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에서 야스오와 리븐은 아이오니아 지역이 업데이트되면서 배경이야기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단편소설: 부러진 검날의 고백 -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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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
예리한 쟁기날이 울퉁불퉁한 겉흙을 파고들어가더니, 겨우내 잠들어 있던 아래 쪽 흙을 봄 하늘 아래 드러냈다. 리븐은 황소가 끄는 쟁기 뒤를 따라 조그마한 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팔을 넓게 벌려야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눌러 쟁기를 안정시키는 한편,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외국어 단어를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에마이. 파이르. 스바사. 아나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비옥한 흙 냄새가 공기 중에 피어올랐다. 리븐은 나무 손잡이를 꽉 잡고 걸었다. 요 며칠 동안 밭을 갈다 보니 겨울에 사라졌던 굳은살이 다시 올라왔고, 대신 기억은 흐려졌다.
리븐은 입술을 깨물며 잡생각을 떨쳐내고 지금 하고 있는 두 가지 일에 집중했다. “어머니. 아버지. 자매. 형제.”
야위어서 갈비뼈가 드러난 황소는 쟁기를 끌면서 연신 한쪽 귀를 쫑긋거렸다. 쟁기날에서 흙덩이와 조그마한 돌멩이가 튀어올라 리븐을 때렸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올이 거친 셔츠를 입고 흙 얼룩이 진 소매를 말아올려 두툼한 끈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같은 천으로 만든 바지는 흙물이 들어 누런 색이었다. 바짓단은 원래 주인에게는 이제 너무 짧겠지만, 리븐에게는 맨살이 드러난 발목과 진흙이 덕지덕지 붙은 조악한 신발에 스칠락 말락 한 길이였다.
“에마이. 파이르. 스바사. 아나르.” 리븐은 기억을 더듬으며 주문처럼 단어들을 외웠다. “에르자이, 아들. 디에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눈썹 아래로 늘어졌다. 리븐은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한 손을 들어 소맷자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녀의 양팔은 근육이 탄탄했고, 한 팔만으로도 쟁기를 어렵지 않게 제어할 수 있었다. 밭의 주인인 늙은 농부는 조금 전에 물이 든 가죽 자루와 점심을 가지러 집으로 갔다. 농부는 리븐에게 잠시 일을 멈추고 길 가장자리의 숲 그늘에서 쉬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리븐은 일을 끝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땀에 젖은 리븐의 목덜미를 스쳐지나갔다. 리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녹서스 제국은 아이오니아를 굴복시키려 했고, 아이오니아가 무릎을 꿇기를 거부하자 아예 부숴버리려 했다. 리븐은 정신을 집중하고 천천히 쟁기 뒤를 따라 걸었다. 녹서스 제국이 그렇게 기를 썼건만, 결국 이 땅에는 봄이 찾아들었다. 녹서스가 쫓겨난 지도 일 년이 족히 넘었고, 비와 진흙으로 회색과 갈색투성이였던 대지에는 초록색 새싹이 가득 피어났다. 대기조차도 새출발을 하리라 마음 먹은 듯했다. 희망. 리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렇게나 자른 머리카락이 턱까지 내려왔다.
“디에다, 딸.”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다시 주문과 같은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양손으로는 쟁기의 나무 손잡이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에마이. 파이르.”
“파-이르라고 해야지.” 느닷없이 숲 속 그늘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븐은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손에 쥔 쟁기 손잡이가 휘청 했고, 그 서슬에 가죽 고삐가 확 당겨지는 바람에 삐쩍 마른 황소도 제자리에 섰다. 쟁기날이 묵직한 흙덩어리를 호되게 들이받았고, 그 안에 있던 돌멩이가 날에 부딪히며 금속성의 “카랑” 하는 소리가 났다.
그 목소리는 늙은 농부의 것이 아니었다.
리븐은 입으로 천천히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목소리는 한 명이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리븐은 몇 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았기에 즉각 방어 태세를 취할 수도 있었지만, 대신 느릿느릿 움직여 목소리가 들려온 쪽과 자신 사이에 쟁기와 황소가 놓이도록 방향을 틀었다. 몸은 지나칠 정도로 가벼웠다. 리븐은 쟁기 손잡이를 꽉 틀어쥐었다. 몸을 고정시키려면 옆구리 쪽에 묵직한 지지대가 필요했다. 오른쪽 허리에 조그마한 채집칼을 차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작고 구부러진 날로는 야생 사과 꼭지나 딱딱한 풀줄기를 자르는 게 고작이었다.
“파-이르가 맞아.”
목소리는 밭 가장자리, 짙은 소나무 숲과 농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들려왔다.
“중간에 살짝 늘어져야 한다고.” 남자는 앞으로 걸어오며 다시 말했다. 검고 숱 많은 머리카락을 뒤로 당겨 묶었고, 거친 천 망토를 어깨에 둘렀지만 왼쪽 어깨의 금속 견갑과 검집도 없이 허리에 찬 검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사인 것은 분명했지만 어느 가문을 섬기거나 어딘가에 소속된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떠돌이 검사였다.
위험해. 리븐은 그렇게 판단했다.
“파-이르.” 남자가 다시 말했다. 정확한 발음이었다.
리븐은 대꾸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을 하면 억양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였다. 그녀는 남자와 자신 사이에 쟁기가 놓이는 방향으로 몇 걸음 옮겼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고정하고는 몸을 숙여 돌멩이에 걸린 쟁기날을 살펴보는 척했다. 진흙을 가르도록 날을 세운 쟁기날이니만큼 채집칼보다는 쓸모가 있을 터였다. 오늘 아침에 늙은 농부가 쟁기날을 틀에 고정시키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전에 여기 있을 때는 널 못 본 것 같은데. 하기야 세월이 좀 지났지.” 남자가 말했다. 떠돌이 생활을 꽤 오래 한 듯, 목소리에는 투박함이 묻어났다.
리븐은 침묵을 지켰다. 아까부터 있었던 벌레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치안판사들이 수마 원로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찾으려고 공판을 열 거라던데.” 남자가 말을 이었다.
리븐은 남자를 무시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황소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가축에 씌우는 굴레의 전문가라도 되는 듯한 손길로 등에 얹은 가죽 끈을 쓸어주는 한편, 커다랗고 검은 눈에 몰려드는 각다귀를 쫓아주었다.
“하기야 네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건은 잘 모르겠구나.”
리븐은 그 말에 고개를 들고 낯선 남자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물론 남자와 자신의 사이에 황소를 방패로 둔 상태에서. 남자의 콧대에는 긴 흉터가 나 있었다. 리븐은 저 흉터를 남긴 사람은 지금 살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남자의 눈길은 단단했지만 그 아래에는 호기심이 얼핏 엿보였다. 문득 얇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바닥을 통해 땅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누가 오는군.” 남자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리븐은 늙은 농부의 집이 있는 언덕을 향해 어깨 너머로 돌아보았다. 무장을 하고 말을 탄 사람 여섯이 막 등성이를 넘어 쟁기질을 해놓은 밭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기 있다!” 그 중 한 남자가 억센 말투로 소리쳤다. 리븐은 그토록 오랫동안 배우려고 기를 썼던 억양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해 보았다.
“그런데… 혼자가 아닌데?” 다른 남자가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바람이 불어와 쟁기와 리븐을 휩쓸고는 숲의 그늘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리븐은 낯선 남자가 서 있던 쪽을 돌아보았지만 남자는 자취를 감춘 후였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수들이 정체를 궁금해할 여지도 남기지 않고.
“유령인가 보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맨 앞의 남자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저 여자애가 베어버린 누군가가 복수를 하러 나타났던 걸 거야.”
기수들은 말에 박차를 가하더니 오늘 아침 리븐이 갈아놓은 이랑을 마구 짓뭉개며 그녀를 빙 둘러쌌다. 우두머리 남자가 탄 말 뒤쪽에는 천으로 둘둘 말아놓은 뻣뻣한 꾸러미가 얹혀 있었다. 리븐의 시선이 그 말을 따라가는 동안 다른 말들이 그녀를 포위했다. 말굽에 밟힌 부드러운 흙이 그 아래 차갑고 단단한 진흙 속으로 파고들었다.
리븐은 마지막으로 쟁기날을 흘긋 내려다보았다. 기수 중 두 명은 석궁을 가지고 있었다. 쟁기날에 손을 대기도 전에 석궁 화살이 날아들 게 뻔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쟁기날을 건드리고 싶어 꿈틀거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오랫동안 투쟁을 위해 훈련받은 몸은 쉽사리 진정하지 않았다. 온몸의 피가 솟구치면서 귀가 먹먹해졌고, 머리 안쪽이 망치로 두들기는 듯 쿵쿵 울렸다. 넌 죽을 거야. 머릿속에서 고함 소리가 울렸다. 그렇다면 저놈들도 저승길에 동행시켜야지.
리븐의 손가락이 서서히 쟁기날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앨 놔둬요!” 농부의 아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는 틈에 리븐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아사, 빨리 와요! 어떻게 좀 해보라고요.” 말 안 듣는 소들에게 호통을 치면서 단련된 목청이었다.
리븐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기수들이 멈춰섰다. 늙은 농부와 농부의 아내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리븐은 뺨 안쪽을 꽉 깨물었다. 그 쩌릿한 통증 때문에 싸우고 싶은 욕망이 누그러졌다. 저들의 밭에 아이오니아 인의 피를 뿌릴 수는 없었다.
“우리가 일을 끝낼 때까지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 우두머리가 농부 부부에게 말했다.
늙은 농부 아사는 절룩거리며 밭으로 들어섰다. “그 앤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그건 제가 가져온 거예요.” 농부는 말등에 얹힌 꾸러미를 가리켰다. “그러니 제가 책임지겠어요.”
“콘테 영감. 오-파.” 우두머리가 말했다. 남자의 얇은 입술 한쪽 끝에 상대를 깔보는 미소가 걸렸다. “영감은 이 여자애가 누군지 알고 있지? 이 앤 나쁜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어. 내가 마음대로 할 수만 있었다면 이 앤 이미 시체가 되어 있을 거야.” 남자는 리븐을 내려다보더니 짜증스러운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러니 할 말이 있거든 공판에서 하라고.”
우두머리가 말하는 동안, 리븐은 양발이 축축한 흙에 깊숙이 박혀 있었기에 그나마 꿋꿋이 서 있을 수 있었다. 수렁에 빠졌다는 좌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맥박이 얕고 빠르게 뛰었고, 등 뒤 날개뼈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리븐의 머릿속을 차차 다른 시간, 다른 밭의 광경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군마들이 연신 코를 힝힝거리며 피로 물든 흙을 말굽으로 짓밟는 밭이었다.
기억 저편에서 더 끔찍한 공포가 밀려와 자신을 덮치기 전에, 리븐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깊숙이 들이켰다. 봄비가 이 땅을 적시는 거야. 시체들이 아니라. 리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눈을 뜨면, 살아 있는 사람들만 보일 거야.
리븐은 눈을 떴다. 밭은 그대로였다. 파헤친 무덤이 아니라 금방 갈아놓은 흙이었다. 우두머리가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손에는 아이오니아 금속으로 만든 쇠고랑을 들고 있었다. 리븐의 고향땅에서 범죄자에게 채우던 족쇄보다는 훨씬 정교했고 소용돌이 형상이었다.
“녹서스의 개 주제에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우두머리의 얼굴에는 잔잔한 승리감이 내비쳤다.
리븐은 쟁기날에서 눈을 들어 농부 부부를 바라보았다. 얼굴의 주름살에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이 새겨져 있었다. 저들에게 또다른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리븐은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어 꼭 껴안고 있는 장면을 눈앞에 떠올렸다. 무슨 비극이 벌어질지 직감하고 저항 아닌 저항을 하는 모습이었다. 늙은 농부가 땀에 젖은 얼굴을 소맷자락으로 훔치는 순간, 리븐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리븐은 우두머리 쪽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눈길은 차가웠으나 입에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리븐의 손목에 차가운 금속이 와 닿았다.
“걱정 말아라, 디에다.” 농부의 아내가 소리쳤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였지만 희망이 섞여 있었다. 너무 많은 희망이. 너무 지나친 희망이. 농부 부부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와중에도 바람이 갓 쟁기질한 흙냄새와 더불어 긴장 섞인 그 목소리를 실어왔다. “디에다.” 목소리가 속삭였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말해 줄게.”
“디에다.” 리븐은 그 속삭임에 답했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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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전쟁터에서 기선제압 할려면 저 정도 얼굴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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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리븐은 인간은 아닌거 같군요.. 다른 종족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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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오 맵리 수준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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