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과는 다르다, RPG 요소 도입한 ‘파 크라이 뉴 던’
태평양 외딴 섬에서 히말라야 산맥까지, 총과 싸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던 ‘파 크라이’가 드디어 포스트 아포칼립스까지 섭렵했다. 유비소프트 코리아는 14일, 자사의 신작 FPS ‘파 크라이 뉴 던’ 출시를 하루 앞두고 강남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난해 3월 출시된 ‘파 크라이 5’는 ‘더 디비전’에 이어 유비소프트 역사상 두 번째로 성공적인 론칭 성적을 보여줬다. 이에 ‘파 크라이 뉴 던’은 5편 결말부를 이어받아 핵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17년 후 호프 카운티로 돌아간다. 전세계는 핵폭발의 잔재가 하늘을 덮어 긴 겨울을 지냈으며 이윽고 눈과 먼지가 걷히자 울창한 식물들과 돌연변이 동물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십 수년만에 방공호에서 나온 생존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정착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무리배들은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 노상강도로 변했다.
본작의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미국 서부 해안을 돌아다니며 생존자들을 돕는 경비대의 대장이다. 그는 호프 카운티에서 온 소녀 카르미나의 절실한 요청에 응하여 기차의 방향을 돌렸으나, 미처 행선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노상강도(The Highwaymen) 무리급의 급습을 받아 자원과 동료들을 모두 잃고 만다. 호프 카운티의 노상강도 우두머리인 미키와 루 자매는 극도로 잔혹하고 영리하며, 특유의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복속시켰다. 충격적인 기차 습격에서 홀로 탈출한 플레이어는 이제 카르미나와 생존자 그룹을 도와 호프 카운티를 노상강도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파 크라이 뉴 던’이 5편과 구별되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가벼운 RPG 요소가 도입됐다. 다만 이것이 ‘더 디비전’과 같은 본격적인 RPG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적들은 각각의 체력 바와 단계별 등급(흰색 -> 파란색 -> 보라색 -> 노란색)을 갖게 되며 강력한 적일수록 처치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따라서 높은 등급에 적을 상대하려면 그와 대등한 수준의 무기를 획득하거나 조합하는 것이 필수. 돌격대와 같은 최고 등급의 적은 CO-OP 협동 공격이 권장되며 도와줄 다른 플레이어가 없다면 인게임 용병을 고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두 번째, 전초기지의 단계적 확대이다. 전초기지 점령은 ‘파 크라이’ 시리즈의 전통적인 콘텐츠지만 다소 지루하고 반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파 크라이 뉴 던’에서는 5편의 전초기지 시스템을 다듬어 게임 중후반부에도 계속해서 도전적인 경험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제 적들은 전초기지를 단계적(1~3 등급)으로 증축하여 방어를 공고히 하고 더 많은 전리품을 모아둔다. 특히 핵전쟁 후 세계에서 아주 귀한 자원으로 통하는 에탄올을 전초기지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공성전을 벌일 이유가 훨씬 명확해졌다.
끝으로 세 번째, 탐험이다. ‘파 크라이 뉴 던’은 기본적으로 핵전쟁으로 파괴된 호프 카운티를 무대로 하지만 아예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는 것도 가능하다. 헬기를 소유한 NPC에게 에탄올을 조금 제공하면 그가 플레이어를 핵폭발로 멸망한 미국 서부 해안 곳곳으로 날라준다. 다만 이것이 또다른 오픈월드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해당 지역에서 중요 자원을 챙기고 귀환 장소로 돌아오는 단편적인 임무에 가깝다. 같은 지역이라도 매 탐험마다 중요 포인트가 계속해서 바뀌어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난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CO-OP으로 즐기기에 적당하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는 1시간 량 ‘파 크라이 뉴 던’을 시연해볼 수 있었다. 스토리 상 분량은 프롤로그에서 챕터 1 초반 정도까지 진행 가능했다. 전복된 기차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몰려든 노상강도 떼와 교전을 벌이다 결국 미키와 루 자매에게 붙잡히지만, 절벽 아래 물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건진다. 이후에는 그를 찾아온 카르미나와 함께 생존자들의 정착지로 향하며 재료를 모으고 톱날 석궁으로 적 몇 명을 처치하는 간단한 튜토리얼 구성이 펼쳐진다.
워낙 짧은 시연이었고 본 기사가 나가는 시점은 게임이 출시된 후이기 때문에 기자의 감상을 길게 적지는 않겠다. 다만 불안 요소로 다가오는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먼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향취가 지나치게 옅다. 핵전쟁 후 17년 만에 자연이 다시 풍요로워졌다는 설정인지라 울창한 숲은 이전 ‘파 크라이’와 크게 다를 바 없고, 녹슬고 무너진 건물 정도는 요즘도 지방가면 볼 수 있다. 영화 ‘매드 맥스’가 정립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형을 뒤집은 획기적인 시도로 봐주고 싶으나 솔직히 ‘파 크라이 5’ 에셋을 최대한 유용하기 위한 방편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장인물들의 복식이나 사용 무기도 핵전쟁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노상강도들만 유독 튀긴 한다.
다음으로 걱정스러운 부분은 RPG 요소의 도입이다. RPG 요소라고 해도 적들의 체력 바와 단계별 등급 정도인데, 이미 ‘더 디비전’ 시리즈를 가진 유비소프트가 왜 ‘파 크라이’까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확실히 체력이 도입되면 보스전도 연출하기 쉽고 무기 크래프팅의 중요도가 자연스레 증가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FPS인데 무기 등급이 낮다고 아무리 총을 쏴도 적을 처치하지 못한다면 그게 정말 유쾌한 경험일까. 과거 ‘어쌔신 크리드’가 ‘오리진’과 ‘오디세이’를 거치며 액션 RPG로 탈바꿈했듯 ‘파 크라이’ 시리즈도 ‘뉴 던’을 통해 몇 가지 실험을 하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러한 변화가 기존 팬덤에게 납득될 만한 것인지는 본편에서 직접 확인하자.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