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 두 번째
필자가 \'그것\' 을 처음 본 시기는 아마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던 1996년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입학한지 한두 달 정도 지나자 어느새 주위엔 필자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녀석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녀석들과 함께 동아리도 가입하고 엠티도 참가하면서 연일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를 매료시켰던 주된 관심사라면 역시 게임과 여자, 그리고 술 정도로 크게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아마도 만국 공통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게임은 단연코 제일 큰 이슈가 되는 종목으로써, 우리는 그 당시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는데, 한번은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웬 녀석 하나가 큼지막한 박스와 그 표면에 그려져 있는 용의 머리를 잡고 있는 용사의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제목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멋드러진 칼 그림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Dungeons & Dragons(이하 D&D)\' 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야?"
"이건 \'TRPG\' 라는 건데, 소위 말하는 \'역할극\' 이야. \'RPG\' 의 시초가 된 녀석이지"
사실 그 말을 듣고 대번에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표정들이 그다지 밝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솔직히 말해서 아리따운 아가씨의 일러스트나 멋진 전사의 근육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신이 누군가를 연기해야 한다는 어색한 상황을 처음부터 달가워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마침 세미나실이 한군데 비어있었기 때문에 그냥 심심풀이 정도로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주섬주섬 모여앉아 친구의 설명을 들어가며 \'캐릭터 시트\' 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D&D\' 를 시작하게 된 첫날, 우리는 거의 네시간 정도를 플레이하며 즐겼고 그 날 이후로 매주 주말마다 세미나실에 모여서 서너 시간씩을 보내게 되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이렇게 단순하고 형태도 없는 종이와 주사위를 통하여 상상도 할 수 없는 멋진 모험을 즐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TRPG를 통해 그 당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컴퓨터\' 라는 매체와 \'콘솔\' 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바빠진 우리들은 아쉬움을 남기며 모임을 잠시 중단하였지만, 아직도 만나기만 하면 그때의 즐거웠던 모험담을 떠올리며 즐겁게 서로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RPG, 그 장대한 역사의 시작
제일 먼저 우리는 \'RPG\' 의 단어적인 의미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RPG\' 란 \'Roll Playing Game(롤플레잉 게임)\' 의 머리말로써,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역할 연기 놀이\' 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게이머는 게임 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을 선택하여 그것을 자신의 \'아바타(Avata : 분신)\' 로 삼고, 자신이 그 캐릭터의 입장에 서서 게임 속의 세계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어라, 여기서 잠깐.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의문점이 튀어나온다. 위의 말대로 따지자면, 대부분의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은 모조리 \'RPG\'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선 장르를 분류하기가 조금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초의 RPG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고, 그것에서부터 현재의 \'RPG\' 라고 불리는 게임까지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가를 조금 살펴보기로 하자.
\'J.J.R. 톨킨\' 이라는 대단한 아저씨가 \'반지의 군주(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반지전쟁\' 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란 책을 쓰면서 소위 \'판타지 세계\' 라는 것이 비로소 어떠한 나름대로의 틀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때까지 마구잡이로 전해지거나 들려오던 각종 괴물들, 설화 혹은 민담에 등장하는 갖가지 신기한 종족과 생물들을 조목조목 정리하고 그 구체적인 특성까지 모두 묘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1954년에 출판된 이 책은 가히 \'판타지 세계의 교과서\' 라 불릴 만 했으며, 그 명성은 근래에 이르러 영화로 제작되면서 다시 한 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렇듯 판타지 세계관이 반듯하게 정립되자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일련의 규칙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가지고 뭔가 즐길만한 것들을 생각해 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TSR\' 에서 1970년대에 내놓은 \'D&D\' 라는 게임이었다. \'D&D\' 는 \'최초의 RPG\' 였으며, 말 그대로 \'역할을 연기하는\' 방식의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경험치의 증가에 따른 레벨 업\' 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드워프나 엘프 같은 \'종족\' 들, 그리고 전사, 마법사, 도적과 같은 \'클래스\' 의 개념을 게임화 하였다. 또한 명중률, 방어율, 내성굴림 같은 수치들을 모두 주사위로 결정하게 하여 객관적이고도 명료한 판정을 얻을 수 있도록 설정하였다.
처음 \'D&D\' 가 등장하였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그냥 \'RPG\' 라고 불렀다. 그 이전에는 \'RPG\' 라는 장르가 없었으며 \'D&D\' 가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D&D\' 가 가지는 객관성을 컴퓨터와 접목시키기 시작하였고, 여럿이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는 불편함 또한 이러한 과정을 부추기는데 한 몫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를 이용한 \'D&D\' 기반의 게임들이 출시되었으며, 이것을 처음에는 \'C(Computer)RPG\' 라고 불렀으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점점 컴퓨터를 이용한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서서히 \'CRPG\' 를 그냥 \'RPG\' 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D&D\' 같은 방식의 게임들을 \'테이블에 모여서 말한다\' 는 뜻의 \'Table-talk RPG\', 즉 \'TRPG\'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거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컴퓨터 게임에 있어서 \'RPG\' 라고 한다면 경험치의 증가로 인한 레벨의 상승, 유저에 의한 능력치의 선택적인 향상, 다양한 직업 혹은 클래스의 제공 등등 몇 가지 정형화된 규칙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최초의 \'RPG\' 가 갖고 있던 테두리가 상당히 광범위했다는 사실이다. \'D&D\' 의 규칙은 책자에서 명시되지 않은 내용의 경우 게임을 진행해 나가는 \'던전 마스터(Dungeon Master : DM)\' 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며,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의 바운더리를 융통성있게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요새 가끔씩 게이머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어떤 것이 RPG고 어떤 것이 아니냐\' 하는 등의 논쟁은 그다지 생산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본래 \'RPG\' 라는 장르가 의미하는 영역의 폭이 매우 넓은 만큼, 그 경계를 따지려는 논쟁 또한 헛된 노력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무리 [파이널 판타지X]가 게임의 진행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단순한 흐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고 또 결정적으로 게이머가 주인공을 통해 \'감정이입\' 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이미 \'RPG\' 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얼마 전에 출시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엑스박스(이하 Xbox)용 게임 [오토기]를 \'액션 RPG\' 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제목 그대로 \'영웅적인\' 스토리
"동쪽의 산등성이에서는 천천히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당신은 침낭 밑으로 차갑지만 포근한 흙바닥을 느끼면서 서서히 잠에서 깨어납니다. 주변에서는 언제 일어났는지 귀가 뾰족한 엘프 동료가 아침 식사를 위해 잠든 불씨를 깨우고 있고, 오늘도 부드러운 표정의 성직자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로 아침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 공기가 당신의 코를 간질이고, 당신의 애마의 푸르륵 거리는 투레질 소리가 오늘 또 다른 모험이 시작될 것을 기운차게 알리고 있습니다."
위 글은 \'D&D\' 저자 \'Frank Mentzer\' 가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서문에 써놓은 글이라고 한다. 한가로운 정취를 재미있게 묘사한 것이 초기의 \'RPG\' 가 가지고 있던 낭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번 인용해 보았다. 하지만 이 게임의 스토리는 저 글처럼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시작되지는 않는다. 과거에 네명의 영웅들이 힘을 합쳐 물리쳤던 사악한 마법사가 다시금 부활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 원로들이 그 옛날의 전설적인 영웅들을 또다시 현세로 불러들인다는 내용이다. 물론 무척이나 진부하고 단순하기까지 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고전적인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 않은가? 서부영화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는 것이나, 007 영화의 황당한 무기들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통 고전 RPG의 이름과 형식을 빌려오는 만큼, 스토리 또한 복잡하고 심오한 것 보다는 약간 진부하더라도 저렇게 거창하고 단순하게 잡는 편이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무시무시한 \'레드 드래곤\' 이나 \'비홀더\' 같은 강력한 적들을 만날 텐데, 최소한 저 정도의 중대한 이유쯤은 있어야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을 것 아닌가(필자만 그럴지도...).
모두를 위한 \'D&D\' 로 변화
[D&D 히어로즈]의 게임성을 따져보기에 앞서서 우리는 우선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게임의 게임성은 최초의 \'D&D\' 가 가지고 있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시나리오 전개에 있어서 자유도는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게이머는 정해진 상징을 찾아 잠겨있는 문을 열지 않으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게 되어있다. 무기의 대미지는 주사위의 수치가 아닌 일반적인 수치 방식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D&D 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마법도 사용되고 있었다(예를 들면, 파이터가 사용하는 \'워 크라이(War cry)\' 라는 기술은 중후반까지 꽤나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원래 D&D에 있던 기술은 아니다). \'마나(Mana)\' 라는 개념이 없는 \'D&D\' 룰이지만, [D&D 히어로즈]에는 엄연히 마나의 개념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피니쉬 무브\' 라는 스킬이 따로 지정되어 있어서, 콤보를 적중시키면서 녹색 게이지를 채운 다음에는 \'피니쉬 무브\' 를 발동하여 마나를 소모하면서 강력한 타격을 적에게 가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물론, 원래 \'D&D\' 에는 전혀 없는 룰이다. 개인적으로 파이터가 양손검 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는 설정은 매우 불만스러운 부분이었다. 이 밖에도 [D&D 히어로즈]에는 수많은 변형된 규칙과 변형된 기술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이 게임에 대해 실망감을 느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옛날 게임센터에서 즐겼던 \'캡콤\' 의 [D&D :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같은 작품을 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기존의 틀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여 재미있게 재구성 하였다면, 그것을 원작과 다르다고 하면서 굳이 욕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D&D 히어로즈]는 기본적으로 \'D&D\' 가 가지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라이트 유저들을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간편한 게임성을 구축하였으며, 액션성을 가미한 게임답게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한 손맛을 첨가하였다. 줌 인, 줌 아웃을 이용하여 게임의 박진감을 한층 높혔으며, 맵의 구성 또한 복잡하지 않게 하여 이리저리 헤매지 않고도 충분히 모든 맵을 구석구석 탐험해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플랫폼을 \'테이블\' 에서 \'Xbox\' 로 옮긴 만큼, \'코어 유저\' 들을 위한 게임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모두를 위한 D&D\' 로 거듭나려는 제작사의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결과 또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필자는 플레이하는 동안 내내 상쾌하고도 즐거운 기분으로 캐릭터를 전진시킬 수 있었다.
물론, 편해진 만큼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 \'너무 간단해졌다\' 는 것. 각종 기술의 성능이나 갑옷의 옵션, 무기의 옵션 등을 보면 \'어떤 기능이 있다\' 정도만 표시되어 있을 뿐, \'어떤 기능이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얼마나 강력하게 적용 되는가\' 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저 \'공격속도가 약간 빨라진다\' 거나, \'불 저항력이 높아진다\' 는 식으로 표기했을 뿐 구체적으로 얼마나 좋아지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본래 \'D&D\' 는 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기의 공격속도를 측정할 때 \'1턴 동안 몇 대 때릴 수 있다\' 는 식으로 표기하거나, 마법을 설명할 때 \'독 내성굴림을 몇 턴 동안 +1 올려준다\' 는 식으로 확실히 명시할 수 있게 되어있지만, [D&D 히어로즈]는 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있다. 내부적인 설정이나 진행과정을 굳이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게이머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은 알려주는 것이 좋은 게임으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단점이라면, 특정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로딩 화면에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것은 보너스 요소로 옵션에 포함시켜서 한번 만난 몬스터는 \'몬스터 일람표\' 에서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식의 서비스를 제공했더라면 게이머의 입장에서 느끼기에 훨씬 흐뭇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울 샤드\' 를 통해서 전설의 무기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생각 또한 괜찮았지만, \'소울 샤드\' 를 너무 뻔한 곳에 위치시켜놓고, 게다가 그걸 모아서 업그레이드 한 전설의 무기는 다른 무기들과 비교해도 크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성능을 갖고 있다. 차라리 \'소울 샤드\' 를 적절한 곳에 숨겨놓고, 그것을 찾아서 업그레이드한 무기의 능력치를 매우 강력하게 설정하였다면 좀 더 숨은 재미를 보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명성에 걸맞은 영상과 사운드
기존의 \'D&D\' 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가, 콘솔로 발매되면서 갑자기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된 항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당연히 \'그래픽\' 과 \'사운드\' 를 꼽을 것이다. 이것은 게임에 액션성이 가미되고, 플랫폼이 콘솔로 바뀌게 되면서 발생한 변화 중 가장 크고 또한 복잡한 사건이다. 제작사는 요즈음의 추세에 따라 3D를 선택하였으며, Xbox의 성능을 최대한 이용하여 깔끔한 \'D&D\' 의 세계를 구현해내었다. 화면을 넓게 보았을 때와 가까이로 접근하였을 때 모두 어색하지 않은 그래픽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마법을 사용했을 때의 특수효과가 상당히 화려하기 때문에 가끔씩 가까이에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 디자인은 그다지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으며, 조금은 평이한 스타일로 구성되어있다. 말 그대로 파이터 같은 파이터, 마법사 같은 마법사, 도적 같은 도적 등등이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운 부분인데, 게이머가 게임 상에서 감정이입을 하는 아바타가 바로 캐릭터인 만큼 시나리오나 게임성, 컨셉보다는 조금 튀게 설정해도 용서가 되지 않았을까. 다소 강렬하면서도 좀 더 파격적인 의상이나 갑옷이 선보였더라면, 자칫 둔탁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게임이 좀 더 스타일리쉬하게 보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사운드 또한 깔끔하고 적절히 제공되어진다. BGM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이어지지만, 게임 전개 자체가 빠르고 경쾌한 느낌이기 때문에 게임의 분위기가 BGM으로 인해서 다운되거나 묻혀버리는 일은 없다. 장대한 모험을 즐기기에는 딱 적당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효과음 또한 실감나게 되어있다. 게임의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이벤트 씬에서는 높은 퀄리티의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그 퀄리티가 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면서 내심 상당히 놀랐다. 매번 보스전을 펼칠 때 마다 보여주는 화려한 동영상은 게이머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며, 사운드 또한 \'돌비 디지털 사운드\' 를 지원하면서 보다 박진감 있는 소리를 게이머에게 선사하게 된다. 그래픽 또한 프로그레시브 출력을 지원하므로, 혜택 받은 Xbox의 모든 성능을 최대한 동원하여 모험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다.
네명이 같이 하면 네배 재미있다
비록 최근의 대세인 Xbox Live 기능은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여럿이서 같이 하기에 좋은 게임\'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4인 동시 플레이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Xbox 본체에 컨트롤러 커넥터가 네개 있는 만큼, 별도의 멀티 탭 없이도 네명이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으며, 프레임의 저하도 그다지 거슬릴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 게임 방식은 화면분할이 아니라 한 화면에 네명의 캐릭터가 들어가서 함께 움직이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화면을 최대한 멀리서 보도록 해놓고 플레이 한다면 그다지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네명이 함께 뭉쳐서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동아리방에서 친구들과 4인 플레이를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저녁 먹는 6시까지 네명 모두 화장실 갈 때 이외에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게임은, 어떤 게임이든 다 그렇겠지만 혼자서 할 때 보다 여럿이서 할 때 더더욱 강렬한 재미를 선사하며, 그 맛은 한번 해 본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서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을 약속할 수 있다. 아울러 후속작이 나오게 된다면 반드시 Xbox Live를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비교 체험, [D&D 히어로즈]와 [BG : DA]
[D&D 히어로즈]는 그 게임성을 논함에 있어서 비슷한 시기에 조금 일찍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 : 암흑동맹(이하 BG : DA)]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 두 게임이 똑같이 3D를 사용한 3인칭 액션 RPG라는 점과, \'D&D\' 의 룰을 토대로 하여 게임성을 구축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두 게임을 모두 플레이해 보았고, 또 나름대로 양쪽 다 만족스럽다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각 게임마다의 장단점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D&D 히어로즈]의 가장 큰 장점은 줌 인, 줌 아웃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필자는 [BG : DA]를 하면서 내내 작은 화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야 했으며, 무엇이 떨어졌는지 입수하기 전에는 잘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D&D 히어로즈]의 경우에는 적절한 줌 기능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플레이 화면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그러므로 눈이 상당히 덜 피로하게 되며 또한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쿼터 뷰\' 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차이 하나 때문에 게이머가 받는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화려한 효과는 [BG : DA] 쪽이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캐릭터의 동작들 또한 [BG : DA]쪽이 좀 더 부드러우며, 각종 마법 효과라던가 특수기능이 붙은 무기에서 불꽃이 떨어진다던가 하는 점 등은 긴 게임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타격감에 있어서는 [D&D 히어로즈]가 즉각적이고도 확실한 피드백을 보여주며, 그런가 하면 걷거나 뛸 때의 움직임은 [BG : DA] 쪽이 좀 더 자연스럽다.
전반적인 평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게임이 더 우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각 게임은 나름대로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분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장점을 좀 더 많이 갖춘 게임을 선택하여 플레이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BG : DA]의 후속작이 정식 발매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을 기다리며 먼저 출시된 게임들을 천천히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어떠한 게임이든 주요한 목표로 잡는 구매계층이 있게 마련이다. [D&D 히어로즈] 같은 경우에는 라이트 유저들까지도 구매 대상으로 고려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대부분 내용을 구성할 때 쉬운 영어를 사용하여 제작하게 된다. 실제로 이 게임을 플레이해본 필자는,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조금만 투자해도 충분히 한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만약 유통사 측에서 [디아블로], [리니지] 등의 액션형 RPG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을 잘 간파하고, 여기에 약간의 선견지명을 덧붙여서 한글화를 추진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게임이 커다란 대박 히트를 기록하고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매번 \'한글화 안 되어있네 어쩌네\' 하면서 찡찡거리는게 지겨운 나머지 조금 황당한 상상을 해 보았지만...글쎄...이거, 정말로 현실성 없는 걸까...?
\'고전 명작\' 의 향기를 느껴보자
최초의 RPG가 생겨난 이래로 게임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RPG라는 장르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이제는 RPG라는 장르를 제외하고는 게임을 논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지금, 사람들은 서서히 최초의 RPG가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매력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여러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직접 해보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RPG 매니아들이 \'D&D 룰북\' 을 구입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친구들과 함께 해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행운이겠지만, 개인사정 상 그러한 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D&D 히어로즈]를 선택하는 것도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규칙이나 게임성은 약간 다르겠지만, \'D&D\' 라는 게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묘한 매력과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것 하나 만으로도 이 게임을 플레이 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필자는 자신 있게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