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조윤민
출판사 - 글항아리
쪽수 - 400쪽
가격 - 17,000원 (정가)
조선의 외부자들이 낮은 곳에서 펼치는
분투의 이야기, 그 저항의 기록
· 탈영웅적 저항자들의 양반 세상 뒤엎기
푸줏간 주인, 목수, 품팔이, 화전민, 머슴, 병작농민, 초군, 문지기, 성균관 하인, 노비, 관노, 거기에 무뢰배와 도둑 무리까지. 역사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조선 사회의 뒤안길을 서성거린 이들이 뛰쳐나와 반항하고 싸우며 양반 세상을 흔들고 지배체제에 균열을 낸다.
· 불온한 자들이 행하는 전복과 반란의 한판 굿
승려와 무당, 몰락 양반과 유랑지식인, 불만과 저항의 비판지식인. 지관이자 술사이며 때로는 훈장이자 의원인 이들은 신분제와 지주제에 기반을 둔 사회체제 모순의 희생양이었다. 지배세력권으로의 진출이 차단된 정치 투쟁의 탈락자였다. 조선 사회의 아웃사이더이자 불온분자인 이들이 마침내 지배세력에 반기를 들었다. 미륵과 진인眞人을 앞세우며 새 세상을 꿈꾼 조선 이단아들의 투쟁의 굿 한판!
· 역류의 반란과 꿈 - 누가 진정한 의병인가?
땀 흘려 생산하고 창 들고 나라 지킨 자들은 비하와 조롱의 언어 아래 주류 담론의 바깥으로 밀린 채 차별받고 무시당한 무명의 백성이었다. 이들이 이제 자신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반항과 항쟁의 역사를 써나간다. 의義와 도道를 행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의와 도를 행하겠다면서 역사의 중심 무대로 전진한다.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4부작’ 중 제3권인 [조선에 반反하다]가 출간되었다. 시리즈의 제1권인 [두 얼굴의 조선사]와 제2권인 [모멸의 조선사]가 모두 문체부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될 정도로 양질의 콘텐츠를 인정받은 저자 조윤민은 이번의 [조선에 반反하다]에서 "이탈과 불온, 역류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루고 저항과 항쟁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어가에 돌 던지고, 궁궐에 불 지르고
서울 창의문 밖에 사는 조만준은 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평민이었는데, 왕실 사당에 행차하는 어가에 느닷없이 돌을 던진다. 관아에서 잡일을 하는 하인 박중근은 지엄한 궁궐 마당에서 칼을 빼들어 자/살을 기도하고 평민 장득선은 아들과 함께 능에 불을 지른다.
절치부심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해온 이명과 이가음이李加音伊 형제는 13년째 되던 해 마침내 옛 상전을 죽인다. 충주 주민들은 수령을 대신한 인형에 화살을 쏘며 욕설을 퍼붓고, 경희궁을 수리하던 목수들은 포도청에 난입해 관리를 구타한다. 농부와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온 백성이 의적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부잣집 재물을 취한다.
그 시대에도 불온한 자들이 있었다. 지배세력과 사상이나 신념을 달리한 인물들이다. 임진전쟁을 계기로 집안이 몰락한 길운절과 서얼 출신 소덕유는 제주 주민을 선동해 반란을 기도한다. 승려 여환은 무당, 지관과 함께 북한산에서 대홍수의 날이 오기를 빌며 변란을 도모한다.
[정감록] 예언을 퍼뜨리며 10년 동안 반란을 준비해온 문인방은 유배지에서 역모를 꾀한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 정계 진출이 좌절된 이들과 함께 말이다. 관아 노비인 김재묵은 10만 병사가 난을 일으킬 것이라는 괘서를 성문에 붙이며 민심을 어지럽힌다. 유랑지식인 김치규는 홍경래 무리와 합세해 조선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유언비어로 하층민을 선동한다.
저항의 파편들이 모여 거대한 역류를 이루다
벗어나고 거스르던, 파편과도 같은 이런 저항의 흔적은 결국 지배층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역류의 항쟁으로 거듭난다. 19세기 들어 백성은 평안도와 삼남에서, 마침내 조선 전역에서 대규모 무력 투쟁에 들어간다. 몰락한 양반 가문과 한미한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 앞장서고, 안목을 갖춘 개혁 성향의 평민이 의로움을 외친다. 지주의 토지를 빌려 농사짓는 병작농민과 땔나무를 해다 파는 초군이 동참한다. 머슴과 임금노동자가 항쟁 대열에 합류한다. 가구 만드는 장인과 소금 파는 행상도 뛰어든다. 뜨내기와 광대가 창과 총을 들고, 노비도 관리와 토호를 징치하는 관아 마당으로 진군한다.
백성의 이러한 저항 행위는 대부분 대역부도나 역모 등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극히 불충한 소행으로 단정됐다. 도덕과 사회윤리 측면에서도 도道에 어긋나는 짓거리로 매도당했고 말이다. 목숨과 집안의 미래까지 걸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지배세력은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무력과 폭력을 동원했으며, 제도와 관습의 틀을 공고히 하고, 때로는 사상을 주입하거나 교화정책을 펴며 그 소행과 짓거리를 억누르려 했다. 이는 위력과 사회자산을 모두 동원해 지배체제를 지키려 한 사실상의 총력전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내내 그 소행과 짓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과 혈육까지 내던질 수 있게 했을까?
모멸감을 느끼는 삶에 대한 성찰과 반추
벗어나고 투쟁한 백성 또한 인력이자 생산자로 조선 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쉽게 무시당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지배층의 눈에는 무지몽매한 자였으며 무뢰배이자 흉포한 잡배였다. 때로는 도적과 화적, 폭도로 불렸고 기껏해야 가르치고 이끌어주어야 할 모자라는 백성이었다. 지배층의 권력 투쟁 와중에 명분을 쌓기 위한 민본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하지만 그건 말의 성찬일 뿐, 이들을 위한 정책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들은 지배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원인 관직과 토지를 갖지 못했으며 신분과 사회 지위도 미미한 편이었다. 지배 계층의 이념이나 사회경제적 영향력 아래 종속돼 차별과 억압을 받는 백성이 대부분이었다. 지배층으로의 진입이 인정되지 않거나 아예 지배세력권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 자들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통로를 갖지 못한 채 오랫동안 사회 주변부를 떠돈 이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또한 무시당하면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무뢰배와 도적이라 매도하는 모욕에 가슴 아파했다. 울분과 의분을 가진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의義와 도道를 주창하고 자신들만이 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 지배층의 허위가 드러나자 마침내 이 분노한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그토록 당당하게 외친 그 의를 행하라며, 그토록 근엄하게 설파한 그 도를 실현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제 자신들이 그 의와 도를 이루겠다며 나선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조선 사회에 의로움을 세우고 시대의 도를 높이는 의병이었다.
이 책은 조선 사회의 주류 흐름과 지배세력에 맞서 이탈하고 전복하고 봉기한 자들에 대한 사연을 담았다.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를 흔들고, 통치체제에 균열을 내며, 지배이념을 거스르며 맞서 싸운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앞서 펴낸 [모멸의 조선사]에서 지배세력의 통치에 대응해 회피하고 반항하는 양상을 보인 백성을 단편적으로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탈과 불온, 역류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루고 저항과 항쟁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침으로써 이전 책과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분명한 차별을 꾀했다.
역사의 난장판에 외부자들의 발언 무대를 마련하다
저자는 이들이 외치는 절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거칠지만 정직한 그 몸짓을 겸허하게 짚어본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이들의 생각과 꿈까지 헤아려볼 것이라고 [책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부르짖음을 두둔하고 행위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선과 악의 잣대만을 들이대거나 호불호의 구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이것만이 조선 역사의 큰 줄기라 여기지도 않으며 이들만이 변혁의 주체라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다만, 명징과 미혹이 교차하고 진전과 좌절이 함께하는 역사의 난장판에서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외칠 자리 하나를 마련하려 합니다. 압제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거듭난 이들의 몸짓을 헤아리면서 조선 지배층이 구축한 억압과 착취의 사회구조 한 자락이나마, 천리와 윤리의 얼굴 뒤에 숨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와 만날 수 있는 몸짓은 힘없는 자들의 한풀이나 넋두리로 여겨질 수 있다. 이들의 저항이 결국은 좌절되지 않았나 하는 자조의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말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역사의 유산에서 실패를 되새길 때 다가올 역사의 도전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고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싶다. 시대의 부조리와 지배의 야만에 맞섰던 조선 백성이 행한 그 역류의 바람이 오늘 이 시대를 질타하는 칼이 되었으면 한다.
1부 "일어서는 자 벗어나는 이"의 핵심 개념은 "반항(혹은 항거)"이며, 드러난 행위 측면에서 보면 "피지배층의 이탈과 일탈"이다. 떡장수, 목수, 떠돌이 노동자, 품팔이, 관노, 사노, 성균관 노비, 농부, 화전민 등 하층민이 주인공이다.
1부에서는 권력 행사의 부당함과 상전의 억압, 관료의 수탈에 대응해 기물파괴와 방화, 복수살인, 상전살해, 폭력 대응, 소요, 난동, 도적질 등으로 맞서나간 행위와 사건을 다룬다. 대체로 개인 단위로 행해진 저항으로, 여기에는 가족과 집안 구성원 규모의 저항도 포함된다. 민란 규모에는 이르지 못한 관아 난동과 도시폭동, 군도 등 소규모 무리의 소요와 일탈 행위까지 다룬다.
2부 "불온한 자 거스르는 이"의 핵심 개념은 "불온"이다. 현실에서는 "정권 탈취를 위해 변란을 기도한 불온한 자들의 모반"으로 드러난다. 몰락 양반, 유랑지식인, 평민지식인, 저항지식인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2부에서는 집권세력의 부당한 통치 행위와 민생정책 실패, 관료의 억압과 수탈 등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기치로 일으킨 정치변란 사건을 다룬다. 임진전쟁과 병자전쟁 뒤에 일어난 백성들의 변란, 미륵신앙과 생불신앙에 기반을 둔 민간신앙 성격의 변란, 정감록을 중심으로 한 민간사상에 바탕을 둔 역모사건, 괘서 유포와 같은 유언비어 사건(커뮤니케이션 반란) 등을 살핀다.
이들 정치변란은 전투를 치르거나 지배층과 실제로 맞서는 봉기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모의와 기도 단계에서 발각돼 실패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3부 "역류 - 풀과 바람과 칼"의 핵심 개념은 "대규모 항쟁"이다. 이들 항쟁은 실제로 봉기에 성공한 민란과 변란 성격이 강한 반란 사건이며, 지배체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항쟁을 이끈 몰락양반과 평민지식인 등 저항지식인과 봉기군의 주축을 이룬 기층 민중이 주인공이다.
3부에서는 19세기에 일어난 대규모 민중 항쟁과 기층 민중을 동원해 봉기한 변란 성격의 반란을 다룬다. 먼저,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를 위시한 백성들의 봉기(홍경래의 난), 1862년 삼남에서 일어난 백성들의 항쟁(임술민란)을 살핀다. 이어, 1869년에 광양 읍성을 점령한 광양변란과 1871년에 영해 읍치를 장악했던 이필제의 변란을 알아본다. 하층민의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성과를 이뤄낸 1882년 서울 하층민의 반란 사건(임오군란)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접근한다.
목 차
책머리에
군자君子의 야만에 저항한 조선 백성 - 낮은 곳에서 만나는 불온한 조선사
1부 일어서는 자 벗어나는 이
·지존의 밑바닥, 왕권에 균열을 내다 | 국왕 질타
국왕 숭배와 모독
궁궐 소란
·불타는 능과 전패 | 국왕 상징물 훼손
능침 방화와 파손
전패작변
·신분질서를 거스르다 | 복수 살인
13년을 기다린 형제의 복수
복수 살인의 시대
누가 의로운 폭력을 행하는가?
·벌거벗은 자들의 생존 전략 | 양반 모독
상전을 벗어나라
폭력 저항
성균관 노비와 푸줏간의 생존법
·관료와 위계에 맞서다 | 관료 능욕
위계질서를 흔들다
힘으로 맞서는 백성들
생존을 위해 관료에게 대항하다
·분노하고 절규하다 | 도시 하층민의 저항
서울 빈민과 하급 관리의 격돌
누가 왜 도시 폭동을 일으키는가?
·작은 도둑 대 큰 도둑 | 일탈
도적이 통치의 도리를 논하다
도적을 만드는 사회
도적과 의적 사이
2부 불온한 자 거스르는 이
·정치권력을 뒤엎어라 | 전쟁 뒤의 변란
백성들, 권력에 도전하다 - 1601년 제주도 역모사건
조선을 고쳐라 - 개국대전 改國大典 역모
·믿음이 세상을 바꾼다 | 민간신앙 반란
미륵의 세상이 오리라 - 1688년 여환의 반란
생불을 찾는 백성들 - 1691년 무당의 반란
·새 세상을 약속하다 | 정감록 모반
1782년 정감록 역모사건
그들은 어떻게 반란을 준비했나?
·풍문 설전 風聞舌戰 | 커뮤니케이션 저항
널리 소문을 전파하라
괘서의 정치사회학
3부 역류 - 풀과 바람과 칼
·북풍 반란 | 1811년 평안도 백성의 봉기
서북인들, 반란의 깃발을 올리다
그들이 봉기한 까닭
전략전술의 명암明暗 - 그들은 왜 왕조 교체에 실패했는가?
·분노의 들녘 | 1862년 백성의 항쟁
타오르는 함성 - 진주 민란
삼남에 부는 항쟁의 바람
·바깥에 선 자들의 반란과 꿈 | 개항 전후 백성의 저항
직업 혁명가의 시대
1882년 서울 하층민의 반란 - 임오년 도시항쟁
·탐학의 왕조 봉기하는 백성 | 1894년 동학농민전쟁
한풀이와 개혁의 시대
내전과 징치, 국제전쟁과 구국의 시기
누가 의로운가?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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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조선의 역사에 대해 모르시나 본데 일본이 침략한 게 아니라 되려 그 망할 조정이 일본을 끌고 온 걸로도 모자라서 일본한테 점령의 빌미까지 다 제공했다는 겁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해 드리죠. 조선 말기는 돈으로 벼슬 사고 파는 매관매직은 성행했고 조정과 양반네들의 수탈과 착취, 폭정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죽은 사람한테도 세금매기는 초강력 악질 부패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백골징포, 황구청점란 것도 말도 안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고, 심지어 농사 일로 한창 바쁠 시기인데도 돈도 안 주고 사람 징발해서 쳐부려 먹고 도망가면 감옥에 가두고 벌금 물리는 등 이건 아예 나라라고도 할 수 없는 개막장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백성들도 더 이상 고종 같은 암군을 더 이상 국왕으로 따를 수가 없어서 들고 일어선 게 바로 동학농민운동인 겁니다. 애초에 자국민들이 배고프다고 해도, 못 살겠다고 아우성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다가 못 참겠다고 들고 일어났어. 대체 그들이 돈을 달랬어? 권력을 달랬어? 아니야. 그냥 단순히 자신들의 당연한 듯한 삶과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한 거야. 노비해방 시켜주고 면천, 토지정리, 과세와 수탈, 착취를 없애고 그리고 신분차별 및 부당대우의 철폐 등을 요구했을 뿐이야. 처음엔 자국군으로 진압을 시도했는데 통제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커져서 이제 조정보다 더 쎄진 거야. 그러니까 외국군을 자국으로 끌어들여서까지 자기네들을 학살하려고 했으니까. 실제로 고종이 일본군 보고 자국민 학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무리 반란군이라지만 자국민들인데 청나라보고 파병을 구해서 동학농민의 난을 진압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외국군보고 자국 백성을 학살해달라고 요청을 한 건 단군 역사상은 물론 세계 역사상 사상초유 , 전대미문 급의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완용도 일본군 보고 자국민 학살해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종은 정말 요청까지 했습니다. 이게 과연 이 나라의 군주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자국 백성의 난은 자신의 군대로 진압을 하든가 진압 불가능한 상황이면 그냥 혁명으로 처형 당해서 모가지 날아가든가 싫으면 어디론가 도망쳐서 반성하고 찌그러져 살던가, 아니면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든가 할 것이지. 외국에 파병을 요청해 자국 백성들을 학살해 달라고 요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건 더 이상 자국의 군주임을 포기하는 짓입니다. 이미 군주가 자기 말 안 듣는다고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을 외국군을 불러와서 학살하려고 했을 때 부터 이미 고종은 군주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김병시나 홍계훈은 극구 반대를 외치면서 "만약 우리가 청나라에게 파병을 요청하게 되면 일본 역시 텐진 조약과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군대를 파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두 군대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국내는 양국의 전쟁터가 되어 형세가 위태로워져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됩니다." 라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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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민씨 일족들은 강력한 청나라에게 일본이 상대가 되겠냐면서 파병을 구하는 방향으로 점점 가기 시작했고 민비 역시 기껏 계략을 굴린다고 한 게 "청나라와 일본이 서로 싸우면 어차피 청나라가 이길 것이고 설령 일본이 이긴다 해도 서로 치고 박고 싸워 한 쪽은 패하고 이긴 녀석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니 몰아내기 쉬울 것이다" 라면서 이호경식의 계라고 고종에게 조언을 했다. 결국 어리석은 고종은 망할 마누라의 의견을 철썩같이 믿고 결국은 승인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고종은 마침내 역사의 운명을 비극적인 방향으로 바꾸게 되는 망국의 운명으로 가는 가장 최악의 선택을 결국 하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이 결정이 곧 조선을, 자국을 타국의 식민지화로 만드는 운명을 초래하게 하여 일본의 식민지화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방아쇠를 당긴 행동이자 기폭제를 누른 짓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청나라는 민비가 예상한 것만큼 강하지 못했고 일본은 예상한 것과 반대로 압도적으로 강했다. 민비는 청나라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반면 일본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국의 문제를 상대로 외국에 파병을 요청했다는 것 또한 외국에 입장에선 조선은 만만한 나라라는 걸 인식시키는 겁니다. 즉, 조선이 자국의 내부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하는 나약한 나라라고 이웃국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이후 조선에 군대를 주둔한 이유 역시 [조선은 자국의 내부 문제도 스스로 해결을 못 해 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나약한 나라이니 우린 여기에 남아서 조선을 보호해주겠다] 는 빌미 역시 고종과 민비 스스로가 일본에 제공을 한 꼴 입니다. 일본이 그리고 이토가 조선은 약소국이니 우리가 조선을 보호국으로 해주겠다는 빌미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이게 과연 일본만의 잘못 입니까? 망국의 원인은 우리 쪽 조선의 책임이 훨씬 큽니다. 정작 중요한 이런 부분은 왜 역사에 비중있게 안 나오는 거죠? 또한 독립협회 역시 날려버린 거 또한 고종이었습니다. 대한제국 당시 만민공동회와 전혀 타협을 할려는 노력 없이 무력으로 이들을 무작정 탄압했다는 겁니다.만민공동회는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거의 유일무이한 민중 주도의 근대화 운동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전혀 아닙니다. 이때 개화 세력들과 조금이라도 타협을 해서,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고, 황제의 권력을 그저 상징적 권력으로 남겨놓는 길을 택했다면, 우리의 현대사 어쩌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대한제국이란 입헌군주제식이나 20세기로 나아가는 민주형 국가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헌법이나 의회같은 건 당연히 있을 리가 없고 '대한국 국제'에서는 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권은 물론 국방, 외교 등 국가의 모든 전권이 황제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전제군주제' 국가입니다. 무늬만 근대화 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근대 서양의 정치체제들. 즉, 신분 없는 평등사회 및 노예제의 철폐, 자유인권적 헌법, 참정권 등의 입헌의회정치, 자본주의, 민주공화제 같은 건 단 하나도 없이 조선의 썩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체 서양문물만 받아들이는 근대화를 시키니 이게 어찌 제대로 된 근대화라고 할 수 있단 말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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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선 지배층들은 그냥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들이였을 뿐이니까. 왕과 지배층들은 국가의 발전이나 미래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그저 정권유지에만 올인한 거지. 국민들이야 가축 정도로만 취급하고, 지네들은 주지육림에 빠져 이 상태대로만 지속되기만을 바래왔던 것이었지.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 안 망하면 기적이었던 조선. 결국 모든 피해는 항상 그래왔듯 국민들의 몫이었지. 폭정에 항거한 민중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여, 미래를 향한 내부적 발전 원동력을 만들 생각 같은 것은 꿈에서도 안 하고, 배고파 들고 일어난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도륙내겠다고, 부패한 탐관오리와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국내로 불러들인 작자가 바로 고종입니다. 왕과 양반 두 부류가 지금까지 권력을 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백성" 이라는 제3 자에게 권력이 생기려하는데 그들이 과연 권력을 스스로 내주려 하겠습니까?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미쳐가지고 제 권위를 내려놓겠다 하겠습니까? 즉, 썩어빠진 조선은 어리석은 군주와 양반네들이 국가 발전을 저해시켰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서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선 국민들을 외국군을 불러와 학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일본에 식민지 점령당한 거였고, 또한 군주 스스로가 자신의 전제적 왕권을 내려놓기 싫어서, 근대화고 의회고 민주주의고 다 거부한 거고 그러다가 일본에게 점령당한 겁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당시의 국민성 역시 근세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부분들 역시 많았습니다. 즉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나 민주주의가 불가능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더라도 스스로 근대화를 할 수 있었다? 개가 웃을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유지 만을 위해,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했으며, 개화파들을 역도로 몰고 매도하여 철저히 탄압하거나 죽이고, 자신들의 당연한 듯한 삶의 권리와 신분차별 및 부당 대우 철폐를 요구하여 항거한 동학농민운동을 외국군을 국내로 파병을 요청해 자국민들을 학살하고, 국민들의 민권운동인 독립협회를 군대까지 동원해 해산시키며, 고종 또한 지 목숨만 살자고 나라의 수도와 궁전, 백성들까지 버려가면서, 일국의 국왕이 외국 (러시아) 공사관으로 토끼는 희대의 코메디를 벌였고 (아관파천), 그 결과 당시의 패권국인 미국과 영국의 눈 밖에 벗어나서 결국은 일본에 의해 나라 잃은 것이 팩트 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 포츠머스 조약, 영.일동맹, 가쓰라 - 태프트 밀약 등) 자주적인 근대화를 할 세력들을 전부 없애버리고 오히려 수구파와 친러파들로만 요직에 앉혀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한 자가 바로 고종입니다. 한국의 근대화는 구한말이 아닌 오히려 일제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는 진실이며 팩트입니다.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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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아주 쉽게 말하자면 일본과는 180도 정 반대의 길을 걸은 조선이고 중간단계와 타협이라는게 일절 없던 미칠듯이 극단적인 구한말기 시대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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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조선의 역사에 대해 모르시나 본데 일본이 침략한 게 아니라 되려 그 망할 조정이 일본을 끌고 온 걸로도 모자라서 일본한테 점령의 빌미까지 다 제공했다는 겁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해 드리죠. 조선 말기는 돈으로 벼슬 사고 파는 매관매직은 성행했고 조정과 양반네들의 수탈과 착취, 폭정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죽은 사람한테도 세금매기는 초강력 악질 부패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백골징포, 황구청점란 것도 말도 안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고, 심지어 농사 일로 한창 바쁠 시기인데도 돈도 안 주고 사람 징발해서 쳐부려 먹고 도망가면 감옥에 가두고 벌금 물리는 등 이건 아예 나라라고도 할 수 없는 개막장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백성들도 더 이상 고종 같은 암군을 더 이상 국왕으로 따를 수가 없어서 들고 일어선 게 바로 동학농민운동인 겁니다. 애초에 자국민들이 배고프다고 해도, 못 살겠다고 아우성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다가 못 참겠다고 들고 일어났어. 대체 그들이 돈을 달랬어? 권력을 달랬어? 아니야. 그냥 단순히 자신들의 당연한 듯한 삶과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한 거야. 노비해방 시켜주고 면천, 토지정리, 과세와 수탈, 착취를 없애고 그리고 신분차별 및 부당대우의 철폐 등을 요구했을 뿐이야. 처음엔 자국군으로 진압을 시도했는데 통제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커져서 이제 조정보다 더 쎄진 거야. 그러니까 외국군을 자국으로 끌어들여서까지 자기네들을 학살하려고 했으니까. 실제로 고종이 일본군 보고 자국민 학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무리 반란군이라지만 자국민들인데 청나라보고 파병을 구해서 동학농민의 난을 진압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외국군보고 자국 백성을 학살해달라고 요청을 한 건 단군 역사상은 물론 세계 역사상 사상초유 , 전대미문 급의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완용도 일본군 보고 자국민 학살해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종은 정말 요청까지 했습니다. 이게 과연 이 나라의 군주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자국 백성의 난은 자신의 군대로 진압을 하든가 진압 불가능한 상황이면 그냥 혁명으로 처형 당해서 모가지 날아가든가 싫으면 어디론가 도망쳐서 반성하고 찌그러져 살던가, 아니면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든가 할 것이지. 외국에 파병을 요청해 자국 백성들을 학살해 달라고 요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건 더 이상 자국의 군주임을 포기하는 짓입니다. 이미 군주가 자기 말 안 듣는다고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을 외국군을 불러와서 학살하려고 했을 때 부터 이미 고종은 군주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김병시나 홍계훈은 극구 반대를 외치면서 "만약 우리가 청나라에게 파병을 요청하게 되면 일본 역시 텐진 조약과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군대를 파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두 군대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국내는 양국의 전쟁터가 되어 형세가 위태로워져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됩니다." 라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 18.08.18 22: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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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민씨 일족들은 강력한 청나라에게 일본이 상대가 되겠냐면서 파병을 구하는 방향으로 점점 가기 시작했고 민비 역시 기껏 계략을 굴린다고 한 게 "청나라와 일본이 서로 싸우면 어차피 청나라가 이길 것이고 설령 일본이 이긴다 해도 서로 치고 박고 싸워 한 쪽은 패하고 이긴 녀석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니 몰아내기 쉬울 것이다" 라면서 이호경식의 계라고 고종에게 조언을 했다. 결국 어리석은 고종은 망할 마누라의 의견을 철썩같이 믿고 결국은 승인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고종은 마침내 역사의 운명을 비극적인 방향으로 바꾸게 되는 망국의 운명으로 가는 가장 최악의 선택을 결국 하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이 결정이 곧 조선을, 자국을 타국의 식민지화로 만드는 운명을 초래하게 하여 일본의 식민지화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방아쇠를 당긴 행동이자 기폭제를 누른 짓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청나라는 민비가 예상한 것만큼 강하지 못했고 일본은 예상한 것과 반대로 압도적으로 강했다. 민비는 청나라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반면 일본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국의 문제를 상대로 외국에 파병을 요청했다는 것 또한 외국에 입장에선 조선은 만만한 나라라는 걸 인식시키는 겁니다. 즉, 조선이 자국의 내부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하는 나약한 나라라고 이웃국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이후 조선에 군대를 주둔한 이유 역시 [조선은 자국의 내부 문제도 스스로 해결을 못 해 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나약한 나라이니 우린 여기에 남아서 조선을 보호해주겠다] 는 빌미 역시 고종과 민비 스스로가 일본에 제공을 한 꼴 입니다. 일본이 그리고 이토가 조선은 약소국이니 우리가 조선을 보호국으로 해주겠다는 빌미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이게 과연 일본만의 잘못 입니까? 망국의 원인은 우리 쪽 조선의 책임이 훨씬 큽니다. 정작 중요한 이런 부분은 왜 역사에 비중있게 안 나오는 거죠? 또한 독립협회 역시 날려버린 거 또한 고종이었습니다. 대한제국 당시 만민공동회와 전혀 타협을 할려는 노력 없이 무력으로 이들을 무작정 탄압했다는 겁니다.만민공동회는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거의 유일무이한 민중 주도의 근대화 운동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전혀 아닙니다. 이때 개화 세력들과 조금이라도 타협을 해서,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고, 황제의 권력을 그저 상징적 권력으로 남겨놓는 길을 택했다면, 우리의 현대사 어쩌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대한제국이란 입헌군주제식이나 20세기로 나아가는 민주형 국가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헌법이나 의회같은 건 당연히 있을 리가 없고 '대한국 국제'에서는 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권은 물론 국방, 외교 등 국가의 모든 전권이 황제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전제군주제' 국가입니다. 무늬만 근대화 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근대 서양의 정치체제들. 즉, 신분 없는 평등사회 및 노예제의 철폐, 자유인권적 헌법, 참정권 등의 입헌의회정치, 자본주의, 민주공화제 같은 건 단 하나도 없이 조선의 썩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체 서양문물만 받아들이는 근대화를 시키니 이게 어찌 제대로 된 근대화라고 할 수 있단 말 입니까? | 18.08.18 22: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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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선 지배층들은 그냥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들이였을 뿐이니까. 왕과 지배층들은 국가의 발전이나 미래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그저 정권유지에만 올인한 거지. 국민들이야 가축 정도로만 취급하고, 지네들은 주지육림에 빠져 이 상태대로만 지속되기만을 바래왔던 것이었지.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 안 망하면 기적이었던 조선. 결국 모든 피해는 항상 그래왔듯 국민들의 몫이었지. 폭정에 항거한 민중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여, 미래를 향한 내부적 발전 원동력을 만들 생각 같은 것은 꿈에서도 안 하고, 배고파 들고 일어난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도륙내겠다고, 부패한 탐관오리와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국내로 불러들인 작자가 바로 고종입니다. 왕과 양반 두 부류가 지금까지 권력을 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백성" 이라는 제3 자에게 권력이 생기려하는데 그들이 과연 권력을 스스로 내주려 하겠습니까?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미쳐가지고 제 권위를 내려놓겠다 하겠습니까? 즉, 썩어빠진 조선은 어리석은 군주와 양반네들이 국가 발전을 저해시켰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서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선 국민들을 외국군을 불러와 학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일본에 식민지 점령당한 거였고, 또한 군주 스스로가 자신의 전제적 왕권을 내려놓기 싫어서, 근대화고 의회고 민주주의고 다 거부한 거고 그러다가 일본에게 점령당한 겁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당시의 국민성 역시 근세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부분들 역시 많았습니다. 즉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나 민주주의가 불가능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더라도 스스로 근대화를 할 수 있었다? 개가 웃을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유지 만을 위해,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했으며, 개화파들을 역도로 몰고 매도하여 철저히 탄압하거나 죽이고, 자신들의 당연한 듯한 삶의 권리와 신분차별 및 부당 대우 철폐를 요구하여 항거한 동학농민운동을 외국군을 국내로 파병을 요청해 자국민들을 학살하고, 국민들의 민권운동인 독립협회를 군대까지 동원해 해산시키며, 고종 또한 지 목숨만 살자고 나라의 수도와 궁전, 백성들까지 버려가면서, 일국의 국왕이 외국 (러시아) 공사관으로 토끼는 희대의 코메디를 벌였고 (아관파천), 그 결과 당시의 패권국인 미국과 영국의 눈 밖에 벗어나서 결국은 일본에 의해 나라 잃은 것이 팩트 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 포츠머스 조약, 영.일동맹, 가쓰라 - 태프트 밀약 등) 자주적인 근대화를 할 세력들을 전부 없애버리고 오히려 수구파와 친러파들로만 요직에 앉혀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한 자가 바로 고종입니다. 한국의 근대화는 구한말이 아닌 오히려 일제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는 진실이며 팩트입니다.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역사입니다. | 18.08.18 22:4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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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The리퍼
결국에는 아주 쉽게 말하자면 일본과는 180도 정 반대의 길을 걸은 조선이고 중간단계와 타협이라는게 일절 없던 미칠듯이 극단적인 구한말기 시대라는것.... | 18.08.19 00:2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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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식민지근대화론. | 18.08.19 12:5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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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반박을 해 보시죠. 당시 조선은 일본이 아니더라도 식민지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어도, 자력으로 입헌군주제, 민주주의, 근대교육, 근대기술, 학문 등을 발전 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요. 어떻게요? | 18.08.19 21:3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