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글에 이미 반박글? 올라간 거 같은데 내용이 부실해보여서 보충해 본다.
일단 제주 식민지설이 갑자기 왜 나왔을까? 추측되는 기록이 있긴 하다. 대한제국을 고종이 선포했을 때의 실록 기사다
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10013_002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001) 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굵은 글씨 부분을 보면, 태조 이성계 이후 남쪽으로 '탐라국'을 정복해 영토를 넓혔다는 식이다. 비록 고려 시대에도 사실상 제주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조선 초기에만 해도 제주에서는 '왕자' 같은 칭호를 쓰긴 했기 때문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da_40007005
[본조 태종(太宗) 2년 임오에 성주(星主) 고봉례(高鳳禮)와 왕자(王子) 문충세(文忠世) 등이 성주와 왕자의 호가 너무 참람한 것 같다고 하여, 고치기를 청(請)하였으므로, 성주를 좌도지관(左都知管)으로, 왕자를 우도 지관(右都知管)으로 하였다.]
태종 때에 탐라국의 잔재였던 왕자와 성주 칭호마저 '000관'이라는 관리의 칭호로 바꿈으로써, 탐라는 명실상부한 조선의 지방이 되었다
완전히 영토로 흡수한 것을 식민지라고 해석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다. 이게 식민지면 울릉도도 식민지다.
그리고, 고종이 대한제국의 선포 이유로 탐라국이 식민지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선 왕조가 영토를 넓혔다는 예시로 탐라국을 든 것이다. 정복해서 얻은 영토가 식민지면, 신라가 백제 멸망시키고 흡수한 것도 식민지다.
이로써 고종의 제주 식민지 선포 주장은 허위임을 보였으나... 고종이 제주 통치에 있어 무능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의 베글에 언급되었던 이재수의 난, 다른 용어로는 신축민란, 신축교안은 사실이다.
이 사건을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개판이라 고종을, 그리고 제주의 수난을 다시 보게 된다.
고종이 제주에 보낸 봉세관, 즉 세금징수관 강봉헌은 천주교인으로서,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와 제주 원주민 천주교인에 부당한 특혜를 줘가며 악질 징세를 해왔다.
https://m.yna.co.kr/view/AKR20201221051400056
['교인 고인관이 봉세관(세금 징수관)의 명령이라 칭하고 어망세 25냥을 받아 갔다.'
'교인 강기봉이 교인을 빙자해 동족인 여인을 ㅁㅁ하고 아이를 낳게 하는 등 사악한 폐습을 저질렀다.'
'수백 금의 큰 비용을 들여 오조리에 서낭당을 지었는데 교인 이기선이 여러 교도를 풀어 거리낌 없이 방화하고 나무를 베어 실어 갔다.'
제주목 관하 제주·정의·대정 3군의 교폐 사실을 조사해 묶은 보고서인 '삼군교폐사실성책'(三郡敎弊査實成冊)을 보면 당시 '교폐'와 '세폐'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강봉헌은 천주교인들을 부려 세금을 거두었고 종교와 권력이 결합하여 제주도민들은 고통 받았다.
이에 관노였던 이재수 등이 봉기하여 강봉헌 등 관리들을 쫓아내고 제주성을 점령하여 천주교인들을 죽였다. 이에 프랑스인을 보호하기 위한 프랑스 군대와 난을 진압하기 위한 대한제국군이 제주로 파견되었다. 결국 이재수 등은 반란 수괴로서 사형 당한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0152662
이 사건은 천주교의 대표적 흑역사로서 오랜 기간 조명 받지 못하다가, 2003년에야 비로소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이란 제주도민과의 화해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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