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PUBG, 사공 많은 배는 어디로 가는가
[루리웹 칼럼]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없으면 배는 어디로 갈까.
최근 한 게임의 패치 내역을 두고 소소한 파문이 있었다. 해당 게임에서 중요한, 플레이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수치에 대폭 변화를 준 것이다. 너무나 갑자기 본 서버에 적용된, 그것도 굉장히 치명적인 패치였기에 이렇게 변해도 되는가 싶어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이보다 더한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밸런스 패치를 진행한 후 유저들의 반발이 너무나 커지자, 하루만에 롤백한 것.
발단이 된 그 패치의 롤백 공지
보통, 주기적으로 밸런스 조정을 하는 멀티플레이어 PVP 게임에서, 이러한 밸런스 패치를 계획할 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밸런스 조정 그 자체로서 게임 지속력을 높이도록 이에 필요한 도구와 방법론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일련의 방법을 써서 밸런스 조정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자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면서 계속해서 새롭게 도전하고 파고들만한 딥다이브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활용해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 후자는 그런 콘텐츠 생산과 개선이 명확한 목표와 설계 하에 큰 그림으로 그려져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게임이 추구하는 바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 바로 기조(基調) 말이다.
모든 것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선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담고 있을 수 있지만, 온라인 PVP 게임으로 한정할 경우 게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들 중 몇 가지는 당연하게 지켜야만 하는 미덕이 된다.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일 또한 그런 미덕 중 하나다. 다른 미덕이란 꾸준히 파고들만한 요소를 제공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스스로의 실력 상승을 추구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것, 전략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플레이어가 싫증내지 않도록 할 것 등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라인 게임이라면, 이러한 개선과 변화가 연속성과 지속성을 띄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런 미덕이 합쳐지면, 그 게임이 가진 전체의 비전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올바른 개선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도구를 갖추는 것이 게임의 존립을 결정할 만큼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비전은 개발팀, 나아가 회사 관련 부서 전체에 강력하게 설정되어 공유되고, 항상 방향성이 제어되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게임의 생명력에 관여할 수 있는 각 파트의 장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최소한 게임이 지속적인 생명을 가지길 바란다면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 게임, 펍지(PUBG)의 ‘배틀그라운드’의 일 년을 지켜본 바, 기자는 이 게임이 여러 업데이트와 패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비전을 잘 모르겠다. 지금 ‘배틀그라운드’의 e스포츠는 별다른 리그 시스템 부분에서의 보완책이나 독특한 맞춤 전략 없이 다른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의 e스포츠 리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보면 펍지는 ‘배틀그라운드’ 가 쇼 이벤트에 걸맞는 게임이 아니라, 다른 e스포츠 게임들처럼 개인의 피지컬, 그리고 전략과 전술 연구로 파고들 수 있는 진짜 ‘실력겜’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업데이트나 패치는 그런 생각과는 정반대인 소위 ‘원빨겜’ 조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플레이어가 더 많은 교전을 벌이게 하고 싶다면 그럴만한 메리트를 부여해야지, 강제로 플레이어들이 일찍 만날 수 밖에 없도록 한다고 해서 게임이 더 공정하거나 재미있어지지는 않는다. 특히나 e스포츠에서는 당장 지금의 교전도 옵저버가 다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는 그저 루팅 운이 나쁘거나 사격 실력이 부족한 플레이어를 보다 빠르게 탈락시키는 효과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파밍, 자기장 등 도처에 널려 있는 무작위성이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임인데, 총기나 맵의 종류 같은 각 변수의 가짓수는 점점 더 늘려가면서도 정작 이를 컨트롤할만한 요소는 넣지 않고 있다. 과거 에란겔 맵에 날씨를 추가했을 때 생겼던, 안개맵이 걸릴 경우 플레이어들이 준비 단계에서 모두 빠져나가 플레이가 아예 불가능했던 에피소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때는 얼리 억세스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했으나, 정식 발매 후 몇 달 지난 지금도 이 게임에는 아직 그 흔한 맵 선택 기능조차 추가 예정일 뿐. 무기의 상하 관계는 점점 뚜렷해지지만 양적인 팽창과 함께 확률은 더욱 극악해질 뿐이다.
너무 급격했던 과정과, 갑작스러운 방향성이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게임의 밸런스 조절은 전적으로 수치 조절의 선에서 그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자기장 패치 이슈도, 게임의 전체 성패를 판가름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자기장의 대기시간을 반토막 내고, 이동속도를 절반 이하로 줄여버리는 등 엄청난 수치 변화를 가한 패치를 테스트 서버에서 제대로 된 검증조차 거치지 않고 적용해버리는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저들은 패치가 적용되는 과정 때문에라도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하루만에 롤백이 되어버리는 촌극이 발생했다.
‘배틀그라운드’ 는 온라인 PVP 게임으로서 얼마나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어 사면초가에 봉착해 있다. 콘텐츠 업데이트 속도는 지지부진하고, 그마저도 과연 맵과 총기의 양적 추가가 이 게임에 적절한 해법인지를 알 수 없다. 게임의 대중적인 저변을 넓히고 플레이어들의 의욕을 계속 리프레시 해야 하는 e스포츠는 잇단 흥행부진에 의한 상금 감소 및 이로 인한 프로팀 해체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자기장 조정 사례와 같은 밸런스 조정에서는 정확히 어느 수준, 어떤 방향으로 게임플레이를 유도해 나가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핵 문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직접 대입은 힘들지만 예시는 될 수 있다
대책은 다양하게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슈터 혹은 AOS 게임에 특성이나 룬 등의 시스템이 있는 것처럼 아예 밸런스에 새롭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스템을 주의 깊게 설계하여 도입하거나, 훨씬 더 많은 차이와 변수를 지닌 맵 혹은 명중률이나 데미지 수준이 아니라 아예 궤를 달리하는 기능을 가진 무기류를 추가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지만, 이는 ‘배틀그라운드’의 핵심이었던 ‘치열한 생존싸움’과 ‘현실적인 건 파이팅’이라는 절대 버려서는 안되는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얼마든지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어쨌건 분명한 것은 지금 당장 이 게임에 필요한 건 감정표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플레이어가 만들 수 있는 변수보다 시스템이 무작위로 조정해주는 변수가 절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임의 핵심 구조다. 이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게임이 가진 큰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했다. 그 변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노련한 경험과 전략을 곁들어야 하는, 언제든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붙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하여 마지막 결실을 맺는 것이 이 게임의 재미였다. 하지만 이제 플레이어들은 그 재미에 적응했고, 질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 게임도 대중에게 선 보인지 1년차, 게임 플레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재미를 발견하는데 목말라 하고 있다.
이 즐거움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비록 패치 노트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이건 단순히 패치 한 번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이 정식으로 서비스 되던 좌충우돌의 과정과 허공답보 중인 e스포츠 리그 등에서 언뜻 보였던, ‘배틀그라운드’가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서비스하는 게임의 방향 설정 자체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솔직히 말해서, 출시 초기에 기자는 ‘배틀그라운드’가 10년 씩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온라인 게임들처럼 그렇게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대단히 잘 만들었던 게임이고 GOTY를 몇 개씩 수집할 만큼 공전의 히트를 친 게임이긴 하지만, 출시라는 절정의 시기에 폭발하는 재미를 넘어서 몇 년씩 지속적인 재미를 창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분명 이전의 한국 게임들과 다른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시작이야 어쨌든 이 게임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다면, 앞서 기자가 언급했던 부분에 대한 고민, 게임이 만들어지고 서비스 되기까지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하고 주도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미 ‘배틀그라운드’는 단순히 연관된 각각의 사람, 각각의 부서가 자기 생각대로 휘둘러도 되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배틀그라운드’와 관련된 개발팀, 사업팀, e스포츠팀 등 관련 부서들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서로 맞지 않게 어긋났고 틀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펍지가 나아가는 흐름은 한 배에 올라탄 사공들이 저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노젓기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최근의 패치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엿보이는 이 게임의 지향점이 제각각이다 보니 전혀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 배는 어디로 향하게 되는가
궁극적인 원인은 게임에 대해 전적으로 이해하고 지향점을 확고히 잡아 유지하여 추진할 수 있는 전권자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배에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없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원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일 뿐이다.
‘배틀그라운드’는 기자에게도 2017년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일 수 밖에 없다. 가장 많이 한 만큼 즐거운 시간이 많았던 게임이기에, 이 게임이 계속해서 생명력을 갖고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하지만 ‘배틀그라운드’와 펍지라는 배는 기념비적인 첫 출항 이후 1년 동안 그다지 주목할 만한 항해를 보이지 못했다.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더 넓은 대양으로 나아갈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