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가 있었다.
도시의 시초는 원래 우기로 다져진 거대한 밀림과 슾지대였다.
어느날 나타난 백인들이 나무를 벌목하고 불도저로 땅을 밀어버린 후에, 사람들이 물밀듯이 이곳에 밀려들어왔고 도시는 번창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전깃줄이 도시의 하늘을 뒤덮었다.
그 후에 전화와 인터넷이 도로를 따라 들불처럼 번져갔다.
무더운 날씨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이클론만 아니라면 아무도 이 도시가 원래는 밀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멘트가 덮어버린 비밀조차도.
"부우웅."
검은 매연과 함께 한대의 트럭이 도시를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이, 이제 왔나, 조지."
트럭운전수는 한껏 미소띤 얼굴로 오랜만에 만난 이웃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석탄과 철강 등 귀중한 자원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실어 날랐다. 남자역시 문명의 전달자였다.
그래서 이 도시-글로리아 시티의 어느 누구도 남자가 한때는 이 숲에 살았던 사람머리 사냥꾼의 후예라는 사실을 몰랐다.
사람머리 사냥꾼의 문신은 얼굴에서 팔뚝으로 옮겨갔고, 팔뚝은 소매에 감춰져 있었다.
사람머리 사냥꾼들이 세상에서 밀려난건 백여년전의 일이었고, 남자도 이 도시가 아닌 저 먼 시골에서 태어났다.
점차 세상은 문명화되었고, 더 이상 머리 사냥은 자랑이 아니었다. 사람머리사냥꾼의 후예들은 학교를 다녔다.
남자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대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트럭운전수였다.
남자는 자신의 자식들만큼은 대학을 나오기를 바랐다. 자식들의 삶은 자신보다 낫기를 바랐다.
남자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는 찬송가 소리가 좋았고, 인자한 얼굴의 목사도 좋았다.
그리고 약소하게나마 헌금함에 돈을 넣으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천국에 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희망도 품었다.
트럭운전은 고된 일이었다. 운전의 무사안전을 빌려고 십자가 묵주를 룸미러에 걸고, 조수석에는 성경책하나를 늘 놓아두었다.
남자는 잠을 쫓으려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큰소리로 따라 부르곤 했다.
어느 날, 남자는 운명처럼 글로리아 시티로 돌아왔다. 그 곳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남자의 가족은 글로리아 시티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는 도시에서 어딘가 낯익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머리보다, 남자의 피가 그 사실을 빨리 알아차렸다.
남자의 집 근처에는 커다란 쓰레기처리장이 있었다. 남자는 트럭을 끌고 지나가다가 요의를 느끼고 멈.춰. 섰.다.
남자는 쓰레기장에서 바지를 내리려다가 이상한 돌을 하나 발견했다. 돌은 원래 반듯하게 세웠던 것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땅에 파묻혀 있었다. 돌 표면에는 화살과 집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팔뚝을 걷어보았다. 남자의 팔뚝에 있는 문신과 같은 것이었다.
"설마 여기가 조상님의 묘였단 말인가?"
남자는 당황했다. 남자는 삽을 가지고 와서 무덤을 팠다. 남자는 유골이 든 항아리를 발견했다.
남자는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안고 트럭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날이 어둑해져가고 있었음에도 남자는 쉬이 트럭을 몰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상의 유해는 신성한 곳에 묻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더러운 쓰레기장에 묻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머리사냥꾼 부족은 죽은 자의 영혼을 두려워해서 마을에 시신을 묻는 법이 없었다.
보통은 먼 곳에 묻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돌에 그려진 문양은 "왕"의 것이었다. 보통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신성한 절벽에 묻혀야 정상이었다.
이렇게 쓰레기처럼 유해가 버려진 왕은 남자가 알기로는 단 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한참만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남자는 모든 것을 비밀로 안고 가기로 했다. 남자는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몰래 조상의 장례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어쨌든 이렇게 조상의 유골이 쓰레기더미 속에 누워있게 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트럭을 몰고 이 동네 교회로 향했다.
유서 깊은 곳으로, 글로리아 시티가 글로리아 타운이었던 시절에 세워진 곳이라고 했다. 남자는 그 교회를 좋아했다. 깨끗하고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목사한테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을지 상의할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에 대충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생각이었다.
남자는 유골항아리는 트럭에 두고 내렸다. 남자는 모자를 벗어들고 교회에 들어갔다. 때마침 목사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 교회의 목사는 항상 겸손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될 자질구레한 일까지 자신이 도맡아 할 정도로.
목사는 막 예배당에 들어온 남자를 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숨을 골랐다.
'이교도 조상의 유해를 어떻게하면 기독교식으로 최대한 간략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남자가 이말을 꺼내려는 순간 남자의 눈에, 목사의 팔찌가 보였다. 팔찌는 이곳 원주민의 공예품이 확실했다. 팔찌는 돌을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팔찌의 겉 표면에는 화살촉과 집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팔을 쓰다듬었다. 어쩐지 팔에 새긴 문신이 아려왔다.
남자는 그 팔찌가 어디서 났는지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거요? 이건 제 고조할아버지의 유품이랍니다. 고조할아버지도 저처럼 이곳에서 선교 사업을 했지요.
이곳 원주민들이 감사의 표시로 줬다더군요."
"그랬군요."
"결국 선교 도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순교하신 거군요."
"그런 셈인가요?"
목사는 허허허 하고 웃었다.
남자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목사님, 예전부터 목사님을 저희 집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상의할 것이 있으니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 아내가 맛있는 요리를 할 겁니다."
"상의할 거라뇨?"
"집안에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목사님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상의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목사는 어리둥절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목사는 남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는 항상 꼬박꼬박 헌금을 내고, 이 동네의 자원봉사에도 참여하곤 했으니까.
남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에 걸려 있던 아들놈의 야구 배트를 들었다. 남자는 목사의 머리를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목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남자는 목사를 창고로 데려갔다. 창고에는 남자가 작업대로 쓰던 넓고 평평한 돌이 놓여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머리 사냥꾼들이 적의 머리를 다듬던 작업대였다. 평소에 남자는 이 작업대에서 침대나 걸상 같은 가구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나무토막이 아닌 다른 것을 자를 예정이었다.
남자가 목사를 작업대에 올려놓자마자 목사는 신음하면서 깨어났다. 목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요? 대체 이게 무슨 짓이요?"
"목사님, 전 곧 당신을 죽일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워낙 부드러워서 목사는 남자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목사님을 죽여야 해요. 왜 그런 말이 있죠. 인과응보라고요."
"무, 뭐라고요?"
목사는 눈을 크게 치떴다. 남자는 손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한 백이십 년 전쯤 이야기죠. 목사님의 선조되시는 분이 이땅에 전도를 하러 오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우리 조상님-왕께서는 목사님의 선조를 보자마자 바로 죽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무엇때문인지-자만심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외경심 때문인지 내기를 하기로 했지요.
날씨를 알아맞히는 내기였어요. 지는 쪽은 무조건 죽는 내기였습니다.
대신 이기는 쪽은 우리 부족을 가질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쪽 조상님이 속임수를 쓰셨답니다. 라디오로 일기예보를 미리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조상님은 죽임을 당하셨답니다.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돌아가셨지요.
우리 가문은 그 후로 복수를 다짐하면서 지내왔답니다. 혹시라도 그 원수를 만나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요.
전 이런 전통이 싫어요. 사람을 죽이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전 피 튀기는 게 싫어요. 너무 무섭고 더럽거든요.
감옥에도 가기 싫고요.
형제들은 이런 저를 겁쟁이라고 놀려대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설마하니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목사님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전 목사님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목사님이 그 팔찌를 하고 있는 걸 본 거예요. 그게 어떤 건지 목사님은 모르셨겠지요. 그건 ‘왕’의 팔찌였어요.
목사님의 조상님이 우리 조상님인 왕을 죽이고 나서 뺏은 거였어요. 목사님은 그걸 무척 자랑스러워하시더군요.
전 그냥 지나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싫은 전통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게 있는 법이거든요.“
남자는 이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우비 단추를 채웠다. 목사는 눈을 깜빡이며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제 전 목사님을 토막토막 쳐내야 해요. 제 형제들이 볼 수 있도록 전리품도 챙겨야 하죠.
과거에는 적의 머리를 푹 삶아서 뼈를 제거하고 말려서 집 현관에 걸었습니다만, 요즘 세상에는 그럴 수 없죠.
대신 목사님의 눈알을 뽑아서 포르말린 병에 담가야겠어요. 그게 부피도 적고, 작업도 편하죠.”
목사는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이고, 목사님.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저도 이런 건 싫다고요.
어차피 목사님은 천국에 가실 테니,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잖아요.
그래요, 목사님의 후손들은 목사님이 순교하셨다고 말하면서 자랑으로 삼을지도 몰라요.
목사님이 조상님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렇지만 저는...."
남자는 말을 삼켰다.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전기톱을 들었다. 전기톱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날 저녁, 남자의 아내는 특별한 요리를 내왔다. 진한 소스 요리였다.
두 사람은 경건한 얼굴로 마주 앉아, 소스 속에서 갈비뼈를 꺼냈다.
그들의 발밑에서 잡종견 한 마리가 꼬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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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곳에 썼던 글을 다시 다듬어서 올려봅니다.
어쩌다가 맞닥뜨리게 되는 불운과, 필연을 가장한 폭력을 묘사해봤습니다.
-그런데 왜 "요의를 느끼고 멈춰섰다."에서 "요의를 느끼고 뿅뿅."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억지로 중간에 점을 넣어서 표기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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