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는 '성 이슈트반의 왕관'이라는 왕관이 있다.
헝가리어로는 'Szent Korona', 성스러운 왕관으로 불리는데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이자 가톨릭의 성인인 성 이슈트반 1세가
11세기 초에 이 왕관을 쓰고 대관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비잔티움 양식으로 제작된 성 이슈트반의 왕관은
황금과 칠보로 장식되었으며
왕관의 둘레는 성인 남성의 머리보다 약간 크고
무게는 약 2kg이다.
왕관의 꼭대기를 장식한 금제 십자가는
17세기경 보관상 실수로 인해 휘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성유물로 취급받던 왕관이라서
똑바로 세우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오늘날까지 유지되었다.
성 이슈트반의 왕관을 대관식에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이
헝가리 왕국의 창업자인 동시에
가톨릭의 성인으로 추앙받던 성 이슈트반 1세였기 때문인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헝가리 사람들은
군주가 되는 자가 이 왕관을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왕관이 자기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선택한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성 이슈트반 1세 이래로 두 명을 제외한
50여명의 헝가리 국왕이
성 이슈트반의 왕관을 대관식에서 사용했고,
(왼쪽부터 카를 1세 황제, 오토 폰 합스부르크 황태자, 지타 황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도
천 년 가까이 이어진 전통을 따라
대관식 때 성 이슈트반의 왕관을 머리에 썼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패전하면서
주인을 잃은 성 이슈트반의 왕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졌다가
2000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국회의사당에
대관식 때 사용되는 왕홀, 칼과 함께 전시된다.
군주정 시절에는 성 이슈트반의 왕관이
자기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선택한다고 믿었지만,
군주가 필요 없는 공화정으로 이행한 이상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에 따라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 성 이슈트반의 왕관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 이슈트반의 왕관을 쓴 마지막 군주인 카를 1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려고 노력한 점이 인정되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2004년 복자로 시복되었다.
만약 카를 1세가 훗날 성인으로 시성된다면
성 이슈트반의 왕관의 첫 주인과 마지막 주인이
가톨릭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