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가인 김조순. 이후 이어질 안동(安東) 김씨 가문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로 지금까지 평가는 여러모로 갈리지만 유독 특이한 일화가 있으니 바로 연애 소설과 관련된 일화다.
정조 재위 11년인 1787년 예문관에서 숙직을 서던 노론 시파의 신진관료 김조순과 이상황.
"아 겁나 심심하네. 이 상황에 우리 상황이는 뭐 선배 위해서 준비해둔거 없냐?"
"아따 김조순 선배님! 물론 이럴때를 위해서 '그것'을 준비했죠!"
예나 지금이나 직위를 막론하고 당직을 서는 것은 지루하기 마련. 천하의 사대부 역시 이런 노고는 마찬가지였기에 심심했던 두명은 품 속에서 상상도 못한 것을 꺼내서 함께 즐기는데...
그건 바로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평상냉연(平山冷燕)'이라는 청나라 소설이였다. 이 소설은 산대(山黛)와 그의 몸종 냉강설(冷絳雪)이 평여형(平如衡), 연백함(燕白)이라는 꼼미남과 꽃미녀가 등장해서 꽁냥거리는 작품으로, 흔히 말하는 ‘판타지 로맨스’ 혹은 ‘라이트 노벨’ 소설이나 다름이 없었다.
"와 진짜 히로인 수준 실화냐...냉강설은 진짜 전설이다."
"이거 이새끼 완전 꼴알못이네. 순정파인 산대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렇게 신나게 연애소설을 보면서 하악거리던 두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니...
"너희들 지금 뭐하냐?"
하필 시찰을 나왔던 정조에게 그 현장을 그대로 들킨 것이였다.
평범한 상황에서도 신하들이 할일은 안하고 농땡이를 까는 것은 문제가 되었겠지만 당시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정조는 당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같은 책들을 패관소품이라 규정하고, 기존 고문(古文)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실시했는데, 하필 이들이 읽은 소설은 바로 그 적폐 대상인 패관소설인 상황.
요즘으로 따지면 음란물 규제를 실시한 대통령이 시찰을 나왔는데 공무원들이 폰헙을 실시간으로 보는 광경이나 다름이 없는 풍경이였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들 아냐. 뜨거운 맛 좀 볼래?!"
(화르르)
"호에에에엥!"
당시 학식이 높고 잘나가는 선비들이 밤새 로맨스 소설을 탐독했으니 기가 막힌 정조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손수 책들을 태워버렸고, 그런 상황에 김조순과 이상황은 떼굴멍에 빠지면서 자비를 구하여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명의 고생은 끝나지 않았으니 1792년 10월 정조의 친위 관료격인 규장각 출신 관리들이 '현대 청나라 문체'를 즐기다가 적발이 된것이 사건의 시작이였다.
외교문서 작성관 남공철이 올린 문서에 정조가 혐오하는 '저질' 단어들이 인용되어 남공철은 직위해제 되었고, 성균관 유생이던 이옥은 저질 단어를 혼용해 쓰다가 아예 과거 급제 취소 및 응시 자격 박탈에 강제징집까지 당하는 참화를 겪어야 했다.
"아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두명도 무지하게 괘씸하네? 야 너희 두명 반성문 써와!"
"???????"
거기에 정조는 5년 전인 1787년 잡소설을 읽던 예문관 관원 김조순과 이상황을 떠올리며 이들에게도 반성문을 받으라고 명했다.
"엥? 저는 지금 청나라 사신으로 출발하고 있는데 외국에 가서 가서 반성문 쓰면 좀 그렇지 않나요?"
하필 김조순은 당시에 청나라 사신으로 가는 상황이였기에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당연히 말이 안되죠 ㅎㅎ"
"압록강 건너기 전에 써서 보내라."
"....."
정조는 국경을 넘기 이전까지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릴 뿐이였다.
그 반성문은 공개되지 않았기에 내용은 불명이다.
아마 굉장한 다급함과 애절함이 가득할 것이라 추정이 되기만 할뿐...
"자 지금부터 반성문 후기 시작...잠깐 이옥 너는 반성문 왜 제출 안해?"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뭔 반성문이요? 꼬우시면 죽이시든지요."
"저저 ㅁㅊㅅㄲ... 넌 반성문 쓸때까지 벼슬은 꿈도 꾸지 마라."
결국 이옥같이 제출을 거절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내노라하는 세도가의 사대부들이 단체로 반성문을 써서 임금에게 제출하는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고, 이후에 반성문을 모두 읽어본 정조는 하나하나 평가를 내리기 시작한다.
"남종철. 넌 반성문의 문장이 왤케 부들부들하고 옹졸해?"
"ㅂㄷㅂㄷ"
"심상규. 얘는 글을 쓴거니 시체를 반납한거냐? 뻣뻣해서 알수가 없어!"
"(뒷목이 뻣뻣)"
"이상황. 얘는 아주 헐겠다 헐겠어. 이렇게 경박하고 듣기 좋게 꾸며 쓰는건 요즘도 연애소설 읽어서 그러냐?"
"후에에엥"
※ 실제로 이상황이 죽은 이후에 그의 집을 살펴보니 정조가 금지했던 청나라의 소설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조순. 너 이새끼..."
"(혼절)"
그 경이로운 능력만큼이나 신하들을 갈구는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조는 차례대로 반성문을 제출한 신하들을 갈구기 시작했고, 자신의 차례가 온 김조순은 귀양지는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주 문체가 바르고 우아하며 뜻이 풍부하여 무한한 함축미가 있어! 내 자세히 촛불을 밝히고 읽고 또 읽으니 절로 무릎을 탁치는구만!”
극한의 상황에서 심리를 다하여 쓴 덕분일까? 아니면 허구한 날 읽던 소설로 얻은 필력이였을까? 김조순이 쓴 눈물의 반성문은 정조의 마음을 울렸고 다른 신하들이 까이는 와중에 혼자 칭찬을 받으면서 우대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 전까지 연애소설 읽다가 찍혔던 김조순은 이후 순조가 되는 왕세자의 스승이 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딸이 순조와 결혼하는 등 인생의 역전을 시작한다. 심지어 정조는 임종 직전에도 순조 손을 꼭 잡으면서 김조순을 지칭하며 “지금 내가 이 신하에게 너를 부탁하노니, 이 신하는 반드시 비도로 너를 보좌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렇게 알라"라는 말을 하였으니 얼마나 총애를 받았는지 짐작이 가능한 부분이였다.
물론 개처럼 까였던 3명도 결국 높은 직위에 오르긴 했으니 사실상 신하들을 군기잡는 목적으로 행한게 아닌가 하는 이론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조선을 휘청이게 만든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이였을줄은 아마 김조순과 정조 본인조차 몰랐을거다.
이후에 김조순은 무협소설인 '오대검협전(五臺劍俠傳)'이라는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일단 본인의 말로는 젊을 적에 썼다고 주장하기는 한다만, 전성기에 비하면 뭔가 후달리는 양판소급 내용과 그가 집필한 것인지 논란이 되었지라
김만중의 구운몽 같은 소설에 비하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뭐, 국무총리겸 인물이 손수 판타지 소설을 집필했다고 하면 사실 누가 믿겠냐만은...
그렇게 연애소설 읽다가 징계를 받은 관리에서 왕의 장인이자 권력의 중심에 도달했던 김조순.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시의 명사로 이름이 높았고, 사후에는 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춘추관성균관관상감사로 칭해질 정도로 그의 권력은 대단했다.
허나 재밌게도 그는 생전의 판서급 자리 이상의 벼슬에 오른 적이 없었으며, 정조가 죽은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기 보다는 주로 독서를 하면서 삶을 보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해서 조선의 역사에서 흑막으로 움직였던 것인지, 정말 소설을 좋아하다가 운 좋게 그 자리에 도달했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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