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어렵게 난민 인정을 받은 아프리카 출신 A씨는 지난 1월 건강보험료 통지서를 받아들고 화들짝 놀랐다. 지난해까지는 매달 1만원가량 부담해 왔는데 이번에는 약 8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해서다. 사실상 소득이 거의 없는 A씨는 “한국에서 계속 터전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답답해했다.
유엔(UN)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20일)을 앞두고 난민 인정자들 사이에서 보험료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건강보험 먹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생계가 어려운 난민들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다음달 16일부터 일정 기간(6개월) 이상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반드시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올해 1월부터 외국인에 대한 보험료 산정방식도 바뀌면서 소득과 재산 수준으로 계산한 보험료와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올해 기준 11만3050원) 중 더 높은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평균보험료에서 30%를 감면받긴 하지만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도 개정된 외국인 기준에 포함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2015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B씨 가족은 난민으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국내에 체류할 자격을 주는 ‘인도적 체류 지위’를 얻었다. 현재 B씨 부부와 어머니, 자녀 5명까지 모두 8명이 월 12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시리아에서 총상을 입은 B씨와 청력이 좋지 않은 아내를 대신해 성년 자녀 1명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B씨 가족은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건강보험 의무가입대상이 되면서 다음달부터 보험료로 24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 35만원에 보험료까지 나가면 당장 식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은 다른 외국인과 달리 우리나라에 터전을 잡고 계속 살아갈 사람들”이라며 “정부가 걱정하는 것처럼 (건보료 먹튀를) 우려할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세대원의 인정 범위를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로 줄인 것도 부담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B씨의 경우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성인 자녀 1명까지 총 3명이 각자 따로 보험에 가입해야 해서 보험료가 24만원까지 상승했다. 보험료가 체납되면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것은 물론 강제 추방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조주연 아시아평화를 향한 이주 MAP 활동가는 “인도적 체류자는 1년 단위로 갱신해야 하는데 (복지부가) 법무부와 체납정보를 공유하기로 해서 체류기한 연장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난민과 인도적 체류 지위를 얻은 외국인에 대해 예외적인 혜택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험료를 대폭 면제해 주는 것은 어렵지만 납부기간을 연장하거나 납부 횟수에 차등을 두는 방식 등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복지부가 외국인들의 잘못된 건강보험 혜택을 막는 건 필요하지만 여기에 난민이 포함되진 않는다”며 “수입이 없는 난민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어려운 상황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무가입 등에 대한 하위 법령 개정은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 난민들의 보험료 부분은 변경될 수 있다”며 “법무부와도 관련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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