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향후 5년을 논하다, 신임 경영진 미디어 토크
국내 굴지의 게임사 넥슨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올해 초 ‘피파 온라인’ 성공 신화를 일군 이정헌 前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기용한데 이어 최근에는 개발 본부를 7개 스튜디오 체재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까지 단행한 것. 이들 데브캣 스튜디오, 왓 스튜디오, 원 스튜디오, 띵소프트, 넥슨지티, 넥슨레드, 불리언게임즈에게는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기획 및 개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다.
최근 모바일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넥슨이 이러한 체질
개선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이에 25일(수) 판교 넥슨 사옥에서 이정헌 대표, 정상원 부사장, 강대현 부사장과 함께 신임 경영진 미디어 토크를
진행했다.
● 4년 만에 경영진 미디어 토크다. 각자 소개와 소감을 듣고 싶다.
이정헌: 나 또한 일개 사원으로 입사해 이 자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함께 겪은 넥슨의 구성원 중 한 명이다. 그간 넥슨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최근 조직 개편에 반영되기도 했다.
정상원: 사실 나는 신임은 아니고 4년 전 미디어 토크에도 참여했다. 그사이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했는데, 매출면에서 1등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똘똘하고 좋은 게임을 더 많이 만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강대현: AI 연구 조직인 인텔리전스 랩과 라이브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다. 넥슨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수십 년간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하며 축적한 노하우와 데이터다. 이것을 AI를 통해 시스템으로 실체화하여 신작에서도 계속해서 만족스러운
라이브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 자신이 차기 넥슨 코리아 대표라는 얘기를 언제 들었나
이정헌: 박지원 前대표에게 얘기를 들은 것은 지난해 12월 초였다. 처음 10초
정도는 부모님부터 아내와 아기 얼굴이 떠오르고 너무 좋더라.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지않나. 그런데 그날 밤부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임기 중에 회사가
기울면 어쩌나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김정주 회장과 만났는데, 입사 후 14년간 독대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김정주 회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이정헌: 회사를 맡게 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묻더라. 지금 매출이 2조 원 정도 되는데 정말로 회사가 변하려면 1/10 정도로 줄어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충격을 받았는데 며칠 지나서 생각해보니 압박감과 고정 관념을 내려놓고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의미 같았다.
임기 동안 권한이 주어졌으니 그 안에서 내 철학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거지. 만약 다시 그
자리로 갈 수 있다면 ‘책임지고 매출 1/10로 만들어 보겠습니다’라고 답하겠다.
● 김정주 회장이 지정한 KPI(핵심성과지표)가 정말로 없나
이정헌: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없다. 그래서 더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지 고민이 많아지는 것도 있다. 매출
보다는 10년 전 모든 아이들이 다오와 배찌를 보며 좋아했던 것처럼,
해외에까지 먹히는 매력적인 IP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이정헌 대표는 애사심이 강하기로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라도
이정헌: 대학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게임을 접했는데 아이폰이 나왔을 때의 10배, 20배 감동이었다. 특히 띠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떠오르던 넥슨 로고는 충격 그 자체였고. 그때부터 무조건 저 회사에 입사하자는 마음으로 달려왔다. 말하자면
첫사랑이랄까? 이제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넥슨과 함께 한지라 서로 때어 놓고 생각할 수조차 없다.
● 박지원 前대표에 이어 또다시 사원 출신 대표이사가 나왔다.
강대현: 넥슨은 표면적인 스펙보다는 정말로 일을 잘 하는지를
평가하는 문화가 있다. 나 같은 경우도 병역특례로 입사해서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정헌 대표 또한 처음부터 특급 인재로 부상했다기보다 그간 사업적
성과와 역량을 인정받아 대표로 발탁되지 않았을까.
이정헌: 내 입으로 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이다. 아마도 나를 좋게 봐주고 믿어주는 동료가 많다는 것이 비결 아닐까? 여태껏
10년 넘게 여러 게임을 라이브 서비스해오며 수많은 직원들과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임기 동안 나 혼자 생각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검증된 이들과 좋은 토론을 나누며 의사 결정을
하고자 한다.
● 박지원 前대표는 냉철함으로 정평이 났는데, 성향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이정헌: 같은 해 입사했는데 서로 밞아온 길은 상당히 다르다. 나는 라이브 서비스를 오래 맡다 보니 운영, 개발, 사업, QA 등 여러 동료들과 협업하고 의사를 모아 결정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다. 그래서 박지원 前대표와 몇 번쯤 크게 충돌했던 것도 같다. 물론 지나고 보면 그분의 냉철한 판단력이 나에게 큰 가르침이 되기도 했다.
● 사업과 개발 출신이 번갈아 대표를 맡고 있는데 그에 따른 차이가 있나
이정헌: 김정주 회장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사실 나는 원래 개발자로 입사했다가 중간에 사업으로 전향한 경우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대표의 출신이 사업이냐 개발이냐 가지고 전체적인 문화나 기조가 바뀐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나 또한 사업 출신이긴 하나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신규 개발 관련이다. 게임 개발사이자 퍼블리셔로서 넥슨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할지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 현재 넥슨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다 할 신규 흥행작이 없다는 거다
정상원: 우리는 경쟁사와 달리 어떠한 전략 하나에 사운을 걸고
전사적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4년 전부터 모바일에 대응하고자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준비했는데, 그사이 대작들이 많이 나오면서 결과적으로 치이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와 뒤늦게 대작 만들겠다고 인위적으로 애쓰고 싶진 않다. 우리가 잘하는 것 하다가 시운이
맞았을 때 성공도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이제 스튜디오 체재로 전환했으니 각자가 판단해 자율적으로 진행할
일이다.
● 그래도 대규모 투자나 공격적인 IP 확보에 너무 뒤쳐진 것
아닌가
정상원: 나는 대학 시절 생물학을 전공했다. 생명이 살아가며 다른 개체와 DNA를 섞고 자식들이 부모와 다른
형태를 취하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당장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대작 만들기에 급급하다가 또다시
시장 변화가 찾아오면 그대로 무너질 위험이 크다. 비록 우리가 PC에서
모바일로 전환은 늦었지만 다음 패러다임에는 빠르게 적응할 것이다.
이정헌: 100% 동의한다. 이런
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다양성 추구랄까. 실제로 정상원 부사장이 온 후로 다양성을 표방하는 신규
프로젝트가 많이 늘었다. 대표로서 임기 동안 이러한 다양성을 더욱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소임이라 생각한다. 스튜디오 체재로의 개편 자체도 정상원 부사장과 긴히 상의해서 결정한 것이다.
● 스튜디오가 프로젝트를 발족할 때 따로 보고도 하지 않는다는데
정상원: 나도 한 명의 게이머이다 보니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꾸 보고를 듣고 관여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런 요소가 개발에 반영되더라. 그리고 프로토타입이라는 것은 겉보기에 완성도가 낮아 보이고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여지가 많다. 그러니 개발 초기에는 그냥 내부적으로만 판단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른 후에 다같이 돌려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존 인큐베이션 기간이 굉장히 길어진 셈이다.
● 인력 채용조차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정상원: 예산 한도 내에서만 알아서 채용하면 된다. 인재를 모시는데 굳이 상부에 허락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 앞으로는
넥슨 코리아보다는 각 스튜디오의 브랜드화를 강하게 추진해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어느 스튜디오로
가라고 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
● 그랬다가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좌초되면 어찌하나
정상원: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에 더 잘하자고 다독이고 다시금 기회를 주려고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개발자들에게는 엄청난 좌절이기에 회복하기가 쉽지 않더라. 잘 되리라 믿고
자신의 인생 2~3년을 투자했는데 출시 시점의 여러 변수에 의해 시장 안착에 실패하면 충격이 크기 마련이다.
● 개발 본부 시절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어떻게 분배했나
정상원: 장르별로 각 스튜디오가 선호하는 것을 나눠줬다. FPS가 특기면 FPS, RPG가 좋다면 RPG를 하라는 식이다.
● 가장 말 안 듣는 스튜디오가 어디인지 귀뜸해달라
정상원: …말을 잘 듣는 곳이 없는데? 어차피 책임과 의무는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내 경험상 어떻더라는
조언만 해줄 뿐이고 결국 개발하는 본인들이 직접 판단하면 결정하면 된다.
● 그렇다면 스튜디오 체재에서 정상원 부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상원: 일단 띵소프트를 이끌고 있고, 스튜디오간 조율 및 전체적인 컨설팅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말을
들으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 함께 이쪽으로 가자고 방향을 설정하는 거지.
● 스튜디오 체재가 분사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상원: 개발 본부를 스튜디오로 쪼갠다니까 타 경쟁사처럼 뗏목에
먹을 거 좀 넣어주고 떠내려 보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더라. 어디까지나 같은 법인 내에서 조직을
개편한 것이지 분사해서 책임을 떠넘길 생각은 전혀 없다.
● 강대현 부사장이 지휘하는 인텔리전스 랩에 대해서도 얘기해달라
강대현: 일반적인 게임사에서 역량의 고도화와 다양성, 창의성은 공존하기가 힘들다. 창의성이란 것은 이제껏 안 해본 일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그간 쌓아온 노하우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니까. 인텔리전스 랩은 AI를 통해 이 두 가지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한다. 기존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축척한 빅데이터와 머신 러닝으로 최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다 창의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장르마다 플레이가 전혀 다른데 같은 알고리즘을 적용할 수 있나
강대현: 그간 연구를 거듭한 결과 가능하다는 확신이 섰다. 장르적 특성은 다를지라도 게임을 하는 행위와 결과에는 유사한 부분이 매우 많다. 가령 FPS와 스포츠는 전혀 다른 장르지만 상대를 사살하는 행위는
골을 넣는 것으로 치환하는 식이다. 어떠한 정량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빅데이터와 머신 러닝을 통한 알고리즘이기에
어떤 게임이 와도 적용할 수 있다.
● 일각에서는 AI까지 동원해서 유저들 돈 뽑아내려 한다는 우려도
있다
강대현: 확실히 말하는데 인텔리전스 랩에 BM 관련 업무는 일절 없다. 개인적으로 요즘 모바일 게임이 단시간에
무리한 과금 유도로 수익을 내는 형태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게임이란 것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지 않겠나.
● 빅데이터와 머신 러닝을 연구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인사이트가 있다면
강대현: 유저가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는 것? 유저들은 질문에 답할 때는 한 번 생각을 거쳐 말하는데, 행동은
무의식이 반영돼 여기서 갭이 발생한다. 이 갭을 공략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포인트다.
● 라이브 서비스 말고 게임 개발 자체에 AI를 접목할 계획은
없나
강대현: 물론 둘 다 연구하고 있다. 개발에 쓰일 만한 연구를 몇가지 꼽자면 절차적 지형 생성이나 딥러닝을 통한 효율적은 압축 알로리즘 등이 있겠다. 다만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이니까, 한시라도
빠르게 이런 것들을 고도화하는 것이 먼저다. 전체적인 비중은 라이브 서비스가 90%라면 신규 개발 지원은 10% 정도.
● 이정헌 대표는 부사장 시절 ‘돈슨’ 이미지를 혁파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정헌: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돈슨의 역습’이란 슬로건으로 지스타에 나갔었다. 사실 그때 경영진의 의도는 유저들에게 선언하는 것 이상으로 내부 인원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실제로 그 후로 내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듀랑고’ 같은 게임도 나올 수 있었다. 사실 ‘듀랑고’는 매출이 많지 않지만 유저 방문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처음부터 향후 10년간 서비스할 게임으로 모토를 정했고 경영진도
합의한 부분이기에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가챠(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BM으로 천년 만년 수익을 낼 수는 없다.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게임사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 최근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콘솔 시장으로의 진출 전략은
정상원: 현재 콘솔용 PvP 게임
몇 개를 준비 중이다. 당장은 ‘배틀그라운드’ 같은 PvP 장르가 그나마 콘솔로 입문할 수 있는 통로다. 다만 내부적으로 꼭 F2P(부분유료화)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계속 고민 중이다. 죽음이 있어 삶이 의미를 갖는 것처럼 게임도 엔딩이 있어야 감동이 극대화되지 않나. 아직은 노하우가 부족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이 핵심인 싱글
플레이 중심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
● 가상화폐 거래소 인수설이 나도는데, ICO 계획이라도 있는지
이정헌: 그 가상화폐 거래소 인수는 사실무근이다. ICO와 게임 사업을 엮을 계획도 전혀 없다. 다만 블록체인이 가진
원천 기술은 게임에도 적용할 여지가 많아 이런저런 개발을 해보고는 있다.
● 올해도 여러 게임사나 IP에 투자를 할텐데, 어떤 큰 그림을 그리나
이정헌: 어떤 플랫폼이나 장르가 잘 될 것 같다고 투자 전략을
세우고 움직이진 않는다. 그보다는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것,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를 기다린다. 소위 말하는 ‘빅딜’뿐 아니라 신선한 시도를 이어가는 소규모 게임사들에 투자하고 싶다.
● 경영진이 생각하는 ‘넥슨 다운 게임’이란 무엇일까
정상원: 게임이 공개됐을 때 ‘와
이런 걸 다 만들었네,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GOTY(올해의 게임)은 못되더라도 후보라도 오를 수 있는 게임이 퇴사하기 전에 나온다면 소원이 없겠다.
● 5년 후 넥슨은 어떤 게임사이기 바라는가
이정헌: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개발 문화를 지키면서 항상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상에 없는 것을 탐구하고 만들려는 열정이 남아있는 게임사이길. 또한 국내를 넘어 세계 유수의 게임사와 경쟁해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길 바란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