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길어질 것 같아 아예 글로 씁니다.
저는 올해 31세로 뚜렷한 직업 없이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월에 25만원씩 받고 있으니 솔직히 직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유예기간도 제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지만 완치약이 없는 크론병을 앓고 있어 언제 나을지 장담도 어렵고.
그런 저도 무기력증 환자였습니다. 저는 주로 죽음에 대해 굉장히 쉽게 생각했는데,
사는 게 지겹다기보다 그냥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죽고 싶었습니다.
무로 돌아가 평생 잠만 잔다면, 모든 인간관계를 신경쓰지 않고, 그런데서 오는 상처도 받지 않는.
완벽한 공간으로 떨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러다가 이 병을 만났고,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된 순간에 와서야 무기력증이 해소됐습니다.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장을 잘라냈고, 장루를 달아 제 장이 배설하는 걸 지켜봤죠.
그 때 제 무기력증은 완치가 됐습니다. 어느 걸 해도 즐겁고, 어느 걸 해도 신나고, 하루가 아까울 정도로 변했죠.
지금은 그 때만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뭘 하든 신납니다. 아직도 제겐 많은 부분이 결여되어 있거든요.
그전의 제 삶은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충만한 삶. 건강한 신체에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고,
돈도, 부모님도.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삶.
그런 삶. 평범하다 못해 아무런 자극이 없는 삶에선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더군요.
세상을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끊임없는 책임감을 강요받고, 새로운 것을 도전받는 사람들입니다.
광고회사, 일에 치이는 중소기업 사원, 하루를 전부 쪼개서 쓰는 공무원 준비생들, 그리고 결혼해 아이가 태어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삶엔 무기력은 없습니다. 무기력보단 오히려 과로가 문제겠죠. 그 사람들에겐 무기력은 사치입니다.
무기력해 질 시간도, 그런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으니까요. 만약 당신의 손에 회사의 명운이 달린 프로젝트가 걸려있다 칩시다.
이 일 외에 다른 걸 생각할 틈도 없게되면, 당신의 삶은 지루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그 것들을 해결하고 맞는 휴식은 달콤하기 그지 없어서, 1분 1초가 아깝게 느껴집니다.
허나 휴식이 많고, 자신만의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겹치게 되면
어느순간 지루해지고, 질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고, 자기 자신이 이상하지 않은가 걱정하게 됩니다.
제가 두 달 간 병원에서 금식을 했을 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조차 마시지 못한 채로 링거를 꽂고 있을 때,
온갖 종교서적을 탐독했습니다. 불교부터 시작해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근본 원리. 그런 것들이요.
불교는 무소유를 중요시합니다. 사실 무소유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자신에게서 놓아버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것은 곧 인간에게 있어선 어딘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여되면 결여될수록 그 사람은 반대로 충만해집니다.
내 먹을 물이 없어 약수터에 가서 물을 길러오는 사람, 돈이 없어 게임을 1년에 하나밖에 사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겐 어떤 것에 질린다는 일이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기력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어릴적을 떠올려보세요. 그 때는 부모님이 사주신 게임 하나를 수십번 클리어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스스로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야훼에 의한 유토피아가 사후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에 가기 위해서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지 않으면, 사후에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실한 신도들은 자신의 죄를 씻으려 노력하며,
깨끗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하루하루가 어떤 일로, 어떻게 보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지라
삶이 지겹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이 새롭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지겹게 느껴진다. 자신을 힘들게 하면 할수록 더 빨리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알바를 2개를 잡아보세요. 하루에 2번 알바를 하게 되면 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주말에 가끔 맞는 달콤한 휴식은 지겨워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지마세요.
밑에도 적어놓았지만, 스스로를 힘들게 하세요.
폰도 없애버리고, 게임들도 전부 팔아버리세요.
정작 필요할 때 손에 잡히는 것들이 없다는 상실감을 참고 견뎌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인생도 풍요로워집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진 게임이 너무나 재미있을 때,
다시 게임을 잡으세요. 게임, 블로그, 인터넷. 그 모든 것들은 당신의 숙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