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할인마라고 불리는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꾸 사고 싶은 것들이 하루에 최소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될 것만 같아서 20대엔 자제했던 스팀의 세계로, 30대가 되어서야 빠져드는 중. 짤막하게 적당히 시간 들이면 엔딩 한 번 볼 수 있는 게임들이 끈기 있지 못한 성격에 잘 맞는 것 같다.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지만 여러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주기엔 잘 만들어진 인디게임을 해 보는 것만큼 적절한 방법이 없는 듯. <에피스토리>는 55% 할인이 적용된 데다, 맥에서 플레이할 수 있어, 시댁에서 맥북으로 할 요량으로 구매해서 갔다. 시작하자마자 너무 뜨거워지는 맥북을 혹사시킬 수 없어서 집에 와서 해야 했지만.
종이책 콘셉트와 타이핑을 이용한 RPG. 여우를 탄 소녀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거의 쿼터뷰지만 비주얼을 극대화해야 하는 주요 경로나 챕터 인트로 등에서는 다른 각도로 보여주기도 한다. 타이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 키도 키보드로 움직여야 한다. 마우스를 병행해서 쓰는 게 불편한 게임이라, 메뉴에서는 마우스 지원을 하기도 하지만 키보드로도 메뉴명을 입력해서 이동할 수 있다. 워프 할 때도 던전 이름을 입력해서 이동하는 식. 게임성은 한메타자 베네치아를 영타모드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빠르게 다가오는 영타를 입력해 생존한다는 것에선 똑같다. 하지만 타자를 치면서 경험하는 것은 훨씬 상위 수준.
그래픽이 정말 멋지다. 맵이 열릴 때, 새로운 타입의 지역을 발견할 때마다 이 게임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단, 1060 그래픽카드에 16기가 메모리인데도 가장 상위 그래픽인 Fantastic을 쓰면 다소 버벅거린다. 플레이할 때 버벅거리는 건 아닌데, 맵을 촤라라 하고 열 때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퀄리티는 좋다는 역설도 되려나. 불편한 수준도 아니고, 그래픽이 반 이상인 게임이라 그냥 최상위 옵션인 Fantastic으로 플레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홀하지 않은 내레이션도 훌륭하다. 시청각이 풍요로운 작품.
타이핑으로 여러 장애물과 적을 물리치다 보면 레벨이 오른다. 오른 레벨 포인트는 맵을 해금하는 기준이 되고, 플레이하며 얻는 업그레이드 포인트로 스킬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스토리는 Bridge 맵과 7개의 던전에서 이어진다. 모든 던전을 열지 않아도 엔딩을 볼 수 있다. (엔딩 보고 광산 들어간 1인이 여기 있어요!) 엔딩은 생각보다 너무 허무했다. 간절하게 기억을 찾던 소녀의 분위기와 엔딩이 너무 이질감이 들었달까. 흡족한 엔딩은 아니었지만, 게임 플레이 과정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큰 불만은 아니다. 딱히 대단한 결말을 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도 같고.
던전에서는 4가지 속성의 공격을 얻게 되는데, 전기를 쓰는 Spark와 불을 쓰는 Fire, 얼음공격인 Ice, 바람을 이용하는 Wind가 있다. 기술 속성을 변경할 때에도 키보드로 입력해서 전환한다. 여러 타입의 다가오는 적을 빠르게, 알맞은 속성기술로 공격해야 하는 게 이 게임의 가장 큰 게임성이 아닐까. 퍼즐도 간단하고 난이도고 낮은 편이지만 이 기술을 바꾸는 것 때문에 쫄깃해지는 때가 종종 있다. 난이도를 조금이나마 높이고 싶다면 Spark 기술을 자제하는 게 좋다. 다른 스킬과 비교도 안 되는 사기술. 당연히 나는 Spark를 애용해서 속성별 도전과제는 Spark만 달성했다. (...)
아쉬운 점을 몇 가지 꼽자면 앞서 말한 그래픽 성능 최적화 외엔 지도 보기가 불편하다는 것 정도. 지도 진입도 불편하고 매번 지도를 열어서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 게 귀찮았다. 지도에서 둥지의 완료/미완료 UI도 친절하지 않고. 별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니까 곁들여 보자면, 예쁜 여우에 비해 안 예쁜 소녀도 아쉽다. 확대샷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메뉴 디자인도 그렇고, 2D는 취향에 살짝 안 맞았다.
할인되지 않은 원래 가격을 생각하면 섭섭할 수 있지만, 반복되는 단어도 많고 스토리가 대단히 긴장감 있는 게 아니니까 조금 더 짧아도 괜찮았지 않았을까. 지역별 난이도도 그리 나지 않는 마당이니, 6개 지역 정도로 마무리했으면 딱 좋았을 것 같다. 도전과제는 노가다가 필요하거나 능력 밖의 일인 것들을 포기했다. 자연스럽게 획득한 것들로만 해도 꽤 상당수. 대충 해도 도전과제 이 정도를 달성하니 왠지 마음도 든든해지는 게임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게임의 최대 장점은 영타 속도의 증진. 전투적으로 영타를 치다 보니 엔딩을 보고 나면 실력이 늘어버릴 수밖에 없다. 큰 쓸모는 없어도 뭔가 더 얻어서 기분은 좋다.
※ 개인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https://realkkan.blog.me/221111394791 (2017.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