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얘기니까 이미 몇년 전이다. 내내 속으로만 기억했던 이야기인데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말하기엔 영 꺼림직하고 다소 야하고 더러운 얘기라 이곳에 털어놓는다. 짧은 이야기지만.
중3 여름에 우리 학교(산을 깎아 그 중턱에 세워진 영남의 한 여학교임)의 3학년들 사이에서는 분신사바가 유행이었다. 그때 한창 우리들만의 비밀의 끈끈 우정의 세계에 심취해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자주 모여 그것을 했다. 어쩌다 연필이 움직이거나 하면 우린 모두 즐거움과 섬뜩함이 섞인 비명을 질렀고 그 섬뜩한 즐거움을 마음껏 즐겼다.
솔직히 우리들에겐 분신사바는 단순한 놀이이지 대단한 의식은 아니었다.
7월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친한 친구 A, B와 토요일까지 모여 그 의식을 행했다. B는 자칭 기가 센 사람이었고 사실 그때 친구들 모두 그것을 믿고 B를 경외했다. 체육관이 열려있으면 늘 그랬던대로 거기서 하자 했으나 문이 잠겨져 있었으므로, 학교 체육관 앞에 있는 스탠드에서 했는데 그날 역시 몇번을 해도 잘 안 되었다. 그러니까 연필이 움직이지 않았다. 날도 덥고 괜히 누군가에게 들키면 대답하기 곤란하기도 해서(지금 생각해보면 그 더위에 누가 그곳에 오겠느냐만은.) 우리들은 딱 세번만 더 해보고 그만두자 했다. 두번쯤 하자 오셨습니까 하는 우리의 물음에 연필이 움직였다. 우리는 익숙하게 물었다. 여자입니까? X 그럼 남성입니까? X 성인입니까? X 원래 이 학교에 있던 귀신입니까? X 몇 번 질문을 반복하자 연필이 화가난 듯 제 스스로 X를 막 그었다. 정말 거칠게. 우린 쫄았다. 수십번을 했으나 연필이 움직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이렇게 오래 간 적도 없었고 이렇게 강한 힘이 연필을 움직인 적도 없었고.
우리는 쫄았고 의식을 끝내도 되겠냐 물었다. 답은 X 또 물었다. 또 X 우린 진심으로 쫄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진짜 쫄아서 B가 끝내겠습니다. 하고 그냥 연필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더이상 연필은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는 그 종이를 찢어다가 근처 하수구에 밀어넣었다. 그 이후로 나와 절친 A는 분신사바를 그만두었다.
그날부타 내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어깨가. 처음엔 그냥 무거운 것을 맸을 때마냥 아프더니 10월 쯤 되자 10분 이상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아파서 엄마한테 몇번이고 제발 병원에 가자 청원해서(아빠는 성장기라 그렇다는 개소리를 했다.) 병원에 갔더니 병원서는 척추측만증이 의심된다면서 X-레이 사진을 찍었다. 내 척추는 멀쩡했다. 앉은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럴수도 있다며 의사는 물리치료를 처방했다.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래도 강도가 더 심해지진 않아서 참았다.
그리고 11월 쯤이 되자 자주 꿈을 꿨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기본 레페토리는 알몸의 남자가 하얀 양말만 신은 알몸의 나를 바닥에 일(1)자로 뉘여서 교합하려는 꿈이었다. 장소도 남자가 누구인지도 늘 달랐다. 우리집 현관이었을 때도 있고 우리집 티비 앞이었을 때도 있었다. 어떨 땐 초등학교 때 호감을 가졌던 남자애 였을 때도 있고 아빠였을 때도 있었다. 모르는 배가 나온 성인 남자였을 때가 가장 많았다. 정말 단편적인 꿈들이었는데 꿈에서 나는 교합 전부터 공포와 함께 큰 불쾌감과 아주아주 옅은 쾌감을 느꼈다. 세네번은 교합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꿈 속의 남자들은 맨날 "향기'나 '더러워.'나 '사랑'라고 끝없이 중얼거렸고 나는 엄마랑 같이 자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리 자주 꾸진 않아서 신경 안 썼는데 1월 말인가 초인가 꽤 특이한 꿈은 꿨다. 검은 공간에 조선시대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배게가 두개 양쪽에 놓인 바닥에 앉는 방석형 의자? 가 있고 거기에 창백하고 목이 얇고 살이 조금 더 붙는다면 잘생겼을 법도 한데, 싶은 남자가 그 옛날 일본 귀족 복장? 바지든 소매든 몸통 부근이든 공기가 잔뜩 든듯 부풀어 있고 머리엔 끝이 삼각형인 모자같은 것을 쓰고 푸른색이 도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코가 조금 길었다. 눈이 얇았고 얼굴 전체로 웃고 있었다.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나한테 '씨를 품었다'고 말하고 잠에서 깼다.
2월에 졸업한 후엔 그 꿈을 안 꾸는데 뭔 꿈인가 싶고 그냥 꿈의 우연의 일치인가 싶고 한창 성욕이 불타오르던 시기라 그런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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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래요. 여성임. | 17.02.16 00:3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