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147367
1618년 음력 12월 초, 후금 정벌군을 준비시키고 있던 요동 경략, 후금정벌 연합군 최고 사령관 양호는 누르하치에게 연말 강화 협상을 제의했다.
이미 대군을 집결시켰으나, 양호로서도 이런 대규모 전역은 부담이 큰 것이었다. 그렇기에,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이었다.
만약 군대를 출병시키지 않고도 후금이 명에게 다시 고개를 조아린다면 손자병법에 나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가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양호의 생각에는 요동 총병 이여백의 간언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 그는 누르하치와 안면이 있던 데다가, 화친파에 가까웠기에 양호에게 강화를 종용해본 것이었다.
어쨌든, 양호의 뜻에 따라 사신 이계학은 후금으로 향했지만 바로 돌아오진 못했다. 누르하치가 그 시점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 전쟁이란, 10만 대군이 집결한 상태의 요동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르하치가 아무리 호전적이라곤 하나 적의 대군이 집결하여 한참 방어력이 급격히 강해져 있을 상태의 요동을 공격할 위인은 아니었다.
그가 타겟으로 잡은 것은 최후의 반(反)후금 여진 독립국 예허였다.
예허는 명, 조선과 함께 대후금 포위망의 일획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지난 음력 11월 후금의 국경을 타격함으로서 자신들의 자신감을 보였다.
누르하치는 그들을 공격함으로서, 지난 11월에 자신이 당한 굴욕을 되갚고 자신에 대한 포위망의 일획을 무너뜨려 보려 했다.
1619년 음력 1월, 카인타이 성(후대 편찬된 만주실록에는 커이터 성으로 개칭) 니야한을 함락한 후금군은 이후 20여 부락을 추가로 함락하고 약탈한다.
예허는 급히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했고, 이에 개원 총병 마림이 직접 출진하여 예허로 출격한다.
후금군은 예허를 공격하는 와중에 명군이 움직여, 명군과 예허가 함께 본군을 압박하자 더 이상 교전치 않고 퇴각한다.
누르하치는 자신을 둘러싼 포위망의 한쪽을 공격하면 다른 곳의 군대가 지원을 오는 형세에 초조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명나라에 다시 굴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일으켜 세운 군대로, 자신을 둘러싼 명, 예허, 조선 연합군을 상대로 전력으로 부딪혀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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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여진. 이 시기에는 보통 호륜 4국으로 불렸음. | 19.12.11 19: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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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귀찮아서 그냥 해서라고 침. 참고로 1619년 이 당시에는 전부 누르하치한테 망하고 예허만 남음. | 19.12.11 19:46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