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심청전>은 영화, 마당놀이,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변주됐다. 학규와 덕이의 걷잡을 수 없는 집착을 그린 2014년작 <마담 뺑덕> 역시 <심청전>을 모티프로 한 영화다. 극중 청이(박소영)는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학규(정우성)의 잘못 때문임을 알게 되는 딸로 등장한다.
생후 열흘도 안되어 어머니를 잃고 앞을 못 보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어려서부터 동냥으로 아버지를 봉양하던 심청은 이내 동네의 소문난 일꾼이 되었다. 야무진 심청을 수양딸로 삼고자 하는 귀부인의 제안도 있었으나, 아버지를 홀로 남겨둘 수 없어 거절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자면 인신매매보다 더 끔찍한 불법적인 제안임에도, 혼자 힘으로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답답함에 상담실을 찾았다.
심청 =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박사님, 제가 조만간 집을 떠납니다. 앞 못 보는 아버지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도 걱정이지만, 제가 더 이상…(울음).
김 박사 = 무슨 사연인가요. 독립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인데, 집을 떠나야 한다고요?
심청 = 인당수(멈칫 말을 멈추고), 아니에요. 믿기 힘드실 거예요. 물론 모두 말씀드려야 더 좋은 상담을 받을 수 있겠지만… 다음에 말씀드리면 안될까요.
김 박사 = 상담을 위해서는 숨김없이, 비밀까지도 이야기해주시면 좋아요. 때로 내담자가 창피하다거나, 상담자가 하찮게 여길 것이라거나, 상담과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내용이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초면이고 하니, 정 힘드시면 다음 상담에서 이야기해주셔도 됩니다.
심청 = 감사합니다. 저는 엄마 얼굴을 기억 못해요. 저를 낳고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고요. 일가친척이 없어서 도움받을 처지도 못 돼요.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다른 아이들이 놀 때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철없이 부모님 원망도 해봤지만, 어쩌겠어요. 일단 살아야 하니까요.
돈 벌기 위해 안해본 게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은 트라우마 돼 사고·재난 못지 않은 영향 줘”
김 박사 = 많이 힘들었겠네요. 부모님을 원망할 만도 하죠. 어린 나이에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속상한 것은, 어릴 적 가난은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오갈 만한 사고나 재난도 트라우마로 작용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되지만, 가난 또한 그에 못지않게 인생에 영향을 줍니다. 더구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고요? 혹시 버려지면 어쩌나 하는 유기불안 또한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요.
심청 = 유기불안요? 저는 그런 것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집을 떠나고 싶어요. 그동안 이런 얘기 아무에게도 안 했는데, 아버지가 경제적인 능력만 있었다면 저는 벌써 독립을 시도했을 거예요. 차라리 버려지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한답니다.
김 박사 = 그럴 수 있어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행이든 행복이든 아무 소용없겠죠.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의 두려움이나 극복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죠.
심청 = 어린 나이에 집안 걱정하는 아이가 적지 않아요. SNS를 보다 보면 헉 소리가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사회초년생이 집안을 전부 책임져야 한다는 경우도 안타깝지만, 부모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아요. 부모가 진 빚을 - 물론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 어린 자녀가 고스란히 물려받는 경우도 있어요. 가난의 대물림인 셈이죠. 쉽게 끊을 수가 없어요. 절망적이죠.
김 박사 = 이전에는 집을 떠날 생각 안 해 보셨나요? 아버지께서 학식이 풍부하고 동네에서 존경받는 분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럼 주변 분들과 상의해 아버지를 부탁하고, 심청씨는 독립해 경제활동을 한다면, 생존에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심청 = 그런 생각을 왜 안 해봤겠어요! 박사님 말씀대로 현실을 감안한다면, 아버지를 주변 분들이나 사회복지기관에 의탁하고 저는 열심히 돈을 벌면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해요. 하지만 두려워요. 어떻게 딸이 아버지를 버릴 수 있겠어요.
김 박사 = 마음 아프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 해요. 사회복지기관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버지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요.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고 보자는 심보도 아니고, 내가 먼저 살아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대부분 떠나는 사람이 힘들어 못 떠납니다. 오히려 남은 사람은 혼자서도 제법 잘 견디거든요.
심청 = 제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는 못 견디세요.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사는 장승상댁 노부인이 저를 수양딸 삼겠다고 부르신 적이 있었어요. 그 댁에서 이야기를 나누느라 귀가가 좀 늦었거든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그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저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셨더라고요. 아버지는 저 없으면 못 사세요(울음).
김 박사 = 마음 아픈 이야기네요. 아버지께서 불안감이 참 많은 것 같네요. 아무리 어린 딸이라 하지만 귀가가 좀 늦는다고, 그렇게 무리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웃에게 물어보거나, 신고를 한다면 모를까….
심청 = 아버지가 저와 헤어질까봐, 제가 다칠까봐 불안해서 그러셨대요.
김 박사 = 아버지에게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말로는 늘 “빨리 좋은 직장도 갖고, 시집도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려무나”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딸의 부재에 대해 늘 걱정하는 마음이죠. 그런데 분리불안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성숙해진다는 건 그저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잖아요. 물론 장애가 있어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립하기 위해서 태어났잖아요.
심청 = 그럼,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 원인은 저에게 있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문제라는 뜻인가요.
저 없이는 못 사는 아버지…
“부재 걱정하는 분리불안 증세 안 떨어진다해도 해결 안 돼”
김 박사 =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어요. 아버지의 분리불안이 심청씨의 독립을 막으려면, 심청씨 내부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지금 느끼는 것과 같은 불안 말이에요. 매년 학기 초가 되면 ‘학교공포증’으로 상담 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중에는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서 학교에 가기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죠. 엄마와 떨어지면 무슨 큰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해요.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나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특징적이에요. 좀 호전이 되면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도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엄마가 아이와 떨어지기 힘들어하죠. 알고 보면 엄마가 더 문제였다고도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분리불안의 경우, 양쪽 모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심청 = 공감합니다. 저도 아버지와 떨어지는 것이 불안하긴 해요. 하지만 꼭 불안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실은 죄책감이 들어요. 아버지를 버린다는 죄책감….
김 박사 = 죄책감은 죄를 짓고 나서 느끼는 양심의 반응인데…심청씨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심청 = (당황하며) 그러고 보니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꼭 죄 지은 기분이네요. 이 느낌은 뭐죠?
김 박사 = 죄를 지을까봐 두려운 것일 수 있죠. 죄책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죄를 짓고도 철면피처럼 얼굴 들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죄책감은 착한 사람의 고통이죠. 어쩌면 우리 모두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지도 몰라요.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까봐 그럴 수도 있고요. 자기주장을 제대로 펼 수도 없고, 괜한 미안함에 고분고분해지기도 하죠. 그래서 죄책감이란 체제나 가족을 유지하는 데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만, 지나치면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어떤 경우에는 파멸에 이르기도 하죠.
심청 = 저도 그럴지 몰라요. 사실 저를 수양딸 삼고 싶다는 노부인께서 제게 더없이 좋은 제안을 하셨거든요. 아무 조건도 없이, 아버지 빚을 다 갚아주시겠다고요. 하지만 제가 거절했어요. 왠지 아버지에 대한 배신 같아서요. 제가 아버지를 위해 어떤 분들과 약속을 한 게 있어요. 과연 옳은 결정인지 아닌지 갈등이 많았지만, 지키려고요. 제 스스로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 약속을 깰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김 박사 = 심청씨는 강박적인 면도 있는 것 같네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있어요. 어찌 보면 고고한 인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지나친 것 같네요. 세상에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호의를 모두 저버리고 반드시 지켜야만 할 약속이란 것이 있을까요?
심청 = 그 약속이라는 것이 만약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 박사님은 뭐라고 하시겠어요.
김 박사 =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아주 오래전에는 어떤 신에게 희생양을 바치고 재난을 막고 병도 고친다는 미신이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히 천인공노할 일이자, 불법적인 사건이지요. 굳이 정신의학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종교망상에 빠진 매우 위험한 정신병적 상태로 보고, 응급 입원이 필요한 정도입니다.
심청 = (말을 막으며) 저도 살고 싶어요. 약속을 파기하자고 해도 크게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를 리 없죠. 하지만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박사님 말씀처럼 저도 제 자신이 정상이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상담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호의호식이 아니라, 독립이라는 사실을요.
목숨 버려도 약속 지켜야겠죠?
“폐 끼칠 수 없다는 지나친 강박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건 없어”
김 박사 = 아, 물론 독립이 중요합니다만, 목숨만큼이나요?
심청 = 제가 노부인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아버지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또다시 누군가의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노부인에게 의지하면 편하겠죠. 부유하고 좋은 분이니까요. 그런데 돈을 보고 한 결혼이 결코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듯이, 왠지 그런 핑크빛 상황이 내키지 않았어요. 속박당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제 결정이 무모하다는 건 알지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잖아요. 만에 하나 제가 살아남는다면, 아버지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니 보다 쉽게 독립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 박사 = 충분히 이해합니다. 유년기부터 가난에 시달리고, 철들기 전부터 가장 노릇을 한 심청씨에게 독립은 너무 소중하죠. 또 현명하고 순리에 맞게 살아오셨으니 결코 나쁜 일은 없을 거라 믿고요. 집안이 어렵거나 부모와의 경제적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층이 적지 않아요. 가족, 사랑, 부모와의 관계, 효도와 같은 가치는 시대가 변하면서 함께 변하기는 합니다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책임져야죠. 옳다고 생각하면 실천할 수 있어야 또 문명인이고요. 독립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고, 사회 전체를 봐서도 꼭 이루어야 할 과업입니다. 독립의 완성은 감정적 독립입니다. 시작은 경제적 독립이고요. 끝으로 심청씨,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책감을 내려놓기 위해서도, 심지어 독립을 위해서도 생명을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돼요. 독립이라는 단어에는 ‘삶’이라는 전제가 있으니까요.
▶필자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섰던 천생 상담가다.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된 수백편의 글을 써왔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