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할 일이 생겨 평소 자주 먹지 못한 소고기를 먹고 왔습니다.
이속우화라는 한우요리 맡김차림 집입니다.
이솝우화를 뒤튼 가게 이름은 한우 요리 사업가 이준형 대표의 성 '이'와 이을 '속' 소 '우' 불 '화'의 뜻을 입혀
소고기 요리를 이어가겠다는 뭐 그런 의미로 '이속우화'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있는 한우 요리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가 이 가게의 모토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21년에 오픈했다는 이 곳은 sns를 타고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있는 음식점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네요.
저는 그중에서도 압구정동에 있는 천공 지점을 다녀왔습니다. (유명한 천공 그분과는 연관이 없는걸로...)
가격이 합리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콜키지 프리라는 점입니다.
대부분 맡김차림 집에서 가장 큰 지출은 술인데,
이곳은 팀당 1병의 콜키지가 허용됩니다.
덕분에 괜찮은 와인을 가져와서 먹었습니다.
(제가 가져온 건 아니고... 선물로 가져와주신... 무한감사...)
피부에 양보하지 않고 마셔봅니다.
처음엔 무채색의 와인 맛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열리면서 나름의 존재감을 뽐내더군요.
와알못이지만 어떤 음식에도 어울릴 수 있는 밸런스가 괜찮은 와인이었습니다.
정갈한 기본 세팅.
주변을 돌아봐도 카메라를 들고온 것은 저뿐이라 민망...
새삼 유튜버들의 배짱에 대단함을 느껴봅니다.
와인으로 쑥스러움을 마취 시켜봅니다.
술은 빈속에 마셔야죠.
와인을 홀짝이고 있자니 서버분이 이곳의 시그니처를 들고 나오십니다.
언젠가 SNS 등에서 본 적이 있는 비주얼입니다.
루이비통 하드케이스에 나오는 마블링 좋은 한우.
'명품 가방보다 명품 한우'라는 컨셉일까요.
일단 비주얼적으로 상당히 압도적인 듯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훌륭하고 SNS에 올려도 있어보이고 말이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거니까요.
(아직 취기가 안 올라 눈치보며 찍었던지라 핀이 명품백에 가 있네요...)
명품백은 들어가고 서버분이 한우육회 타르타르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예쁘게 세팅해놓은 육회와 쪽파, 달걀 노른자를 잘 섞어서 4 등분 해서 나눠 주십니다.
바삭한 식빵위에 촉촉한 육회가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4가지 소스와(와사비, 히말라야솔트, 지미추리, 홀그레인머스타드) 골고루 조합해서 먹어도 괜찮았습니다.
예상 가능한 맛이죠.
와인보다는 독주가 생각나는 맛이었습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4가지 소스, 클렌져 역할을 해주는 무와 열무 절임
육회를 다 먹기도 전에 서버분이 마블링 좋은 알등심(?)과 새우살을 가져오셨습니다.
루이비통 백에 있던 고기를 정형해서 가져오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곱네요. 어서... 구워 주십시오.. 어서...
고기를 굽는 동안 안주하라고 전채요리를 하나 더 주십니다.
설명이 잘 안 들렸는데 대충 그라노파다노(?)를 듬뿍 뿌린 당근 구이였습니다.
당근을 푹 익히고 구워 고구마 같은 식감이 나는데 산미가 나는 뭔가를 뿌려서 새콤달콤합니다.
치즈도 상당히 잔득 뿌려주셔서 맛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위 용량이 크지 않은 편이라 고기에 치중하느라 요리 서빙이 끝날 때 쯤 겨우 다 먹었던...
채소를 먹고 있자니 눈길이 고기 굽는 쪽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
숯도 좋은 것을 쓰는지 고기굽기에 최적화 된듯 했습니다.
고기 굽기가 끝나고 레스팅...
보는 이도 계속해서 레스팅...
핀이 고기가 아니라 채반에 가 있는 것을 보니 어지러웠나보네요...
레스팅이 끝나고 알등심을 썰어 나눠 주셨습니다.
미디엄레어로 구워달라고 했는데 딱 좋은 굽기
와사비를 곁들여 먹는 것을 추천해 주셔서 시키는대로 수행.
마블링이 좋아서인지 기름이 입안에서 쫙 퍼지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와사비가 나대지 말라고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요.
제가 먹은 부위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근막이 살짝 있어서 살살 녹는 그럼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적당히 씹는 맛이 있어 나쁘지 않았습니다.
새우살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고 서버분과 거리가 살짝 있어서 하시는 말씀이 정확히 들리진 않았어요.
마블링 좋고 적당한 식감도 있고 좋았습니다.
소금과 와사비를 곁들여 먹는게 확실히 좋았습니다.
채끝 부위였던 것 같습니다.
다소 기름진 고기와 와사비 소금으로 단조로워질 때 쯤
기본 소스로 제공되었던 지미추리를 소환합니다.
지미추리 소스가 남미 요리 풍미가 물씬 나서인지고기에 곁들이니
한국에서 남미로 넘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단조로웠던 입에서 탱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기분.
무려 만오천원을 추가하면 제공되는 트러플입니다.
구운 고기에 생 트러플과 트러플 오일을 뿌려주십니다.
경험삼아 시켰는데 굳이 시키지 않아도 무관할 것 같아요.
(저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트러플은 치트키처럼 쓰입니다.
저 같은 서민도 쉽게 접하는 것 보면 많이 대중화가 된 것 같아요.
(짜파게티, 새우깡에도 트러플을 뿌려먹으니까요)
불과 10년 전만해도 송로버섯은 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그런 재료였던거 같은데 말이죠.
지나치게 유행을 쫓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맛있는 유행은 환영입니다...
서버 분이 트러플을 갈아주십니다.
트러플은 1인분만 시켰는데 이렇게 갈아드리면 사장님께 혼날지도 모르겠다며
하지만 맛있게 드시라고 트러플을 계속 갈아주십니다.
다른 테이블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많이 갈아주신...
서버느님...
고기 육향과 트러플 향의 조화로 와인은 소멸됩니다.
사실 생트러플 향이 강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트러플 오일에서 엄청난 향이 나더라고요.
어쩌면 인공향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생트러플 + 트러플 오일 + 한우 조합은 다시 한 번 장르를 바꾸는 느낌이었어요.
아까 갔던 남미에서 유럽으로 넘어 갔습니다.
치트키라 불릴만해요.
마지막 구이입니다. 갈빗대에 붙어있는 늑간살 부위.
이쯤되니 구이류에 대한 감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입이 짧은 편은 아닌데 워낙 마블링 좋은 고기들이라 그런지
무, 열무 절임에 의존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느끼함이 와인으로도 씻기지가 않아요.
첫점은 소금이나 와사비와 매칭하라고 하셔서 분부대로 실행.
지금까지 먹던 부위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갈빗대에 붙어있는 부위 근막이 섞여있어 쫄깃쫄깃한 식감이 좋습니다
.
나머지 두점은 양념으로 구워주셨습니다.
확실히 양념이 들어오니까 장르가 바뀌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입니다.
얼마전 명절이었던지라 양념 갈비 지겹게 먹었지만
당일 연이은 소금구이에 지쳐있던 저에겐 여간 반가운 맛이었습니다.
와인보단 소주 한잔이 절실했어요.
다음은 미트파이입니다.
서버분이 아침부터 밀가루반죽 직접 하셔서 정성껏 구웠다고 하십니다.
보기와 달리 파이 안에 소가 매콤한 소스로 조리되었습니다.
바삭한 파이 안에 매콤달콤고소한 치즈고기 속이 채워져있습니다.
왠지 전주에 있는 전주비빔밥 고로케가 연상됐습니다.
영국 리버풀 한인 식당에서 코리안 스타일 파이를 판다면 이런 맛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서버분이 정성껏 잘라 두조각을 겹치시더니
"고객님을 향한..."
멘트를 날려주십니다.
핱흐...
고... 고맙습니다.
사실 이날 먹은 것 중에서 아이러니하게 가장 인상 깊은 메뉴였습니다.
바삭하게 구워진 파이에 질 좋은 소고기와 치즈가 듬뿍 들어갔는데 인상 안 깊을 수 없죠.
매콤한 소스 또한 축적되어 온 느끼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아요...
솥밥과 된장찌개가 남았습니다.
오랫동안 대기한 저 귀여운 쇠쇠손잡이를 보기가 부담스러웠어요. (미안)
사실 이때 이미 제 배는 거의 꽉 찼거든요.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식사가 끝난 것 같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
솥밥은 약간 간이 심심했어요.
찌개와 함께 곁들이는 구성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특별한 맛은 아니었고 고기와 파 간장 등이 어우러져서 육향과 간장향이 강한 솥밥 느낌.
어릴때 엄마가 불고기 국물에 밥 비벼서 주던 맛의 어른 버전이랄까요.
일부러 밥밑 부분을 눌게 하여 누룽지가 섞이게 만드셨다고 했는데
전 치아에 끼고 씹을 때 신경쓰이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 누룽지가 없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아요.
해물된장찌개는 시원함에 포인트를 둔 맛이었습니다.
시원하고 담백하게 끌여냈습니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 특유의 감칠맛이 자제된 맛이었고,
소금의 짠맛이 살짝 도드라지는 맛이었습니다.
서버분이 솥밥과 된장찌개를 1/4로 나눠주십니다.
저 놋그릇이 온도 전달율이 워낙 좋아서 상당히 뜨겁더라고요.
공기밥 주시는 이모님들도 그렇고 서버분들의 손은 초능력이 필요한가 봅니다.
디저트로 냉동 망고를 내주셨습니다.
냉동이라 단맛이 강하진 않았어요.
이미 배부른 상태였는데 시원 달달해서
입이 깔끔해지는 맛이라 계속 집어먹었습니다. (이가 시렸지만...)
밥 먹을 때는 별로 안 찍은 것 같은데 정리하고 보니 상당히 많이 찍었네요.
제가 무슨 음식 칼럼니스트도 아닌데 살짝 설치는 것처럼 보였나 싶기도 하고요ㅎㅎ
정리해보자면...
맡김차림 중에 가성비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소고기 맡김차림을 많이 다녀보진 않았지만...;)
가격이 6만9천5백원입니다.(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요즘 오마카세라고 하면 10만원은 당연하게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생각해보면 괜찮은 가격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친구 덕에 20만원 코스 모퉁이우(ripe)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에 비해 구성이나 고기질이 떨어지는 맛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콜키지 프리까지 매리트가 있고요.
서버분들도 친절했고 코스의 구성도 적절했던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서빙 속도가 좀 빨라요. 저 같은 경우는 술이랑 함께 밥을 먹을 땐 좀 느리게 먹는 편인데
4인 한 세트로 음식이 나오다보니 옆에 팀이 빨리먹으면 저희에게도 빨리 서빙이 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고기가 계속 쌓이게 되고 결국 식은 고기를 먹게 되더라고요.
예약이 어렵다고 하던데 기회만 되면 친한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오고싶은 생각이 드네요.
잘 먹었습니다.
118.235.***.***
211.217.***.***
그렇군요! | 23.02.20 17:4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