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력비행기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 발명 이후에 여러가지 수난을 겪었다.
그가 속해있는 스미소니언 협회의 지속적인 음해와 동력 비행기에 대한 고국의 무관심
최초의 동력비행기 공장을 만들었던 프랑스에서 발생한 기술 유출 등을 겪던
라이트 형제의 가장 큰 시련은
글렌 커티스라는 사업가가 라이이트 형제와 비슷한 기술을 이용한 비행기 공장을 세우고
특허를 내서 라이트 형제를 기술 도용으로 고소한 것이었다.
앞서 스미소니언 협회 때문에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니었던 라이트 형제는
커티스의 여론전에 휘둘렸고 소송을 도맡았던 윌버 라이트는 잦은 재판 등으로 인해
쇠약해졌고 결국 티푸스 열로 1912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1914년에 드디어 법정 싸움에서 오빌 라이트가 승리했지만
글렌 커티스의 여론전으로 인해서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았고
형의 죽음으로 울적해 했던 오빌은 미국을 떠나게 된다.
이후 여러 국가에서 항공 분야의 개척자로 우대 받으며 사업가로서도 나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오빌 라이트는
1928년 여론전으로 자기 형제들을 괴롭혔던 글렌 커티스가 사업에 실패하자
그 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그의 공장을 인수하며 복수에 성공한다.
추가적으로 회사 이름을 커티스-라이트사로 지어
커티스가 그동안 비행기를 홍보하면서 얻은 인지도를 꿀꺽하는 것은 덤이다.
결국 이 티배깅을 견디지 못한 글렌 커티스는 1930년 화병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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