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하면 떠오르는 것이 조총일 정도로 유명한 무기고, 실제로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주력 제식총기에 전황에 큰 도움을 주었다. 흔히 가지는 이미지가 '조선은 일본의 조총을 무시해서 초반에 패했다'인데, 조선은 조총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조총이 들여왔으며 조선 조정 및 군 장교는 그 위력을 알고있었다. 사거리 또한 50m 가량에 긴 장전 시간으로 사거리 약 100~130m에 장전 시간이 짧은 활에 비해 저평가했던 것이다. 허나 조총의 위력은 단체로, 동시에 사격해 화망을 이루었을때 발휘하는데 이미 숱한 내전으로 이러한 사용법을 익힌 일본과 달리 조선에선 이 사용법을 간과했다.
무엇보다, 활은 제대로 쓰려면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조선군에 급히 징집된 군사들 대부분이 활을 오래 써본 경력이 없는 농민 출신인지라 숙련도 부족으로 제대로된 활의 위력이 잘 나오지 못했다.
사실, 일본군에서 조총사수의 비율은 전체 14%정도로 엄청나게 많은건 아니었으며, 조총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궁병, 장창병, 칼잡이 등 배틀라인, 서포트 병과를 혼합 배치해 싸웠다. 전국시대를 제대로 다룬 일본 사극을 보면 돌팔매질하는 병사들도 나오는데 이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일선 장병 및 말단 장수가 조총에 대해 몰랐다는 점이 크다. 이러한 복합전 원인이 조합하여 임진왜란하면 조총이 떠오르고, 전쟁 중기쯔음 조선군과 명군이 조총을 제대로 도입하게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