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센 학원에는 미신 아닌 미신이 있다.
매년 4월 초 즈음 삼여신상의 분수대를 지나가면
잠시 동안 빛에 휩싸이는 감각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경험자에 의하면 빛을 쐬는 동안은 매우 따뜻하며,
자고 일어난 다음 날부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더트에서만 달릴 수 있었던 아이가 잔디에서도 그럭저럭 달릴 수 있게 된다던가
장거리는 영 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완주하고도 체력이 남는다거나
혹은 과거 누군가 사용했었던 주법을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게 되는 등 다양한 변화 사례가 있다.
학원의 공식 입장은 어디까지나 '미신' 이었지만 많은 수 의 경험자와 증언이 존재하였기에
매년 4월 초가 되면 삼여신상의 분수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토카이 테이오는 미신을 신봉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레이스는 '미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기고 싶은 것' 이 아니라
애초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달려도 '당연히 이길 수 있는 것' 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테이오는 많은 동급생들이나 선후배들이
삼여신상으로 향하는 것을 단순히 관망했다.
미신에 대해 딱히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많이 들 오고가네' 같은 사사로운 생각만 할뿐.
다만 메지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모든 수를 쓰고 싶었던
맥퀸이 후쿠키타루에게 빌린 럭키 아이템을 둘둘 두르고
삼여신상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녀마저 이마를 부여잡고 말았다.
그렇게 삼여신상 투어도 어느덧 사그라들어가던 시점에
테이오는 하굣길에 우연히도 삼여신상의 분수대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미신 생각이 난 테이오는 삼여신상과 눈이 마주쳤고
많은 경험자들이 말했던 빛에 휩싸이는 감각을 체험하게 되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빛은 매우 밝았지만 결코 눈이 부시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오히려 따스하고 안정감을 주는 긍정적인 느낌의 빛이었다.
대부분의 증언에 따르면 이제 빛이 사그라들고
다시 삼여신상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테이오는 대부분의 사례에서 살짝 벗어나게 되었다.
빛이 사그라드는 대신 주마등 같은 광경이 스쳐지나가게 된 것이다.
푸른 조명이 인상적인 수족관의 어딘가.
얼굴은 마치 모자이크라도 한 듯 흐릿해져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테이오의 시야에는 머리에 새하얀 유성이 있는 우마무스메와 성인 남성이 들어왔다.
"루나?"
이름을 부르는 남성의 목소리에서는 익숙한 것 같으면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름의 주인인 듯한 우마무스메는 남성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마치 주인의 부름을 들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붕붕거리며
남성에게 다가가 쓰다듬을 받고 있었다.
황금색 빛의 따스함보다도 더 깊은, 마치 좋은 날 풀밭에 나가서 햇볕을 쬐는듯한 감각이 들어왔다.
그리고 장면이 끝나자 비로소 테이오는 삼여신상 앞 분수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테이오는 전보다 다리가 빨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트레이너와 함께 재본 타임은 어제의 기록은 상대도 안될 정도로 향상되어 있었다.
또한 동급생들을 모아 병주를 하던 도중 추월을 시도하며 세 명째를 제치는 순간,
발이 멋대로 빨라지며 방금 제친 아이와 어마어마한 차이가 벌어졌다.
확실히 변화를 체감한 테이오는 기쁘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강해진 것은 좋지만 그냥 여신상에 한 번 간 것 뿐인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니.
그동안의 노력이 뭔가 빛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테이오의 고민은 언제나 짧았다.
테이오에겐 어떤 고민이든 해결해주는 회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야할 트레이닝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운 테이오는 학생회실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회실의 문이 열리자 왠일로 회장을 보좌하는 그루브와 브라이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회장과 회장의 트레이너가 즐거운 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테이오가 온 것을 눈치챈 루돌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테이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특유의 살짝 떼쓰는 듯한 목소리로
삼여신상에서 황금빛 빛에 휩싸인 일과 오늘 갑자기 달리기가 향상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루돌프는 테이오의 말을 경청하는 동시에 응, 그런가, 그랬구나 와 같이 다양한 패턴의 맞장구로 테이오를 받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묶여있던 실뭉치가 굴러가듯 술술 풀리던 도중, 테이오는 빛 다음에 본 광경을 생각하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회장, 혹시 '루나' 라는 이름의 우마무스메를 알아?"
의문은 그 즉시 질문으로 바뀌어 루돌프에게 전달되었고
루돌프는 항상 유지하던 표정이 순간 흐트러졌다.
"...테이오, 혹시 그 이름은 어디에서 들었니?"
회장의 표정이 흐트러짐을 감지한 테이오는 잠시 위화감을 느꼈으나
이내 다시 대답하기 위해 생각을 돌렸다.
"아까 얘기했던 빛을 보다가 갑자기 수족관이 나오더라고!
근데 갑자기 트레이너처럼 보이는 어른이 '루나?' 라고 부르더니..."
수족관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침착함을 되찾은 루돌프는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테이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테이오. 그 루나라는 우마무스메는, 행복해보였니?"
질문이 질문으로 돌아오자 테이오는 응? 하며 당황했지만
잠시 이마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가며 고민하다 이윽고 답을 냈다.
"응! 꼬리도 붕붕 흔들리는게 엄청 행복해 보였는걸!"
"그래..?
그랬다면 다행이군.
나는 기억 속의 우마무스메도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회장..!"
루돌프의 말에 감명받은 테이오는 어느새
삼여신상과 빛에 관한 일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건 그렇고 슬슬 늦었으니
오늘은 이제 그만 돌아가렴."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해진 창문을 가리키며
루돌프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다.
"엑? 벌써..?
뭐, 어쩔 수 없나!
그럼 내일 봐, 회장!"
"그래. 내일 보자, 테이오."
시간의 변화를 이제야 눈치챈 테이오는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이야기가 끝났음을 받아드리고 내일을 기약하며 학생회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간 테이오는 뭉쳤던 감정이 해소되어 무척이나 편안하게 잠에 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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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오가 학생회실을 나가고 정확히 30초 뒤.
"기억..기억 속의..우마무스메래..푸흐..푸흐흡...."
"정말이지..그렇게 웃지 말아주게. 트레이너 군."
루돌프의 트레이너는 참았던 웃음을 비로소 터트릴 수 있었다.
알다시피 루나는 루돌프의 옛 이름.
지금에서야 아는 사람만 아는 이름이 된 사실상의 애칭 같은 것이다.
"아니..테이오 입에서 루나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단 말이지.
옛 이름을 아끼는 후배에게서 들은 소감이 어떠신가요, 루.나.양.?"
"트레이너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루돌프의 트레이너에게는 지금에서야
거의 완벽에 가까워져 놀릴 게 없었던 루돌프를 골려줄만한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다.
그 효과는 탁월하여 그 루돌프 답지 않게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저기..루돌프? 괜찮아?"
너무 심하게 놀렸나 싶어 루돌프의 트레이너가 머뭇거리는 사이.
루돌프는 잠시 시간을 돌리기로 결정했다.
테이오가 말했던 수족관의 그 때로.
"루나 라고 안 불러주면 싫어...
루나 지금 단단히 삐졌으니까!"
"루돌..아니, 루나?"
대충 감은 잡았지만 여전히 상황파악이 덜 된 트레이너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루나는 그의 팔을 잡고 머리 위로 옮겨버렸다.
"쓰다듬어줘!
빨리! 빠알리!!"
완전히 그 시절로 돌아가버린 루나의 시선을 바라보던
루나의 트레이너는 오늘 밤은 아마 그냥 넘어갈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일사불란하게 팔을 움직여 쓰다듬기를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그에게서 루돌프의 채취가 매우 진하게 풍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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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쓰다듬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