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아트 게임. 직접 거리의 아티스트가 되어 NPC들에게 그림을 파는 게임이다. 거리에서 시작해서 돈 벌어 출세하면 엔딩!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메뉴 이름도 "NEW CAREER"다. 엔딩 없이 영원히 그림 그릴 수 있는 무한모드도 있다. 한국어도 지원한다. 아트하는 게임인데 내가 폰트가 깨지는 건지, 굴림체로 안 예쁘게 나와버려서 영어로 했... 다가 다시 한글로 바꿨다. 모국어는 사랑이니까.
게임에서 나의 이름은 '파스포투트'. 제목이 아티스트의 이름인데, 프랑스어라 정확히 어떻게 읽는 걸지 궁금하다. 지금은 한국어 설정에서 번역되는 이름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인생극장 컨셉인 것 같다. 1막부터 3막까지 있고 에필로그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1막은 파리의 길바닥. 벽돌로 작품을 세워놓을 수 있게 준비해 뒀다. 그림 그리다 바로 누워 잘 수 있는 허름한 공간이 전부다. 그림 하나로 먹고 사는 헝그리 정신 가득한 아티스트가 되어 보자.
이젤을 클릭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처음엔 펜모드만 있지만 장소가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툴이 하나씩 추가된다. 하지만 펜 말고는 도전 과제 외엔 쓸 만한 데가 없었다. 내 창의력이 부족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림을 여차저차 그리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작품의 이름을 적을 수 있다. 그림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제목 달아두는 것도 귀찮아진다. 무제로 그냥 내놓을 수 있지만 정성 들인 그림에는 이름을 붙이게 되곤 했다.
와콤 저렴이 태블릿이 있어서 사용했는데, 공들여 그리다가 관뒀을 땐 마우스로 대충 그렸다. 손오공도 그려보고 우리집 야옹이들도 그려보고 남편도 그려보고 했지만 NPC들 취향엔 잘 안 맞는 것 같았다. 고양이 정말 안 팔린다... 핑크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관두라지. 심플한 패턴을 주로 그렸더니 그나마 좀 팔리더라. 맘에 안 들면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불평 불만들을 엄청 한다. 욕을 한 바가지 먹고 나면 처음엔 화가 나다가, 다음엔 요구사항에 맞춰 그려보게 된다. 그럼 대체로 팔린다. 그럼에도 안 팔리기도 하는데 내 그림을 버리는 방법도 있다. 전시 공간이 한정적이므로 포기하고 버리는 것도 답이다.
다행히 내 첫그림은 바게트맨이 사 갔다. 일정 스타일로 그리면 내 그림이 취향에 맞는 NPC가 계속 사 간다.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고객은 거래를 거절할 수도 있다. 그림 그리는 와중에도 좌측 상단에 메시지가 뜬다. 거래 알람은 계속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사람이 곧 올 거라는 안내가 있고 몇 번의 거래가 더 진행된 후, 딱 봐도 비평가 같은 남자가 왔다 간다. 나에 대한 비평이 신문에 실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역시 예술의 세계는 평론 하나에 인생이 바뀐다. 영어로 보면 되게 그럴 듯하게 오는데, 한국어로 바꿔 놓으면 이렇게 안 예쁜 줄글이 배달된다.
내가 겪은 2막과 3막의 모습. 총 4가지 엔딩인데 2막에서 한 번 나뉘고, 3막에서 한 번 나뉜다. 내가 탄 루트의 2막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이 나에게 투자하고, 그가 지원한 작업실에서 일하게 되는 구조. 나는 돈 되는 걸 족족 팔아서일까 사장님에게 선택 받아 디자인 회사로 왔다. 나와 같은 2막에서도 왕실로 갈 수도 있는데, 디테일하고 화려한 그림을 잘 그리는 금손 유저들은 아마 왕실을 자연스럽게 겪을 것 같다.
작가정신으로 보자면 공통된 부분이 있다고 판단, 앤디 워홀 그림들을 모작해봤더니 사장님 취향에는 안 맞는지 끝까지 안 팔렸다. 우리 사장님은 심플하고 시원시원한 그림을 좋아하시나 봄... 애초에 다른 2막은 아마도 집세를 못 냈을 때의 거렁뱅이 루트 같다. 여기서 이어지는 3막 루트는 좀 더 현대미술에 가까운 난해한 작품이 사랑 받는 편인 것 같다.
엔딩은 모두 50년 뒤의 전시회를 보여준다. 어떤 엔딩을 맞더라도 결국은 인정 받는 멋진 엔딩. 하지만 나는 황금만능주의에 찌든 그림팔이가 되었다.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와는 다른 듯하지만 어쨌든 돈은 많이 벌어서 전시회에 관람객도 많고 거대한 황금 트로피도 놓였다. 사장님이 절 키워주셨어요!
모든 엔딩을 보면서 큰 돈도 벌고 욕도 한참 먹으면 남은 과제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게임을 하다 보면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보통의 예술가들이 겪을 수 있는 일이겠구나 싶은데, 그림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 이 게임을 하면 왠지 마음이 헛헛해질지도 모르겠다. 난 그림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지만, 태블릿으로 낙서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이 꽤 재밌었다. 그림 그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만든 게임처럼 보이니, 그런 분들도 이 게임을 하면 응원 받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더 재밌는 게임이 세상에 많지만, 이 게임은 특별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 개인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https://realkkan.blog.me/221117675065 (2017.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