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이 모친상 이후 고기를 먹지 않자 선조가 변방에 있는 장수가 효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나 나라의 일이 급하니 고기를 먹어야한다고 챙겨보내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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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두고 한 몇년 동안 선조가 이순신 엿 먹이려고 한거다!
선조가 ㅆ새키임!
하고 까는 글이 엄청 많았는데
사실 조선시대에 임금들이 변방의 장수들이 상을 당했을 때 고기를 보내는 건 흔히 있었고 사실 저걸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도 선조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순신 개인이 씁쓸한 감정을 버릴 수 없었다. 정도로만 나왔는데 과도하게 선조가 싸패라서 저랬다고 이야기가 있었음.
문제는 저걸로 선조가 싸패가 되면 세종 대왕의 처지가 굉장히 난감해지는데...
세종 대왕 :
어...모친상을 당한 김종서에게 강제로 고기 먹으라고 보낸거랑 이순지가 모친상 당했을 때 초상 치르러 가지 못하게 막았던 거?
이순지 :
그래서 ㅈ같아서 때려치우고 초상치르러 갔죠.
김종서 :
저저..왜 니 초상 언제 끝남? 언제까지 모친상 치를거냐고 닥달한건 왜 빼시는겁니까?
선조 :
내가 진짜 이순신 엿먹일거였음. 고기를 보낼게 아니라 초상 자체로 시비를 걸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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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 그만하고 이순신 복귀해달라고 선조가 보낸 교서 내용 보면 진짜 선조의 그랜절이 절절하게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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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 그만하고 이순신 복귀해달라고 선조가 보낸 교서 내용 보면 진짜 선조의 그랜절이 절절하게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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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궐례 드립 또 나오는데 애초에 제일 망궐례를 올릴 여유가 없음. 복직 후 가장 먼저 한게 진주로 내려가서 남해안 훑은 다음 병력 소집하고 간신히 13척 수습해서 한달도 채 안되서 명량해전 치르고 곧바로 서해안으로 북상한 다음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서 고금도 장악하고 고금도 수영을 차린 다음 남해안 확보하면서 명나라군 상대하고 그런 다음 명나라군 수습되자마자 노량 해전인데 기존의 한산도 수영에서 안정적으로 경영할 때나 망궐례가 가능하지 저 때는 망궐례 하는거 자체가 불가능함. | 23.02.04 23:3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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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기 보낸 건 명량해전 이후임. 시기가 다름. | 23.02.04 23:4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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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궐례 드립이라니ㅋㅋ 이순신 장군이 복직 후 노량해전에서 사망할 때까지 망궐례를 단 한 차례도 안 올린 건 알고 있음? 심지어 그 중간엔 전대 왕의 제사까지 올렸었는데도 (난중일기 1597년 7월 1일) 망궐례는 안 했음. 다른 행사도 아예 못 챙겼다면 모를까 망궐례만 안 했는데 바빠서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임. | 23.02.05 10:3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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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나 왕비의 탄신일을 비롯하여 정월초하루·한식·단오·추석·동지 등 명절날에 하는데 1597년 1월은 애초에 일기에 기록이 없음. | 23.02.11 18:5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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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근본적으로 일기에 쓰지 않았다고 실제로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 남고 또다른 문제가 망궐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문제가 되냐는거임. | 23.02.11 19:0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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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왕들도 망궐례 하다가 중지하거나 아파서 권정례로 바꾸거나 아니면 아예 아파서 안하는 것도 비일비재했음. 반면 국가의 제의나 제례는 하라고 물품도 내려오기도하고 그 행사를 통해 갖춘 제수용품을 부하들과 나누거나 병졸들에게 나눠주는 거 때문에 중요함. 그리고 가장 핵심이 망궐례하면 혜택이 없지만 제례를 지내면 합법적으로 소를 도축할 수있다. | 23.02.11 19:0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