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복잡성과 의욕의 밸런스, ‘드래곤 하운드’ 개발기
이현기 디렉터는 28년 동안 킹덤언더파이어 시리즈, 디어사이드, N3 등의 개발에 몸담은 베테랑 개발자다. 그는 데브캣에서의 드래곤 하운드 개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목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편의상 이현기 디렉터의 서술로 강연을 정리했다.
2013년 넥슨 입사날 PD 에게 그림 한장을 받았다. 앵그리 몬헌 버드라는 농담 같은 이름으로 말을 탄 기사가 드래그로 날아다니는 용을 맞추는, 이런 기획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Lua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일종의 드래곤 하운드 2D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이 초기 버전을 만들다가, 이 구도에서 용이 나를 공격하게 만드는게 많이 어려웠다. 그리고 활은 박력이 약해서 대포로 바꾸기도 했다. 이걸 한 2달 가량 만들고 다른 프로젝트로 가버렸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았다.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싶은데 무얼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다. 마비노기 듀얼을 마무리할 때 즈음해서 고민을 했다. 코드는 새로움이었다. 무조건 새롭다! 멋지다! 하지만 사실 경쟁할 자신이 없었다. 개발 속도도, 시장의 니즈도. 그리고 어느덧 나도 올드한 개발자가 되어서 이걸 따라갈 수 있나 싶었다. 그래서 아예 경쟁을 피해서 다르게 해보자 싶었다.
문제는 그거였다. 새로운 재미있는가.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고민은 마비노기 듀얼을 만들면서도 계속했던 것 같다. 이 즈음에 내가 생각하는 게임도 바뀌었던 것 같고. 그리고 존경하던 게임 개발자들도 모두 사라졌다.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대체 재미란 무엇인가, 사람의 가장 깊은 곳, 원초적인 부분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게 바로 날 것의 느낌, 사냥의 감각이었다. 마상 수렵이라는 행위가 뭔가 생존, 심장과 피의 박동, 살아있는 생명을 취하는 심심풀이를 떠난 사냥 같은 매력들을 고민했다. 포인트는, 살아있던 것이 죽어가면서 기계적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참치잡이 줄낚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고가의 참치를 낚기 위해서 상처없이 줄로만 참치를 낚는다. 참치가 낚시찌를 물면 배를 전속력으로 몰아서 참치를 몰고 그 배의 연기를 보고 다른 이들도 추측하게 된다.
그래서 앵그리 몬헌 버드로 돌아왔다. 문제는 용이 나를 어떻게 공격하는가 였다. 용이 움직이게 해야했다. 여기서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쓰기로 했다. 실시간으로 동작을 계산하여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미리 입력한 동작 없이 실시간 계산으로 걷게 하고, 날게 했다.
왜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일단 4족이 넘는 거대 몬스터를 미리 제작한 애니메이션만으로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또 다양한 몬스터를 추가하고, 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몸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 적용하고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도록 제작했다.
용이 움직이니 이제 말도 달리게 해야 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구현은 해냈다. 이 방식이 팀 작업에서는 어렵기 때문에 애니메이터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기초로 분석해서 이를 절차적 계산으로 그려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머신 러닝을 애니메이션에 적용하려고도 하고있다.
이제는 세계관이었다. 80~90년대 재패니메이션의 향수를 가진 세대에게 로망을 주고 싶었고, 또 처마, 함포, 용, 말, 부적 등등의 컨셉을 합치면 매우 멋진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결국 차이니즈 고딕 + 스팀펑크라는 컨셉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개화기 건물들과 홍콩의 구룡성채 같은 이미지를 생각했다. 이 컨셉 이미지들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러한 컨셉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이제 사냥, 전투를 구현해야 했다. 용이 제한없이 날아서 배경을 돌아다니고, 용이 실제 사냥감처럼 복합적인 행동을 하고 장기를 가지고 있고 등등, 너무 로망이었고 멋졌다. 우리가 가지고 놀던 다양한 장난감들의 로망을 생각했고, 물리적으로 정확한 것보다 그럴싸한 것이 더 멋지고 좋다고 생각했다.
무기의 로망이란 무기를 사용하고 작동할 때 절차적으로 무기가 작동하는 모습들, 작동의 피드백을 통해서 보다 실제 같아 보이도록 해야했다. 대포에서도, 가스나 폭발보다 발사 충격으로 떠오르는 먼지 같은 것이 더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긴 포연이나 바닥의 먼지가 실제로 플레이어와도 상호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익탄이라는 무기는 일종의 바닥에 박아넣어서 토템처럼 효과를 보는 장비다. 소화분말을 쏘아서 이를 지나가면 캐릭터 몸에 붙은 불이 꺼지는 등의 효과가 있다. 또 마을의 함포로 지원 사격을 해주는 것도 구현하고. 여러 무기들을 구현했는데, 유도가 되는 화차통, 용에게 꽂아 넣어서 피를 계속 빼내는 삽관식 무기도 있다. 또한 이미 공개했다시피 중화기를 사용하기 위한 중완이라는 장비도 있다.
장비가 있으니 장비를 사용할 대상, 용이 있어야 헀다. 용은 살아있어서 실제로 한쪽 눈을 파괴하면 그쪽 시각을 잃어서 그 방향의 플레이어들은 공격을 덜받게 되거나 하는 변화가 생긴다. 대동맥을 끊으면 피가 빠져나와 죽기도 하고, 폐나 뇌 등 급소 장기를 노려서 죽일 수도 있다. 이런 장기를 보여주는 장비도 만들었다.
탄이 피부를 뚫고 장기에 피해를 주는 구조를 만들면서 각 장기마다, 각 상황마다 특별하게 유리하고 불리한 장비 종류를 늘렸다. 어떤 무기로 어떤 장기를 노릴 것이냐가 중요하다. 용은 장기가 손상되면 행동 패턴이 바뀌고, 그만큼 진짜 사냥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걸 다 넣고 끓였다. 그게 작년 초반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복잡도와 싸우기 시작했다. 구현이 너무 어려워서 사람 잡을 지경이었다. 단 한줄의 대본이 장면으로서는 완전한 혼돈의 카오스가 되는 것처럼, 높은 구현 복잡도 때문에 정할 것이 너무 많았고 필요한게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몬스터 하나에 필요한 설정만 1400여개가 넘었다. 장비도 80여종 이상이 있었고 등등 변수가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개발팀의 경력과 노력으로 수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숫자 하나하나에 대해서 유저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복잡했다.
유저가 깊게 파고들고 오래오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처음부터 드러내면 안되고, 차근차근 드러나는 당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수치를 숨기고 숨겨서, 하나씩하나씩 만져보고 알아가게 했다. 때문에 드래곤 하운드에서의 스토리는 당의의 역할이다. 50시간짜리 튜토리얼이고, 물론 50시간 내내 콘솔 게임의 밀도를 유지하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콘솔 게임이라 치면 10시간 정도 되는 분량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플레이하고 버리게 되는 역할이다.
이렇게 지스타 버전을 만들었는데,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수많은 요소를 숨기고 전투 일부만 드러냈다. 이제는 이렇게 구현된 시스템 위에 콘텐츠를 쌓고 있다.
이렇게하여 느낀 것은, 먼저 생각의 공유가 어렵다는 것이다. 문서로서는 거의 공유가 불가능하고, 프로토타입으로도 매우 어렵다. 결국 완성품을 만들어봐야 공유가 되었다. 공유가 잘 안되면 사람들이 불안해하거나 무관심해졌다.
그리고 복잡도는 항상 생각보다 더 심했다. 만들어보지 않은 장르는 더더욱. 그래서 가능한한 최대한 단순하게, 더더욱 단순하게 만들고자 해야 했다. 또 목표보다 의도, 무엇이 아니라 왜 해야하는가를 정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항상 어렴풋이 생각하던 부분이긴한데 이번에 더욱 강하게 깨달았다. 만들어아햐는 무엇을 제시하면 사람들이 수동적이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는,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기 였다. 먼저 여유가 없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 시야가 좁아지고, 시야가 사람을 가둔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통 디렉터가 너무 바빠보인다 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짜증만 내고, 시야도 좁아졌고 그런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집중하되, 조금 더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 모순된 이야기지만, 보는 건 쉽지만 잘 이야기하기 어렵다.
게임을 만들면서 의견을 모을 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전에 재미있었던 것들이지 과연 이 게임에 어울리는지, 맞는지,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맥락을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의견을 주는 사람이 게임을 완성하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은 해석자다. 이는 타격감이 그 예다. 아직도 타격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공통된 요소는 내 행위에 대한 피드백이다. 뭐 식당에서 주인을 부르거나 하는 것처럼. 그래서 결론은 대미지 숫자였다. 처음에는 잘 넣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팀 테스트에서 넣었고 사람들의 경험 변화 폭이 가장 컸다.
오늘의 내용에서 굳이 방점을 찍자면, 너무 잘하려 하지 않기가 아닐까 한다. 이걸 깨닫는데 30년이 걸렸다.
Q&A
● 수익 모델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 사업부랑 함께 의논할 문제인 것 같다. 정액제는 힘들 것 같고, 부분 유료화 모델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 워낙 장비가 위압적이라 타고 있는 말이 불쌍해보인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일단 말 다리를 보다 굵고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 말을 무조건 튼튼하게 만들면 개인화기를 들 때 우스꽝스러울 까봐 걱정했는데, 일단 말의 다리를 굵게 해보고 있다.
● 몬스터헌터와 많이 비교되고 있는데 차별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지스타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게임을 몬스터헌터와 비교하면 감사할 따름이고, 몬스터헌터 짭이라고 말씀하셔도 괜찮다. 일단, 몬스터헌터와 쓰는 공간이 다르다. 몬스터헌터가 한 존 안에서 몬스터와 부대끼는 느낌이라면 우리는 보다 훨씬 넒은 지역에서 말을 타고 장비를 가지고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는 방식의 느낌을 주려고 한다.
● 이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우선순위에 둔 부분은 무엇인가?
전적으로 로망이었다. 그리고 돈. 돈은 벌어야지. 항상 로망을 생각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정말 가슴 설레고 즐거웠던 것인데 이제는 그런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희미해져버렸다. 그걸 되살리고 싶었다.
● 콘솔 버전 출시 계획은 있나?
콘솔은 당연히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 콘솔은 제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으니까. 하지만 돈을 많이 벌거나 벌 것 같아야 회사에서 허락해줄 것 같다. 항상 바라고 있다.
● 최적화와 버그 수정은 진행중인가?
최적화 작업은 이미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팀에서 최적화 작업을 시작하니까 별별 것이 다 나오고 있다. 버그는 생각보다 적었다. 하지만 별 수 있을까. 오픈하면 또 버그가 나올 것이고 그때 빠르게 대처하는 수 밖에.
● PVP 콘텐츠는 고려중인지?
PVP 도 만들고 싶지만, 대포로 사람 동맥을 끊고 이런 건 좀 너무 심한 것 같고, PVP 는 별개의 게임으로 봐야할 것 같다. 만들고는 싶지만, 만약 한다면 사람끼리는 내장 같은 요소는 없을 것이고 사람끼리 대포를 쏘는게 괜찮을까 싶기는 한데, 뭐 총격전 외에도 경주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