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5천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지난 19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삼성 측 인사들이 검찰 수사,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의 핵심 쟁점들을 상당수 인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이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이사 등 삼성바이오 임원 3명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이를 비판했다.
2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김 대표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2014년에도 삼성바이오의 콜옵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2014년까지는 콜옵션 가치를 평가할 수 없어서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온 삼성 측 입장을 뒤집는 진술이다. 삼성바이오는 2012~2014년 부채인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았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의 콜옵션 공시 누락을 분식회계로 본다.
삼성바이오는 2011년 미국 바이오젠과 삼성에피스를 함께 세우면서 콜옵션을 약정했다. 콜옵션은 주식을 정해진 값에 살 수 있는 권리다. 바이오젠은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성바이오가 대부분 보유했던 삼성에피스 주식을 49.9%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삼성바이오 입장에선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는 지분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콜옵션은 부채였다.
김 대표는 콜옵션 계약 사항이 담긴 합작 계약서를 2015년 이전 회계법인에 지급하지 않은 사실도 인정했다.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약정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유력한 정황을 시인한 것이다. 삼성 측은 지금까지 2012~2014년에 감사 담당자(회계사)에게 합작 계약서를 지급했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김 대표는 “회계 관련 사항은 모두 재무 담당 임원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떠넘겼다.
지난 19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삼성 측은 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처리기준 변경이 “삼성바이오의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공시하면 부채 1조8000억여원이 재무제표에 반영돼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삼성바이오는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해 회사 가치를 4조5000억원 가량 부풀렸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의 자의적인 회계처리기준 변경으로 회사 가치를 부풀린 것이 분식회계라고 보고 있다.
삼성 측은 “좋은 회사(삼성바이오)의 자본 잠식을 막는 것은 잘한 일 아니냐”는 주장도 펼쳤다고 한다. 삼성 측은 분식회계 핵심 증거인 내부 문건에서 제시된 삼성바이오 자본잠식 회피 방안 세 가지를 모두 검토한 사실도 인정했다. 내부 문건에는 삼성 측이 실행한 회계처리기준 변경이 ‘2안’으로 나와 있다. 검찰은 삼성 측이 ‘자본잠식 회피’라는 목적성이 뚜렷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회계처리기준 변경을 시인했다고 판단한다.
삼성바이오 임원들이 사실상 분식회계를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지만 법원은 검찰이 김 대표 등 삼성바이오 임원 3명에 대해 청구한 영장을 21일 새벽 모두 기각했다.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증거가 수집돼있는 점,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영장심사에서 삼성바이오 임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아래 직원들이 한 일”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일본과 갈등을 빚는 대외경제상황, 대통령이 지원하는 바이오 산업의 미래 등을 언급했다고도 한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대리급 직원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는데, 증거인멸을 인정한 김모 삼성바이오 전무는 이번에 영장이 기각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진행한 뒤 김 대표에 대한 세 번째 영장 청구도 검토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와 영장실질심사를 거치며 사실관계가 명확해지고 삼성 측의 주장이 대부분 기각되고 있다”며 “새로운 팩트에 기반해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를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