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게임 가뭄이라도 해도 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신작 게임이 없더군요.
그래서 구매해놓고 먼지만 쌓여가는 스팀라이브러리를 뒤지다가 꽤나 괜찮은 게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핸드오브 페이트 입니다.
핸드 오브 페이트는 TRPG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드 액션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어두운 배경에 촛불 하나 키고는 테이블에 딜러와 마주 앉아, 내 운명을 건 모험이 시작되는 듯한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게임은 시작하게 됩니다.
눈을 사로잡는 딜러의 셔플에서 약간 사기꾼 냄새가 나긴 했지만, 굉장히 친절하게 게임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고 경계를 푼체 게임 진행방식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핸드오브 페이트의 게임 진행방식은 꽤나 독특했는데, 카드 요소가 들어간 게임답게, 플레이어는 모험에 사용하게 될 장비와 인카운터 덱을 구성하게 됩니다.
장비덱은 말 그대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비들을 구성한는 덱이고, 인카운터 덱은 게임에서 진행될 모험, 스토리 등을 담당하는 카드들로 구성됩니다.
내가 구성하게 되면 당연히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판마다 딜러의 새로운 카드들과 섞어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구성된 카드들이 필드에 뒤집히게 되고 플레이어는 그 뒤집혀져 있는 카드를 하나하나 뒤집어가면서 출구로 향하는 카드를 찾아 나서게 되죠.
재밌는건 이 카드시스템이 나름 신박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겁니다.
먼저, 카드 한장 한장 각자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게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카드를 뒤집으면서 나아가는 걸로 어떻게 여행하는 느낌을 줄까 싶었는데, 카드에 고유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보니, 내가 길을 지나다니는걸 상상하게 되고, 만나는 스토리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지는 점이 참 괜찮더군요.
재미있는건 다음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는 딜러로부터 토큰이란걸 얻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토큰을 얻지 않아도 게임은 진행이 되지만, 토큰을 얻으면 뒷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는 식이죠.
모든 인카운터가 이런 건 아니지만, 묘하게 다음 스토리가 궁금하기도 해서 토큰을 얻는 조건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카드의 가짓수도 다양하고 맵마다 조합되는 인카운터의 종류나 배치순서들 덕분에 같은 인카운터도 결과가 다양해서 매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여행 자체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 시작과 동시에 일정량의 식량과 골드를 가지고 시작하게 됩니다. 이동시에 식량이 소모되기 때문에 무작정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나름 계획적인 동선을 짜서 이동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식량은 이동시에 소모되지만, 이동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배고픈 사제에게 내가 가진 식량 절반을 기부할 수도 있고, 한 마을의 아주머니에게 식량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나 먹을 것도 부족한데 그냥 기부하진 않겟죠,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들이 있습니다. 사제에게 나누어 줄 때는 축복을 받는다던지, 뒤집혀져 있는 카드들을 미리 볼 수 있다던지 할수 있죠.
운 좋게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카드들을 만나서 식량을 수급 할 수도 있지만, 그 카드들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상점에서 파는 식량들을 이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골드의 중요성이 올라가는데, 골드는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뿐만 아니라 식량 구매에도 사용되기 때문에 골드를 수급하고 배분하는것도 굉장히 중요해지죠.
식량과 마찬가지로 골드를 수급할수있는 카드들도 있기 때문에, 그 카드들을 잘 활용해야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 안에서 어캐하면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지 고민하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 전투가 빠질 수 없죠.
도끼 들고 떠나는 모험인 만큼, 다양한 전투인카운터들이 준비돼있습니다.
웬 마을 지나가다가 투기장에 끌려가기도 하고 돈 많이 들고 있다고 도적들에게 습격을 받기도 하죠.
전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 구색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다양한 아티펙트들도 있고, 구르기와 콤보에 따른 대미지 증가, 방패를 이용한 카운터 공격도 있습니다.
카운터 공격을 할 때 슬로우 모션이 된다거나 마지막적 처치할 때 나오는 캐릭터 표정이 상당히 웃겨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장비나 아티펙트의 종류도 다양해서 하나하나 써보는 재미도 있었고, 몹 상성에 유리한 장비들도 있어서 그런것들 이용하는 맛도 있었구요.
그리고 이 게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으니, 대부분의 게임 진행이 야바위로 진행됩니다. 진짜 뭐만 하면 야바위를 시키는데, 성공 실패 다 보여주고는 섞고 나서 그중에서 고르라고 합니다. 딱히 사기치는것도 없기 때문에 중요한건 오로지 나으 동체시력뿐. 덕분에 야바위만 나오면 숨을 멈추고는 초집중 상태에서 딜러와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더러운 운빨 ↗망겜들과 비교되는 이 차별성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눈은 손보다 빠릅니다.
참 재미있게 플레이했지만 고통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이 게임의 경우에는 진짜 말도 안 나오게 극악무도한 영혼까지 털어가다 못해 패드까지 털어가는 막스테이지 난이도에 있습니다.
게임을 좀 더 다채롭게 하는 요소중에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축복이나 저주나 종류가 다양하고, 이를 이용해 다양한 전략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는 그런게 없습니다. 그냥 축복은 받을 수 없고, 저주는 계속 늘어납니다.
이게 정말 당혹스러운게 뭐냐면, 그전까지는 없던 운적인 요소가 바로 여기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뭐 이런 저주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저주카드들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약한 저주도 있지만, 받자마자 게임이 터져버리는 악독한 저주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거 이겼다.' 소리 나오는 게임도 그냥 저주카드 한장에 터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나중 가서는 좋은 저주가 걸리길, 하다못해 상점에서 좋은 아이템이 나오길 빌면서 리세마라를 하게 됩니다.
이 당혹스러운 난이도는 전투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보스들이 잡몹마냥 기어나오고 좁아터진 공간에 적들은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콤보? 카운터? 그런거 없습니다. 콩벌레마냥 굴러다니다가 뒤통수 한 대 치고 도망가는게 고작일 정도로 힘든 상황이 옵니다.
심지어 야바위도 난이도 상승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1-2셔플 야바위는 그렇다 쳐도 3셔플은... 그냥 운입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해도 계속 당하다 보면 '딜러 이 X끼 사기치는거 아냐?' 이 생각뿐이 안 듭니다.' 앞에서는 '처음이시니까 살살해드릴게' 하면서 립서비스 해주더니, 마지막에 와서는 벗겨먹으려 드는거죠. 딜러는 평범한 야바위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짜 프로였던 겁니다.
12시간의 플레이타임 중 절반을 마지막 스테이지에 쏟아부어야 했을 만큼 극악무도한 난이도였습니다. 극한의 컨트롤과 극한의 운이 없으면 클리어가 불가능한 난이도. 그래도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적지가 코앞이거든요. 악랄하고 치밀한 설계로 유저를 늪에 빠트린만큼, 클리어했을때의 성취감도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핸드 오브 페이트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왜 도박에 빠지면 안 되는지 말이죠. 처음엔 쉽고 재미있지만, 마지막은 끔찍하고 빠져나오기도 힘들죠. 그야말로 도박 같은 재미가 있던 게임, 핸드 오브 페이트였습니다.