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주 전 일이다. 내가 상렬이에 이어 계란말이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다.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것은 스킨을 원한다는 말이기도 한다. 웨이보 한 곳에 앉아서 스킨 깎는 여사가 있었다. 스킨을 한 벌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겨우 한 벌만 깎으려는 것 같았다. 좀 많이 깎아서 내달라고 했더니 [겨우 한 명 가지고 많이 그려달라고 하겠소? 이것조차 싫다면 다른 데 가 시우.] 대단히 둘째 딸에게 애정이 없는 여사였다.
더 내달라는 말도 못하고 잘 깎아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녀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며칠이 지나도록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늦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그렸으니 그만 내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스킨 사느라 비어가는 잔고가 보이니 빨리 내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텅장이 되기 직전이라 빠듯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인제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돼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여사께선 외고집이구먼, 통장 잔고가 빠듯하다니까.] 여사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시우, 난 안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만 포기할 수도 없고, 어차피 어느세 이번 달 통잔잔액은 다 쓴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보시오.] [글쎄 재촉하면 점점 더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스킨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다른 창에다가 옮겨놓고 태연스럽게 첫째 딸 팬아트를 그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린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여사는 또 깎기 시작했다. 저러다가는 스킨이 다 수정되어서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스킨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됬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전부터 다 돼 있던 스킨이다.
이번 달 돈을 다 쓰고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사야만 했던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따위로 스킨을 깎아서는 둘째딸을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을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곤 시간만 되게 보내고 하나밖에 안 보낸다. 자식평등사랑도 모르도 첫째딸만 그리고 둘째딸은 내다버린 여사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여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웨이보 픽시브에 올라온 딸들의 팬아트를 바라보고 선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여사다워 보이고 온 몸에 북슬거리는 털과 자식들 팬아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에 내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여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지휘부로 와서 스킨을 내놨더니 계란말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기 언니뻘인 상렬이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렬이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앗다. 그러나 계란말이의 설명을 들어보면 라이브 2D가 들어있어서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고, 특수한 움직임 모션이 생겼다고 하며,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그 짧은 시간에도 이미 수 많은 전술인형들의 사랑과 질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다른 인형들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여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로부터 얼굴마담 이면서도 그 어떤 스킨도 하나 받지 못한 인형도 있었다. 주인공 소대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가지고 있는 스킨은 단 하나며, 스킨을 받아도 얼굴과 눈에 저주가 붙어 어색해지고 미모가 급감하는 '물거북 당한' 인형들도 몇몇 있다. 어떤 인형들은 스킨은 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한 체 하루하루 강화재료에 갈려나가는 것이 일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대체 어째서 스킨을 많이 깎지 아니한다고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인가.
이모코 여사는 사랑은 사랑이요 스킨은 스킨이지만, 스킨을 깎는 그 순간만큼은 오직 아름다운 스킨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예술적인 스킨을 만들어냈다. 이 계란말이 스킨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여사에게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둘째 딸을 낸 거람' 하던 말은 '그런 여사가 나 같은 청년에게 스킨도 제대로 못 받은 인형이 넘치는 지휘부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스킨을 내줄 수 있담' 하는 말로 바꿔야겠다.
나는 이모코 여사를 찾아가서 계란말이 스킨값에 서약채결 반지라도 들고가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빠르게 계란말이를 육성하고 같이 여사를 찾아가봤다. 그러나 여사가 있었던 자리엔 여사가 그린 계란말이 팬아트가 있지 아니했다. 나는 여사가 있던 자리를 멍 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그저 한 순간의 반짝 하고 나타난 희망이었나 싶어 안타까웠다. 여사가 바라봤던 웨이보 픽시브를 바라다보았다. 상렬이 만큼이나 많은 수 많은 팬아트가 보인다. 아, 그때 그 여사가 이런 팬아트들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스킨을 깎다가 우연히 팬아트들을 바라보던 여사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상렬이와 계란말이가 서로 저녁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전에 스킨을 사가지고 입혔던 그 생각이 난다. 여사가 그린 새 계란말이 팬아트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스킨을 내고도 계란말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도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모습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전에 스킨을 깎던 여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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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도 하나고 엄마가 널 안그려도 지휘관은 널 사랑해 ㅜㅠㅠㅠ 그러니까 스킨 좀 그많이 내주고 팬아트도 많이 그려주세요 이모코여사님 ㅜㅠㅠㅠㅠ
원작은 여러분들이 다 아는 방망이 깎던 노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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