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트레이너는 생각했다.
아무리 심사숙고해도 ↗됐다.
그 이유가 뭐냐고?
“파파, 오늘 트레이닝에 대해-.”
“….”
겨울 아침, 평소보다 약간 늦게 찾아온 어드마이어 그루브가 생각 없이 문을 열며 그를 부른 순간, 다른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니까.
“…지금 쟤가 너보고 파파라 한 거지? 대체 이게 뭔 상황이냐?”
아직은 담당 우마무스메가 없는 대신, 팀에 들어온 서포트 전형 우마무스메들을 지도하고 있는 치프 트레이너가 자기 귀를 의심하듯 물었고, ‘장난으로 담당을 울려버린 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은 스틸 인 러브의 트레이너는 이죽거리며 아루브의 트레이너를 쳐다봤다.
“이야, 플레이 참 매니악한 걸로 하네.”
“…ㅆㅂ.”
적어도 저 새끼한테 저런 말을 들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한국말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No ssibal keep going.”
“니미.”
이제 한국어 욕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인가, 놀려먹으려고 하는 말에 그의 입에서 다시금 한줄기 욕이 스쳐 지나갔다. 더 건들면 아주 걸쭉한 한국 욕이 총난타 할 것임을 직감한 스틸의 트레이너는 빠르게 꼬리를 뺐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고. 아루브가 왜 너한테 파파라고 하는 거냐.”
“그게 사정이 좀 있긴 한데, 잠시 할 일 좀 끝내고 말하죠.”
무언가 사고를 쳤음을 깨닫고 입을 막고 있는 담당을 향해 그는 일단 말했다.
“오늘 트레이닝은 자율이다, 수업 끝난 후에 부족하다 싶은 거 있으면 LANE으로 말하고 들어가렴.”
“네, 파… 아니, 트레이너님.”
습관처럼 나오려는 말을 다시 간신히 막은 기다란 귀의 우마무스메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걸 본 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 이제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아루브가 데뷔 레이스 뛴 직후? 아님 그 이전? 사실 어디를 말해도 상관없긴 합니다만.”
“계기가 있을 거 아냐. 진짜로 양녀로 들인 건 아닐 거고.”
“미쳤습니까, 선배님. 총각이 처녀를 양녀로 들이게.”
참 나잇값 못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지만 아무튼 선배니까 존칭을 쓰며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뭐든지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가 저리 된 거라고?”
“무를 수도 없고 그냥 들어주고는 있는데, 후.”
치프 트레이너의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에 그는 니코틴이 지독히 당겼다. 파파라고 불리는 것까지는 넘어갔는데, 이게 다 까발려질 줄이야.
이걸로 한 소리 듣다못해 시말서를 써야 할 미래가 아른거리는 가운데, 그의 귀에 들린 건 상당히 의외의 말이었다.
“축하한다, 너도 마침내 이 팀에 걸맞은 트레이너가 되었구나.”
“뭐라굽쇼.”
왜 치프랑 망할 선배의 안색이 아주 활짝 펴진 것일까.
“뭐든지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안 쓰면 이 팀의 트레이너가 될 자격이 없지.”
“크, 주둥이가 재앙의 근원이라는 걸 몸으로 체험하는 참된 트레이너들의 모임.”
설마 이 인간들도.
“아, 난 아직 담당 없잖냐. 서포트과 삐약이들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데 딴 놈들은 다 너랑 같다.”
치프는 간단히 손사래를 친 후, 대신 스틸 트레이너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근데 이놈도 그렇고 하나같이 죄다 담당에 목줄 잡히는 게 그놈의 뭐든지다.”
“허.”
그러니까, 헛똑똑이들 모임이라는 건가.
“대학 잘 나오고 빡센 과정 밟아서 중앙 트레이너 되면 뭐 하냐. 하나를 알고 열을 모르는데.”
그런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치프는 껄껄 웃으며 팀의 트레이너들을 모조리 까버렸다.
“멀쩡하던 놈들이 왜 담당 앞에서 그렇게 말실수하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너도 이 클럽의 훌륭한 일원이 되었다.”
그렇게 말한 후, 치프는 어드마이어 그루브를 담당하는 풋내기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우마무스메의 독점력을 킨 대가를 잘 받도록 해라. 그 끝이 어딘지는 너는 형을 통해서 봤겠다만.”
“….”
다시 한번 말하도록 하자.
그는 ↗됐다.
-⏲-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불안했다.
반드시 둘만 있을 때 쓰라고 한 호칭을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써버렸으니.
-혹시, 나 때문에 곤란해지신 거라면.
자괴감과, 혹여나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물론 최악의 가능성이지만, 망신살 뻗쳤으면 솔직히 손절해도 이해는 가니까.
이전 같았으면, 덤덤하게 찾아올 운명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인간관계나 애정 같은 걸 한심하게 여기던 때가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건, 싫어….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흔히들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아가페와 에로스.
그리고 전자를, 트윙클 시리즈를 달리던 내내 세례처럼 받았다. 끝없는 사랑은 얼어붙고자 하던 그녀의 생각을 뒤바꿨다.
혼자 자랄 때, 이런 가족이 있었다면.
힘들 때, 이런 사람이 곁에 있어 줬다면.
“….”
그러기에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너를 ‘파파’라고 불렀다.
솔직히 입에 잘 붙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 아니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대상에게 그렇게 부르는 건,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혹독하던 유년 시절을 고려하면 최고의 경외를 담은 것이었다.
이게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그녀는 학생이었지만 말이다.
‘찌릿-.’
“우웁?!”
그렇게 자율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수영장에서 수중을 가로지르던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순간 다리에 아려오는 짜릿한 감각에 입에서 거품을 내뿜었다. 딴생각하다가 준비운동이 제대로 안 된 탓일까, 왼쪽 다리가 뻣뻣하게 쥐가 나버리며 한순간에 수면 위로 떠오를 수단을 잃었다.
‘꼬륵, 꼬르륵-’
허우적거리며 수면으로 떠오르려고 했지만, 팔도 왠지 무겁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가운데, 입에서 다시금 거품이 일어나며 죽음을 직감했다.
-누군가 도와줘.
색이 다른 두 눈이 수면을 바라보면서 입에서 거품이 부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단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어릴 때 트레센 학원의 입학을 추천해 준 에어 그루브도, 홀로 학업을 할 때 만난 두라멘테라는 어린애도 아니었다.
“트레, 이너….”
산소가 부족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눈에 보인 건 물속에 뛰어든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아, 마지막에 그 사람을 볼 수 있으면 됐어.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의식이 어둠에 잠겼다.
-⏲-
방에 불을 켜듯, 의식이 돌아오며 무거운 눈꺼풀이 뜨이자, 그곳은 낯설게 느껴지는 천장이었다.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운 방의 하얀 천장.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이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양호실.
트레센의 양호실이었으니까.
“…어라, 어째서.”
분명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명확한 공기의 감촉과 약간 답답한 느낌이 있지만 가슴에 들어차는 공기의 감각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 왔다.
“….”
쥐가 났던 다리의 통증은 사라졌다.
대신,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 무릎 위에 얹혀 있는 느낌. 몸을 일으켜 그 원인을 알아보려 하자, 푸른색과 짙은 보라색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가 의식을 찾기 전부터 계속해서 다리를 풀어주려고 한 듯, 익숙하고 이제는 떨어지기 싫은 이의 손이 허벅지를 주물러주던 자세에서 딱 멈춰있었으니까.
멈춰있다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그 손의 주인은 지친 듯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쪽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속에서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 감정의 정체를, 차가움을 연기하던 우마무스메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그렇구나.
두 종류의 사랑.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내 준 이가 그녀를 아가페적으로 사랑했다면, 아루브는 다른 형태의 애정을 향해 마음이 나아가있었다.
스틸 인 러브가 사랑에 눈이 멀어 연기를 꿰뚫어볼 수 없었던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 느낌이면, 이런 감각이면 시야가 가려지고도 남았으니까.
“…음.”
마침내 감정을 완전히 깨달은 아루브가 조용히 그걸 돌이키고 있을 때, 남성은 몸을 뒤척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눈을 뜨자 들어온 모습에,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아루브, 일어났구나.”
“…트레이너님.”
그런 그의 얼굴을 보자,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 보였던 모습이 다시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허우적거리고 힘이 빠져가던 그녀를 향해 가차 없이 뛰어들었던 트레이너. 손목을 붙잡던 감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어졌는데, 분명 이는 그가 그녀를 건져 구해낸 것이었다.
“인공 호흡하느라 갈비뼈가 좀 나갔을 수도 있다는데, 가슴 쪽 통증은 없어?”
“뼈가 나가다니…. 아?”
그러고 보니 가슴팍이 살짝 아픈 거 같긴 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눈동자가 확 작아졌다.
인공 호흡? 뼈가 나갈 정도로? 그렇다는 건-.
“….”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입가를 만졌다.
이런 식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입이 맞닿았었다니.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준비운동은 확실히 했어야지, 내가 제때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미안할 게 뭐가 있니,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는 거지.”
그녀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는 트레이너는 가볍게 말하는 것과 달리 그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여전히 등골이 서늘했다. 말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실제로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익사 직전이었으니까. LANE의 통보를 통해 수영장에서 훈련 중이라는 걸 보고, 오후에 혼자 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걱정돼서 달려와 보니 저랬다.
그걸 보자마자 뛰어들어서 급박한 상황에 나온 힘으로 담당의 오른팔을 잡은 후, 냅다 밖으로 내던진 후에 숨을 안 쉬는 걸 보고 바로 인공 호흡부터 들어갔다.
급하지만, 최대한 정석대로 한 결과 2분도 안 되어 물을 토해내며 다시 숨을 쉬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그걸 확인한 직후 물에 빠진 생쥐 꼴임에도 물을 뚝뚝 흘리며 그는 냅다 그녀를 업고 양호실로 달려갔다.
“혹시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니.”
그리고 이런 사고는, 여태 트레이닝을 정직할 정도로 FM대로 하던 담당이 일으킬 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꼭 물어서 원인을 알아야 했다.
“….”
그런 그의 물음에 고민하던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이내 귀가 축 처진 채 답했다.
“…아침의 일 때문에 트레이너님이 곤란해하시는 것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늘 쓰던 호칭 대신, 억지로 거리를 둬보려는 듯 또박또박 트레이너님이라 부르는 아루브의 모습에 그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심각한 일인가 싶더니만 그게 신경이 쓰였구나. 아이고, 그럴 필요 없는데.”
“하지만 저 때문-.”
“별일 없다. 뭐, 남들이 듣는 거 이제 신경 안 써도 되게 된 거니 마음에 두지 마라.”
그녀가 스스로를 탓하려 하자, 깔끔하게 잘라낸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다 보면 별일 다 있는 거다. 이런 건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에요.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얼마나 긴데 고작 그런 일에 신경 쓰다가 물에 빠져 죽으면 되게 허탈한 끝 아니겠니.”
“….”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답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다시 편하게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렴. 그러다 또 탈 난다.”
“…화 나시지 않았습니까?”
“화가 왜 나니, 이런 걸로 화나면 인생 참 피곤해지는데.”
그녀가 고심 끝에 두려움을 담은 물음을 건네자, 트레이너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니 마음 놓고 당분간은 일단 푹 쉬렴. 한번 한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키고, 달래주는 말을 하는 그를 보던 중,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통금 시간이 지났는데.”
“트레이너 기숙사는 뭐 방이 아니니.”
“예?”
규칙을 여럿 어겨버렸다는 것에 풀이 죽으려는 그녀에게 한 말은 순간 귀가 확 서게 했다.
지금 이 사람, 트레이너 기숙사라고 했다.
“내 방에서 하루 쉰 후에, 한동안 회복기를 가지렴.”
“그래도 됩니까?”
“양호실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잠시라도 편히 쉬려면 내 방 침대에서 자는 게 나을 거다.”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리는 가운데, 결국 얼굴이 희미하게 붉어진 아루브는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파파.”
다시금 원래의 호칭으로 돌아온 것에 그제야 그녀가 돌아왔음을 느낀 트레이너는 희미하게, 하지만 씁쓸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옷 갈아입고 가져온 짐 챙기렴. 가방은 미리 네 반 친구를 통해 여기 가져다 놨단다.”
“알겠습니다.”
가슴 깊은 곳을 간지럽히는 애정의 깃털 감각을 느끼며,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숨쉴 때 약간 아픈 몸을 일으켰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이 감정을 온전히 그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얼음이 되고자 했던 우마무스메는, 그렇게 안쪽 깊은 곳에서 불꽃을 피워냈다.
…
-내가 ↗돼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네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다시 걷고, 뛰거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줄 테니.
트레이너는 각오를 굳혔다.
다만, 역시 그 팀, YOUR TEAM NAME HERE의 트레이너답게 하나를 알았지만 그 너머의 열, 백, 천은 볼 수 없었다.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다양한 미래는, 이날부터 단 하나로 고정되게 되었으니까.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트레이너도 마침내 그러한 결말도 받아들일 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형수, 타마모 크로스가 봤다면 ‘아이고 서방아, 처남은 이미 준비 만전이었구마’하고 말하리라.
수영 전에 준비운동은 철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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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라 했다고? 자연사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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