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말 주택도시보증공사 체제의 현행 고분양가 관리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운을 뗀 뒤다. 이달 국회에서 “대상과 시기, 방법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조만간 시행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시장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과 품질 저하, 로또분양 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건설업계 등의 반발이 크다 보니 분양가상한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정권과 부동산시장 상황에 따라 시행과 폐지를 반복해 왔다. 그리고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될 때마다 집값이 크게 뛰는 결과가 이어졌다. 집값 안정이라는 분양가상한제의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일관성과 실효성을 갖춘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분양가 규제, 경기 따라 조였다 풀었다
분양가상한제는 아파트 분양가를 감정평가된 택지비와 정부가 연 2회 고시하는 표준 건축비에 건설사 이윤을 합한 금액 이하로 책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과도한 분양가 상승을 막아 집값 안정을 꾀하는 가격 규제 정책이다. 현재는 택지지구와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만 적용하고 있다.
분양가 규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집값이 급등할 때는 시행했다가 부동산 경기가 침체했다 싶으면 으레 폐지 수순을 겪는 등 수십년간 부침을 반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등 민간택지에 적용하는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러나 실제 적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카드다.
시작은 1977년 10월이었다. 그전까지는 공공아파트에만 분양가 규제를 하다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선분양제를 도입하며 민간아파트의 분양가도 규제했다. 선분양제는 상품을 보지도 않고 거금을 들여 주택을 구입하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낮은 분양가를 보장해줬던 것이다.
그러나 1981년 6월 원유 파동과 수출 감소 등 경기불황이 닥치자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면적 84.9㎡ 초과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자율화했다. 기다렸다는 듯 한신공영은 3.3㎡당 분양가를 기존 상한선보다 22% 높은 138만원으로 올렸다. 다른 건설사들도 앞다퉈 분양가를 인상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1983년 분양가를 다시 규제했다.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3.3㎡당 134만원으로 못박았고 시세차익 환수를 위해 채권입찰제(채권을 많이 구입하는 사람이 당첨)를 도입했다. 이 분양가는 1980년대 후반까지 유지됐다.
그러다 200만호 주택 공급과 건설업계의 분양가 현실화 요구가 맞물리면서 1989년 11월 ‘원가연동제’로 바뀌었다. 분양가를 택지비와 건축비 등 원가에 연동시켜 통제하는 방식으로, 원가연동제가 처음 적용된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양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97만원이었다.
상황이 바뀐 건 1997년 외환위기 전후였다. 분양가 규제는 단계적으로 풀렸으며 1999년 1월 국민주택기금 지원 아파트 외에는 분양가가 전면 자율화됐다. 높게 책정된 분양가는 주변 집값을 끌어올렸으며 또 고분양가로 이어졌다. 서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999년 562만4000원에서 2002년 919만원, 2004년 1290만원, 2006년 1546만원으로 치솟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분양가와 아파트값이 서로를 떠받치며 집값 급등을 자극했던 것이다.
■ 반복되는 논란, 집값 안정 의지 있나
분양가상한제가 다시 돌아온 건 2007년이었다. 분양가 규제 여론에도 ‘공급 위축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던 정부는 2005년 3월 공공택지 내 소형 아파트를 시작으로 2008년 1월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다. 온갖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도 방식은 건설사의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원가연동제였다.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 건설업계 위기, 미분양 등의 이유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된 2014년 말까지 7년간 주택시장은 안정세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보금자리주택 공급 등의 다른 요인도 있었으나 그간 오르기만 하던 분양가가 이때는 주춤했다. 그러나 분양가상한제가 또다시 폐지된 직후인 2015년부터 지금까지 분양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시장이 이상과열 조짐을 보이자 초반 거론됐던 집값 안정대책도 분양가상한제였다. 그러나 2017년 시행령 개정에도 실제 적용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그사이 서울 지역 분양가는 3.3㎡당 평균 2212만9800원(2017년 12월 기준)에서 2699만원(올해 7월18일 기준)으로 22% 뛰었다.
시장에는 ‘집값은 결국 우상향한다’는 말이 있다. 규제가 강하고 불황이 와도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상황에 따라 나온 땜질식 처방이 가져온 학습효과 탓이다. 분양가상한제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함께 도입됐던 선분양제는 지속돼왔지만, 소비자 보호장치로 전제됐던 분양가 규제는 시행과 폐지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집값 안정이냐 공급 부족이냐 등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그간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이 나오면 얼마 못 가 부작용을 우려하는 건설업계 목소리가 커지고 정부가 이를 수용해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집값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시행령 개정도 2년 전처럼 시늉만 낼 게 아니라 수도권 및 지방 대도시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등 실효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