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Xbox One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레닌그라드 레메디, 장사를 떠나다
"우주는 출입이 금지되었으니 생존의 유일한 희망은 시간이었다."
-크리스 마르케, '환송대' (La Jetée, 1962) 중
핀란드를 대표하는걸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자일리톨로 불리는) 크시리톨 껌을 얘기할 것이다.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하얀 악마 저격수 시모 하이하를 들 것이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국민악파로 유명한 장 시벨리우스나 나이트위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를, 영화광이라면 아키 카우라스마키를 꼽을 것이다. 이 와중에 무민의 토베 얀손과 건축가 알바르 알토는 왜 빼놓냐는 아우성도 들려온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작인 맥스 페인과 앨런 웨이크. ...이제 게임 다섯 개 내놓은 회사에게 대표작 타령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
하지만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핀란드는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나라다. 1996년 '데스 랠리'라는 과격해보이면서도 조촐한 사이즈의 레이싱 게임으로 얼굴을 내민 그들은 꽤나 오랜 시간 투자해 만든 '맥스 페인'으로 게이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필름 느와르 장르에 ('매트릭스'에 영감을 받은) 불릿 타임이라는 혁신적이면서도 '폼'을 중시한 3인칭 슈터 게임 디자인으로 500만 장 이상이 팔리는 대박을 치게 된다. 이 게임의 히트로 그들은 덴마크의 아이오 인터랙티브, 스웨덴의 다이스, 노르웨이의 펀컴, 아이슬란드의 CCP 게임즈와 함께 2000년대 초 북유럽 게임 제작사 신드롬을 이끌게 된다.
그렇지만 '맥스 페인 2'로 프랜차이즈에 손을 뗀 그들의 새로운 게임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을 받아 겨우 나오게 된 신작 '앨런 웨이크'는 맥스 페인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줬다. 우선 장르는 H.P. 러브크래프트풍 호러로 변모했으며, 전작의 불릿 타임으로 대표되는 '폼'을 중시한 동적인 디자인은 빛과 어둠의 무기화라는, 표현주의에 매료된 정적인 디자인으로 대체되었다. 이런 변모에 앨런 웨이크는 생각보다 부진한 판매량을 보였지만 독특한 매력으로 팬이 된 사람도 많았다.
또 6년이 흘렀다. 아니, '앨런 웨이크의 아메리칸 나이트메어'까지 포함하면 4년이겠지만.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신작 '퀀텀 브레이크'는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퀀텀 브레이크는 꽤나 무지막지한 모양새를 자랑하고 있다. 우선 그들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서 아이스맨을 맡은 숀 애쉬모어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피터 베일리쉬를 맡았던 에이던 길런을 기용했고, 이야기 면에서도 꽤나 스케일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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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상상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무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퀀텀 브레이크'는 한마디로 시간 여행과 양자 역학을 다루고 있는 SF 스릴러다. 미국 북동부 가공의 도시 리버포트 시. 주인공 잭 조이스는 친구이자 물리학자인 폴 세린의 부탁을 받아 그가 연구하고 있는 리버포트 대학으로 오게 된다. 폴은 타임머신을 만들고 있었으며 연구에 부정적인 숀의 형 윌리엄을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타임머신을 작동시킨다. 하지만 타임머신 작동 도중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당황한 잭의 눈앞에 나타난 폴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잭은 폴과 모나크 솔루션스의 음모를 파악하고 시간의 붕괴를 막아야 하는데…….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리~ 나는 바보가 돼버린 걸~ |
먼저 시간 여행 장르의 역사를 살펴보자. 이전부터 시간 여행에 대한 개념을 다룬 픽션들은 꾸준히 존재해왔으나 본격적으로 정립되고 체계화된 것은 H.G. 웰즈가 1895년에 쓴 소설 '타임머신'이었다. 이 작품이 내놓은 기계를 이용한 인위적인 시간 여행 개념과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꽤나 혁신적이었기에 곧 SF 장르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개념은 꽤나 잘 팔리는 장르가 되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웰즈와 동시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적인 시간 이론을 박살내버렸음에도 웰즈의 고안물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미국 SF 소설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시간 여행에 대한 짧지만 섬뜩한 단편 '당신들 모두 좀비'와 반대로 느긋하고 낙천적인 고양이 찬가 '여름으로 가는 문'을 내놓았으며, 프랑스 좌파 다큐멘터리 감독 크리스 마르케는 '환송대'를 통해 문명의 파국과 기억에 대한 우울한 시적 은유를 시간 여행이란 소재로 담아내며 '12 몽키즈'의 모체가 되었다. '백 투 더 퓨처'나 '닥터 후', '소스 코드', '루퍼'같은 메이저 작품부터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이나 '프리머'처럼 컬트 팬덤을 이끄는 작품까지, 타임머신 사용 여부를 불문하고 시간 여행을 다룬 작품은 해마다 나오고 있다.
시간 여행이 꽤나 단물 다 빠진 소재임에도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과거를 '수정'하거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인간은 시간에 도전하지 못한다.'라는 절대적인 명제 때문에 인간은 무수한 고뇌와 후회를 반복해왔으며,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그 시간을 도전해 수정하고 예측하는 은밀한 지적 쾌락을 즐겨왔다. SF(혹은 공상과학)라는 장르가 지금까지 사랑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들의 상상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무한의 가능성'을 지극히 논리적인 과학과 결합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신기한 꿈과 먼 과거가 좋아서 타임머신 스위치를 돌렸더니 티라노사우스랑 산보는커녕 암모나이트 점심도 못 먹고 고생만 한다. |
■ "이 차원에 있는 이상 그것은 닿을 수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사고가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먼 존재는 아닙니다."
사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다루기는 꽤나 어려운 소재다. 한마디로 내적 논리가 이야기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장르라 할 수 있는데, 이 장르에 속한 작품들 대부분 이런 내적 논리 설계에서 걸려 넘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퀀텀 브레이크는 어떠한가? 우선 퀀텀 브레이크는 물리학, 특히 2010년대 이후 CERN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핵심이 되는 터널형 타임머신 디자인은 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걸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모든 존재를 아우르며 시간을 구성하는 크로논(=마이어-조이스) 입자와 그 입자로 구성된 마이어-조이스 필드를 조정하여 회전 블랙홀을 만들어 시간을 여행한다는 설정은 최근 시간 여행을 다룬 SF 유행에 충실하다.
CERN의 고증을 받았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최근 물리학계의 발견들을 반영하고 있다. |
물론 이런 유행도 태클 걸라면 여전히 과학적으로 태클 걸 수 있긴 하지만 적어도 샘 레이크나 그 휘하의 각본진들이 하자를 감수하더라도 정교하게 내적 논리를 설계하고 있으며 자신이 만들어놓은 물리적 한계에서 꽤 날렵하게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퀀텀 브레이크는 프리머처럼 서사에 복속된, 일관된 동선 배치를 배격하고 시간 여행 자체의 논리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유형의 작품이 (당연하겠지만) 아니다. 오히려 퀀텀 브레이크는 주인공 잭의 감정적 동선을 흐트러짐 없이 따라가면서 시간 순서를 배치하는 어찌 보면 답답하다 할 정도로 정석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제하고 보면 퀀텀 브레이크는 '운명론'을 다루고 있는 게임이다. 퀀텀 브레이크가 내세우는 전제는 '과거에 영향을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이다. 의외로 이 전제는 인물들의 동기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퀀텀 브레이크는 시간 여행을 겪은 어떤 캐릭터의 사상적 변화를 보여주면서 이 전제를 공고히 한다. 그렇기에 퀀텀 브레이크의 시간 여행은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라는 화두를 풀어내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꽤나 우울한 비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비전은 12 몽키즈(와 원작으로 삼은 환송대)하고 유사한 구석이 있다.
꽤나 친절하게 정리해주는 편인지라 시간 여행으로 변동되는 타임라인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다. |
■ "어떤 의미에서는 저 자만큼 해가 없는 남자도 없을 거야. 과거에 살고, 과거에 죽지. 그는 이 세계를 배신할 수 없어."
퀀텀 브레이크가 이런 불가항력적인 '파국'을 타개하기 위해 동원한 방책은 초능력이다. 설정상 크로논 입자에 노출된 이들은 쉬프터로 불리며 시간을 조작하는 초능력을 쓸 수 있는데, 이 부분은 게임 디자인과 더불어 내적 주제랑 연결된다는 점에서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찌 보면 매우 '장르'적으로 운명론을 돌파한다고 볼 수 있다.
의외로 캐릭터 설계나 구도 면에서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캐너스'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다. 물론 소재가 다르니 완벽한 오마주라 하기엔 미묘하지만 초능력의 부작용과 그에 대한 의학적 대책을 설정한 부분, 주인공과 반동자 간의 숙명적인 대립 구도 등은 샘 레이크가 스캐너스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하는 지점들이 있다. 물론 잭이나 리엄이 보여주는 '자신을 괴롭히는 어두운 과거와 고군분투하면서 어떻게든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무법자' 같은 캐릭터에서는 서부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무법자 캐릭터의 향취도 찾아볼 수 있다.
머리를 터트리거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 텔레파시를 하지 않지만, 폴과 잭의 대결 구도는 |
그래서 이런 소재를 제대로 잘 다뤘는가, 라는 진짜 질문으로 넘어가면 우선 캐릭터 조형이나 연기 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먼저 주인공 잭 조이스가 요새 비야낭 대상이 되고 있는 일견 "공장 생산된 백인 마초 액션 캐릭터"처럼 보여도, 막상 보면 꽤나 담백하게 조형되어 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맥스 페인이나 앨런 웨이크에서 보듯이 샘 레이크는 일견 강단 있으면서도 복잡한 심리를 지닌 주인공 캐릭터를 잘 써내려가고 있으며, 숀 애쉬모어가 이런 캐릭터를 에고 과시 없이 정치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주인공이 요새 지겨울 정도로 자주 본 '이를 앙다문 채 으르렁거릴 줄만 아는'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위트 있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폴 세린을 맡은 에이던 길런을 빼놓으면 곤란할 것이다. 상술했듯이 이 캐릭터는 기능적으로는 스캐너스의 대릴 리벅을 오마주한 듯한 초능력을 보유한 과대망상적인 악당이지만, 동시에 구세주로써 압박감과 정해진 운명에 대한 절망감, 친구에 대한 애증과 불신을 표출해야만 하는 복잡한 캐릭터인데 이 부분은 에이던 길런이 멋들어지에게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 라이브 액션 쇼 파트에서 에이던 길런와 숀 애쉬모어의 열연이 없었더라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잭과 폴의 대결 구도는 매우 시시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대표역인 피터 베일리쉬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형태의 연기가 필요한 역이였는데,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
이 둘을 제외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 질이 높은 편인데, 그 중 마틴 해치 역의 ('프린지'의 필립 보이스로 유명한) 랜스 레딕이 강렬하다. 안약을 눈에 넣거나 승강기에서 걸어 나오는 등 사소해 보이는 장면에서 레딕 연기자는 "사람 하나 정도는 파리 잡듯이 아무렇지 않게 죽여버릴수 있는" 파충류 같은 카리스마를 스멀스멀 뿜어내며 공력을 발휘한다. 이외 불안정해 보이지만 심지가 굳은 역을 맡은 도미닉 모나한이나 터프하면서도 어떤 울굴을 품고 있는 무법자 캐릭터를 소화한 패트릭 휴싱어 등 배우들이 자기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 있다.
능구렁이 같은 음흉함을 발산하는 게 매력적인 캐릭터다. |
■ "애초에 녀석들에게 중력을 거스르려는 발상은 없었던 거야."
반대로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바로 프로덕션 디자인 부분인데, 이 부분은 범용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에코 음향이 낮게 깔린 채 청색과 흰색 위주의 무중력/저중력 효과로 묘사된 스터터(시간 멈춤 상태)나 투명한 이면체 조각이나 검고 둥근 파편으로 등장하는 크로논 입자 효과들, 투명한 거품처럼 묘사되는 시간 방어막 같은 비주얼적 부분들은 우수한 질감과 달리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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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뽑히긴 했는데, 어디선가 조금씩 본 것 같은 느낌. |
비단 초상현상 묘사뿐만 아니라 SF 장르 특유의 '룩'을 구현하는 부분도 비슷한 아쉬움이 남는다. 등에 무거운 크로논 팩을 짊어지고 노란 군용 방호복을 입은 크로논 능력을 쓰는 병사의 복장, 파워드 슈트, 투명하게 반사되는 구체 모양의 블랙홀, 대항책, 모나크 솔루션 건물들 무채색 위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묘사되고 있긴 한데 이미 존재하는 작품들을 참조한 티가 난다고 할까. 그나마 둔중하면서도 독특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터널형 타임머신 정도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아쉬움이 액션 쇼에 등장하는 실사 드라마 파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걸 보면 소위 유명 디자이너들이 비싼 돈 받고 시각 콘설턴트를 해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퀀텀 브레이크가 사실상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첫 SF 작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아쉽게도)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에겐 훌륭한 SF 작품들이 지니고 있을법한 미적인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부족한 듯하다.
이번 작의 '똑딱이'...인데 올해 초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된 모 일본 만화에 나오는 모 아이템하고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100% 우연이지만. |
오히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강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악몽 같은 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다. 잔상처럼 남은 섬광, 세월의 흔적이 잔뜩 배인 수영장 건물과 타임머신과의 대조, 유령과 같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거 시간대의 인영들, 난장판이 된 시간의 흐름을 압축해 보여주는 스테이지 연출, 신비한 그래피티,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공격당해 쑥대밭이 된 특수부대, 시간의 붕괴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건물과 뚫고 들어온 기차 같은 부분은 맥스 페인의 맥스가 겪는 악몽이나 앨런 웨이크의 표현주의적인 대비를 이뤘던 그림자 괴물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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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강점을 드러내는 장르는 SF가 아니라 미스터리나 호러 아닌가 싶기도 하다. |
그래픽은 어떤가? 퀀텀 브레이크의 그래픽은 720p 4xMSAA에 기반으로 굵은 필름 입자가 낀 듯한 거친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간의 박한 평가들과 달리 나쁘게 평하고 싶진 않다. 물론 Xbox One인데도 1080p가 아니라는 점과 종종 어색한 디테일은 아쉽긴 하지만 물리적인 디테일을 잘 잡아낸 폴리곤 질감이나 특유의 광원 효과, 인물 모델링 등은 꽤 괜찮은 편이다. 특히 조명 연출이 뛰어난데, 단순히 실사 영상처럼 조명을 배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빛의 질감 등을 고려하며 조명을 구성했다. 이런 물리적인 무게감과 섬세한 빛의 질감을 구현하는 그래픽 콘셉트는 시간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는 스테이지나 낡고 쇠락한 건물 등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제일 빛을 발하고 있다.
다만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이런 질감을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능력은 확실히 부족한 편이다. PC 버전을 둘러싼 일련의 결함과 소동들도 그렇지만, 게임 도중 프리징이 일어나 리셋을 해야 하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PC 버전에 대한 지적을 읽어보면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급하게 준비하다가 삽질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또한 최적화가 제대로 되질 않은 여파로 퀀텀 브레이크는 로딩이 잦은데다 제법 길다. 인 게임 컷 씬을 스킵하려고 하면 차라리 다시 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기나긴 로딩을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컷 씬 직후 이어지는 전투 도중에 죽으면 꽤나 짜증난다. 전반적으로 게임 자체가 좀 쾌적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선명한 그래픽은 아니지만 우수한 모습을 보이며, 광원 효과가 꽤 잘 뽑혔다. |
다만 최적화가 별로라는 게 치명적. |
■ 나는 라이브 액션 쇼 감독을 고용했다
퀀텀 브레이크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실사 파트인 라이브 액션 쇼가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라이브 액션 쇼는 본 게임과 다른 등장 인물들을 내세워 퀀텀 브레이크 세계 내의 비밀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분량도 단순히 컷 씬 수준이 아닌 웬만한 드라마 에피소드 세 개 정도 되는 분량을 자랑한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는 그동안 그래픽 노블이나 실사 영상 같은 타 매체를 게임에 끌어들이는 시도를 해왔다. 맥스 페인은 그래픽 노블을 이용한 이벤트 연출을 선보였고 앨런 웨이크는 실사 매체를 게임에 적극적으로 집어넣었고 아예 가상 밴드의 뮤직 비디오를 찍기도 했다. 퀀텀 브레이크는 그 중 가장 극단적으로 나간 케이스다.
레메디: 실기 구동 스크린 샷입니다. |
지나가던 유튜버: 3D 캐릭터가 너무 리얼해 보이네요. |
라이브 액션 쇼 자체는 문제없다. 내용도 게임 내 서사랑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지나치게 최신 트렌드에 경도된 셰이키 캠을 이용한 액션 연출을 제외하면-쓸때없는 기교 대신 캐릭터 동선과 서사를 따라가는, 기본기에 충실한 연출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상기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약점 때문에 손해 보는 감도 있긴 하지만 어지간한 중급 예산 미국 드라마의 완성도는 된다.
다만 이 라이브 액션 쇼가 본 게임이랑 교차되는 구조가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 라는 의문은 지울 수 없다. 퀀텀 브레이크는 'TV 드라마'가 아니라 '게임'이다. 우리가 패드를 잡는 이유는 캐릭터를 전진시키기 위해서지, 캐릭터의 활약을 수동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퀀텀 브레이크의 라이브 액션 쇼는 '플레이어를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리는데다' FMV 시절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게임 디자인과의 연결 고리도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시에라: 우리도 MS 지원받았다면 좋았을 건데(시무룩). |
액세스: 야 난 MS 휘하였는데도 지원은 커녕 골프 게임만 만들었어. |
게다가 분량도 꽤 되기 때문에 한 챕터를 간신히 클리어했는데 라이브 액션 쇼가 시작되면 김이 빠진 상태로 감상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라이브 액션 쇼가 맥스 페인이나 앨런 웨이크의 아메리칸 나이트메어 같이 연출적인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스킵하려고 해도 중요한 떡밥들이 등장하고 해명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라이브 액션 쇼가 게임의 리듬감을 제대로 망치고 있다.
이리하여 레메디는 1080p보다는 『FMV』를 동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
게이머: 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 |
정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선택 분기 시스템 자체는 제작진의 생각보다 충실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결국엔 이야기의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상 몇 개 바뀌고 게임 내 캐릭터가 바뀌는 정도다. 이 게임의 본질이 어드벤처가 아니라 액션 게임이며, 제작진이 분기 변화 시스템을 쓸때없이 과장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참작할 수 있는 정도다.
분기점 시스템은 의외로 충실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
이런 건 사소한 문제라 치고 넘어가더라도 서사 자체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지 않는 게 치명적인 문제다. 너무 후속작 떡밥에 집착한 나머지 막상 캐릭터의 심리적 동선과 그들의 고민거리에 대한 대답이 생각보다 부실해졌다. 짠하고 모양새는 나오긴 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아니 그래서 XX는 어떻게 된 거야? 00의 정체는 대체 뭐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결말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비슷한 소재를 다룬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처럼 시적이거나 다의적인 해석을 노린 것도 아니고 앨런 웨이크처럼 최소한 장르적인 용인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여러모로 아쉽고 답답한 결말이라 할 수 있다.
결말을 보고 '그래서 어떻게 됐단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 분명 있을 거다. |
■ '저건……. 사람인가?!'
게임 디자인으로 넘어가보자. 게임 디자인 면에서 퀀텀 브레이크는 전형적인 TPS라 할 수 있다. '언챠티드' 시리즈나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콘솔에 최적화된 '시네마틱 TPS 게임'을 생각하면 좋다. 원래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게임의 구조를 혁신해 주목받는 유형의 제작사는 아니고, 스토리와 연출로 승부를 보는 회사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혁신가는 아니긴 했지만 앨런 웨이크에 비해 디자인이 전형적이라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
그래도 전작 앨런 웨이크는 장르 자체는 전형적인 총질 게임이었던 맥스 페인에 비하면 상당히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이는 게임이었다. 총 자체는 큰 효과가 없고 빛이라는 존재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앨런 웨이크의 게임 디자인은 공포 장르랑 맞아떨어지면서 새롭진 않아도 나름 독특한 맛을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퀀텀 브레이크의 시간 정지 능력은 큰 비중이긴 해도 결국엔 액션의 주도권을 총이 쥐고 있는지라 결국 다시 '총 위주로 돌아가는 TPS 게임'에 안주해버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도 시간 증폭 스킬 자체는 꽤 잘 만든 편이다. 기본 스킬 자체는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획득하지만 맵에 있는 크로논 원천을 수집해 심화 스킬을 해방해 능력을 쓸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는데 '폼'을 중시하는 플레이에 강점을 보였던 레메디 엔터테인먼트답게 이 부분은 꽤나 재미있다. 능력 자체는 신선한 편은 아니지만 시간 증폭/조작이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설계되어 있다. 타임 비전이나 시간 폭발처럼 기존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기능부터 시작해, 시간 정지나 시간 돌진처럼 게임 콘셉트에 특화한 멋지구리한 능력도 존재한다. 능력 이펙트도 꽤나 화려하게 나오는 편이어서 시각적인 즐거움도 가득하다.
크로논 원천을 모아 스킬을 업그레이드 해 진행하는게 플레이의 기본. |
능력 디자인도 잘 이뤄졌지만 이 능력을 이용한 플레이가 꽤나 재미있다. 예를 들어 시간 회피를 이용해 뿜뿜 도망 다니다가 시간 정지를 이용해 적을 멈추고 총을 갈겨대거나, 방어막으로 엄폐한 뒤 회복하면서 총을 갈겨대다가 시간 폭발로 뻥 터트리는 화려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공통의 게이지를 소모하는 게 아닌, 개별 스킬마다 쿨타임을 적용하는 식의 디자인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맥스 페인의 불릿 타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퀀텀 브레이크가 제공하는 시간 증폭 플레이가 꽤나 마음에 들 것이다.
잭: 크로논면 시키신 분~ 뭐 안 시켰다고? 크로논면으로 맞아볼래? |
...말이 안 통하는군. 그럼 먼저 나의 월드 맛좀 쬐끔만 보거라!!! |
핵심이 되는 총격전 같은 경우도 무난하니 좋다. 권총-SMG-기관총/샷건 삼위 체제를 기반으로 이뤄진 무기 시스템은 비교적 단순하긴 해도 차별화는 확실히 이루어져 있다. 총기 사운드나 타격감이 꽤 찰지게 구성되어 있어서 상기한 시간 증폭 스킬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오랫동안 TPS를 만들어온 레메디 엔터테인먼트답게 안정된 30프레임으로 구현되는 슈터로써 감각은 평균 이상이라 할 수 있다. UI 디자인이나 조작 역시 가끔 점프 버튼과 능력 버튼을 헷갈리는 걸 제외하면 준수한 편이다.
오늘의 교훈. 크로논면집에 장난 전화를 했다간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
■ "바보. 그야 전부가 완벽하게 움직일 때의 얘기지."
하지만 이런 장점들을 가릴 정도로 퀀텀 브레이크는 게임으로써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먼저 스킬 디자인 자체가 꽤나 협소하다. 스킬 트리 수를 체크해보면 알겠지만 스킬 자체는 그럭저럭 구색은 갖춘 수준이지만 업그레이드 가능한 스킬 테크는 최대 3종류 정도로 그렇게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스킬 업그레이드도 그렇게 혁신적인 변화가 없기에–한마디로 업그레이드가 너무 실용적인 나머지 그리 멋있지 않다―후반부에 스킬 트리를 거의 다 찍고 나면 능력을 반복해서 쓰게 된다.
적이나 A.I. 디자인도 다소 평면적인 부분이 많다. 기본적인 엄폐나 지형물 활용, 수류탄 투척, 회피는 무난하지만 A.I.의 반응 자체가 그렇게 재미있는 편이 아니고, 중무장한 병사 같은 경우 대부분 플레이어 쪽으로 다가오며 총질하는 정도의 행동만 보인다. 이렇기에 지형물 활용이나 독자적인 판단 및 전략 같은 고도의 반응은커녕 플레이 자체가 정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중반부부터 크로논 능력을 쓰는 병사들이 등장할 때 정형화된 패턴이 깨지면서 나름 긴장감이 생기긴 하지만 그 긴장감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증발해버린다.
적들은 물론이고 스테이지 디자인이 만족스럽진 못하다. |
레벨 디자인이나 퍼즐 디자인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전투 스테이지와 비전투 스테이지 간의 균형이 비율이 안 맞아서 화려한 전투를 하고 싶은 플레이어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전투 스테이지의 레벨 디자인 역시 결함을 안고 있다. 좀 헐렁하게 디자인된 듯한 폴의 저택 정원이나 반대로 운신할 여지가 지나치게 빡빡해서 짜증이 솟구치는 최종 보스전 레벨 디자인이 그렇다.
무엇보다 비전투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퍼즐이 그다지 재미가 없다. 비슷한 시간 조작 퍼즐을 내세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가 작위적인 무리수를 두더라도 종종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곤 했는데, 퀀텀 브레이크는 그런 번뜩임이 적다. 시간을 뒤로 조작해 타이밍을 노려 돌파하거나 시간을 정지해 돌파하는 퍼즐이 주가 되고 있는데, 디자인 자체가 단순해서 쉽게 질린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보다 먼저 나왔어도 퍼즐이 신선하게 다가왔을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
이를 보듯이 게임 콘텐츠 자체가 적은데다 그 소모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게 단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상기한 실사 파트인 라이브 쇼 액트가 100분 정도 되는 상당한 길이인데, 반대로 게임 플레이는 (심지어 라이브 쇼 액트를 포함해도) 10-15시간이면 충분히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수집 요소가 풍족한 것도 아니다. 결국 화려하지만 풍족하지 못한 게임 콘텐츠 대신 스토리와 연출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상기했듯이 이조차도 뭔가 찝찝하게 끝나버리기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콘텐츠 소모 속도가 너무 빠르다. |
퀀텀 브레이크는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에겐 여러모로 야심작이라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뒷심 부족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시간 증폭을 이용한 액션은 호쾌하고 재미있지만, 콘텐츠 고갈 속도가 너무 빠르며, 최적화가 별로여서 꽤나 불편하다. 게다가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운 스토리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네마틱'에 대한 집착과 후속작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나머지 자기 완결성이 부족해졌다. 그렇다고 앨런 웨이크처럼 유행과 무관한 미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퀀텀 브레이크는 후속편이 나오지 않는 이상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 될 듯하다.
"시간은 그들 주위에서 고통 없이 스스로를 구성한다. 그들의 유일한 이정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순간의 향기이다."
-크리스 마르케, '환송대' (La Jetée, 1962) 중
??: 날 위해 돌아오는 건 좋은데 좀 더 충실하게 해서 돌아왔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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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챕터에서 잠긴 문을 발로 까던 주인공이 그 이후론 허름한 문 하나 못 까서 빙빙 둘러가야한다는게 의아했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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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그렇게 깔만한내용도 아닌데 참 리뷰하신분이 보면 기분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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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여러분이 원하던 '국내 탑급 게임 웹사이트의 전문성 있는 리뷰'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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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게시판이니 설사 불만어린 글을 적더라도 기본적인 매너를 지켜라는 거지요. 아다르고 어다른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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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자유지만 예절과 형식이 필요하지 부모에게 배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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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챕터에서 잠긴 문을 발로 까던 주인공이 그 이후론 허름한 문 하나 못 까서 빙빙 둘러가야한다는게 의아했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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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여러분이 원하던 '국내 탑급 게임 웹사이트의 전문성 있는 리뷰'가 아닐런지. | 16.05.05 22: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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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그렇게 깔만한내용도 아닌데 참 리뷰하신분이 보면 기분좋겠네요^^ | 16.05.06 1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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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게시판이니 설사 불만어린 글을 적더라도 기본적인 매너를 지켜라는 거지요. 아다르고 어다른법이지요... | 16.05.07 2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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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자유지만 예절과 형식이 필요하지 부모에게 배우지 않았나 | 16.05.08 00: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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