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곤)
울라나라 아바하이의 소생으로서 각각 누르하치의 14남, 15남이었던 도르곤과 도도는 누르하치 사후 홍타이지의 군단 분배 지침과 아지거1의 처벌등으로 말미암아 1628년(천총 2년)경에는 양(兩)백기의 호쇼이 버일러2가 되었다. 즉, 도르곤과 도도가 각각 하나의 '구사' 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이 홍타이지 시기에 각각 어떤 구사의 소유자였는지는 의견이 다소 나뉜다. 즉슨 도르곤은 정백기(正白旗)의 호쇼이 버일러였으며 도도는 양백기(鑲白旗)의 호쇼이 버일러였다는 주장도 존재하며 반대로 도도가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였으며 도르곤이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였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우선 도르곤이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가 되었으며 도도가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가 되었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청사학자 구범진은 본인의 저서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에서 도르곤과 도도가 정백기와 양백기를 차지했다고 서술한 적이 있으며 해당 버일러 분봉에 대한 근거로 오카다 히데이로의 [청조란 무엇인가 : 清朝とは何か]를 근거로 삼았다.3 청사학자 이선애는 논저 마다 서술이 갈리나 최소한 본인이 2017년 저술한 [실록위키(석학들이 조선왕조실록의 용어등을 정리해서 만든 위키. 작성자들 모두 최소 석사들이다보니 나무위키 따위와는 질의 수준이 다르다)]의 섭정왕 문서에서 도르곤을 정백기의 기주라고 표현하였으며 동시에 [예군왕] 문서서는 도도를 양백기의 수장이라고 표현한 적이 존재한다.
전승호 역시 본인의 논문에서 도르곤을 정백기로 표기한 적이 있으며, 중국의 원로 사학자 염숭년 역시 본인의 저서에서 도르곤이 정백기를 소유했으며 도도가 양백기를 소유했다고 서술한 적이 존재한다.4
필자가 파악키로는 이 정도가 홍타이지 시기 당시 도르곤이 정백기 호쇼이 버일러, 도도가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였다고 기술한 적이 있는 석학들이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글이 존재하겠으나 일단 이 정도만으로도 예시로는 충분하다고 본다.
한편 '도르곤이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 도도가 정백기 호쇼이 버일러'였다고 서술한 석학들은 다음과 같다.
위에서 도르곤=정백기 호쇼이 버일러/도도=양백기 호쇼이 버일러 추론에 한 손을 올렸었던 이선애는 정작 본인의 논문에서는 도르곤이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 였다고 서술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박민수도 본인의 논문에서 도르곤을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로, 도도를 정백기 호쇼이 버일러로 서술했다.
후금-청의 입관전 팔기 호쇼이 버일러들에 대해 자세한 분석을 했었던 서정흠 역시 본인의 논문인 [팔기제와 만주족의 중국 지배]에서 도르곤이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이고 도도가 정백기 호쇼이 버일러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단 서정흠의 해당 논문은 지금에 와서 살펴보자면 다소 오류가 존재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유소맹과 맹소신 역시 도르곤을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라고 서술하였으며 일본의 칸다 노부오 역시 본인의 논문인 [청초의 버일러에 관해서 : 清初の貝勒について)에서 홍타이지 시기의 도르곤을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 도도를 정백기 호쇼이 버일러로 분석하였다. 이소베 아츠시 역시 같은 견해를 보인다.
그렇다면 두 의견중 무엇이 정답일까? 사실, 청측의 사료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쉽게 해답이 나온다. 청측 사료는 도르곤을 양백기 호쇼이 버일러로, 도도를 정백기 호쇼이 버일러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후금과 명간에 대릉하 돌출부를 두고 벌어진 싸움인 '대릉하 포위전'에 관한 기록이 가장 대표적인 근거일 것이다. 천총 5년 8월 7일 대릉하 포위전 초반기 당시 후금의 한 홍타이지는 버일러들과 대신들에게 군사작전 지시를 내렸다. 이 때 각각의 호쇼이 버일러들은 본인이 소유한 구사와 함께 움직이는 것을 전제로 했는데(예컨대 다이샨은 본인이 소유한 정홍기와 함께 움직였다.), 도르곤은 양백기와, 도도는 정백기와 움직이는 것이 전제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도르곤은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 도도는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인 것이 된다.5
한편 천총 9년 10월 29일의 기사를 살펴 보아도 답이 나온다. 보통 실록 기사에서는 호쇼이 버일러들이 소유한 구사가 명확히 표기되는 경우가 적은데, 해당 날짜의 기사에는 도르곤이 확실히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인 것이 명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측의 기록인 심양왕환일기에도 후금의 당시 호쇼이 버일러들이 다소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도르곤은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로, 도도는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로 기록되어 있다.6
이런 근거들을 보자면 홍타이지 시기에 도르곤은 확실하게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였으며 도도 역시 확실하게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였음이 파악이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홍타이지 치세에 도르곤이 정백기를 소유했고 도도가 양백기를 소유했다는 추론이 발생한 것일까?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도 홍타이지 치세가 끝난 이후 도르곤이 다시 한 번 팔기 분봉 체제에 손을 대어 자신의 기를 정백기로 바꾼 탓이 아닐까 한다.7 즉, 순치제 시기에 도르곤이 정백기를 소유했기 때문에 홍타이지 시기에도 도르곤이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일 것이라는 당연한 인식이 잡혔고 이로 인해 홍타이지 시기의 도르곤을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로 표기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어쨌건간에, 1628년 이후 도르곤은 양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였으며 도도는 정백기의 호쇼이 버일러였던 것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홍타이지가 죽기 전까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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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각주
1.누르하치의 12남. 도르곤과 도도의 친형
2.팔기 조직의 가장 큰 단위인 '구사'를 소유한 버일러. 1628년경 당시 구사는 이론상 7천5백명의 장정으로 구성되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상이며 각각의 구사에 소속된 장정은 구사마다 달랐다.
3.그러나 정작 [청조란 무엇인가] 원본을 살펴보면 홍타이지 시기에 도르곤이 정백기, 도도가 양백기를 담당했다는 서술은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어쩌면 구범진은 도르곤과 도도의 이름나열순서를 신경쓰지 않은 채, 그저 도르곤과 도도가 양(兩)백기의 호쇼이 버일러가 되었다는 설명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4.從明末到清初的那些事:閻崇年自選集. 염숭년 저
5.청태조문황제실록 천총 5년 8월 7일
6.위정철, 심양왕환일기 총서
7.도르곤이 자신의 양백기를 정백기로 개칭한 이유는 정백기가 양백기보다 기(旗)서열상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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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의제기, 내용지적, 오타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