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등장하기 시작한게
BC 2700~2000년 쯤임.
고대 그리스인들도 피라미드 구경하러 관광을 갔었고, 로마인들도 구경하러 관광을 갔었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대형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1.발달한 측량법.
이집트의 측량술은 그 당시를 생각하면 매우 발달했음. 이집트의 통일 왕조가 성립된것이 BC 3200년쯤으로 추정하는데 그 이전의 도시 연맹 체제까지 올라가면 BC 5000년쯔음까지 올라감.
아무튼 통일 왕조를 기준으로 잡든, 본격적으로 문명을 구축하던 시기를 잡든 이 이집트 인들은 기본적으로 나일강 유역에 자리잡았다는 사실 하나가 중요함. 이게 왜 중요하냐면 나일강은 주기적으로 범람을 하는데, 나일강 주변에 살면 주기적으로 강이 범람해서 농경지가 잠겼다가 토사물로 뒤덮혀서 나올것 아녀. 근데 니땅이랑 내땅을 구분할라믄 어캐? 졸라게 정밀하게 측량을 할 수 있어야되겠지? 그래야 싸움이 안날것 아녀. 근데 이짓을 천년이 넘게 했다 생각해봐. 측량술이 발달 안하는게 이상한것. 더불어 주기적인 나일강 범람은 일년중 특정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는것이고 이런건 또 천문학과도 연관이 있어서 천문학도 발달하게 됨. 즉 만들만한 지식은 갖추게 되었다는것.
2. 사실 피라미드는 계속해서 진화해왔음.
우리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보다 이전부터 당연히 피라미드는 만들어져 왔었음.
다양한 실패사례도 있었고 축조하면서 석재의 강도를 충분히 감안하지 못해서 내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음. 여하튼 이짓도 이제 수백년동안 계속 만들다보니 요령도 생기고 지식도 생기게 되는것. 다만 그렇게 오랜기간 만들면서도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남아있는 피라미드가 많지 않은것뿐. 당장에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지을 당시만 해도 BC 2500년대쯤임
3.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은 손이 노는 노동력이 생긴다.
이집트 왕들의 토목공사는 자기의 업적을 기리는 작업인 동시에 백성들의 구제활동이기도 했음.
범람기때는 농사를 못지으니 피라미드나 신전등을 지으면서 월급도 주고 했음. 가만히 굶어죽게 두는것보단 일을 주어 먹여 살리는 고대 이집트 판 뉴딜 정책인 셈.
물론 이렇게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미스테리한 점들은 많음. 그 많은 석재를 어디서 구했는가와 건설방식의 의문점, 왕의 무덤이긴 한가, 피라미드 하나 만드는데 든 석재의 갯수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공사기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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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근처에서 지었기 때문에 채석장에서 구했으리라는건 알지만 피라미드 규모에 비해 채석장 규모가 작아서 의문인거지. 피라미드의 석재는 자연석 그대로가 아니라 가공석재라 본래 규모보다 2~3배정도는 더 커야됨. | 20.08.11 11: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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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이라는 선택지도 있고, 긴세월이 지나는 동안 잊혀진 채석장이 있을수도 있어. | 20.08.11 11: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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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석재는 인근의 다른 피라미드에서 가져온 사실도 있고 해서 그럴 수 있긴 함. | 20.08.11 11: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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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글쓴거 보면 님도 알거 같은데. 고대 건축물들의 비밀이라는게 사실 알고 보면 되게 단순한 경우가 많잖아. | 20.08.11 11: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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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건축물의 비밀이나 의문은 추정은 되나 설명할 근거가 없어서가 대부분인게 사실임. 가설을 검증할 순 있지만 그당시에도 이런 방식이였다라는 증거가 없으니까 | 20.08.11 11: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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