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동서대분열이라 부르는 사건이 있다
사건이라 하기도 되게 애매한 것이긴 한데
사학과 교수님들조차도 종종 잘못 아는 경우가 있는 사건이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
1. 기독교는 이때까지 하나였는데 갈라졌다?
그렇지 않다
동서대분열 이전에도 기독교는 여러 교파가 있었다
로마는 지중해라는 하나의 세계를 통일한 제국이었고, 그 제국의 국교가 기독교였다
그런 만큼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교구가 기독교를 믿었고
그런 만큼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다
현대와 다름없이 사이비가 판을 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황제는 누가 사이비인지 확실히 가리라고 자리를 마련해주었으니
이걸 "공의회"라고 한다
즉, 공의회의 존재 자체가 여러 교파가 있었음을 상징한다
2. 동서대분열은 1054년의 사건이다?
그렇지 않다
1054년의 사건이란,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상호 파문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권한이 자꾸 커지던 와중이었고
(동)로마 황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청한다
비록 직접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았다고는 해도 로마는 로마
그 이름에서 나오는 영향력은 컸기에, 교황도 로마 황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도 있었다고 보인다
뭐 한두번 있던 사건도 아니었긴 하다
어쨌던 그래서 교황은 추기경들을 파견하는데
로마 교회와 다른 총대주교들은 큰 대척점이 있었다
로마 교회에서는 교황이 다른 총대주교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총대주교들은 교황이 아니라 로마 총대주교이며 상하관계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더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은 교황수위권에 대해 직접 알아보면 좋다
파견된 추기경들은 싸우기만 했고
총대주교는 그들을 추방했고
화가 난 사절단은 총대주교를 파문한다는 서한을 남기고 갔고
총대주교도 화가 나서 그들을 파문했다
이걸 보고 동서 교회 사이에 상호 파문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기에는 참 많은 찐빠가 있다
당시 교황은 공석이었다
54년 4월, 교황 레오 9세 사망
54년 7월, 파문 사건 발생
55년 4월, 교황 빅토르 2세 선출
사절단은 교황의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어진 상태였고
총대주교는 파문할 교황이 없었고
애초에 교황을 파문하려던게 아니라 사절단을 파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인 1096년, 제1차 십자군이 파병된다
십자군은 동로마 황제가 교황에게 요청하고 교황이 모병해서 파견한 것으로
동서 교회가 서로 파문하고 단절 혹은 분열되었다면 십자군은 불가능했다
이 십자군 자체가, 상호파문이 큰 의미가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3. 그럼 분열은 없었는가?
그건 또 아니다
왜냐면
이새끼들이 4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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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갔잖아!! 먼길 안갔잖아!!! 돈만 챙겼잖아!!!!! | 25.07.14 17: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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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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