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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러지 맙시다, 네? 둘이 죽는 것보다는 하나만 죽는 게 낫잖아요”
그 사디어스가 이젠 거의 숫제 애원조로 나왔다. 말까지 높여주는 걸 보니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콘스탄챠는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한 번, 무뚝뚝할 정도로 담담한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반복되어 나왔다.
“제가 죽였습니다”
“아-! 진짜-! 말이 되는 소릴 좀 해-!!!”
몇 시간 동안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콘스탄챠에게 지쳐버린 사디어스가 결국 다시 한 번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안경도 깨지고 피투성이에 완전 만신창이가 된 바이오로이드 앞에서 자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뭘 하고 있는지 의문을 느끼며.
“이미 용의자가 자백했다고.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당신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려고 하는데? 어?”
그랬구나. 역시 그럴 분이다. 콘스탄챠는 속으로 웃음 반 울음 반인 기묘한 마음에 스스로 잠시 아리송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 그분은 그러하시리라.
소년은 올곧고 올바르게 자랐다.
자신의 잘못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행한 바에 책임을 지려 하신다. 정직하게, 떳떳하게.
그러나, 그녀가 그를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으리라. 추악하게 더럽혀지게 놔두지 않으리라.
“그분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거짓말로 살인을 자백해? 제정신이야? 대체 왜?”
“아마 착각하고 있을 겁니다. 저를 때리던 제 ‘전’ 주인님과 그분이 말다툼을 한 것은 사실이죠. 언성이 높아지다 드잡이로까지 번졌구요.”
“흥. 살인 동기로 충분하군”
“하지만, 혼란 중에 흉기를 휘둘러 살인을 저지른 건 저에요.”
“......”
“그분은 그저 자기가 몸싸움 중에 죽였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디어스는 혹시 인간 용의자가 이 콘스탄챠에게 허위 자수라도 명령했나도 일순 의심했지만, 곧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본인이 자백을 했는데 이제 와서 콘스탄챠를 세워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니, 인간 용의자는 오히려 이 콘스탄챠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었다. 이 미친 메이드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왔단 말이다. 골치가 아팠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살인은 중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든, 바이오로이드가 사람을 죽이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이 가진 권력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최소한 징역이요 나라에 따라서는 사형으로 다스리는 경우도 있다. 바이오로이드는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인간을 해하는 도구는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즉시 폐기처분된다. 그래서 사디어스는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콘스탄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길 죽여달라는 꼴과 무엇이 다른가? 아니 실제로 살인자면 또 모르되, 이 경우는...
“그래, 진짜 당신이 죽였다 치자. 하지만 바이오로이드가 어떻게 자율적으로 인간을 죽이냐고.”
“......”
“분명히 명령한 인간이 있었을 테고, 그러면 그 시점에 그 자리에 있던 피해자의 아들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지”
“......”
“이봐. 바뀌는 건 없다고. 당신을 도구로 썼냐 직접 죽였냐의 차이지. 안 그래?”
그리고 도구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 도구는 행동의 수단이지 주체가 될 수 없으니까. 피해자를 죽인 소주병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콘스탄챠는 그녀 스스로가 행동의 주체임을, 그 죄악스런 행동의 주체임을 주장했다.
“저는 범행 직전까지 심하게 두들겨 맞았어요. 맞는 중에 인간을 공격하는 걸 막는 금제가 일시적으로 풀린 모양이지요.”
“......”
사디어스가 으르렁거렸다. 분명히 검사 결과 콘스탄챠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심하게 얻어맞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가장 기본적인 일부 기관들이 손상된 것도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확실히 그녀의 길을 찾는 기능을 담당하는 감각모듈은 부서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 정도로 무자비하게 두드려 맞았다면 가장 착한 바이오로이드라도 반항심이 들 수도 있었을 터다. 가장 기본적인 모듈도 맛이 갈 정도로 맞았으면 어쩌면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억제하는 기능도 일시적으로나마 마비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의 검사관의 소견서는 그녀가 그 몇 시간 전에도 어디선가 거의 치사(致死)에 이를 정도로 구타당한 것 같다는 의견이 첨부되어 있었지만, 그것도 콘스탄챠의 주장을 완벽히 반박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했다. 아무튼 피해자에게 맞았다는 사실 자체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아시죠? 저는 배틀메이드에요”
“헷, 전투용 모듈도 제거된 깡통이 무슨...”
“네. 무능한 깡통이죠. 하지만 공격성은 남아있었을지도요?”
그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말이 술술 나왔다. 마치 남 일처럼 말하는 그녀 앞에서 사디어스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녀가 배틀메이드라는 점이 걸렸다. 삼안제 배틀메이드는 민수용도 있지만 군용으로도 쓰인다. 즉,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면 인간에 대한 살상행동을 기꺼이 수행할 수도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전투용 모듈이 제거되었더라도, 그래서 제대로 싸울 줄은 모르더라도, 유전자 수준에서 남은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로서의 본능이, 홧김에 반항할 여지를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디어스는 이내 코웃음쳤다.
“흉기로 쓴 소주병에서 용의자의 지문이 검출되었는데?”
“그분이 저를 말리려고 흉기를 잡다가 나온 거겠죠”
“하, 진짜, 진짜, 당신 왜 이래? 진짜 왜 이러냐고?”
눈썹을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뜨린 사디어스는 지친 듯, 아니 정말로 지쳐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허리를 숙여 콘스탄챠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정황이 인간 용의자가 범인이 맞다고 지목하고 있다. 용의자 본인도 자백했다. 그런데, 이 콘스탄챠가 끼어들면 그 정황도 그 자백도 다 어그러진다. 그렇다고 그녀의 증언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이쪽 설명도 완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왜 자꾸 죽으려고 해? 젠장, 조금 전부터 바깥에 호프 노부부가 와 있어. 낡고 불우한 바이오로이드들을 들여 보살펴주기로 유명한 분들이지. 훌륭하신 분들이야. 당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더군. 당신을 샀다면서.”
“......”
콘스탄챠의 마지막 구원이다. 제 발로 죽을 자리에 들어온 그녀의 마지막 희망(Hope)이다. 여기서 고개를 한 번, 단 한 번만 끄덕여도 그녀는 경찰서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만 하면, 그녀는 해방될 수 있으리라. 이, 모든 비참함도, 소년도, 모두 깨끗이 잊을 수 있으리라. 행복이 그녀의 코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제정신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두 팔 벌려 행복을 맞이하리라.
“하지만,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도 범죄자 바이오로이드는 데려가지 않을 거야. 앞으로도 문제를 일으킬 하자 있는 상품일지도 모르고, 아니 그 전에 법이 당신을 놔주지 않을 테니까.”
사디어스는 정말로 콘스탄챠가 진술을 철회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녀라고 무고한 자 - 그게 사람이든 바이오로이드든 - 를 죽음으로 내모는 걸 즐기는 악한은 아니니까.
그러나, 콘스탄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죄수의 딜레마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합리적인 행위자들인 죄수들이, 상호간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야 하는 것. 어쩌면 그녀와 소년의 상황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서로 떨어져 있으니.
...그녀와 소년이 합리적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죽였습니다”
사디어스는 질렸다는 듯이 두 손을 들고 의자에 늘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짓을 해야 하는가고. 그러나 그런 그녀 앞에서도 콘스탄챠는 묵묵히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알아주길 바랬다. 어딘가 다른 곳에 잡혀 있을 소년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다. 거름덩이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아름다운 꽂이, 죄악과 더러움 속에 물들지 않기를 바랬다. 그녀가 지켜 온, 그녀가 보살펴 온,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사랑해 온, 그 아름다운 꽃이.
소년에게 그녀가, 따뜻한 밥 하나조차 해 먹이지 못하는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제 이것밖에 없었다. 이제,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 하나뿐이다.
그러니, 그녀가 대신 짊어져 주리라. 그 모든 책임을. 그 모든 죄악을. 그 모든 더러움을.
짊어지리라.
짊어지리라.
그 끝이 파멸뿐이더라도.
< E N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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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전에 라오게에 썼던 소설 재탕해 봄.
유게이들은 재밌게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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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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