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부산 남포동 모처.
“아따 이거 맛나네. 또레나는 안 묵나?”
“속이 좀 더부룩해가. 많이 무라.”
“아이고, 거 참 아직도 꽁해 있나.”
한국 음식, 정확히는 부산 음식이 꽤 입맛에 잘 맞는 듯 돼지국밥마저 무리 없이 말딸용 사이즈로 나온 뚝배기를 정구지랑 새우젓까지 넣어서 두 그릇째 정복하고 있는 타마모 크로스는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가 있는 트레이너를 보며 말했다.
“거 솔직히 도동놈 소리 좀 들을 수도 있는 기제, 안 글나?”
“니 입장에선 그런 기고, 내 입장도 좀 생각해라 이 문디야.”
무사태평한 그녀의 말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서.
차라리 장마가 계속되길 바랐지만, 하늘은 또다시 트레이너를 버렸다.
‘일주일 사이에 일기예보에 세 번 속은 놈은 처음 본다’라고 비웃듯이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심지어 폭염경보나 주의보도 떨어지지 않은 아주 쾌적한 여름 날씨가 찾아와버렸으니까. 그러니 뭐 어찌하겠는가, 오랜만에 본가에 연락해서 한국 온 김에 얼굴 좀 뵙겠다고 연락을 넣었지.
그리고 이는 트레이너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소리였고.
“으엑, 이거 정말 제대로 된 길 맞는 기가, 또레나?”
“어서 와라, 부산의 지옥 도로에.”
마침내 불지옥 난이도의 부산 도로를 날 것 그대로 접하게 된 타마모 크로스는 구불거리는 산길, 개판 나 있는 신호등과 교차로 배치, 시도 때도 없는 과속에 멀미를 느껴야 했다.
“우째 일본에서 운전을 너무 잘 한다 싶다더만, 고향 도로가 이 꼬라지면 늘 수밖에 읎겠구마.”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있는 작달막한 우마무스메의 말에 그는 최대한 안전운전 하려고 노력하면서 시내라 할 수 있는 서면과 동래를 지나 다대포로 향하고 있는 트레이너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시도 때도 없이 번개처럼 내달리던 것치곤 멀미를 좀 마이 하네?”
“에고, 말도 마라. 달리는 기랑 이런 도로를 차로 다니는 거랑은 천지차이데이.”
손사래를 치면서 에어컨 바람을 자신에게 쭉 돌린 그녀는 의자를 비스듬히 했다.
“그래도 마, 일반인들보단 덜 하긴 하겠제.”
“그래 되나?”
“엉. 생각해보라, 터프든 더트든 달릴 때 을마나 흔들려 쌋는데.”
그렇게 말한 후 턱을 짚은 타마모는 밖을 반대편 손으로 쿡쿡 가리켰다.
“그냥 부산 도로가 개판인기라. 솔찌 내가 일본에서 멀미한 적 있긴 하드나? 배멀미도 안 하는 놈인디.”
“하긴, 그건 그렇구마. 니 속도에 멀미하면 그게 더 이상하제.”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현역이었을 때로 옮겨갔고, 이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쭉 이어졌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별일 없을 줄 알았다.
…
“안녕하심꺼! 타마모 크로스라 합니더!”
음료수랑 과일을 가득 사든 타마모가 우렁차게 문이 열리자마자 부산말로 인사를 박기 전까진 말이다.
“타마, 뭐라꼬?”
“아하이고, 잊었습니꺼. 당신 아들내미가 가르쳤다는 그 말딸 아입니꺼. 어여 들어온나.”
작달막한 우마무스메를 먼저 환영해 주고, 뒤이어 들어온 장남에게 모친은 넌지시 물었다.
“언제 한국에 들왔노?”
“일주일 정도 되었슴더. 보름 후에 비행기 타야죠.”
“하이고, 진작 말하지.”
“에이, 여행하려고 온 건데 사실 집에 올 생각도 없었슴더.”
트레이너가 손을 내저으며 말하는 가운데, 하필 집에 있던 동생이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아이고, 형님 오셨는가.”
“짬 냄새가 진동을 하네, 휴가 나왔나?”
“뭐 글체.”
늘어지게 하품하던 동생은 작달막한 우마무스메를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빠르게 트레이너를 붙잡고 귀에 속닥였다.
“점마 저거 형이 가르쳤다던 갸 아이가? 쟈가 왜 왔는데?”
“그게-.”
그가 무어라 채 말하기 직전, 폭탄이 타마모의 입에서 나왔다.
“어머님, 아버님을 뵙습니데이!”
순간 집안에 정적이 해일처럼 몰아쳤고, 동생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트레이너가 얼굴을 짚는 가운데, 한참 동안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내 동생이 말했다.
“와 스벌, 일본 가서 일하더니 도둑질만 배워왔네, 형이란 새끼가.”
그리고 그 말은 식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온나, 점마가 왜 저리 말하는 건지, 니 입으로 설명을 좀 해봐라.”
“하아, 알겠슴더.”
“으헤.”
조용히 장남을 끌고 큰 방으로 들어가 상세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부친과, 여전히 자기 귀를 의심하는 모친을 보며 타마모 크로스는 그저 웃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
해명에는 30분가량 걸렸다.
아니, 오히려 더 짧았을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한국도 일본에는 절대 범접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시리즈가 있는 나라다. 우마무스메, 즉 말딸의 인구 비율은 일본보다 더 높을 수도 있는 동네고. 그러니 이런 사례가 전혀 없느냐, 하면 또 아니었다.
다만 문제라면.
“니가 먼저 눈 맞은 건 아니란 소리제? 그게 제일 중허대이.”
역시 사회적 시선이다.
졸업했다 해도 한때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라는 관계였던 만큼 사제관계. 이거 한국 사회에서 잘못 보이면 진짜 천하의 후레자식 도둑놈으로 보이고도 남는다. 특히 저런 작은 체형이라면 낙인찍힌다, 진짜로. 이걸 알기에 부친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아부지는 아들내미를 뭔 범죄자로 생각합니꺼. 절대 아닙니더.”
“진짜 아니란 말이제?”
“하늘에 맹세코 아입니다.”
“에휴, 그럼 됐다.”
단호한 답이 돌아오자 그제야 안심의 기색이 약간이나마 돌아왔다.
“내 아들이라지만 저 쪼꼬만 가스나는 니가 뭐가 좋다고 오려는 기고.”
그리고 뒤이은 무자비한 팩트의 폭격이 꽂혔다.
“어무이랑 얘기하고 있으니 물어보이소, 저도 솔직히, 하.”
트레이너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인 건 벌써 모친과 타마모가 엄청나게 친해졌다는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말이다.
“아이고, 이렇게 착한 애를 으디서 델꼬 왔노. 진작 알려주지.”
그게 확 느껴지는 말은 그의 전 담당이 난관을 넘었다는 걸 증명했다. 당근을 와작와작 먹으면서 말이다.
반짝거리는 타마모의 눈빛은 ‘내 말했다 아이가, 잘 될끼라고’라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뭐 어찌어찌 될 거 같긴 하네.
천하의 도동놈이라고 한동안 불릴 거 같다는 거 외에는.
-⏲-
억울하다, 억울해.
물론 그의 손으로 무심코 무덤을 파왔던 것도 있지만, 뭐 의도가 있었겠는가. 보고 자란 대로 애들 애끼고 사람들 애끼려다 이 지경 난 거지.
“거 또레나, 진짜 안 묵을라꼬?”
“묵는다, 묵어. 하이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단골 국밥집에서 결국 그는 국밥 한 그릇으로 이 억울함을 풀기로 했다.
소주는-.
아, 젠장 이것도 못 따겠구나.
운전대 잡아야 하니까.
유달리 금연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담배가 진하게 당겼다.
뭐, 그래도 타마모가 고민 없이 행복해 보이니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내일은 꼭 야구장 가야지.
또레나는 억울하다
아무튼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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