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번에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질문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영혼관점에 대한 로크의 비판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는데 어느 친절하신 분이 차근차근 대답해 주셨죠.
이번에 올릴 질문글은 죽음의 편재성이 어떻게 죽음의 스릴을 만끽하는 자에게도 나쁠 수가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을 위해 일단 죽음의 편재성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겠군요.
죽음의 편재성이란 죽음이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는 성질을 말합니다.(언제 죽을지 모르는 성질은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이라고 따로 구분한다는군요. 저도 자세한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민가에 비행기가 추락해 운없이 죽은 사람의 기사를 읽어보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이처럼 죽음은 불현듯 장소를 가리지않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이를 죽음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죽음의 편재성은 인간한테 나쁜 성질로 받아들여집니다. 자신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죽을지 가슴 졸이며 사는 삶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죽음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 예를 들어 스카이다이빙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이 죽음의 편재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며 위태위태한 묘기를 부리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죽음의 위험이 주는 스릴감 때문이라 할 수 있죠.
죽음의 가능성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면 죽음의 편재성은 나쁜 면이 아니라 좋은 측면을 가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셸리 케이건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전 셸리 케이건의 죽음의 편재성이 죽음의 스릴을 만끽하는 사람한테도 안 좋은 이유에 대한 논증이 이해가 안 돼서 여쭙는 겁니다.
책의 단락을 아래에 적어드리겠습니다.
"스카이다이버들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린다. 그들은 땅으로 떨어지면서 조그마한 낙하산 가방에 자신의 모든 운명을 맡긴다.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낙하산 고장으로 죽은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여러분도 봤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낙하산 하나에 의존해 하늘에서 뛰어내리도록 만드는건 무엇인가? 아마도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무릅써야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 물어봤을 때 이런 대답을 듣게 될수도 있다. "아니에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너무나 환상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건 충분한 대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안에서도 얼마든지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죽음의 가능성이 그 주된 이유라고 믿는다.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이 주는 스릴감 때문에 비행기 밖 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옳다면, 앞서 내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나 시간 또는 활동이 존재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했던 말이 틀린 셈이다. 죽음의 편재성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다. 죽음 의 가능성이 오히려 욕망을 자극한다면, 죽음의 편재성은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죽음의 가능성 때문에 고공낙하에 매력을 느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공낙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편재성이란 마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과 같은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일상생활보다 조금 더 위험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들로 하여금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지게 만드는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죽음의 위압감 에 당당히 맞서는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옳다면, 죽음의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죽음의 편재성은 특별히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죽음의 편재성은 죽음을 그저 배경음악으로 만들어버릴 뿐이기 때문이다."
제가 이해 안 되는 건 마지막 문단이에요. 죽음의 편재성이 배경 음악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또 죽음의 편재성이 죽음을 배경음악으로 만들기 때문에, 죽음의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편재성이 좋은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저는 이 철학적 논증에 더 깊숙히 알아보기 위해 저자 셸리 케이건의 강의 동영상을 살펴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케이건 씨의 예일대 강의를 그대로 (과장하자면 거의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옮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책 내용 중 죽음의 편재성 단락과 일대일로 매치되는 강의 내용을 찾을 수 있었죠.
13:36-16:17 부분의 강의 내용이 위에서 제가 언급한 책의 단락과 거의 정확히 일치해요.
즉 제가 굵게 표시한 마지막 문단과 일치하는 내용, 요컨대 "죽음의 편재성이 죽음의 스릴감을 즐기는 자에게도 좋은 성질이 아니다."는 논증은 제가 뒤에 적는 부분이에요.
Well, I'm inclined to think, at least in my own case, that that's not right. And perhaps the explanation has got to be the ubiquity of death is this kind of background, constant hum. And the fact that we're always facing some risk of death recedes into the background in the way that most of us don't hear background noise--that what jumping out of an airplane does for you is it spikes the risk of death. So, it's not really good enough to just have some risk of death--it's got to be greater risk than usual. If that's right, if that's the psychology, then even for those death thrill seekers, the ubiquity of death won't necessarily be a good thing because of it being constant. It just recedes into the background.
(좋아요, 저는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요, 적어도저의 케이스에서는, 이것은 별로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유는 죽음의 편재성은 살짝의 삶의 백그라운드같은 것이고, 뭐랄까 지속적인 소리같은 것이죠.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 죽음의 가능성을 포함한 백그라운드에 직면하고있는 것이죠 - 단지 그 소리를 못 들을뿐. 그래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은 당신에게 그 보이지 않는 백그라운드와 마주하는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그것은 물론 일반생활을 할 때보다 더 큰 리스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심리적인것이라면, 그리고 그런 스릴을 찾는 사람들에게라면, 죽음의 편재성은꼭 그렇게 좋은 것은아니죠. 왜냐면 그것은 언제나 일관적으로 있는 것 이니까요.그저 조금 뒤에 백그라운드로 서있는 것 뿐 입니다.)
(출처:
http://m.blog.daum.net/windada11/8764071?np_nil_b=2)
이 파트가
그래도 나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죽음의 가능성 때문에 고공낙하에 매력을 느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공낙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편재성이란 마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과 같은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일상생활보다 조금 더 위험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들로 하여금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지게 만드는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죽음의 위압감 에 당당히 맞서는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옳다면, 죽음의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죽음의 편재성은 특별히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죽음의 편재성은 죽음을 그저 배경음악으로 만들어버릴 뿐이기 때문이다."
이 파트와 일치하는 거죠.(1.죽음의 편재성이 죽음의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안 좋다는 것을 논증한다는 점 2. 앞 파트가 스카이다이빙의 예시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죠.)
그런데 제가 겪는 문제는 일치되어야 할 두 개의 문단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죽음이 배경음악이 된다는 점이, 어떻게 죽음의 스릴을 즐기는 자에게 죽음의 편재성이 나쁘다는 점으로 연결되는지도 알 수 없는데,
두 문단의 내용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문제까지 겪고 있어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보입니다.
왜일까요? 출처의 번역이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책의 번역이 잘못된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제가 내용을 잘못 이해한 걸까요?
책 원서만 구하면 번역서와 비교가 수월할텐데 그러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영어를 잘 못 읽어서요.
아무튼 제가 질문할 점은
1. 죽음이 배경 음악이라는 점이 어떻게 편재성이 스릴을 즐기는 자에게도 나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는가, 애초에 죽음이 배경 음악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2. 제가 제시한 두 문단은 내용이 일치하는가, 불일치하는가. 불일치한다면 번역의 문제인가. 번역의 문제라면 책 내용이 오역인가, 강의 내용이 오역인가
가 되겠습니다. 철학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도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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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런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을까? | 20.02.22 01: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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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영혼관점에 대해 질문했을 때 친절히 답변해 주신 분이 계셨어요. 이번에 만족할만한 답변이 없으면 내일 또 올리면 되죠 뭐 | 20.02.22 01:0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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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도 보니까 너는 철학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가보네 근데 이런 커뮤니티가 대학 밖에 제대로된게 있을까... 모쪼록 힘내라 어느 분야건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란 너무 어려운 것이야 | 20.02.22 01: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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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는데 내용이 어려워요. 더 어려운 점은 글의 문맥이 끊겼을 때 제가 이해를 못해 끊긴 건지, 오역이라서 끊긴건지를 구분을 못하겠다는 점이죠. | 20.02.22 01: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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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떠오른건데 진짜 궁금한게 있다면 너가 좋아하는 걸 설명하는 유튜브를 찾아서 그 사람한테 이메일을 보내봐. 외국애들 보니까 어떤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들은 시청자들한테 이메일도 많이 받나보더라 시청자들도 질문같은 거 많이 보내고.. 철학관련 유튜버 찾아서 질문 이메일 해보셈 철학관련 어떤 커뮤니티들이 존재하냐고 | 20.02.22 01: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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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중엔 철학 관련 유튜버를 못 찾겠고 전 영어 실력도 딸려서... | 20.02.22 01: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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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철학적인 궁금증들을 항상 갖고 있어서 유튜브 보는데 '5분 뚝딱철학' 이라는 분이 친절하게 개념들 철학자들 잘 설명해줘 링크 달아줄게 | 20.02.22 01: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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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user/cosmoscan1 | 20.02.22 01: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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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시간 날 때 볼게요. | 20.02.22 01: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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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 20.02.22 01: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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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눌렀어요. 언젠간 볼게요. 다른 책에 관심이 팔려서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 20.02.22 01: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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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올린 질문 두 개도 답변해 주실 수 있으시나요? 제가 영어를 못해서 두 문단 비교가 특히 힘드네요. | 20.02.22 01: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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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기다릴게요. | 20.02.22 01: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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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건데 recedes into the background는 숙어래요. 1.배후[뒷전]로 물러나다 2.세력을 잃다, 중요하지 않게 되다 | 20.02.22 01: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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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좀 이해하기 어려워요. 죽음의 편재성이란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성질을 말하는 거잖아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이 죽음의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 행위가 죽을 수 있는 리스크가 되기 때문이죠? 죽을 수 있는 리스크란 죽음의 편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스카이다이빙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은 죽음의 편재성을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동어반복이 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하지만 제 부족한 머리로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부디 가능한 한 쉬운 설명(작성자님은 쉽게 설명하셨겠지만 뭔가 비유라던지 써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없을까요? | 20.02.22 01:3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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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편재성이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없다, 요컨대 잔잔한 경험이라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집에 비행기가 들이박아 사망하는 사건은 죽음의 편재성이라는 성질에도 들어맞고, 강렬한 경험이라는 점이기도 하지 않나요? | 20.02.22 01:5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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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님. 정성어린 답변 감사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제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드네요. 찬찬히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 질문 좀 더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 20.02.22 02: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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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근데 머리를 굴리니 좀 졸려요. 일단 한숨 자고 다른 날에 해도 괜찮겠지요? | 20.02.22 02: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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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음의 스릴을 경험하는 건 죽음의 편재성 덕분이니, 그 시점 동안에는 편재성이 유익하게 작용한다는 결론이 나와서요. 셸리 케이건은 죽음의 편재성이 죽음을 배경 음악으로 만드므로 스릴 추구자에게도 안 좋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이해 못 하겠고요. | 20.02.22 01:3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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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편재성이 왜 죽음을 배경음악으로 만드는가. 통을 칼로 찌르는 장난감이 있고, 칼을 몇개든 찌를 수 있고, 중간에 얼마든지 뺄 수도 있음. 즉, 운이 좋다면 얼마든지 영원히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는거야. 처음 몇 번은 스릴 넘치겠지만, 하다보면 무뎌져서 스릴을 못 느끼게 되고, 때로는 잘못 찌르면 인형이 튀어나온다는 것도 망각할 수도 있지. 그러다가 운 없게 진짜로 잘못 찔러서 인형이 나와버린다면? 그게 실제 사람이라면? 위험도 반복되다보면 그 위험성을 망각하게 된다. 이게 그런 거 같음. | 20.02.22 01: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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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노이즈가 있으니 0은 아니라는 말을 'NULL' 이란 닉넴의 사람이 설명하니 되게 NPC같다 어딘가ㅋㅋㅋ | 20.02.22 01: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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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 NPC나 진배없지. | 20.02.22 01: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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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편재성(Ubiquity, 遍在性)과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의 차이는 시공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쉬울 듯. 한자 뜻 그대로 공간에 고루 존재하는게 편재성, 완벽하게 우연히 일어나는 걸 예측 불가능성. 도그 파크에서는 어디서나 개똥을 밟을 수 있는 것이 편재성, 그 똥을 오늘 밟을지, 내일 밟을지 모르는게 예측 불가능성. | 20.02.22 01:3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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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스릴을 느끼는 이들에게도 죽음의 편재성이 특별히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건 기준이 다를 뿐 그들도 죽음 자체를 거부하는건 매한가지라는 말인거 같음 | 20.02.22 01:2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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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석대로라면 셸리 케이건은 익스트림 스포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 20.02.22 02:02 | | |
(IP보기클릭)203.100.***.***
그런건 아닐거임 공포와 스릴러 영화를 보고 죽음이 있는 게임을 하는것도 죽음을 자각함이 전제되어야 하는거잖음? 그걸 좀 더 극단적으로 즐기고 있을 뿐 죽음의 편재성을 온전히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는 이야기겠지 | 20.02.22 02:1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