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스웨덴 국왕인 카를 16세 구스타프
사실 그의 조상은 스웨덴인이 아니다.
그의 조상은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프랑스의 평민출신 장군으로, 한때 나폴레옹의 최측근이었음.
그는 프랑스인이지만, 뜬금없게도 스웨덴 국회의 추대를 받아 스웨덴 국왕 카를 14세로 즉위함.
사실 유럽에서는 외국인이라도 자기네 왕으로 추대해서 얼떨결에 왕이 되는 케이스가 많았음.
(독일 하노버 공작인데 영국왕이 된 조지 1세, 덴마크 왕족인데 그리스왕이 된 요르요스 1세 등등)
그런데 베르나도트의 추대는 유럽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사례임. 본디 유럽에서는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해도 왕으로 추대를 하려면 선대왕이랑 혈연이 옅게나마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최소 외국 왕족 신분이어야 했음. 그래서 어쩌다 왕이 되는 케이스도 이미 다른 나라의 군주거나 왕족이었음. 그마저도 정통성 부족하다고 허구한날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던게 유럽의 전통이었다.
(프랑스군 원수시절의 베르나도트. 그는 남프랑스 출신으로, 북유럽인 스웨덴인과는 확연히 이질적인 남유럽적 외모를 가졌다.)
반면 그의 집안은 나름 중산층이긴 했지만, 왕족은 커녕 귀족조차도 아닌 완전 평민 신분이었음. 이 사람이 출세하게 된 계기도 프랑스 혁명으로 왕 뚝배기를 깐 혁명군 경력 때문인데, 당연히 젊을때는 열렬한 공화파 출신이었음. 프랑스 혁명 때문에 전유럽귀족들이 치를 떨었던 걸 생각하면 그가 왕이 된 건 되게 놀라운 일.
물론 나름 스웨덴쪽에서도 계산이 깔린거였음. 당시 스웨덴 왕 카를 13세는 고령에다 후계가 없어 왕실이 계보가 끊기게 된 상황이었음. 그래서 스웨덴 국회는 유럽 왕실들의 전례에 따라 외국에서 차기 왕을 모셔오려고 후계자들을 물색하고 있었음.
마침 스웨덴 국회는 프랑스를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원했고, 베르나도트는 군사적 능력도 출중한데다 나폴레옹의 최측근이며 그의 가족관계(인척)라는 점이 작용해서 그를 차기 왕으로 추대하게 됨. (물론 일부 귀족들은 반발하긴 함)
어쨌든 그는 왕위제안을 받아들이고, 스웨덴 왕실전통에 따라 가톨릭에서 루터교로 개종하고 카를 13세 국왕의 양자로 입적함.
원래 스웨덴은 그를 가교로 하여 프랑스와 우호를 맺으려고 했음. 그러나 스웨덴의 대프랑스 외교는 결국 핀란드문제로 틀어져버리고, 나중에는 베르나도트가 직접 본인의 은사인 나폴레옹과 전쟁까지 함.
(라이프치히 전투, 베르나도트는 여기서 연합군의 지휘관으로서 참전하여 나폴레옹군을 격파한다.)
프랑스와 전쟁을 치루면서 그를 데려온 목적이 상실되었지만, 스웨덴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태어난 조국과 전쟁이라도 불사하는 태도를 보이니 오히려 국내 귀족 일각의 우려를 종식시키고 당당히 차기 왕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됨.
그의 와이프는 나폴레옹하고 약혼까지 했다 나폴레옹한테 매몰차게 차여버린 걸로 유명한 데지레 클라리였음. (나폴레옹이 베르나도트를 중용하고, 스웨덴 왕자가 되는 걸 허락한 것도 베르나도트의 아내인 데지레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 아니냐는 말도 나옴)
그녀도 평민 출신이지만 남편이 스웨덴 왕이 되면서 얼떨결에 왕비가 됨. 근데 정작 본인은 스웨덴에 사는 걸 무척 싫어해서 일생 대부분을 고국인 프랑스에서 보냄. 사실 데지레가 신분만 평민일 뿐이지 친정이 상당한 부잣집(부르주아)였기 때문에 오히려 스웨덴 왕궁이 춥고 허름하게 느껴졌을 거임...
(손자 오스카르 2세)
베르나도트는 왕이 되고 나서도 죽을 때까지 스웨덴어를 배우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스웨덴인으로 살려고 노력했음. 다만 재위 중에는 의회와 종종 마찰을 빚기도 했음. 그래도 그는 스웨덴에게 전쟁의 승리를 안겨다 주었고, 스웨덴의 노르웨이 통치를 확고히 하며 동시에 자국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 국민적 인기는 매우 높았음. 이후 그는 자식들을 스웨덴식으로 키웠고, 그 결과 베르나도트 가문은 단 두 세대만에 완전히 스웨덴화 됨. 베르나도트 왕조는 현재까지도 국민들에게 유서깊은 스웨덴 왕가로 자리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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