!”
네다섯명의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네로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그 자식들이 먼저였다고! 그 놈들이 먼저 날 버렸고, 죽였고…! 왜 나만, 왜 나만!!”
“제압해!”
구타가 시작됐다. 군화가 복부를 찍고, 어깨에 총 끝이 내려쳤다. 네로는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리쳤다.
“파트라슈가 죽었을 때! 그때 아무도 없었다고! 코제트, 한스, 앙드레, 그 ㄱㅅㄲ들이—!”
팔이 꺾이고, 몸이 묶였다.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삼키며, 그는 고개를 들었다. 멀리, 이미 연기 속으로 사라져버린 마을의 잔해가 보였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허탈한, 텅 빈 웃음이었다.
그를 태운 군용 트럭이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재판정은 침착하게 조용했다. 창문 너머로는 하얗게 겨울이 내려앉고 있었고, 법복을 입은 재판관들은 서류를 뒤적이며 이름을 확인했다.
“네로 다스, 피고는 플랜더스 지방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 방화, 반인륜행위에 대한 주범으로 기소되었으며, 해당 혐의에 대해 피고의 진술을 요구한다.”
네로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얼굴엔 피멍이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더 이상 날뛰지 않았다. 오히려 텅 빈 허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 단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재판관들은 고개를 들었다.
“눈밭에 쓰러졌을 때,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파트라슈가 숨을 거둘 때까지도, 차갑게 굳을 때 까지도… 아무도.”
그는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법이 말하길, 죄가 아니랍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가 문을 닫고, 불을 질렀더니, 그건 죄가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온 세상이 말이죠. 심지어 그건 정말로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난 그날 밤에는 거기 있지도 않았는데.”
정적이 흘렀다.
재판관 중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네로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럼, 그때 날 외면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무죄인가요?”
그 말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아니, 모두에게 닿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네로는 허탈하게, 그렇지만 냉정하게 웃었다.
“어차피 뭐, 다들 죽었으니까. 무죄겠네요.”
잠시 후, 아로아가 증인석에 올랐다. 그녀는 무표정했지만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네로와 아로아의 눈이 한 순간 마주쳤다. 이 재판정에 들어온 후로, 네로의 눈에 감정이 스쳐 지나간 것은 그 잠시 뿐이었다.
“네로는… 어릴 적에, 누구보다 따뜻했어요. 개 한 마리를 위해 온 세상을 잃을 각오를 했던 아이였어요.”
재판관이 물었다.
“당신은 그가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아로아는 잠시 굳었다. 그리고 이윽고,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고개에는 체념도 섞여 있었다.
“그는… 제 친구였습니다. 매일 그림을 그렸고, 항상 파트라슈와 함께였어요. 우리 마을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그림엔 늘 햇빛이 있었어요.”
아로아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가 그렇게 된 건… 그가 원해서가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네로는 그녀를 바라봤다. 아주 작고 조용한 떨림이 그의 눈가를 스쳤다.
“진술 있습니까?”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로도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네로의 입술 사이에서는 아무도 듣지 못할, 오로지 아로아만이 들을 수 있던 작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파트라슈도 그렇게 말했을걸.”
그리고, 재판정에선 마지막 한 마디가 울려퍼졌다.
“본 법원은, 피고 네로 다스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 행위, 민간인 학살 등의 죄상을 선고하는 바...”
네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로아는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모두, 판사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두 사람 모두가 예상한 판사의 말 한 마디가, 재판장에 울렸다.
“...사형을 선고한다.”
그 날, 그는 조용히 걸었다. 네로 다스. 그는 어떠한 신부, 목사도 필요 없다고 했다. 유언장도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교수대가 있는 사형장으로 가는 회색 복도. 눈은 오지 않았지만, 그는 네 발소리를 들었다. 네로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파트라슈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곁에 있었다. 숨결도, 걸음도, 온기도.
네로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 혼잣말에는 작은 떨림이, 그리고 쓸쓸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분명 파트라슈는 이런 자기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옆에 와준 것이니까.
“같이 가주는 거구나…”
교수대 위에 올라선 그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웃었다. 그리고, 교수대의 밧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네로 다스의 입가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민간인 학살범 네로 다스가 수감되어 있었던 감옥의 벽에는, 민간인 학살범이 돌맹이 하나로 긁어 적은 말이 남아 있었다.
- 이제는, 춥지 않겠지? 파트라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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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죄가 아니라더군요." 아련하네요.... 잘 읽었습니다.(_ _) (인공지능 글도 읽었는데 무섭도록 잘 썼더군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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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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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나오게 재미있네연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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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것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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