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회계법인이 2015년 삼성 측과 안진회계법인이 조작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을 ‘받아쓰기’해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만든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삼정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 제일모직 측 요청으로 합병비율을 산출한 회사다. 삼정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에 유리한 합병비율에 찬성할 때 제시된 참고자료다.
1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15년 5월 삼정은 안진이 작성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베껴 또 다른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만든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앞서 안진 회계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삼성 측 요구로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조작했다”고 시인했다.
삼정과 안진은 2015년 5월 각각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의뢰로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을 안진은 1 대 0.38, 삼정은 1 대 0.402로 계산해 큰 차이가 없었다. 최종 결정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1 대 0.35와 유사한 수치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 범위도 1 대 0.31~1 대 0.49(안진), 1 대 0.32~1 대 0.53(삼정)으로 비슷했다.
검찰은 안진 보고서와 이후 작성된 삼정 보고서의 수치가 대동소이한 점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015년 6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사실을 공개하며 ‘합병 반대’를 선언하자 삼성 측 움직임이 급박하게 돌아갔다고 본다. 엘리엇은 당시 합병비율 1 대 0.35가 삼성물산에 너무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합병비율 1 대 0.35를 관철하려면 삼성물산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도움이 필요했다. 엘리엇 등장 이후 삼성물산 측은 안진 보고서를 국민연금에 제출했고,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에 삼정 검토보고서를 내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삼성 측이 원한 숫자가 담긴 두 회사의 보고서는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참고자료가 됐다.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1 대 0.35에 찬성했다.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에 찬성했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결정이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인 홍순탁 회계사는 “합병 시에는 대개 양사가 각자 유리한 합병비율을 제시한다. 그런데 두 회사가 거의 유사한 합병비율을 제출했다면 국민연금 입장에선 이를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적용되면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도 유리한 구조였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보다 제일모직 지분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 계열사 전반에 대한 지배력 강화는 안정적인 승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