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그윽한 원두 볶는 향기가 풍기는 카페 안. 밝은 갈색머리를 길게 내린 인형이 물음을 던졌다. 인형의 맞은편에 앉은 젊은 남자는 입을 다문 채로 아직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갈색머리의 인형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거 같은 모습이었다. 젊은 남자가 새하얀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첫맛은 쓰지만, 끝맛은 무척이나 스모키한 커피 향을 느끼며 남자는 겨우 입을 떼었다."해야 할 일을 해야지."굳은 결심이 담긴 말을 내뱉으면서 남자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G&K 마크가 조명빛을 받아 살짝 빛나고 있었다. 그리폰 & 크루거의 지휘관. 한때는 고작 한 지부를 담당했을 뿐인 그였으나, 지금은 그리폰 & 크루거 전체를 통괄하고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한 직책은 그에게 큰 책임으로 다가왔으나 그만큼의 큰 권한도 생겼음을 의미했다. 하지 못 했던 일, 그리고 해야만 했던 일... 남자는 생각에 잠긴 채로 천장에 매달린 조명을 바라보았다. 조명은 은은하게 푸른빛처럼 보이기도 했고, 보랏빛으로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알고 계시죠? 지금 우리 그리폰의 전력은 굉장히 어려운 상태에요. 군부의 배신으로 대부분의 인형들이 파손되었고 이전의 전력을 회복하기에는 아직 요원해요."갈색머리의 인형이 하는 말은 정확한 분석이었다. 그리폰은 인형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형업체인 I.O.P로부터 조달을 받아왔다. 물론 그만큼의 자원을 I.O.P에 보내야만 충분한 수의 인형을 확보할 수 있었다. I.O.P의 사장인 비트킨 하벨이 전폭적인 도움을 약속했고 이미 큰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와 연대를 구축하고 협력을 받지 못 하면 앞으로의 미래도 없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하벨 씨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어. 우리는 곧 베오그라드로 갈 거야. 그에 필요한 전력은 I.O.P에서 제공하기로 했고. 그리고......."지휘관은 말 끝을 흐리면서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 안 쪽에 음각되어 있는 두 인형의 이름을 곱씹으면서 지휘관은 이를 악 물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와 서약반지만 남기고 사라진 ST AR-15. 군부의 배신으로 인해 전투지역에서 실종된 M4A1. 지휘관과 서약한 두 인형은 마인드맵을 복구할 수도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지휘관은 그 두 인형이 죽었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큰 폭발이었지만 그 잔해 속에서 ST AR-15의 본체는 찾지 못 했다. M4A1 또한 실종되었을 뿐 그 소체가 완전히 파손된 흔적 역시 찾지 못 했다.두 인형은 죽지 않았다.오직 그 믿음 하나로 지휘관은 지금까지 살아 있었고, 조금도 도망가지 않았던 것이다."두 사람을 되찾을 거야."지휘관이 결의에 찬 목소리를 내뱉자 갈색 머리의 인형, 스프링필드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술인형을 사람으로 불렀다는 것을 지휘관은 눈치채지 못 한 것 같지만, 스프링필드는 전술인형을 사람처럼 대해주는 지휘관이기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모든 그리폰 인형들은 지휘관 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를 거에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모두가, 지휘관 님의 힘이 되어드릴 거에요."말을 마치면서 스프링필드는 꽉 움켜쥔 지휘관의 손을 양 손으로 감싸주었다. 사람과는 아주 약간 다른 인공피부의 촉감이었지만, 사람만큼이나 따뜻한 손이었다. 자신의 손을 감싸쥔 스프링필드의 하얗고 긴 손을 바라보던 지휘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10분 뒤 작전 개요를 설명할거야. 모든 그리폰 인형들을 작전실에 연결해줘."의자에 걸쳐두었던 붉은색 그리폰 제복 코트를 걸쳐입은 지휘관이 카페를 나섰다. 스프링필드는 그 사이 지나 프로토콜을 통해 모든 그리폰 인형들에게 알림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폰 인형들의 응답이 돌아왔다. 그리폰 인형들의 응답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응답의 마지막에는 모두 같은 말들을 보내왔다.'적들의 피로, 복수를.'몇 달 전'저희를 구해주세요.'M4A1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지휘관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 지휘관이 있는 지부의 인형들은 좋은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했다. 애초에 지휘관이 배치받은 S09 지역은 철혈과의 전선과는 거리가 있는 후방지역이었다. 당연히 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엘리트 인형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나마 I.O.P로부터 받은 전술인형, G36과 스프링필드가 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G36의 전투능력은 그리폰에서도 이름 있는 엘리트 인형에 준하는 수준이었고 스프링필드는 아직 초짜인 지휘관이 신경쓰지 못 하는 부분까지 체크하면서 다른 전술인형들을 챙겨주었다. 물론 부대의 보급관인 카리나의 도움 역시 컸다. 그녀라고 대단한 경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의지할 데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상황이 그리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M4A1과 16LAB, 그리폰의 상층부가 요구한 AR소대 수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M4A1이 70일 동안 추격을 받으면서도 큰 손상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다른 인형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M4A1을 찾은 위치는 S09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다른 소대원들을 찾으려면 좀 더 철혈과의 전선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향해야 했다. 철혈과의 전선에서 가까울수록 철혈의 보스급 인형들도 출현할테니 현재의 전력으로는 결코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었다.'익스큐서너랬던가.......'철혈의 보스급 인형이었던 익스큐서너와의 전투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M4A1이 보스 개체를 상대하는 사이 지휘부를 급습해 승리하긴 했지만 S09 지역의 일반적인 철혈 인형들에 비하면 훨씬 수도 많고 어려운 상대였다. 만약 M4A1이 보스 개체를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군 인형들의 손실도 상당했을 터였다.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최대한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고 앞으로의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골치가 아팠다. 체스를 두는데 내 말을 거의 잃지 않고 이겨야 하는 기분이었다."전장의 병사에게는 대담함이 필요하지만, 지휘관에게는 대담함에 신중함이 따라야 한다......""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인가요?"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은 지휘관이 고개를 돌리자 정돈된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내린 인형이 다가왔다. 옆머리에 살짝 브릿지 염색을 한 인형은 지난번에 봤을 때와 달리 무척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게 그리폰 최고의 엘리트 인형인가. 속으로 평가를 내린 지휘관은 의자를 돌려 인형과 마주했다. 지난번에는 70일 동안이나 추격을 당한 끝에 상당히 피폐해진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잘 단정되어서 깔끔한 외모였다. 때 빼고 광을 내니까 이쪽도 꽤 미인이구나.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평가를 마친 지휘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전술인형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충분히 정리와 변환만 되어 있다면 데이터 입력은 어렵지 않으니까요."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M4A1을 보면서 지휘관은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도 적당히 정리와 변환만 되어 있으면 데이터를 뇌 속에 때려박을 수 있으면 편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휘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나참. 19세기에나 나온 이야기를 전술인형에게 입력할 생각을 한 건 누구야?""그렇게 말씀하시는 지휘관 님이야말로 19세기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잘 아는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그리폰에 입사하기 전에 군사학 같은 걸 조금 배웠었지. 면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면접에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헛웃음을 지으면서 지휘관은 콘솔에 손을 갖다 대었다. 시선은 M4A1에게 향한 채로 콘솔을 조금 조작하자 화면에 작전지도가 나타났다."그리폰 & 크루거 최고의 전술인형께서는 앞으로의 AR소대 수색 작전을 어떻게 생각하지?"M4A1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휘관을 바라보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작전지도를 살펴보던 M4A1은 손가락으로 한 통신초소를 가리켰다."이쪽 지역의 통신초소를 확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그쪽 통신초소는 우리 지역에서 먼 편인데?"M4A1의 판단이 흥미롭다는 듯 지휘관은 그녀의 선택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M4A1이 가리킨 곳보다 더 가까운 쪽에 다른 통신초소가 있는 것을 확인한 지휘관은 M4A1이 내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등고선을 보면 그쪽 통신초소는 비교적 높은 지역에 있어 우리의 헬기가 포착될 우려가 있어요. 다른 철혈 보스급 개체가 있다면 우리의 기습을 눈치채고 대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철혈은 남은 AR소대를 수색하고 있으니 그 틈을 노려 기습하고, 속전속결로 작전을 수행할 필요가 있어요."전술인형이 이정도의 판단이 가능했었나? 놀란 표정을 지은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M4A1의 판단은 더할나위 없이 정확했고 상층부로부터 내려온 작전 지시와도 상충했다. 상층부에서는 지휘관이 해당 지역의 통신초소를 확보하고 AR소대의 소재를 확보한 후 그녀들의 철수를 지원할 것을 지시했다. M4A1의 작전안은 상층부의 지시를 수행하기에도 충분한 내용이었고 지휘관 역시 이견이 없었다."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남은 두 인형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M4A1이 즉시 대답했다."ST AR-15, M4 SOP MOD II입니다."몇 시간 뒤지휘관은 G36을 소대장으로 한 1소대를 통신초소를 향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스프링필드를 소대장으로 한 2소대로 하여금 인근 철혈의 소거를 명령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기습을 당한 철혈 인형들은 총탄에 피탄 당한 채 작동을 멈추고 있었다. 작전지도에 나타난 붉은 점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휘관은 M4A1의 위치를 확인했다. 1소대와 2소대가 시선을 끄는 사이 M4A1은 무사히 다른 AR소대원들과의 랑데부 포인트로 향하고 있었다. 이따금 그녀가 적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지만, 곧 무력화되었다는 보고가 전달될 따름이었다."주인님. 철혈의 통신초소를 점령했습니다. 인근의 오물... 아니, 철혈인형은 모두 격파했고, 스텐이 이 초소의 데이터베이스를 탐색 중입니다. 아군 손실은 제로입니다.""수고했어. G36."G36의 보고를 받으며 지휘관은 작전이 쉽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쪽 지역을 통괄하는 철혈 보스는 없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른 AR소대를 수색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지나치게 G36이 유능한 것일지도 몰랐다. 현재 지휘관의 휘하에 있는 인형 중에서 G36은 궤가 다를 정도의 전투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정도라면 그리폰의 엘리트 인형들과도 비견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인형급이 맞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휘관은 G36으로부터의 다음 보고를 기다렸다."주인님. 이쪽 지역의 철혈 보스는 다른 쪽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철수 준비를 할까요?""좋아. 곧 M4A1도 랑데부 포인트에 도착하니, 통신초소에서 철수하도록 해.""알겠습니다. 지휘부에서 뵙겠습니다."절도 있는 인사를 들으면서 지휘관은 2소대의 스프링필드를 호출했다. 그녀는 반응하는 사이 통신 너머로 총성이 여러 발 울렸고, 다시 스프링필드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르셨나요, 지휘관님?""통신초소는 확보되었고 곧 M4A1도 랑데부 포인트에 도착할거야. 슬슬 철수를 준비하도록 해. 아군 손실은?""MK23의 더미 하나가 무력화되긴 했지만 본체는 멀쩡해요. 철수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알겠어. 좀 이따 보자구."스프링필드와의 통신을 종료한 지휘관은 M4A1이 랑데부 포인트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랑데부 포인트라고 표시해놓은 지점에 M4A1의 위치를 나타내는 푸른 점이 빛나고 있었다. 곧이어 M4A1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지휘관은 무전 채널을 열었다."상황 종료인가?"은근한 기대를 담아 지휘관이 물음을 던졌다. 이번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며칠동안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터였다. 현재 작전은 상당히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곧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리라 여겼다."지휘관 님, 큰일이에요."이게 무슨 말이지? 지휘관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작전지도를 바라보았다. 작전지도 상에는 아무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뭐야, 뭐가 문제야?""랑데부 포인트에 ST AR-15가 나타나지 않았어요.""그게 또 무슨 말......""야-호! 안녕! 지휘관! 난 M4 SOP MOD II야!"갑자기 무전에 끼어든 목소리에 지휘관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랑데부 포인트에 ST AR-15는 나타나지 않았고, M4 SOP MOD II만이 나타났다. 목소리로 짐작해보면 M4 SOP MOD II에게 별다른 부상 같은 문제가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ST AR-15는 왜 나타나지 않았는가? 불안한 생각이 뇌리에 스쳤지만 지휘관은 생각을 바꾸려 했다. 그렇게나 끈질긴 추격을 받았지만 큰 문제나 부상 없이 여기까지 철수해왔던 엘리트 소대였다.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했을 리는 없었다.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지휘관은 입을 열었다."반갑다. M4 SOP MOD II. 그래서, ST AR-15는 왜 나타나지 않았지?""맞아! 지휘관! 나랑 M4A1이 통신하던 것이 철혈 보스에게 도청당했어! 그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서 ST AR-15가 시간을 벌고 있어!"시간을 번다고? 단신으로? 지휘관은 그제서야 작전이 너무 쉽게 돌아간 이유를 깨달았다. 철혈 보스는 현재 ST AR-15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그만큼 이쪽 지역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었다. 애초에 AR소대를 추적하고 있었던 철혈들이 이렇게까지 대응이 느릴리가 없었을 터였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을 억누르면서 지휘관은 ST AR-15가 오래는 버틸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철혈 보스와 그 주력들이 모두 ST AR-15 하나와 전투를 벌인다면 아무리 엘리트 인형이라도 중과부적이었다."그럼 ST AR-15의 위치는......""그리고 또 있어!"또 뭔데? 라는 말을 내뱉을 뻔한 것을 참고 지휘관은 소프 모드의 말을 기다렸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철혈 병력들이 지금 지휘부로 향하고 있어. ST AR-15는 그걸 저지하려고 했던건데, 이미 병력이 출발한 뒤였어. 우리도 지금 그쪽으로 갈거야!"철혈 병력들이 지휘부로 온다. 지휘부의 주력 병력들은 이미 작전 지역에 투입되어 있었고, 이쪽 지휘부에는 군수지원과 후방 인력을 담당하는 인형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철혈 병력들이 먼저 출발했으니 1소대와 2소대, AR소대가 철수하는 것보다는 지휘부에 빨리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지휘관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했다. 아직 철혈 부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도착하기 전까지만 농성할 준비를 마쳐둔다면 주력 소대들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주력소대를 불러오는 사이 ST AR-15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었다. 딜레마에 빠진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지휘관은 초조함을 느꼈다. 보고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그만큼 철혈 부대는 지휘부를 향해 더 전진했을 것이다. 결단은 신속하게 내리고, 선택은 최선으로 향해야 한다. 결단을 마친 지휘관은 1소대, 2소대로 연결되는 채널까지 열었다. 그리고 곧 지시를 내렸다."1소대, 2소대, AR소대 모두 즉각 지휘부로 돌아와. 적 철혈부대를 상대한다."지휘관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기를 바랬다. ST AR-15가 무력화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다. 무력화되는 쪽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지만 그녀가 철혈 보스를 상대로 더 버틸 수도 있었다. 현재 지휘부로 향하는 철혈 부대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력부대를 불러오지 못하면 지휘부가 함락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ST AR-15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지휘부는 버틸 수 없다. 계산을 마친 지휘관에게 서로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알겠습니다. 주인님. 최대한의 속도로 지휘부로 돌아가겠습니다.""알았어요. 지휘관님. 조금만 버텨주세요.""명령 받았습니다. 지휘관님. 저도 지휘관님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요.""금방 갈게. 지휘관! 조금만 기다려!"통신을 종료한 직후 지휘관은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 탄약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휘부 전체에 경보를 울리고는 권총을 홀스터에 넣은 뒤 부랴부랴 방탄조끼를 입었다. 벽에 걸린 AR-15 소총에 30발들이 특수탄 탄창을 장착한 뒤 지휘관은 파우치에 탄이 가득 든 탄창을 쑤셔넣기 시작했다."지휘관 님, 갑자기 경보라니 무슨 일이에요?"말을 걸어온 쪽을 바라본 지휘관은 놀란 토끼눈을 한 금발의 여성을 보고는 짧게 대답했다."곧 공격이 들어올거야. 카리나, 통신을 맡아줘.""고, 공격이요? 지금 여기에요?"지휘관이 다시 대답하려던 찰나, 쾅 하고 포성이 울렸다. 건물 벽이 약간 흔들렸고 천장에서 먼지가 조금 떨어져내렸다."그래. 지금."지휘관은 송수신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귀에 꽂았다. 지나 프로토콜과 연결된 통신장비는 현재 지휘부에 있는 인형들 모두에게 곧바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갈릴, PPS-43, 64식, MP40, StG44는 나와 함께 지휘부 입구를 사수한다."다섯 인형들의 응답이 들린 뒤 지휘관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G43과 시모노프, FN-49는 지휘부 옥상에서 예거와 가드를 맡아줘. 나강 리볼버와 PPK는 RF들을 지원해줘. 관측 중 재규어가 나타난다면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도록.""알겠네! 지휘관! 내게 맡겨주시게나!"나강 리볼버의 응답을 들으며 지휘관은 남은 인형들이 얼마나 되는지, 전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LWMMG, DP28, FG42는 2층에서 제압사격을 해줘. 특히 LWMMG. 탄약은 얼마나 쓰든 상관없으니까 갈겨버려. P38, MP-446 너희 둘이 MG들을 지원해주고."어쨌든 지휘부 내부로 들어오지 못 하도록 화망만 구축한다면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RF 인형들이 재규어와 예거만 적절히 제거해준다면 더더욱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리라. 하지만 아직 배치는 완전하지 못 했다. 정문 쪽으로의 십자포화를 피해 철혈이 우회하는 것을 막을 병력이 필요했다. 가장 방비가 철저한 정문 쪽을 포기하고 우회해온다면 적극적인 대처가 어려웠다. 가장 위험한 임무. 어쩌면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토카레프, IDW, G3, SIG-510, MAC10. 후문으로 나간 뒤 우회해서 적의 옆구리를 공격해. 적이 우회할 수 없도록 하는게 너희의 임무야. 토카레프, 네가 소대장이야. 다른 인형들을 잘 이끌어줘.""토카레프 TT-33 자동권총, 명령을 받았어요. 지휘관. 즉시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모든 인형들에게 임무 하달을 마친 지휘관이 정문으로 내려왔을 때, 갈릴과 PPS-43, 64식, MP40, StG44가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새 정문에 탁자나 집기들을 가져와서 바리게이트를 만들어둔 것을 보면서 지휘관은 아슬아슬한게 아니라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다는 희망을 얻었다."지휘관 님께서 오시기 전에 최대한의 준비를 마쳐두었어요. 명령을."긴 금발 위로 검은색 모자를 쓴 StG44가 지휘관에게 다가왔다. 정문에 있는 인형들 모두 더미가 없어 화력은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인형들이었지만 겁을 먹은 낌새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이 지휘부를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결의마저도 느껴질 정도였다."좋아. 각자 위치로. 주력 소대가 돌아오기 전에 저 철혈 놈들을 박살을 내주자고."통신장비 너머로 각 인형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정문 밖에서는 시꺼먼 도색의 디너게이트와 프롤러가 숲 속을 빠져나와 지휘부를 향해 속력을 내고 있었다. 지휘관은 소총을 어깨에 견착한 채로 숨을 골랐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맞추고, 사선에 들어온 디너게이트를 조준한 지휘관은 숨을 약간 참으며 방아쇠를 당겼다.지휘관이 쏜 첫 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모든 인형들이 사격을 개시했다.전투 개시로부터 1시간이 지난 상황. 지휘관은 여기저기서 터지는 총성 속에서도 통신장비에 귀를 기울였다. 주력인 1, 2소대와 AR소대의 두 인형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다. 다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그녀들이 언제쯤 도착할지가 관건이었다.새로 탄창을 갈아넣으면서 지휘관은 정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리퍼의 머리통에 사격을 가했다. 머리통에 세 발의 구멍이 생긴 리퍼는 곧 침묵했고 다른 철혈 인형들처럼 고철덩이가 되어 쓰러졌다. 참았던 숨을 다시 내뱉으면서 지휘관은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검토해보았다. 포착된 철혈의 재규어들은 모두 파괴되었고 토카레프의 소대는 지휘부를 우회해 철혈과 교전 중이었다. 소대원 중 IDW와 G3가 교전 중 무력화되었지만 그녀들의 희생으로 숨어있던 재규어들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숲 속에 숨어서 저격 중인 예거들을 그리폰측 인형들이 모두 찾아 파괴할 수는 없었다. G43과 시모노프, FN-49도 분전해주었지만 예거의 저격을 받고 모두 무력화되었고 2층의 MG들 중에서는 LWMMG만이 중상을 입은 채로 화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화력의 부족을 통감하는 가운데, 지휘관은 통신장비 너머로 호출이 들어온 것을 깨닫고 서둘러 응답했다."토카레프?""지휘관. 철혈이 가드를 앞세워 지휘부 쪽으로 전진 중입니다. 저희 쪽 소대가 막아보려고 했지만 병력이 너무 많습니다. 철혈이 가드를 앞세우고, 베스피드와 예거가 뒤따르고 있습니다."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보고하는 토카레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휘관은 정문 밖을 내다보았다. 방패를 앞세운 철혈의 인형들이 수풀을 헤치면서 지휘부로 전진하는 중이었다."StG44, 유탄은?""이제 2발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지휘관님.""PPS-43?""수류탄은 아까 프롤러랑 디너게이트를 상대로 다 썼어. 동지."현재 가용할 수 있는 화력 중 가드를 뚫을만한 건 LWMMG의 지원과 StG44의 파열류탄 2발 뿐. 지휘관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철혈은 이 공격을 위해서 그동안 손해를 보면서까지 RF와 MG를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그만큼 철혈 역시 전력을 많이 소모해야만 했다. 지휘를 맡고 있어야 할 철혈 보스가 ST AR-15를 상대하고 있으니 더 많은 피해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이번 공격을 막아내면 승리, 이번 공격을 막지 못 하면 패배.모 아니면 도라는 깔끔한 계산이 떨어지자 지휘관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드를 뚫어낸다고 해도 그 뒤로 몰려올 베스피드와 예거를 제압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꽤 많이 소모를 했다고 해도, 저쪽은 이쪽보다 쪽수가 확실히 많았다. 그리폰 쪽에게 유리한 변수가 하나 있다면 주력 소대의 귀환 뿐이었다."카리나. 1소대와 2소대는 얼마나 왔지?""곧 도착합니다. 15분...... 아니, 10분이면 도착해요."10분은 너무 긴데. 카리나의 대답을 들은 지휘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가드들이 지휘부까지 달려오는데에는 2, 3분이면 충분했다. 철혈의 인형들이 지휘부 안까지 들어오면 주력 소대가 도착해 철혈을 제압하더라도 이쪽은 몰살당한 뒤일 것이다."다들 2층으로 물러나 계단에서 농성한다. StG44, 철혈이 건물에 들어오기 직전에 정문에 유탄을 쏴서 벽을 무너뜨려.""알겠습니다. 지휘관님."정문을 무너뜨리면 철혈의 AI는 건물을 우회해 후문으로 향할 것이다. 판단을 마친 지휘관은 StG44를 남겨두고 정문을 지키던 다른 전술인형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보인 것은 반파된 FG42와 DP28이 작동을 정지한 채로 한쪽 벽에 기댄 모습이었다."아, 지휘관님......."지휘관을 발견한 P38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 역시 부상을 입었는지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는 상태였다. 항상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풀이 죽은 얼굴에는 눈물 자국도 있었다."괜찮아. 수고했어, P38. 이쪽 소대의 상황을 설명해줘."지휘관은 애써 따뜻한 목소리를 내면서 P38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P38은 지휘관의 큰 손에 머리를 맡긴 채로 겨우 고개를 들었다."DP28과 FG42가 예거의 사격을 맞고 중상을 입었어요. 그래도 지휘관님이 화망을 구축하라고 명령하셨으니까, 저랑 MP-446이 둘을 지탱하면서 계속 사격을 실시했어요. 하지만 또 다시 피격당하고...... MP-446까지......"울먹이면서 보고를 이어가는 P38을 보면서 지휘관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MP-446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시선을 돌렸다. 정문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창문 아래, 한쪽 팔이 뜯어져나간 MP-446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지휘관과 눈이 마주치자 괜찮다는 듯이 남은 손을 살짝 흔들어보였다.MP-446의 옆에서는 LWMMG가 철혈의 사격을 피해 창문 아래로 엄폐를 하고 있었다. 은색과 붉은색 투톤의 긴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다녔던 그녀의 한쪽 어깨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LWMMG. 더 싸울 수 있겠어?"지휘관은 스스로 못 할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LWMMG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더 싸울 수 있지.""그래. 다들 LWMMG를 도와줘. 무기를 계단 쪽에 거치하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놈들을 하나씩 박살내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을거야."인형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지휘관은 숨을 골랐다. 그 사이 통신기 너머로 카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지휘관 님...... 철혈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어요."StG44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랫층에서 유탄에 정문 쪽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지휘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직 남아있는 예거가 있었나. 이쪽의 전력부족을 절감하면서 지휘관은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아직도 시간이 부족한 것일까.......'30발 들이 탄창을 새로 결합한 지휘관은 노리쇠를 당기면서 돌아섰다. 육중한 발걸음이 아랫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다른 전술인형들은 테이블 따위에 엄폐한 채로 총구를 계단으로 향했다. 몇 분만 버티면 된다. 마른 침을 삼키며 지휘관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철혈 인형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든 전술인형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방패로 좀 더 버텨보려던 철혈 인형은 쏟아지는 탄알을 견뎌내지 못하고 여기저기가 박살난 채로 고철덩이가 되었다. 재차 철혈 인형들이 계단을 올라왔지만 금방 벌집이 되어 쓰러질 뿐이었다.하지만 총알은 무한하지 않다. LWMMG가 새 탄띠를 장전하는 동안 철혈 인형들이 앞다투어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휘관과 다른 전술인형들이 철혈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화력을 집중해 겨우겨우 2층으로 진입하는 것만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LWMMG가 탄띠를 다 장전한 순간 한 발의 총알이 LWMMG의 미간을 뚫었다. LWMMG의 소체는 곧 정지했다. 그걸 신경쓸 새도 없이 지휘관은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는 가드를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그러나 커다란 방패로 총알을 모두 견뎌낸 가드는 뒤따르는 철혈 인형들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모든 화력을 견뎌낸 철혈 가드가 2층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지휘관의 등 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휘관! 오른쪽으로 피해!"이게 누구 목소리였는지를 생각하면서 지휘관은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지휘관이 있던 자리로 유탄 한 발이 지나갔다.쾅!철혈 가드의 방패에 정확하게 착탄한 유탄은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면서 계단을 오르던 철혈 인형들까지 싹 쓸어버렸다. 검게 피어나는 연기를 보던 지휘관은 그제서야 누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창틀을 밟은 채로 의기양양하게 선 소녀는 연분홍색의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새까맣게 도색된 옷을 입고 있었다."찾~았다!"창틀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달려온 소녀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계단 쪽으로 향했다. 유탄을 새로 장전하고, 유탄에 맞아 박살난 철혈 인형들을 비집고 올라오는 철혈 인형들을 향해 한 발 더 쏘아냈다. 철혈 인형들이 소리도 내지 않고 쓰러져 내리는 것과 달리 유탄과 총알을 무수히 쏴대는 소녀는 기쁨을 감추지 않은 채로 크게 웃어 보였다."크게! 더 크게 비명을 질러봐! 아하하하하하하!"거의 혼자서 철혈 인형들을 저지하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지휘관은 통신기에서 무어라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소녀가 자아내는 폭음과 총성 때문에 통신기 소리까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은 상황이었다."지휘관 님. 1소대, 2소대와 함께 현재 철혈을 소탕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M4A1의 목소리. 바깥과 1층 쪽에서도 폭음과 총성이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은 지휘관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저기서 예광탄 불빛이 허공을 갈랐고 총성과 폭음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채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 소리는 잦아들고 있었다."각 소대, 보고해."지휘관은 지휘실로 돌아왔다. 카리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지휘관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땀에 젖은 방탄헬멧을 벗으면서 통신기에 귀를 기울였다."토카레프입니다. IDW와 G3가 무력화되었습니다만, 수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MP-446, 대신 보고할게 지휘관. DP28, FG42, LWMMG 완파. 마인드맵 백업이 필요해. 난 수복이 필요하고.""나일세! 지휘관. 다들 무력화되긴 했지만 수복이 가능하다네!""PPS-43이야. 대신 보고할게, 괜찮지? 지휘관 동지. StG44가 완파되었고 갈릴과 MP40은 수복이 필요해.""G36입니다. 1소대 모두 수복은 불필요합니다. 적 위협은 모두 제거하였습니다.""스프링필드에요. 2소대 역시 수복은 불필요합니다. 적 위협 모두 제거되었습니다."각 소대의 보고를 들은 지휘관은 모두 복귀할 것을 지시했다. 인형들의 회신을 확인한 지휘관은 콘솔을 조작했다. 보고를 들으면서 카리나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했고 피해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보고를 하지 않은 인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콘솔을 조작해 통신 채널을 바꾼 지휘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M4A1. 보고가 아직인데.""저희 소대는 무사합니다. 지휘관 님. 다만...... 후퇴하신다고 하신 거 같은데 정말인가요?"조심스럽게 물어보는 M4A1의 심중이 무엇인지, 지휘관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AR소대는 지금까지 함께 작전을 수행해왔고 소대원 사이에서의 우정도 돈독한 편이었다. 아마 그녀가 염려하는 것은 ST AR-15를 여전히 작전지역에 둔 채로 후퇴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었다."우리측 손실이 커. 이곳 작전지역에서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하긴 어렵다고 판단했어. 이 상황에서 계속 작전을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나?"M4A1은 침묵했다. 지휘관은 대답을 기다리면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잠시 뒤 통신기 너머로 M4A1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휘관 님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저희도 후퇴하겠습니다. 이상.""에 뭐야, 후퇴하는 거야? M4!"M4A1의 말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곧 통신은 끊어졌다. 지휘관은 그제서야 마음 편하게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카리나. 5분만 쉴게. 후퇴 작업을 부탁해.""네. 지휘관 님."힘들다. 원래 이렇게까지 힘들다고 했었나?속으로 불평을 내뱉으면서 지휘관은 이것저것 의미없는 잡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점점 사고가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선잠에 빠져들었다."AR-15. 중요한 건 네가 미끼가 되어 M4를 끌어들일 것이라는 거지."어두운 방 안. 한 구석에서 쓰러진 소녀를 바라보던 철혈 인형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승리를 확신한 듯한 미소에, 연보랏빛 머리를 한 소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M4A1과 SOPMOD는 무사할까? 지휘부로 향한 철혈 병력은 모두 격퇴했을까? 의문을 해소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답답함이 ST AR-15의 가슴을 옥죄였다."AR-15. 너의 무모함에 대가를 치러야지."ST AR-15는 철혈 병력과 보스 인형을 저지하기 위해 단독으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가 이 상황이었다. ST AR-15는 결국 제압당했고 철혈의 보스 인형은 그 성과에 도취한 채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아까까지는 말이 많더라니. 너희 고물덩어리 그리폰 인형들도 교훈이란 걸 얻을 줄 아는 모양이구나."미소를 거두면서 하얀 단발머리를 한 철혈 보스 인형이 ST AR-15에게로 다가왔다. 새빨간 눈동자에 ST AR-15의 모습이 담겼다."진정한 사냥꾼은. 과묵한 법이라고."ST AR-15를 도발하면서 철혈 보스 인형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떠났다. '사냥꾼'의 논리 회로는 벌써부터 새로운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사냥꾼의 등 뒤로, 사냥감이 웃음을 짓는 것도 모르는 채로.요새 소전 뽕이 많이 빠져서가장 좋아하는 캐릭인 스타랑 엠포로 계속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글을 쓰려고 소전 스토리를 다시 보니까 조금씩 뽕이 다시 돌아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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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압주의) 엠포, 스타랑 서약한 지휘관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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