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금태, ‘서브컬쳐’ 게임이 메이저에서 살아남는 법
‘그랜드체이스’, ‘엘소드’, ‘클로저스’ 이들 세 게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애니메이션풍 디자인과 캐릭터성을 강조했다는 것, 화려하고 만화적인 액션을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류금태가 개발에 관여했거나 디렉터로 진휘봉을 잡았던 작품이라는 것.
경력 내내 뭇 게이머의 ‘덕심’을 저격하는데 집중해온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팬덤을 지닌 디렉터’로, 일각에서는 제갈금태라고까지 불리며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새로이 스튜디오 비사이드를 설립하고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류금태 ‘카운터사이드’, 진짜 서브컬쳐 게임 보여주겠다) 반응에서도 독자들 사이에 자리한 기대감을 확인 가능하다.
그런 그가 24일(수),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EXON Developers Conference, NDC)를 통해 그간 국내 게임 업계에서 유독 자신만의 색이 강한 작품을 만들어온 과정과 소회를 털어놓았다. 강연 제목은 이른바 ‘살아남는 서브컬쳐 게임 만들기’. 과연 스튜디오 비사이드 류금태 대표, 아니 제갈금태의 생존 비결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살아남은 게임이란 무엇인가
류금태 대표는 “과거에는 오픈한 게임에 반드시 배울 점이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살아남은 게임에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고 운을 띄웠다. PC 온라인 시절만 해도 협소한 시장 규모에 비해 개발 리스크가 컸고 지금처럼 세련된 엔진도 없었다. 즉 온갖 악재를 뚫고 일단 오픈에 성공한 게임은 그만한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반면 작금의 모바일 시장은 개발 환경도 좋아지고 비용도 크게 절감되었다. 그러니 론칭 후 생존을 새로운 타산지석의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는 게임이란 무엇일까. 론칭 특수를 타고 잠시간 반짝이다 석 달만에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는다면 살아남았다 할 수 없다. 10~20년씩 서버를 열어 놓더라도 액티브 유저가 100명이 채 안된다면 그 역시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최소 5년 이상 서비스를 지속해오며 계속해서 유의미한 수준의 유저풀을 유지해야 생존에 성공한 게임이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대중적인, 메이저한 게임이다. 류금태 대표의 금번 강연은 아마추어나 소규모 독립 개발이 아닌 메이저에서 서브컬쳐 게임이 살아남는 법을 다루고자 한다.
유의미한 수준의 유저풀이란 바꿔 말해 서비스를 지속할 만큼 매출이 나온다는 뜻이다. 기존 개발비(대부분 빚)를 청산하고 인건비가 밀리지 않으며 조금 더 바란다면 차기작을 만들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 과연 이게 어느정도 액수일까. 메이저에서 게임을 개발하려면 최소 40명 정도 팀이 필요하다. 글로벌 서비스를 염두한다면 그 2배가 든다.
이제 구인구직 플랫폼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인당 평균 연봉을 4,000만 원으로 잡고 개발 기간은 대략 2~3년 정도로 설정하자. 세금, 복지, 장비, 퇴직금 등 부대비용은 연봉의 1.5배 정도로 추산하니 1인당 도합 6,000만 원이 된다. 개발팀이 최소 40명이니 24억 원, 개발 기간이 최소 2년이니 48억 원. 만약 2년을 넘긴다면 매달 2억 정도가 추가로 들 것이다.
이 개발비 48억 원을 게임 론칭 후 2년에 걸쳐 청산한다면 매달 채워 넣어야 할 액수는 2억가량이다. 여기에 추가 업데이트 및 차기작을 위해 개발팀을 유지한다면 마찬가지로 다달이 2억씩 든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모바일 게임은 매출을 100% 개발사가 먹는 구조가 아니다. 구글과 애플에게 앱마켓 수수료 때고 퍼블리셔를 썼다면 그쪽에도 수익을 나눈다.
결과적으로 개발사에게 떨어지는 돈은 총매출의 30% 이하. 그러니까 월 4억을 메우기 위해선 12억 이상의 총매출이 필요하고, 일수로 환산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4,000만 원은 벌어야 수지가 맞는다. 모바일 게임이 이정도 매출을 챙기려면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기준으로 20~25위 정도에는 자리잡아야 한다. 그것도 2년간 꾸준히.
서브컬쳐의 경쟁력, 재미와 매력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살벌한 메이저의 틈바구니에서 서브컬쳐 게임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류금태 대표가 꼽은 서브컬쳐의 최대 무기는 재미와 매력이다. ‘이 게임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개발자의 고민은 곧 ‘이 게임으로 어떤 재미를 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치환 가능하다. 일례로 ‘엘소드’는 당시로선 드물던 실시간 액션, 만화에서 가장 카타르시스를 주는 필살기의 구현, 캐릭터가 예뻐 보이는 횡스크롤, 빠른 거리 공방전이라는 재미 요소를 설정해두었다. ‘클로저스’는 여기에 8등신과 현실적인 배경, 어반 판타지(도시물) 더하여 발전시킨 경우였다.
어떤 점이 좋은 지 분석할 수 있는 재미와 달리 매력은 보다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다. 가령 아이돌 산업은 노래와 춤 외에도 가수들의 일상 담화와 동작 하나까지 전부 콘텐츠로 소모된다. 왜냐하면 매력은 재미와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고 감정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설령 새로 나온 앨범이 조금 별로더라도 내가 애정하는 아이돌이기에 돈을 쓰는 이치다. 매력이 있는 콘텐츠는 팬덤을 낳고 개발자가 실패를 겪었을 때 제 2, 3의 기회를 얻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리고 서브컬쳐 게임이 팬덤을 만들기 가장 좋은 콘텐츠가 바로 캐릭터다. 여타 장르가 액션이면 액션, 전략이면 전략으로 승부할 때 서브컬쳐 게임은 캐릭터가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은 비주얼에서 나온다.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지만 캐릭터는 외모가 우선이다. 현실성 같은 다른 조건이 캐릭터의 매력보다 우선시되면 안된다. 무대에 오르는 아이돌도 일상적인 옷을 입지 않는다. 캐릭터의 비주얼을 만들 때는 어떻게 매력을 나타낼지 고민해야 한다.
세계관도 중요하다. 물론 세계관을 짜는데 지나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 세세한 설정까지 관심 있는 이들은 이미 해당 작품의 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세상에 아이언맨과 헐크가 실존한다는 사람은 없지만 극장에서만큼은 ‘어디 뻥 좀 쳐봐. 앞으로 2시간 동안은 다 믿어줄 준비가 되어있어’라는 열린 마음으로 앉아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개발자는 여기에 호응하여 최대한 성의 있는 뻥을 쳐야 한다. 어쩌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개연성과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잘 그려진 캐릭터라도 그대로는 마네킹에 불과하다. 이 캐릭터가 정말로 게이머의 ‘덕심’을 자극하려면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 천년 전에 천족과 마족이 전쟁을 했든지 말든지 관심 없지만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피난을 갔는지, 누구와 사랑을 했는지, 친구를 저버렸는지는 궁금하다. 셰익스피어 이래로 인간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먹혔다. 류금태 대표는 워너원 리더 윤지성을 예로 들었는데, 세상에 멋지고 잘생긴 아이돌은 많지만 긴 연습생 생활 끝에 가까스로 데뷔한 극적인 서사가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카운터사이드는
이제껏 서브컬쳐 게임 생존기를 논했지만 사실 류금태 대표는 아직 살아남는 상태가 아니다. 분명 ‘엘소드’와 ‘클로저스’가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정작 독립 후 첫 작품 ‘카운터사이드’는 아직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술한 서브컬쳐 게임이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강연이 아니라 고스란히 ‘카운터사이드’의 개발 철학이 되는 셈이다.
‘카운터사이드’를 준비하며 류금태 대표가 내다본 서브컬쳐 게임 시장의 동향은 이러하다. 비실시간은 실시간으로, SD는 8등신으로 향상될 것이고 유저간 인터랙션이 훨씬 강력해질 것이다. 반면 터치 방식의 모바일 인터페이스와 레이턴시 문제는 계속될 것이므로 이에 영향을 덜 받는 게임 디자인이 필요하다.
즉 ‘카운터사이드’는 8등신 캐릭터의 실시간 액션을 추구하며 간결한 조작의 중, 대규모 전투를 지원할 예정이다. MOBA에서의 중앙 한타 싸움처럼 PC 온라인 게임의 가장 재미있는 요소를 간편하고 빠른 형태로 인스턴스화하여 제공한다. 또한 ‘소녀전선’, ‘페이트 그랜드 오더’ 등으로 서브컬쳐의 대중화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판단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장르 클리셰를 차용했다.
‘클로저스’가 현대의 이능력자를 다뤘다면 ‘카운터사이드’는 현대 전장의 이능력자란 컨셉이다. 일격에 대륙을 쪼개는 그런 압도적인 초능력자가 아니라 일반인보다 약간 강력한 이들이 주인공이다. 당연히 보병의 지원도 필요하고 전차에게 밀려 쓰려지기도 한다. 그런 전장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캐릭터 군상의 이야기가 ‘카운터사이드’의 최대 무기다.
끝으로 게임 개발자로서 소신이라 할만한 몇 가지 조언을 남겼다. 자신부터가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 것, 스스로 가치판단이 가능한 게임을 만들 것, 기획이 폭주할 때 제동을 걸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조언자로 둘 것, 그리고 당신의 게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할 것. 여기서 좋아해준다의 기준은 칭찬이나 욕이 아니라 그 게임을 하느냐 하지않느냐다. 즉 내 게임을 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핵심 유저층을 우선하라는 뼈 있는 조언인 것.
QnA
● ‘페이트’, ‘소전’, ‘벽람’ 등등 서브컬쳐 장르도 과포화 상태 아닌가
: 처음 ‘클로저스’를 만들 때도 이제와 ‘던전앤파이터’ 같은 걸 또 만들자고? 하는 투자측 반대가 엄청났다. 사실 어떤 장르가 과포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뜻이다. 장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걸 충분히 잘 다루어 완성도를 끌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차별화가 된다. 너무 아이디어에 매몰되지 말고 일단 좋은 게임을 만들어라.
● 서브컬쳐 유저층은 타 장르보다 강성이고 까다롭다는 이미지가 있다
: 어떤 게임이든 다소간 스트레스는 없을 수 없다. 나는 그간 운이 좋아서 여러 게임을 만들고 오래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게 문제겠나.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디렉터라 할 것이다.
● 서브컬쳐에 대한 이해와 애정 없이도 디렉터가 될 수 있을까
: 팀원은 이해와 애정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디렉터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그 디렉터 본인이 서브컬쳐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면 심각한 문제다. 개발자는 자신이 다루는 장르에 대한 가치판단이 가능해야 한다. 가령 FPS라면 빨리 달려야 더 재미있는지 집탄율이 높아야 재미있는지, 전략이라면 맵 타일이 팔각이 좋은지 육각이 좋은지 사각이 좋은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못한다면 가능한 사람에게 빨리 자리를 물려주거나, 아직 개발에 착수하기 전이라면 스스로 자신 있는 장르로 바꾸길 추천한다.
● 서브컬쳐 게임 개발자로서 ‘페이트 그랜드 오더’를 어떻게 보나
: 부럽다(웃음). IP가 지닌 잠재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임이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거대한 성공이 캐릭터에 대한 중요성을 업계에 환기시켜줬다고 본다.
● 모바일 게임의 게임 플레이 자동화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지
: 내가 PC 게임을 켤 때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투덜거리며 최소 1시간 이상 플레이한다, 하지만 모바일은 그냥 손가락으로 쓱- 내리면 게임이 꺼진다. 이탈이 굉장히 쉽고 빠르다. 이런 특성과 바쁜 현대인들의 삶을 고려할 때 게임 플레이 자동화가 앞으로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