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24일 열린 NDC 1일차에서는 듀랑고를 만든 왓 스튜디오의 양승명 기획자가 강연자로 나서 ‘꿈을 현실화하기’ 라는 제목으로, 기획 과정에서 목표와 현실을 조화롭게 타협하는 법에 대해서 강연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왓 스튜디오 양승명 기획자
게임을 만들면서 다양한 꿈을 가지게 되고, 이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기획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게임을 개발하는 이들이 각자 가진 꿈은 다르다. 매출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여러가지 난관을 겪게 된다. 이는 비용이 될 수도, 트렌드의 변화, 기술의 부족, 팀원 간의 의견 차이 등이 될 수 있다. 애초에 목표 설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결국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곧 꿈을 현실과 타협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듀랑고는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였고, 그 꿈을 여섯개로 나누어 하나씩 말해보고자 한다.
퍼머넌트 MMO 월드
연결된 하나의 세계에서 여러 유저들이 채널이나 인스턴스 없이 플레이하는 걸 처음 목표로 했었다. 지역 제한 없이 유저들이 어디든 개척할 수 있고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게임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대한 대륙 하나를 도입했다. 이 프로토타입 지도에는 다양한 지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인구 밀도가 겉잡을 수 없어져 생태계가 망가져 버렸다. 단일 크기라는 것이 문제가 된 것.
그래서 다음은 여러 대륙을 유저 유입에 따라 계속 새로이 생성하고 자연히 필드가 확장되게 했다. 현재 마을섬의 모델이기도 하다. 첫 FGT 때 이 모델을 시험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섬마다 나이가 달라지면서 신규 유저 유입 시에 문제가 생겼다. 이미 개발이 되고 유저들이 다 차지한 섬에 새 유저들이 유입되고, 이것이 게임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렇다고 신규 유저에게 탐험의 재미를 주기 위해 새 땅을 계속 생성하면, 인구 밀도 제어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오래된 섬을 없애거나 초기화 하자니 유저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정착지와 탐험지를 분리해 안정섬과 불안정섬을 도입하고, 안정섬은 크고 안정적인 사유지 영역으로, 불안정섬은 주기적으로 생성/파괴되는 탐험지로 정했다.
여기서 또다시 안정성을 테스트하다보니, 사유지의 좋은 땅을 선점하는게 무척 중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초기에 어떤 기준이 없이 사유지 선언을 하다보니 불만족을 많이 느꼈다. 때문에 게임에 익숙해진 후에 자연스레 좋은 자리를 찾아 이사를 하도록 유도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을섬과 도시섬을 도입했다.
변화하는 환경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서 2014년에 이미 발표한 내용이 있었다. 첫 프로토타입에서는 모든 자연 변화를 인과율에 따라 시뮬레이션 했다. 나무가 생기면 비옥도가 떨어지고, 플레이어가 작물을 캐거나 할수록 그에 맞는 변화가 즉각 일어났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자원 분포가 변하거나 동물들의 집단 무덤이 생기는 등 다양한 변수가 만들어졌고, 무척 흥미로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처럼 촘촘한 시뮬레이션은 엄청난 부하를 유발했고 큰 맵에서 적용하기 어려웠다. 또 게임 진행에 있어서도 퀘스트에 필수적인 특정 자원이 멸종해버려서도 안되고, 좋은 자원은 그만큼 획득 리스크가 주어져야 했다. 결국 이에 맞춰 크레이터 등의 요소를 도입하면서 치밀한 자연 로직을 포기하게 됐다. 절차적 생성을 도입해 아름답고 의도된 환경이 저절로 생성되도록 했다. 유저들의 플레이에 반응해서 계속 변화하는 환경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같은 체험
유저가 정말로 야생에 조난당한 것 같은 체험을 하도록 하고 싶었다.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구조는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한다. 실제로 공룡시대에 떨어지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그럴싸하게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고민이 생겼다. 사람들은 누구나 게으르고 싶고, 게임을 굳이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는건 아닌데, 그런 유저들을 퀘스트 없이 어떻게 플레이 유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결국 사람에게서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선 적절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동기부여는 생존과 협력을 근간으로 한다. 생존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해서 게임이이라도 적극적인 플레이를 유도한 것. 협력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만족감과 협력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주는 재미를 고려했다.
생존은 몇가지 필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식수와 식량, 잘 곳, 각종 도구 등 생활의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맞춰 프로토타입 때는 수많은 생존 게이지를 때려박았다. 모든 생존 게이지를 채우기 위해 쉴틈없이 뛰어다니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자 UX가 너무 복잡해져 플레이어가 지금의 상태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게 너무 스트레스가 되어서 생존만하지 발전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결국 생존만 하드하게 강조하는건 재미가 없었다. 더욱이 이 시기 많은 생존 게임이 나왔는데, 이 장르에서 듀랑고를 유니크하게 만드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았다. 때문에 피로도로 단순화했다.
속성 기반의 제작 시스템을 만들 때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모두 최대로 활용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처음 구상했을 때에는 다양한 자원을 활용했고, 이 시스템을 토대로 유저 간의 협력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했다.
다만 이 시스템은 기획자가 로직을 짜기 참 어려운 방식이었다. 더구나 온갖 버그도 난무해서, 7억 데미지 짜리 무기로 때려도 몬스터가 죽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가 기획에 깊이 관여해서 안정도를 높이고자 많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모델은 적절한 자유도와 현실성을 타협하고 보다 재미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협업 플레이의 재미는 이미 검증되었고, 다만 솔로플레이의 동기부여가 계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됐다. 그래서 장터를 통해서 느슨한 협업을 하도록 했는데, 신규 유저는 장터의 존재를 잘 알아차리기 힘들었고, 장터를 사용하는걸 일종의 치트처럼 생각해서 꺼렸다.
그래서 솔로플레이에서 동기를 부여하기 전에는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실패했고, 결국 원래는 지양하려던 일직선 형태의 퀘스트를 넣었다. 그러자 초기 리텐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면서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내부의 반응도 좋았다. 이때 이은석 디렉터님이 퀘스트 들어 간 뒤에 식사도 거르고 두시간을 게임을 하고나서 이거 갓겜인데? 왜 진작에 안넣었지? 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왜 그동안 퀘스트를 안넣고 있었는지….
결국 퀘스트 라인은 매우 길게 만들어졌고, 지속적으로 퀘스트를 부여해야 했는데 섬이 절차적 생성인 만큼 퀘스트도 절차적 생성으로 주어졌다. 결국 게임에 엔피씨가 퀘스트가 생겨버렸다. 다른 게임처럼. 이를 보고 그럼 꿈을 포기한 것인가? 라고 물으실 수도 있지만, 어쨌건 우리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퀘스트란 도구가 얼마나 강력한지, 또 그 시행착오 속에서 협력과 생존이라는 동기부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별한 성장모델
샌드박스 성장 모델과 캐주얼 성장 모델이 있었다. 전자는 매우 자유롭게 성장하고, 스킬트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익히기가 무척 힘들고 방향설정이 어렵다. 후자는 그 반대로 익히기 쉽지가 자유도가 제한된다.
그 두가지를 타협해서 접목했다. 샌드박스의 자유도를 적절히 보장하면서 학습곡선이 낮도록 몇가지 방향성을 미리 정했다. 그렇게 해서 직관적인 레벨을 같이 도입했고, 성장곡선의 금기가 깨지니 모두가 아이디어를 마구 던졌다.
그렇게 단일 레벨을 유지하면서 스킬 계열 레벨로 방향성을 잡도록 틀을 잡자 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저들이 각자의 직업을 정하고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찾아 역할을 나눠 협동을 했다.
전투
사실 전투는 듀랑고에서 큰 욕심이 없던 분야였다. 그러나 좋은 수렵 경험을 주고자 노력했고, 많은 시도를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네트워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초기의 추격 컨셉을 빼고, 대치전으로 진행하며 지역을 좁게 쓰도록 했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성능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부분에 비해서 더디게 개발되고 있고, 현재도 계속 개선 중에 있다.
듀랑고의 꿈과 현실
이처럼 게임을 만들면서 우리의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많이 쓴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외부인 대상 테스트였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토대로 많은 횟수를 테스트했다. 내부 테스트의 경우 의무감에 플레이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보아서 제대로 된 피드백이 안될 때가 있다. 때문에 외부의 관점으로 보다 신랄한 피드백을 가능케 했다. 외부인 테스터들은 재미가 없으면 아예 플레이 하지 않는다. 가슴 아프지만 꼭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특히 동기부여와 학습곡선은 외부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토론 문화도 이에 한 몫을 한 것 같다. 기획 단계에서는 불확시한 부분이 많고 이걸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게 된다. 하나를 두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때문에 계속 서로 다른 부분을 계속 맞춰보고 디렉터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확인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다수결은 좋지 않고, 토론 끝에 결정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매 빌드마다 우리의 꿈이 추구하는 바가 맞는가를 재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꿈을 다 이룰 수는 없다. 꿈을 타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양자택일을 하거나, 좋은 대안을 내거나, 포기하더라도 근거를 명확히 하여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듀랑고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장르 문법이 왜 정착되어 있고 어째서 잘 먹히는지, 또 이를 어떻게 새롭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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